Skip to content

[소환] 달려가던 소년은

Sigma 2017.04.13 13:51 조회 수 : 50



  고대 그리스 시대, 제논은 여러 역설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아킬레우스와 거북이를 소재로 한 이론일 것이다.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둘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속도로 유명했다. 전자는 사람 중에서 가장 빠르기로, 후자는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느리기로. 그런데 제논은 아킬레우스가 결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킬레우스가 100m 가는 동안 거북이가 10m을 간다고 가정했을 때, 아킬레우스가 100m를 나아가면 거북이는 10m를 나아가며, 다시 아킬레우스가 10m를 나아가면 거북이는 1m 이동하여 그 자리에 없게 되니, 아킬레우스는 아주 미세한 거리만큼 뒤처지게 되며 아무리 가까워져도 거북이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였다. 준족이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빠른 아킬레우스가 고작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할 리 없다. 하지만 무한급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당대에는 제논의 말을 논리로는 부정할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키라는 그 역설이 자신의 처지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키라가 따라잡는 쪽이 아니라 도망치는 쪽이고 그 장수처럼 빠르지도 않다는 세세한 차이점이 있긴 했으나, 아무튼 상대와 거리를 벌릴수 없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불꺼진 교실. 복도에 내려앉은 스산함의 나열. 출구를 찾아 달리는 소리의 뒤를 또각이는 발걸음이 잇는다. 아키라는 자신이 뒤를 돌아보는 그 순간 소녀와 마주치리라고 확신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걷고 있는 소녀보다 달리는 그 쪽이 빠를게 자명하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선 이래, 아키라는 현재진행형으로 자신을 둘러싸는 일들에 과연 상식을 통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혼란 속에서 방향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복도, 계단…… 굴곡 없는 직선이 규칙적으로 얽혀 있으나 그 방향성은 입체적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위층으로, 내려가면 아래층으로. 마지막 단에서 이어지는 복도는 교실에, 또는 다른 관(館)에 맞닿아 있다. 일단 어떤 계단이든 쭉 내려가기만 한다면 1층으로 도달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라면 계단의 끝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출입구일지, 1층의 복도 한가운데일지는 별개라는 점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키라는 짧게 숨을 삼켰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키라는 알 수 없었다. 학교를 빠져나가려면 교문이 있는 곳으로 가는게 옳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를 빠져나가면 안전해질까? 아키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은 하나였다. 절대로 아닐 터였다. 직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학교에 머무를 수도 없었다. 사람이 없는 방학의 학교는 크기가 큰 밀실이나 다름없다. 아키라는 밀실속을 헛되이 헤매다가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 때 갑작스럽게 시야가 트였다. 순간적으로 아키라는 자신이 방향을 헷갈렸나 긴장했다. 방학때는 후문 쪽 출입구는 열어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긴장 속에 잊어버린 탓이다. 다행히도 그곳은 정문으로 향하는 출입구였고, 무의식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아키라는 지체 없이 뛰어나갔다.



  "윽!"

 
  다시, 극적으로 시야가 바뀌었다. 아키라의 눈앞에서 하늘이 사라지고 땅이 그 부재를 대신했다. 잠깐동안의 암전. 온몸으로 전해지는 아픔에 아키라는 자신이 넘어졌음을,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음을 깨달았다. 아키라는 서둘러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이곳저곳이 따가웠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더 심하게 넘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아키라는 몸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었다. 더 지체했다가는 소녀에게 붙잡혀 다시는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교문에서는 한참 떨어진 거리였다. 그렇다면 다른 곳은…….


  아키라는 저려오는 팔을 잡으며 체육관을 바라보았다. 곧바로 떠오른 것은 고식지계라는 단어였다. 교사(校舍)에서 벗어나 체육관으로 들어간다니, 큰 밀실에서 작은 밀실로 숨어드는 격이다.
  하지만 당초 목표했던 교문으로 도망치기엔 시간을 너무 끌었다. 무엇보다 길게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결국 아키라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바닥을 딛자마자 아키라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불명이나 학교 안은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장소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아키라는 자신의 예상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고, 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바닥 가운데에 고정되었다.
  바닥에는 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거의 겹쳐질 정도로 그려진 두개의 원. 보다 작은 원은 한 가운데의 육망성을 감싸고 있었고, 여백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균형을 맞추듯 나열되어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림의 중심부에는.


