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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가 불타고 있었다. 


 물론 공기 자체는 불탈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식의 한계였고 두 서번트가 격돌한 자리에는 상식이라는 개념이 남아있지 않았다. 대기가, 그 자리에 떠도는 마력이 불타올랐다. 이글거리는 열기에 주변의 땅이 말라 비틀어졌다. 검은 불꽃과 흰 불꽃은 서로를 살라 먹으며 끝없이 타올랐다.


 페네브리아는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싸움은 인간의 손을 벗어난 것이었다. 보조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그녀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캐스터를 도우려는 행동은 아니었다. 캐스터가 점점 열세로 몰리고 있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페네브리아는, 그 불꽃에 매료된 것처럼, 발걸음을 내디뎠다.



-



 마술 각인은 마술사 본인이 위험할 때 자동적으로 방어와 치유를 실시한다. 또한 스스로 마술을 행사하기도 한다. 마술사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페네브리아는 그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페네브리아는 라이더가 내려치는 칼날을 눈앞에서 보았다. 그것으로 전부 다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페네브리아의 기대와는 다르게 라이더는 검을 거두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미 내려친 검을 물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었지만, 서번트, 그것도 상당한 민첩성을 가진 라이더에게는 간단한 일이었던 것 같다. 다만 라이더가 타고 있던 무언가, 말인지 어떤 짐승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은 그대로 페네브리아의 팔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페네브리아는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회복되고 있었다. 뼈가 박살이 난 것처럼 너덜너덜했던 팔도 열기에 익어버린 듯 화상을 입은 피부도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피오렌티나 가의 마술은 치유 마술이다. 마술 각인에 남아있는 것도 물론 치유의 마술이다. 결국 그 마술 각인은 마술사를 웬만한 부상에서는 강제로 회복시켜버리는 성질의 것이었다. 대대로 물려받는 마술 각인이 마술사 가문의 업이라고들 하지만 페네브리아에게 마술 각인은 정말로 저주 그 자체였다. 시험해 본 적은 없었지만, 아마도 몸이 두 동강이 나거나 목이 잘린다고 해도 저주와 같은 마술은 확실하게 그녀의 목숨을 이어 붙여놓을 것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 무책임함에 있었다. 치유 마술이라고 해도 고통을 줄여주진 않는다. 목숨을 살릴 뿐 현대 의술처럼 후유증 같은 것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최악의 경우에는 살아있는 고깃덩이가 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열세인 싸움에서 안전하게 퇴각했다는 의미는 있었지만 정말로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기분이었다.


 "왜 그랬냐던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가요?"


 빌딩 사이를 빠져나와 조금 떨어진 곳의 골목이었다. 벽에 기대어 쓰러지듯 앉아있는 페네브리아를 바라보는 캐스터는 미덥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면, 물을 필요도 없겠지. 그 몸을 믿고 끼어든 건가. 꽤나 자신이 있는 모양이렷다."


 페네브리아도 감사의 인사 같은 걸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의문을 가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별로... 바라던 대로 된 건 아니네요."


 페네브리아는 표정을 찌푸렸다. 회복되고 있다고는 해도 팔 한쪽이 불타 부서져 버린 사람치고는 엄청난 자제력이라고 할만했다. 피를 토하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이따금 호흡이 거칠어지고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릴 뿐이었다.


 "그래서, 여긴 어디쯤인가요?"


 상대방마저 당황하게 할만한 행동으로 틈을 만든 셈이 되었지만 결국 그녀를 데리고 그곳을 빠져나온 건 캐스터였기 때문에 페네브리아는 자신이 어디 있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걸 신경 쓸 경황도 없었다.


 "아까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 흥...  회복이 끝났으면 어서 일어서라."

 "이쪽은 서번트도 아니라서 그런 식으로 말해도..."


 약한 소리를 하면서도 페네브리아는 자리에서 멀쩡하게 일어섰다.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크게 돌려봐도 불편한 기색은 없었다. 


 "그럼 빨리 움직여라. 설마 길거리에 널브러져서 회복을 하겠다고는 하지 않겠지."


 캐스터는 무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근처에 작지만 영맥이 통하는 땅이 있다. 그곳으로 이동한다."

 

 캐스터는 라이더와의 전투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먼저 하지 않았다. 분명히 패배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는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분해하지도 않았다. 변명 같은 것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참 사람 부리는 법이 거칠다니까."


 페네브리아는 제법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서번트와 마스터라는 관계가 반대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눈앞의 존재는 누군가의 시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편이었으니까.


 "그래도 라이더의 정체 정도는 눈치챈 모양이던데."


-


 혹시 캐스터가 불쾌해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페네브리아였지만 캐스터는 담담하게 라이더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렇다면 역시 그 라이더는 캐스터 당신에게는 최악의 상대였겠네요."


 페네브리아는 옆에서 걷고 있는 캐스터의 표정을 살펴봤지만 큰 심경의 변화는 없는 듯싶었다.


 "하, 그렇다면 다른 놈을 꾀어내 부추기면 될 일이 아니더냐. 게다가... 놈에게는 약점이 있다. 모르겠느냐?"


 무덤덤하게 자신의 패배와 열세를 인정하는 것도 놀랄 일이었지만 페네브리아는 약점이라는 말에 더 신경이 쓰였다.


