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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이샤나 아르시오네의 악몽

로하 2017.04.10 15:28 조회 수 : 38



# 00.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꿈을 꿀 때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악몽이었다.





# 01.



이샤나 아르시오네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예전의 사진을 발견했다. 클라우드 시스템에 저장해 두었던 것이다. 다섯 살쯤 되었을까, 어렸던 자신과, 그 때에도 지금처럼 휠체어 위에 앉아 있던 오빠. 이걸 찍은 것이 아빠.. 아버지였던가, 어머니였던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


이샤나는 이미 십 년 가까이 연락이 끊긴 모친을 떠올렸다. 지극히 객관적인 판단으로는, 그 집안의 특성상 내부적으로 배제되어, 최악,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상당했다. 분명 그녀는 모친이었을 터인데, 피살 사건을 뉴스에서 볼 때보다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이샤의 모친은, 외견만큼은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흑발과 자주색 눈동자. 이샤가 동화 속 공주님 같은 용모라면, 그녀는 고대 다신교의 여신, 혹은 여신관 같은 요염하고도 잔혹한 느낌을 주었다. ...이샤를 어릴 때부터 보아온 사용인들은 오히려 백설공주의 그림하일드 왕비 같지 않냐고 수군거렸지만.


아무튼, 그녀는 대대로 내려온, 미(美)를 추구하는 가풍을 구현한 것처럼 아름다웠다. 목소리는 고상하고 말투는 새침한 듯 나긋했다. 분명, 맨 첫 순간의 아버지도 그 특유의 분위기에 끌렸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집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재능이었고.

하지만, 그녀는 타인을 증오하고 깎아내리는 열등감에 휩싸였으며.

하지만, 그녀는 꾐을 써 가진 아이를 통해 아버지의 혈통라는 '목적'을 달성했으며.

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무진 애를 써도 가까이 갈 수도 없던 재능을 가진 아이와, 제 몸 하나 못 가누는 아이를 낳았고.

하지만, 그녀는 그런 아이들에게 무자비한 증오와 폭력을 휘두르던 여성이었다.



... 이제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샤나는, 애써 떠오르는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 02.



『200n년 n 월 n 일. 


유명 스타 A 씨의 아내 B 씨가 아동 학대와 친자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B 씨의 자녀 C양 (7세) 은 현재 병원에 입원하여... 거동이 불편한 것으로 알려진 D군 (7세)는 심리 치료 상담사와...  


... n 월 n 일 구속된 B 씨는 뉘우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고... 그러나 죽이려던 의도만큼은 없었다고 부정하며.... 극도의 정신 불안정 상태... 살인 미수 혐의는 입증되지 않았으며, 아동 학대 죄목으로 ... 를 구형. A 씨 측은 이혼 소송... 법원은 정당하다고 판단하여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C 양은 현재 심각한 공포와 불안정 상태... 양육권은 A 씨에게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B씨는 징역 후에는 n 년간 감금 및 보호관찰이... 자녀 두 명에게는 접근 금지형이 내려져..』 





# 03.



이샤는 오레오 쿠키 쉐이크를 홀짝이며 사진을 넘겼다. 오빠, 아빠와 남프랑스 여행을 갔었을 때 찍었던 사진... 베네치아에서 찍은 사진... 오빠와 함께한 사진은 대체로 인근 국가의 장소였다. 그에게 필요한 의료 시스템과 의료진을 동원해서 가기에, 대양을 건너는 것은 너무나 위험했으니까. 비용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빠 - 이샤이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처럼. 이샤나는 그런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태어나면서 이미 자유롭지 못하고, 남들은 한창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할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것이 거의 확실하게 예정되어 있다니. 세상 따위 뒈져버리라고, 망해버리라고 한탄했을 것이다. 자신은.


또, 수단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위험한 치료는 차치하더라도, 천재적인 인형사의 인형이라면 어떨까. 돈 따위, 걱정할 건수도 되지 않았다. 아니면, 기원후 5세기 이전 것이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는 - 이샤나 아르시오네만이 현재 세계 유일하게 작성할 수 있는 예의 악보를 만들어 건네주는 것도 좋은 거래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오빠는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니까.


그는 그렇게 말했다. 물론 정신 - 혼의 개념에서는 그 자신이 맞겠지만, 태어났을 때 그가 지닌 그의 절반은 완전히 잃어버리고,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라고 토해내듯 외치는 이샤나의 말에 그는 웃었다. 고마워, 내 동생. 사랑스런 이샤. 하지만 나는 괜찮아.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는 걸.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나는 지금 나의 모든 것이 감사해. 아버지가 아버지란 것도, 네가 내 동생이란 것도. 너무나 기뻐. 네가 아름다운 것처럼, 맑은 날의 하늘도 아름답고, 비오는 날은 운치가 있어. 햇빛은 눈부시고 사람의 별도, 하늘의 별도 반짝이며 빛나.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나는 이 모든 걸 아름답다 느끼고,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이샤이 아마데오-리브 아엘리아는 "신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름처럼, 천사처럼 그렇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을까.

그가 떠난 후 남겨질 소녀의 아픔을.

세상에 유이한 '가족'을 잃어버릴 순간을.

이런 어리석고 - 위험하고 - 바보 같은 선택을 하면서까지, 그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어리석은 여동생의 가족 생각을. 





# 04.



이샤나 아르시오네는 꿈을 꾸었다. 정말로 드물게도, 아프거나 무섭지 않은 꿈이었다.


그렇지만, 무엇을 보았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이샤나는 잠시 멍하니, 어두운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한 쪽 베개를 끌어안고, 옆으로 웅크리듯 누워 이불을 덮었다. 차가운 이불의 감촉에 조금 더 소녀는 몸을 움츠렸다.


새벽이 오는 것은 아직 멀리.

밤은 여전히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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