  아키라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아키라는 이번엔 전혀 통증을 느낄수 없었다.


  그림 가운데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 쓰러져 있었다. 아키라도 아는 학생이었다. 키타노 타츠미라는 이름을 가진 그 학생은 겨울방학 직전에 전학을 왔다. 온순하고 싹싹한 성격이 마음에 들어 아키라는 그에게 마술부 입부를 권유했었다…….
  그러나 그 때와 달리 키타노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명백하게 본래의 색이 아닌 것에 물든 허릿깃이 텅 빈 허리 위에서 바람에 따라 힘없이 너울거렸다. 뭉실거리는 피냄새. 아키라는 속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아키라는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 때 키타노와 소년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 우연이다. 왜냐하면.


  아키라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온 힘을 다해 뿌리쳤다.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머리 한구석으로는 답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키라는 절박하게 사고(思考)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럴 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아, 신고, 신고를……."



  그제서야 아키라는 자신이 휴대폰을 갖고 있었음을 떠올렸다. 동시에 후회했다. 만약 그가 침착하게 행동했다면 처음 아사노를 보았을 때휴대폰을 생각해내어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소녀가 가만히 서서 그가 전화번호를 누를 때까지 기다려주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아니, 자책할 시간은 없었다. 아키라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정확히는 누르려했다.



  "아."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휴대폰이 떨어졌다.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였기에 다행히 휴대폰은 부서지지는 않았다. 아키라는 자꾸만 떨리는 손을 겨우겨우 뻗어─



  "어머나…… 여기로 도망쳐 온 건가요. 후후후… 이것도, 운명이라는 걸까요?"



  아키라는 왜 그때까지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텅 빈 체육관에 뚜렷하게 울려퍼지는 소리인데도.
  또각거리는 구두소리. 검은 소녀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


원래 폰을 소환씬 rp에선 복도 달리다가 떨어뜨렸는데 쓰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쿠즈류시 성배전쟁 제5턴 진행 [5] 아르니엘 2017.05.27 103
공지 [공지] 쿠즈류시 성배전쟁 제4턴 진행 [18] 아르니엘 2017.04.30 153
공지 [공지] 쿠즈류시 성배전쟁 제3턴 진행 및 맵과 영지 [19] 아르니엘 2017.04.13 115
공지 [공지] 쿠즈류시 성배전쟁 제2턴 진행 및 맵과 영지 [23] 아르니엘 2017.04.07 141
공지 [공지] 쿠즈류시 성배전쟁 제1턴 개막 및 맵과 영지 [22] 아르니엘 2017.04.05 177
41 [전투] 엔트란스 - 01 ahaz 2017.05.06 44
40 엔트란스 ahaz 2017.05.04 22
39 랜서 : 건방진 놈! - 02 ahaz 2017.04.29 34
38 랜서 : 건방진 놈! - 01 ahaz 2017.04.29 48
37 4: 미드나잇 인 알함브라 로하 2017.04.25 58
36 5: 티파니에서 아침을 로하 2017.04.14 24
» [소환] 달려가던 소년은 Sigma 2017.04.13 50
34 2일차, 돌아가는 길에.(노소기 렌) file 아르니엘 2017.04.12 133
33 [소환] 낮과 밤의 경계에서 Sigma 2017.04.11 38
32 이전의 이야기. 미코토의 방에서. 넥클 2017.04.11 37
31 [서장] 검은 언제나 날카롭게 LiVERTY 2017.04.11 25
30 1일차. 신사. 소원 넥클 2017.04.10 31
29 1일차. 신사. 소원 (원본) 넥클 2017.04.10 22
28 3.5: 이샤나 아르시오네의 악몽 로하 2017.04.10 38
27 3: "양갱 15개나 드셨는데 배 부르지 않으세요?" "전혀요." 로하 2017.04.10 44
26 이것저것 질문받는다면 대답해 드리는게 인지상정 Stella 2017.04.10 39
25 [교류] 아마기 브릴리언트 파크에 어서오세요 (#04) 벚꽃여우 2017.04.09 43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