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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Depression Wish : 에렐리니아 - 48

2008.06.01 16:27

미에링 조회 수:247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한적한 도로. 좌측으로는 바다가,
우흑으로는 야트막한 야산이 듬성듬성 있는 좁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시야가 뻗는 끝까지 텅 비어있는 도로,
멀리 봐야만 굽어 있는것이 보일 정도로, 직선에 가까운 코스.

노면 상태도 크게 거칠지 않고, 속도를 내기엔 나쁘지 않다.

조금씩 얹혀지는 속도에 스쳐 지나간 제한속도 표지판의 속도는 80,
하지만 이미 속도계는 110을 넘어가고 있었다.

엔진의 회전수가 올라감에 따라 엔진의 소리도 조금씩
고양되어 간다. 하지만, 아직 아쉬운 소리를 낼 때가 아니다.

"에렐, 정말 괜찮은…"

걱정스러운 듯 물어보려다가 로베스의 손짓에 말을 멈추는 마루.
로베스는 뒷좌석을 돌아보며 생긋 웃고 있다.
룸 미러에 비추인 마루의 표정은 어딘가 떨떠름한 듯한 표정이었다.

통상의 속도라면, 여기에서부터 15분정도를 달리면
지난번의 그 바닷가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속 70mk일때의 이야기다.

차 문의 잠금 상태와, 창문의 폐쇄 상태를 곁눈질로 확인한다.
그리고…

드륵,
트랜스미션의 최종 변속, 스티어링의 감촉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액셀레이터 위에 얹혀진 발을 천천히 내린다.

"에렐리니아, 생각나?"

로베스는 상쾌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얘기를 하려는 것일까.

"에렐리니아가 나를 두 개째로 태워 날려줬을 때-"

…그거라면, 8년전의 얘기다.
로베스를 처음 태워줬던 건, 로베스가 먼저 나에게 얘기했던 것이었다.
그 때… 우울해하며 주저앉아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워,
달려보자고 말한건, 로베스였다.



그렇게 세차게 부딛히는 바람에, 우울한 공기를 날려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내 손을 잡아 끌어당겼었다.

그 날, 난 처음으로 내 보았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큰 사고를
냈지만, 차를 폐차시킬 정도의 사고에서도, …아무도 죽지 않았다.
닌 두 달정도 오른 다리와 오른 팔에 깁스를 한 채로 다녔어야 했고,
로베스는 기적적으로 아무런 부상 없이 가벼운 찰과상만을 입었다.
깁스를 하고 누워있던 나와 그런 날 간호해 주던 로베스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로베스를 태우고 달려 본 날은, 그로부터 1년 후.
로베스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족인 어머니와 여동생을 동시에
잃어버리고 그 2일 후였다. 나의 저주받은 운명의 희생양,
그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지만, 더이상 나는 그로 인해 우울해 하지도,
방안에 틀어박혀 며칠동안 나오지 않는 일도 없을 때였다.

무뎌졌던 것일까, 난 아무렇지도 않았고, 로베스는 울었다.
참으려고 하지도,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목놓아 그 날을 울었던
로베스는, 그렇게 지쳐 잠이 들고 2일 후에 다시 웃는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다시는 날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로베스는 다시 나를 찾아와서, 오히려 내 걱정을 했다.


그 날,
그 떄,
처음으로 내 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을때도 울지 않았던 내가,
눈물을 흘렸다.

왜 울었는지도 모른다.
눈물을 감추려 했지만, 그래서 단 한 번의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눈물은 내 의지를 거역하고 뺨으로 흘러내려,
로베스의 손에 그것을 들켜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
난 로베스를 데리고,
아누라크 외곽 순환 도로를 몇 바퀴나 돌 떄 까지,
그렇게 날이 어두워 질 떄 까지 엑셀레이터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로베스는 나를 보며 웃었다.




"기억한다."

약간 늦게 돌아간 내 대답에 로베스는 그 때처럼 나를 보며 웃어준다.
난 아무 말 없이, 약간 더 속도를 냈다.

속도계가 240km 근처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머릿속을 울릴 것 처럼 울리는 엔진 소리와,
노면에 달라붙는 타이어가 내는 소리.

그리고, 그 날 마루와 왔던 해변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

마루의 목소리가 들린다.
룸 미러에 스치는 마루의 표정이 조금 가라앉은 것 처럼 보이는건,
괜한 걱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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