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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로마니 아키만은 소장 및 소장의 후계자가 사라진 시점에서 사실상 칼데아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그는 의사이자, 임시적인 최종 의사결정자이자, 시스템 관리자이기도 했으며, 또 칼데아 스탭 일동의 멘탈 케어에 연구소의 살림살이까지 꾸려나가는 일을 포함한 수십 가지 업무를 책임지고 있었다. 

 

 물론 마술적인 부문에서도, 과학 기술의 부문에서도 로마니보다 해당 분야의 지식이 뛰어나고 경험도 풍부한 연구자는 몇 명인가는 있었다. 하지만 모름지기 한 우물만 파서는 임기 응변이란 면에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마스터들의 통솔자 역할도 존재했으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십대의 아이였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선에서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을 폭탄 돌리기마냥 던져준 꼴이라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물론, 현 상황은 그런 호불호의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닥터 로망이라 불리는 남자는 칼데아 내에서 수십 가지 이상의 일을 진두지휘하고 있었고, 도착한 마스터의 환영과 간단한 연구소 안내 또한 그의 업무 중 하나였다.

 

 

01.

 

 

 자신의 몸집만한 캐리어를 세 개나 끌고 온 소녀는 로비, 로서 기능했던 공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딱히 화난 것 같지도, 긴장한 것 같지도, 불쾌한 것 같지도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영 알 수가 없었다. 멀리서 내려다 보아서 그런 것일까. 로마니가 그런 생각을 하며 발을 재촉하려던 찰나, 봄의 새싹 같은 옅은 녹빛의 눈동자가 새파란 보석과 마주쳤다. 

 

 "이건 확실히, 마술사 쪽도 인원을 정리한 게 정답이었는지도 모르겠는걸..."

 

 기술 쪽의 스탭이야 어차피 막힌다지만, 저 정도 가벼운 암시는 꿰뚫어볼 수 있는 스탭들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오로라가 내리는 북쪽 하늘처럼 수백 가지의 색을 담은 눈은 2차원 버추얼 아이돌이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로망의 뇌리에도 순간 깊이 박혔던 것이었다. 그것뿐이었지만. 

 

 방긋, 소녀가 웃었다. 의례적인 미소일까. 가 보면 알겠지. 구둣굽이 울리는 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

 "이샤나 아르델비제입니다. 닥터 로마니 아키만, 맞으실까요? 전달받으셨겠지만, 도중에 조금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있어서 비행편을 바꾸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었어요. 그 점에 대해서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응응. 괜찮아. 그리고 아직 네가 와야 하는 인원들 중에서는 제일 처음 도착한 거니까."

 "그런가요? 늦지 않았다니 다행이네요."

 

 예의 바르게 대답하며 소녀는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서명이 포함된 계약서, 그 외 사전에 답변을 요청한 자료들. 이런저런 신상 관련 조사. 필요한 모든 내용이 포스트잇으로 구분되어 ABC 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대부분 다 출발 전에 끝냈는데, 추가로 요청받은 A건과 C건에 대해서는 비행기 안에서 작성하느라 조금 미흡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나중에 확인하신 후 뭔가 설명을 보충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그럴게, 고마워. 그러고보니, 피곤하지 않니? 먼저 방으로 안내해줄까?"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가급적 빨리 필요한 일과를 시작했으면 해요." 

 

 소녀는 여전히 예의 바른 미소를 머금은 채로, 로마니 쪽에서 먼저 베풀어준 친절한 제안을 거절한 것에 대해 마음 쓰지 않길 바란다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일정을 다시 잡으면서, 시드니에서 이틀 정도 쉴 수가 있었거든요. 그때 시차 같은 부분은 대강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입국 후에도 크라이스트처치까지 이동하는 기차에서 좀 쉬었구요."

 "아, 그렇구나.. 그럼 잠시 짐 정리만 끝내고 시작하는 건 어떨까?"

 

 옷도 지급한 제복으로 갈아입고, 로망을 덧붙였다. 확실히, 캐리어를 둔 채로 뭐든 시작하는 것은 소녀가 생각하기에도 그다지 좋지 못한 선택인 것인지, 이샤나 아르델비제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02.

 

 

 "그럼 훈련이랑 레이시프트 관련 강의는 내일부터 진행하도록 할게. 건강 검진도. 오늘은... ... 일단 소환만 하는 것으로 하자." 

 "네, 닥터."

 

 윽, 로마니는 속으로 약간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초면의 십대 여자아이랑 일대일로 걸어가면서 어색한 침묵을 피하는 것은 소심하기 그지없는 그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거의 열 살 차이라고, 열 살. 소녀는 짐짓 쾌활한 걸음걸이에 밝은 목소리였으나 그다지 쓸데없는 잡담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면, 아직 로망을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할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낯을 가리거나. 명가 특유의 자존심으로 인해 말을 걸지 않는다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닌 것 같았고, 그 점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혹시 뭔가 바라는 서번트의 조건이라던가, 그런 것 있니?"

