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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그 이후의 일은 아주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아르델비제 양은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나올 하루의 여유를 요청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구를 반 바퀴 도는 여정 내내 어지간한 불편이나 번거로움에는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여행에 익숙한 것처럼, 연착 따위로 인한 돌발 상황에도 능숙하게 대처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실비엣을 챙기기까지 했다. 

 

 "미스. 혹시 불편한 건 없나요?"

 

 물이라도 챙겨올까요, 에 가까운 어조로 실비엣은 물었다. 관리자의 업무 미스와 기내 응급 환자 발생으로 인한 연착으로 하마터면 그들은 뜬금없는 쿠알라룸푸르 행 비행기를 탈 뻔, 아니지. 그조차도 타지 못할 뻔했다. 다행히 이샤나 아르시오네 아르델비제는 "스케줄로 인해" (실비엣은 무엇인지 따로 묻지는 않았다. 그건 그녀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었으므로.) 이런 것에 익숙했고, 일단 그녀의 카드 결제로 무사히 로스앤젤레스에서 시드니 행 비행기의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일단 돌아가면 인사고충을 올려야지, 실비엣은 다짐하며 라운지의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01.

 

 

 180도로 눕혀지는 퍼스트 클래스의 좌석에서, 이륙한 지 30분만에 이미 120도쯤 몸을 기울인 실비엣은 흘끔 옆자리의 소녀를 쳐다보았다. 정정, '건너다보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좌석 간의 거리는 이코노미 클래스와 비교하면 마치 미시시피 강과 템즈 강의 강폭만큼이나 달랐으니까. 

 

 소녀는 첫날 그녀가 말했던 '암시'를 다시 실비엣을 포함하여 걸고 있는 것인지, 첫 만남의 순간처럼 사람의 사고 능력을 정지시키지는 않았다. 물론 여전히 꽤 많은 사람들이 영화배우인가봐, 디즈니 스타인가? 모델? 하는 소곤거림과 함께 시선을 던지며 지나갔지만, 아마 이 비행 후에는 "와 그러고보니 비행기에서 엄청 예쁜 외국인 봤어" 라고 말하는 순간 정도를 제외하면 아마 금방 잊어버릴 것이었다. 

 

 푸른 눈가에 그늘을 드리우며, 소녀는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한창 젊었을 적의 줄리 앤드류스가 그 유명한 도레미 송을 부르고 있었고, 아이들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마냥 그 주변을 뛰놀고 있었다. 

 

 "음?"

 

 이런, 너무 대놓고 쳐다보았나. 소녀는 시선을 돌렸다. "마스크 팩이라도 쓰실래요?"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녀는 아주 조용히, 작은 목소리로 묻는 에티켓을 발휘했다. 실비엣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자 가볍게 피식 웃고는 조곤조곤 말한다. "그래도 기내가 건조하니까, 이거라도 쓰세요. 저희, 지금 완전히 스무 시간째 이 좁고 메마른 곳에서 사육당하고 있다구요." 아, 호의라면 감사하게. 실비엣은 무심코 내밀어진 미스트를 받았다. 

 

 "솔직히 진짜 비행기 안, 너무 건조하긴 한데 왜 미스는 전혀 그런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뭐에요, 그게...!"

 

 잔잔한 파도가 치는 것처럼 잔웃음이 일었다. 이샤나 아르시오네는 털썩, 좌석에 쓰러지듯 누웠다. 푸른 눈이 장난기를 가득 담아 빛났다. "난 또, 내가 뭔가 이상하게 보이는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실비엣은 진심을 담아 부정했다. 그녀도 이전까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 왜 보이그룹의 팬들이 자신들의 아이돌이 뭘 해도 귀엽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저 소녀가 물구나무를 서서 걸어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그리 생각할 것이었다. 

 

 "그런가요? 부모님께 감사드려야겠네......"

 "저라면 하루 세 번 부모님 사진을 붙여놓고 감사 인사를 드릴 거에요."

 

 소녀는 낄낄대며 웃었다. 스튜어디스가 접시에 담아 공손히 올린 마카다미아 과자를 뜯어 한움큼 입 안에 집어넣고는 물을 또 한 번 들이켰다. 

 

 "우리 언니들이랑 오빠는 그런데 정말로 진짜 완전 예쁜데."

 "그럼 부모님이 아니라 조상님께 감사드려야..."

 

 저 말이 사실이라면 저 집안 형제 자매들은 토탈 이클립스 때의 레오 디카프리오나 트로이의 브래드 피트, 반지의 제왕의 올랜도 블룸이 와도 심드렁할 것 같았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금빛 머리카락을 무심하게 뒤로 넘기며 이샤나 아르시오네는 툭 내뱉었다. 파삭파삭, 마카다미아 봉지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아마 우리는 당신들한테 배척받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실비엣 로즈 도노반은 잘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어쩐지 더 이상 물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선'을 지키는 것 또한 그녀의 커리어를 유지하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고,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을 오래 갖는 편이 아니었다.

 

 따라서, 실비엣은 스튜어디스에게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요청한 후 더욱 편안히 누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흥행작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02.

 

 

 "휴우, 이제야 시드니네요. 여기서 이틀 정도 쉬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항공 이동, 거기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 기차 이동 후 헬기를 타고 들어가는 것. 맞나요?"