 "약점...? 전승이나 라이더의 상성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 그 마스터다. 그 꼬마 계집을 지켜야 하는 이상, 놈은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없다."


 페네브리아는 캐스터의 보구를 떠올렸다. 라이더의 무력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캐스터의 그것도 다른 의미로 규격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네요. 라이더 같은 영령이라면 마스터를 내버리는 짓은 하지 못할 테니까."


 문득 살짝 웃음이 떠올랐다. 그 마스터 소녀, 금발의 인형 같은 아이. 분명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일 것이다. 그에 비해 페네브리아 자신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자신을 내버리게 된다. 재미있는 대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하나 있어요."


 이전에 질문을 던졌을 때의 캐스터의 반응을 생각하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캐스터의 반응은 생각보다 온건했다.


 "해봐라."


 페네브리아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싸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습을 감출 것. 당신의 악의 자체는 쉽사리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정면에서부터 경계 당하는 것도 좋지 않을 테니까요."


 페네브리아는 이번의 전투도 상정 외의 돌발상황이었기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크게 연연하지는 않았지만 령주의 소모도 마력의 소모도 적지 않은 편이었다. 원하던 바를 이룬 것도 아니었다.


 "그편이 다른 쪽을 이용하기에도 좋을 거고."


 라이더와 싸우기 전에도 꺼낸 이야기였다. 캐스터의 서번트로 정면돌파는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캐스터가 강력하다고 해도 대마력을 갖춘 삼기사나 라이더 같은 서번트와 다시 조우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때를 기다려 회유나 기습을 하는 편이 좋다고 말했었다. 캐스터는 라이더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는지 그때는 단칼에 거절당했지만.


 "좋다. 그렇다면 대신 표면에서는 너 혼자 움직이거라. 어디, 경계 당하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수완을 보도록 할까."

 "고마워요."


 페네브리아는 쓰게 웃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순순히 제안에 따르는 캐스터의 모습에 안도했지만, 누구보다도 경계 당하기 쉬운 인간이 페네브리아 자신이 아니었던가.


 "허나, 그것이 실패했을 때는... 응당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각오하고 있도록. 나는, 이 성배 전쟁에 놀러 나온 것이 아니다."

 "......."


 캐스터의 엄포에 페네브리아는 입을 다물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못 하지? 하지도 못할 말을 하고서 겁을 먹은 거냐?"

 "...뭐, 괜찮아요. 벌써부터 겁을 먹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요."


 캐스터의 반응은 한숨이었다.


 "...하아. 그렇게 해서까지, 너는 성배를 얻어서 죽고 싶은 것이냐?"


 페네브리아는 놀랐다. 동요를 숨길 수 없었다.


 "어라, 제가 제 소원을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알고 있었나요?"


 페네브리아 피오렌티나의 소원은 죽는 것. 그 외에도 이것저것 있었지만 본질은 그것이었다. 


 "아까의 전투에서 몸을 던져대는 꼴을 보면 누가 봐도 죽고 싶어 안달 난 년이라는 걸 한 번에 알 거다. 정말이지, 요즘 것들이란..."


 캐스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까지의 위압감과는 달리 조금 가벼운 느낌이었다.


 "...조금 부끄러운 느낌이네요."


 죽지 못한 것이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었을 줄이야. 게다가 그 자리에서 정말로 라이더에게 죽었다면 그것도 마스터로서 캐스터에 대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낳아준 부모에게 미안하다던가, 그런 생각도 없는 게냐? 서양 것들은 인의팔행仁義八行도 모르는가."


 지금까지 보아온 캐스터와는 조금 다른 모습에 페네브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세상에는 죽는 편이 나은 사람도 있는 법이에요. 인의팔행, 동양의 효도라면 오히려 죽는 편이 효도인 것 같은데."

 "바보 같은 놈!"


 갑자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노호한 캐스터는 페네브리아의 뺨을 후려쳤다.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서번트의 진심이 담긴 손찌검에 페네브리아는 그 자리에 쓰러질 정도였다.


 "...좀 의외네요?"


 살짝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페네브리아는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한 손으로 먼지를 대충 털어내는 페네브리아의 얼굴에는 분노나 공포가 아닌 웃음이 걸려있었다.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식은 더더욱 아니었다. 정말 오랜만에 짓는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어서 기뻐하는 부모가 어디에 있다더냐! 아무리 상것이라지만...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아라!"


 캐스터의 말에 페네브리아는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역시 기억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부모님은 이미 죽었으니까."


 캐스터가 말하는 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페네브리아는 말대꾸를 하는 것처럼 툴툴댔다. 왠지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부모보다 먼저 죽는 건, 자식으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최대의 불효다. ...내 자식도, 얼마 되지 않은 나이에 먼저 죽어버린 괘씸한 녀석이었다. 알겠느냐?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라."

 

 훈계를 하는 듯한 캐스터는 조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그래요. 잘 알았으니까."

 "시끄럽다. 이 얼간이 계집애가. 내 반도 못 살아놓고 무슨 세상을 다 산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게냐.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죽어볼 테냐?"


 툴툴거리는 페네브리아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고는, 캐스터는 영체화 해서 모습을 감췄다.


 "비참하게 죽는 건 취향이 아니지만... 만약의 경우에는 부탁해보도록 하죠."


 혼자 길을 걸으며 내뱉은 페네브리아의 마지막 말은 캐스터에게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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