 "바라는 서번트의 조건이요?"

 "으응, 어느 지역의 영령이면 좋겠다던가. 여성이면 좋겠다던가. 뭐 그런 것."

 "글쎄요... 그다지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렇네요. 솔직한 사람이고 노력하는 사람이면 좋겠네요."

 "사람으로서, 좋은 사람을 원한다는 말이니?"

 "뭐어.. 대충 그렇네요."

 

 소녀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곧게 걸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로망은 약간 미간을 좁혔다. 위화감, 까지는 아니었으나 '어른으로서' 싫다는 기분이 또 한 번 더 들어서일까. 눈 앞의 여자아이는 아직 혼자서 술도 살 수 없는 나이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을 어린애. 그럼에도 소녀는 한 점 우왕좌왕 하는 것도 없이, 그저 차분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하고 정리할 뿐이었다. 이런 것에 당황하지 않고 대응한다는 것은 썩 좋지 않은 것이었다. 고루한 관념이지만 아이는 아이다운 것이 제일이고, 어른은 어른다운 것이 좋은 것이다. 문득, 로망의 사고의 흐름은 한 지점에 멈추었다.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지만 만약, 빈틈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감정의 변화조차 티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먹고 행동을 다잡고 있다면.

 

 아아, 정말이지 몹쓸 일을 하는구나. 

 

 

 

03.

 

 

 "여기인가요?"

 "응응, 잠깐만 기다려. 일단 시스템을 가동하고..."

 

 투명한 푸른 빛을 발하는 공간으로, 소녀는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저 안은 로마니도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 서번트를 소환할 마스터가 들어가는 곳. 로망은 그 안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붙어 있었다.

 

 "만약 뭔가 이상한 것 같다 싶거나, 어디가 안 좋은 것 같다 싶으면 바로 시그널을 줘. 손을 들어도 되고 소리를 쳐도 되고, 뭐든지 좋아."

 "네, 알겠습니다."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지만..... 우리에겐 너희의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니까. 그러니까 절대 숨기면 안 돼, 알겠지, 이샤나?"

 "... ... 네."

 

 푸른 눈이 깜짝 놀란 것처럼 깜빡거렸다. 그제서야 로망은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무례하다고 생각했을까. 평소 칼데아의 다른 스탭들을 이름으로 부른 것이 습관이 된 탓 같았다. 하지만 조금, 푸른 눈매가 더 부드러워진 것 같다면 기분 탓일까. 자의식 과잉일까. 그런 것일까. 

 

 『──바다의 어머니, 허락을 청하나이다.

 

 로마니의 옆에서 시스템 가동에 매진하는 수 명의 연구원들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기도인가? 특수한 마술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인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소녀가 어떠한 목적을 갖고 내뱉은 것임은 알 수 있었다.

 

 파랗게 빛나는 별하늘처럼, 푸른 눈이 일렁거렸고 대기가 넘실거렸다.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추정컨대, 소녀는 영령 소환에 어떤 어레인지를 가하려는 듯 싶었다. 그것이 시스템에 충격을 줄 정도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단순히 약간의 조정, 필터링 정도는 원론적으로 가능했다. 영령소환시스템 페이트의 근간이 된 것은 십수 년 전 일본의 한 소도시에서 일어난 성배 전쟁이었다. 세 가문이 창조해낸 성배는 특수한 영창으로 버서커 클래스를 지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성유물이란 것을 준비했을 경우엔 그에 인연이 있는 영령이, 그런 것이 없을 경우 소환자와 비슷한 혼을 가진 영령이 소환되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채워라, 채워라, 채워라, 채워라, 채워라. 반복할 때마다 다섯 번, 그저 채워지는 때를 파각하라."

 

 시스템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주 같은 공간에 푸른 빛이, 마치 번개처럼 파직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

 

 낭랑한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변한다. 프랑스어도 아니고, 영어는 더더욱 아니었다. 

 

 "── 고한다, 그대의 몸은 내 아래. 내 명운은 그대의 검에, 성배의 의지에 따라 이 뜻, 이 이치를 따른다면 응하라."

 

 속살거리듯 빠르게 내뱉은 알 수 없는 말이 지나가고,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노래가 시작되었다.

 

 "맹세를 이곳에. 나는 영구히 모든 선을 이루는 자. 나는 영구히 모든 악을 누르는 자."

 

 큰바람이 몰아치는 날의 번개처럼, 내리찍는 듯 빛나던 푸른 번개는 점차 금빛으로 물들었다. 일렁거리는 금빛 속 저 햇빛의 프리즘마냥 스친 무지갯빛이 눈부셔, 저마다 무심코 한 쪽 눈을 가려버렸다. 