 "네에. 그런데 이럴 거라면 그냥 전용기를 한 대 빌리라고 했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미국에서 뉴질랜드까지면 몰라도, 시드니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는 빌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할까요?"

 "네?! 아뇨아뇨."

 

 이샤나 아르시오네는 쭉 기지개를 켰다. 커다란 캐리어 세 개를 끌고 대중 교통을 갈아타면서 시내로 향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에, 그들은 택시에 짐을 싣고 달리는 중이었다. 사실 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나갈 필요는 없었지만, 시드니 국제공항은 그 도시의 규모와 이용객의 수, 국가의 위상에 비해서 열악한 것으로는 손에 꼽힐 정도였으므로, 공항에 딸린 호텔은 휴식을 취하기에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호텔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목욕을 한 다음에 스파를 가야지. 실비엣은 다짐했다. 시드니는 몇 번 학회 때문에 방문한 적이 있는 도시였고, 따라서 이럭저럭 맛이 괜찮은 해산물 요리 전문점도 몇 알고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릿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짐을 푼 후, 두 명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스파를 예약하고, 방에 도착하자마자 40분쯤은 목욕을 한 후 한 시간 동안 쓰러져 잠들었다. 일어나서는 예약된 스파를 들렀다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다. 실비엣이 미리 전화해 둔 레스토랑은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기에, 둘은 오늘의 마지막을 저녁으로 장식한 후 방에 돌아가자마자 쓰러져 잘 요량으로 열심히 걸었다.

 

 "그러고보니, 실비엣. 사전 브리핑 같은 건 안 해줘도 되나요?"

 "브리핑이요?"

 "네에. 저, 사실 서번트를 소환해서 특이점을 복원해야 한다, 이것 말고는 딱히 전달받은 게 없거든요." 

 

 이 업무 태만 아니면 무능한 인간이. 실비엣은 욕지기를 내뱉고 싶었지만, 간신히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도로 삼켰다. 실비엣이 눈으로 욕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샤나는 태평하게 홍합의 껍데기를 분리해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지만.

 

 "아마 기본적인 적응 교육과 시스템 훈련은 도착한 다음에 진행될 거에요. 제가 알기로 원래 적성자는 좀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 최종 불합격자랑 본인의 의향으로 자진 사퇴한 케이스 같은 걸 전부 다 빼니까 한 일곱 명 남았던 것 같아요."

 "헤에. 그런가요?"

 "뭐, 바라는 조건이나 환경 같은 것 있나요? 미리 연락해두면 준비할 수 있을텐데."

 

 하다못해 방 안에 공기청정기라도 놔 달라고 하시죠, 관리자가 편한 꼴은 못 두고 보겠다는 듯 실비엣이 툭툭 내뱉었다. 남극에 공기청정기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있으면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아니면 거위털 이불이나, 뭐든지. 

 

 "아뇨, 뭐. 딱히 그런 건 없어요. 어디까지나 일하러 온 거니까요."

 "일..은 맞긴 한데, 보수는 받..으신거죠?"

 

 아무렴 입금은 되었겠지. 실비엣은 반신반의했다.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면 그녀로서는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것과 동일했다. 돈이 딸려오지 않는다면 자원봉사지.

 

 "얼마더라, 아무튼 약간 받긴 했는데. 아마 계약 조건은 최종 미션 클리어로 인한 성과급 지급이었던 것 같아요. 미리 받은 건 계약금하고 위험 수당이었거든요."

 

 솔직히 뭐, 그까짓 것 있나 없나 별 상관 없구요.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이샤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위험 수당이요?"

 "네에, 뭐. 임무 중 죽어도 유족이 소송을 걸지 않는다 이런 조항이 포함되어 있던 것 같아요."

 

 미쳤나 이놈들이. 실비엣은 드디어 육성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녀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적절한 수준의 도덕성과 윤리관을 갖고 있었으나, 결코 대단한 성자나 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기준에서도 납득이 어려운 부분인 것이었다. 미성년자 애를 데려다가 목숨 걸어야 되는 곳에 굴린다면서 보호 조항을 넣어도 시원찮을 판에 죽어도 소송을 안 건다? 

 

 "아니, 그런 서류에 동의해준 거에요?"

 "뭐, 그렇죠."

 "가족이 그렇게 많다면서 뜯어말린 사람이 아무도 없던 거에요?"

 "어차피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걸요. 그런 말 한두 줄, 있나 없나 차이는 없어요. 그리고, 내가 그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실비엣이랑 다른 사람들이랑, 내 서번트가 있는 거잖아요?"

 

 소녀는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처럼 한 점 의심도 없는 얼굴로 웃었다. 

 

 

 

03.

 

 

 문득, 실비엣 로즈 도노반은 거의 일주일 가까운 시간을 내내 함께 있었음에도, 그녀가 이샤나 아르시오네 아르델비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첫 번째, 얼굴. 두 번째, 부자. 세 번째, 목소리가 좋다. 네 번째, 생각과는 달리 전혀 예민하거나 까칠하지 않다. 이 네 가지가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겨우 일주일인데, 그러면 되지, 뭐."

 

 그리고 그것은 실비엣이 생각하기에도 알고 지낸 시간 대비 적절한 거리감과 적정한 수준의 지식이었으므로, 그녀는 몇 번 고개를 젓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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