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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가족을 찾습니다-4화

2007.02.16 18:23

라온 조회 수:227

눈부신 빛에 적응한 진우는 생각하지도 못한 마당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부실 정도로 흰빛의 꽃들이 여기저기 아름답게 피어있어 봄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시현은 그런 진우의 모습이 재밌는 지 미소를 지은 채 진우를 바라보았다.
"예쁘지? 여긴 사시사철 꽃밭이야. 지금도 가끔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니까."
시현은 자신의 설명을 한 귀로 흘려듣는 진우의 어깨를 툭 치고는 마당으로 발을 디뎠다. 진우는 그런 시현을 따라가려다가 난감한 듯 시현에게 말을 걸었다.
"형, 길이 없다고 풀을 밟고 가면 안 돼죠."
마당엔 꽃을 감상하는 데 방해될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집으로 가는 데 가장 필요한 길마저도. 진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당으로 들어간 시현이 멋대로 풀을 밟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
"아, 풀 때문에 안 보이겠네. 잘 보면 아래 벽돌이 깔려있으니까"
시현은 자신의 발이 있는 곳의 풀을 살짝 옆으로 밀어냈다. 시현의 발이 있는 곳엔 인도에 쓰이는 벽돌이 두개 나란히 있었다.
"군데군데 있으니까 조심해서 밟고 와"
진우는 조심조심 벽돌을 밟으며 집을 향해 걸어갔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긴 풀들이 조금씩 바지 안에 들어와 진우의 다리를 쓸었다. 진우는 그 느낌이 낯설면서도 즐거워 기분이 좋아졌다.
"형, 안 들어가고 뭐해요?"
시현은 진우보다 집 입구에 먼저 도착했으면서 들어가지 않았다. 진우는 그런 시현이 이해가 가지 않는 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시현은 대답해주지 않고 기다리라는 듯 가볍게 손짓했다.
"..."
진우는 이해가 안 갔지만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는 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집의 모습은 꽤 독특했다. 집의 뒷편으로 가기 힘들정도로 길쭉하게 놓여있는 집의 모습은 기형적으로 느껴졌다.
'왜 이렇게 해놨지?'
집은 1층뿐이었다. 아마 이 집의 절반만 뚝 떼어다가 위로 올려놨으면 보기 좋았을 것이다.
진우는 왜 이런 모습으로 했는지 궁금했지만 시현이 들어오라는 말을 하자 그 생각을 잠시 접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집 안의 모습도 상당히 독특했다. 현관의 오른쪽엔 주방과 아마 창고같은 게 있을 것 같은 문이, 왼쪽엔 거실과 방 몇개가 있었다. 꼭 상자곽 안에 장난감 주방기구들을 채워놓은 것 같았다. 가구들도 상당히 독특했다. 보통 벽에 붙어있는 주방가구들이 거실쪽에 있고 집 전체적으로 가구들이 높아봐야 엉덩이를 넘을까 말까한 높이였다.
"넌 뭐가 그렇게 신기하냐?"
시현은 그런 진우가 맘에 안 들었는지 기분나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우는 그제야 자신이 실례를 범한 걸 알고 얼굴이 빨개졌다. 시현은 그런 진우의 모습에 표정을 풀고 진우를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으라고 한 뒤 주방으로 가서 차를 타고 귤 몇 개와 함께 내왔다.
"마셔. 싼 맛에 사온 찬데 어쨋든 몸에야 좋겠지"
시현은 너스레를 떨며 차를 마시라고 권했다. 찻잔속엔 물반 찻잎 반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허브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진우는 맛을 걱정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마셨다.
"...으음... 좋은 맛이네요."
진우는 웃으며, 아니 웃고 있길 바라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현에게 말했다.

진우는 그릇에 있는 귤이 다 비고 차도 어찌어찌 다 마시고나자 더 이상 얘기를 미룰 거리가 없는 지 말을 꺼냈다. 시현도 진우가 말을 꺼낼 거라고 예상한 듯 진지하게 진우를 바라보았다.
"음... 형, 어제 형과 헤어지고 계속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던 길이 나타났어요. 그 길이 지금까지 해오던 것보다 힘들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두려워요. 형은 저더러 직접 결정하라고 했죠? 못하겠어요. 왤까요? 지금까지 선택이란 걸 해본 적이 없기 째문에?"
진우는 말이 끝나자마자 전력질주를 한 운동선수처럼 온 몸을 소파에 맡겼다. 진우는 정말로 전력질주라도 한 듯 지쳐버렸다. 난생 처음 겪는 느낌, 진우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도 거의 처음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진우는 새삼 시현을 자세히 보았다.
"그래도 생각해놓은 거라도 있을 거 아냐? 네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을 피할 수 없는 시기라는 건 그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후회할 것이 남아 있을 것 같기 때문에 망설일 수가 없었다.
"모르겠어요. 전 가족이 있는걸요... 가족을 버릴 수는 없어요."
진우는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시현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꽃봉오리같은 모양을 가진 유리찻잔은 좋은 느낌을 주었다.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던 진우는 시현이 아무 말도 없자 고개를 들었다. 시현은 진우를 화난 것처럼 쏘아보고 있었다. 진우가 고개를 들자마자 시현은 기다렸다는 듯 진우에게 말했다.
"몰라. 모르겠어. 그래서 넌 우리를 원한다는 거야? 그런데 왜 선택하지 못 하는거야?"
시현은 그런 진우가 못마땅했다. 진우가 왜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있는 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진우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이끌려 자신들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초조하고 짜증났다.
"그냥 아이스크림 고르듯 골라봐. 뭐가 더 달콤한지, 뭐가 더 취향에 맞을 지. 넌 그런 것까지 다른 사람 생각하며, 다른 사람 눈치 보며하니? 그런 것 때문에 다른 사람 눈치를 봐?"
시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진우는 자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처럼 느껴졌던 시현이 아이스크림같은 사소한 것과 자신의 고민이라는 말도 안 되는 비교를 하며 자신을 압박하는 시현에게 화가났다.
"저더러 어쩌라고요? 가족이 있다고 몇 번 말해요. 가족을 가족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떠날 수가 있을 줄 알아요? 가족에 버림받은 사람이 그런 걸 어떻게 아냐구요!"
진우는 말을 꺼내자마자 자기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지만 시현은 이미 진우의 멱살을 잡고 얼굴에 주먹을 날릴 자세를 잡았다.
"아, 보자보자 하니까. 이시현, 그 손 안 놔?"
방문이 열리고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나타났다.