 

 "── 그대, 삼대 언령을 두른 일곱 하늘. 억지의 고리로부터 오라, 천칭의 수호자여...!"

 

 눈을 뜨기도 힘든 빛의 폭풍이 몰아쳤고,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소녀의 앞에 서 있는 것은 한 명의 그림자. 소녀보다 조금 더 진한, 꿀 같은 금발을 늘어뜨리고, 두른 것은 붉은 망토와 검은 공단의 예복. 허리에 찬 것은 가느다란 레이피어와 단검 한 자루. 그리고, 손에 쥔 것은 푸른 은빛에 빛나는 검. 

 

 "서번트, 세이버. 플랜테저넷의 에드워드. 소환에 응해 참전했노라! ── 그대가, 나의 마스터인가?"

 

 

 

04.

 

 

 "소환 성공이야, 이샤나..!"

 

 에드워드 플랜테저넷이라면, 일반적으로 영령으로서 떠오르는 사람은 세 명이 있다. 사실상 근대── 스코틀랜드와 웨일즈를 정복하고 영국이라는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평가받는 장신왕 에드워드 1세. 타락한 요부였던 모친과 모친의 연인을 처단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후, 백년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에드워드 3세. 그리고 흑태자라는 이명으로 더 알려진 에드워드 3세의 아들, 웨일스 공 에드워드.

 

 소녀의 몸에 두른 검은 벨벳을 보면, 그 중 누군가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로망은 안도했다. 필요에 의한 잔혹한 약탈의 기록은 남아 있으나, 기본적으로 세이버 본인에 대해서는 기사의 귀감이라고까지 알려진 인물이었다.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이미 역사가 증명해 준 부분이었고, 거기에 더해 기사도 정신에 입각한 마음가짐까지 있다면 첫 번째 서번트로 더할 나위 없는 인선이라고 그 자리의 누구나가 생각했다. (왜 그 유명한 에드워드 흑태자가 여자 아이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닥터, 이샤나 양.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일단 긴장 풀지 말고 계속하시죠!"

 

 그 말이 맞았다. 아직 소환해야 할 서번트의 자리는 많이 남아 있었고, 이샤나는 먼저 세이버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기, 세이버. 혹시라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이 조금 특수해서. 앞으로 일곱 기를 더 소환해야 해요. 잠깐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마스터! ..아, 만약 변변찮은 자가 튀어나온다면 베어도 되는가?"

 "...어어.. 그건... 그냥 세이버의 판단에 맡길게요."

 "음음, 알겠다. 아.. 그리고, 마스터. 조금 급작스럽긴 하다만, 그렇게까지 잔뜩 굳어 있지 않아도 좋다! 말한 것처럼, 변변찮은 것이 소환된다면 베어줄 테니, 그대는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보통, 첫 출진하는 소년들이 그대와 같은 표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세이버는 방긋 웃었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말하고. 일이 끝나면 이름을 알려다오.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은 세이버는 곧은 걸음걸이로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지만 비상 사태가 생길 경우 그곳의 모두가 눈을 채 깜빡이기도 전에 튀어나가겠지.

 

 "...알겠어, 고마워. 세이버. 그럼, 닥터. 계속하겠습니다!"

 

 

 

 

"── 서번트, 아처. 아르주나라 합니다. 마스터, 저를 마음껏 사용해 주시길."

 

 

"좋은 서번트를 뽑아내셨어, 당신! 그렇게 되서 라이더... 엥? 뭐야, 오오. 랜서인가, 아무튼, 랜서의 서번트. 아킬레우스다.  ... 그래, 맞아. 발뒤꿈치 같은 게 약점으로 알려진 영웅이야. 뭐, 내 발뒤꿈치를 잡는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말이지!

인류 최속의 다리, 장식이 아니라고?"

 

 

"저는 마르타, 그냥 마르타입니다. 반드시, 세계를 구하도록 하죠."

 

 

"캐스터, 아스클레피오스다. 진찰을 시작하지. ...뭐? 아무데도 안 아파? 그럼 어서 환자를 데려와라.

환자 앞에 없는 의사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다고."

 

 

"후훗, 융단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 예, 조금 생각해봤지만 소환 인사이므로 삼가해 두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 그리고 삼가도록 하세요, 마스터. 태양보다 고개가 높다구요?"

 

 

 

05.

 

 

 "라인업이 화려하네요..."