소희는 사나온 표정으로 시현을 쏘아보았다. 둘의 대화에 끼기 불편하기 때문에 동참할 생각없이 침대에 누워 시현과 진우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진우가 시현의 상처를 건드리자 위험하다고 생각해 밖으로 나갔고 예상했던 광경이 나타났다.
"아, 보자보자 하니까. 이시현, 그 손 안 놔?"
시현은 소희의 목소리를 듣고 순순히 손을 놓았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소희를 쏘아보았다.
“민식아. 있었으면 밖으로 나올 것이지 왜 그 안에 있었냐? ”
소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시현은 그런 소희를 향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소희는 그런 시현의 등을 툭툭치며 자신의 방으로 들아가도록 했다.
“선수교체야.”
시현은 얌전히 소희가 이끄는대로 움직였다. 진우는 시현의 어깨가 점점 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을 닫기 직전 시현은 복잡한 눈으로 진우를 쳐다보았다.
“아...”
진우는 시현이 문을 닫고 눈에서 사라지자 그 때서야 정신을 차린 듯 꼴사납게 일어나 시현이 들어간 방을 쳐다보았다.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소희는 시현과 진우가 실랑이를 벌이며 잔뜩 어질러놓은 것들을 치우고 있었다. 바로 앞에 진우가 있었지만 주변에 널부러진 것들은 신경도 안 쓰이는 지 멍하게 앉아있었다.
“흐음...”
어두운 거실의 분위기에 눌려 말없이 청소하던 소희는 깨진 컵이나 접시, 귤껍질등이 모두 시현이 진우의 멱살을 잡을 때 움직인 방향하고 영판 다르게 있는 걸 흥미로운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소지었다,
“이럴거면 뭣하러 분위기는 험하게 만든거야?”
소희는 겉으론 투덜거렸지만 안도감을 감추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진우는 그런 소희가 이상하게 보이는 지 잠시 그녀를 쳐다봤지만 그걸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시침을 뗐다.
“그렇다면 아마...”
소희는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다 줍자마자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것은 소희가 예상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뒤지고 싶어서 환장하셨군”
소희는 시현이 있는 곳을 가볍게 흘겨보았다.

“나가자”
진우는 뜬금없이 나가자고 하는 말에 고개를 들고 소희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왜 나가자고 하는건지 설명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소희는 그저웃으며 진우를 현관문쪽으로 잡아 끌 뿐이었다.
“배 고프지? 밥 먹어야지. 벌써 11시야.”
진우는 소희의 말에 시계를 보았다. 조금 이르지만 점심시간이긴 했다. 진우는 안도감을 느끼며  소희로부터 살짝 떨어졌다.
“알았어요. 밥 먹으러 가죠”

현관에 도착한 진우는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도망치는 것처럼 마음이 급했다. 진우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감히 여유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것좀 들어줘”
주방에 들렀다 나온 소희는 진우에게 약간의 쓰레기를 주고 꽉 찬 쓰레기봉투를 들었다. 진우는 소희의 쓰레기봉투도 들기위해 손을 뻗었지만 소희는 됐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
마당의 광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까처럼 넋을 놓고 바라 볼 여유는 없었다. 얌전히 벽돌을 밟고 대문을 지나 집 밖으로 나왔다. 진우는 그제서야 안정을 찾아 한숨을 내쉬었다. 소희는 아직 현관에서 집 안을 향해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빨리 좀 나오지”
담에 기대 편한 자세를 취한 진우는 자신의 손에 달린 쓰레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생소한 상표가 붙어있는 차를 담고 있었을 아주 작은 다기 하나와 컵을 담고 있었을 박스 하나, 새 물건을 살 때 쌓여있을법한 비닐이었다. 진우는 비닐로 다기를 감싸보았다. 비닐이 늘어나 안 맞는 부분을 빼면 비닐은 딱 맞아떨어졌다. 진우는 그것이 신기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진우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지배하던 묘한 안도감, 방금 전의 조급함에서 비롯된 모든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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