 

 한 명이 내뱉은 말에 다른 스탭들이 동의한다는 듯 끄덕거렸다. 나쁘지 않은 조합이었다. 오히려, 여태까지는 최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어느 하나 아쉬운 서번트가 없었다. 전승의 기사 왕자에, 인도 신화 최상위급의 대영웅,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으로 한 손에 꼽히는 그 유명한 신속의 아킬레우스. 용을 물리치고 구세주의 말씀을 받들어 사람들을 구한 성녀 마르타에 사자소생의 위업을 달성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클레오파트라 필로파토르의 '어새신'으로서의 전승은 약간 미지수였으나, 이집트의 파라오는 그것만으로도 특수한 상태를 포함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스클레피오스라니, 닥터. 이제 업무가 하나 줄어들 것 같은데 미리 축하드려요."

 "그렇네요. 이제 남은 건 버서커랑... 예외적인 시도 한 번 뿐인가요? 버서커가 조금 걱정되긴 하네요. 난폭할 수도 있으니.."

 "하지만 여태까지의 인선으로 보면... 꺄아아아아악!"

 

 스탭 중 한 명이, 소환 현장의 무엇인가를 본 듯 비명을 내질렀고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창가로 뛰어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샤나 양, 괜찮아요?"

 

 "어─라라, 살벌하네에~! 나, 그냥 마스터가 너무 예뻐서 조금 가까이서 보고 인사하려고 했을 뿐인데!"

 

 새로 소환된─그렇다, 그 사이에 소환된.. 버서커로 추정되는 남자. 경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에,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심홍색의 눈.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자색의 머리카락. 어딘가의 기사처럼 갖춰진 제복을 입은 남자는 이샤나 아르시오네의 코앞에 있었고, 세이버가 휘두른 은빛의 검과 랜서가 내리꽂은 장창이 소녀와 남자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진짜라구, 진짜! 아이 참, 무서운 사람들이네!"

 "그렇다면 빨리,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십시오. 버서커."

 

 라이더는 이샤나를 뒤로 숨기듯이 하고, 앞으로 나선 아처가 무감정하게 내뱉었다. 버서커, 광전사 클래스라는 것은 서번트들 사이에서도 약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일까. 영령이 아닌 스탭들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네에네에! 그럼 다시금, 예의 바르게."

 

 폴짝, 하고 가뿐히 뒤로 뛴 버서커는 툭툭, 옷깃을 매만졌다. 그리곤 에헴, 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방글방글 미소띈 얼굴로 살짝 절하듯 허리를 굽혔다.

 

 "서번트, 아스톨포! 샤를마뉴 폐하의 팔라딘, 이번엔 버서커 클래스로 현계했어! 잘 부탁해, 마스터!.. 랑 무시무시한 친구들!"

 

 하고는 살짝,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야말로 로맨스 판타지에 나오는 기사의 정석 같은 그림이었지만. 아무래도 다른 서번트─ 그래, 라이더라던가. 라이더라던가. 라이더는 전혀 괜찮은 것 같지 않았다. 저런 또라이, 치워버리죠. 라고 눈으로 외치고 있었다. 

 

 "마르타, 그렇게 눈으로 죽일 것처럼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너.. 아니 마스터, 쟤가 저런 멍청..아니 저 분이 저렇게 악의 없이 순수한 분이 아니셨다면 지금쯤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구요!"

 "그래도 딱히 나쁜 것 같지 않고. 중세 프랑스인이라 저 정도의 거리감이 당연한 걸지도 몰라."

 "그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중세 프랑스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갖기 시작한 것을 지적해 주어야 하는가, 약간 고민하기 시작한 세이버와 암암, 보기 드문 미인이긴 하지, 아직 약간 어리지만, 이라고 쓸데없이 동조하기 시작한 랜서,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쉰 라이더였다.

 

 

 

06.

 

 

 "그럼 이제 마지막, 가겠습니다!"

 "마스터, 정말 내 뒤에 서서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괜찮아, 마르타."

 

 그리고, 다시 한 번 일렁이는 불꽃. 눈 앞에서 형체를 드러낸 남자는 천천히 눈을 떴다. 밤바닷물을 슬쩍, 한 스푼 타 넣은 듯한 호수와 같은 빛의 눈. 검푸른 자욱을 남기고 하늘을 물들이는 아침의 햇빛과 같은 머리칼이 흔들거렸다.

 

 "서번트, 룰러. 네 부름에 응해 찾아왔어. 이름은.. 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네 검으로서, 나는 너를 지킬게."

 

 한 번 더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건, 이전 성배 전쟁의 전적으로 보면 보통 마스터가 제 밥값을 못하는 반푼이거나 다른 어떤 사유로,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는 것은 자신 본인과 마스터까지 위험해 처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호걸은 살짝 눈을 찌푸렸다. 

 

 "어이, 형씨. 그 말은 어느 쪽이지?"

 "네가 생각하는 어느 쪽도 아니야. 그렇네. 굳이 따지면..."

 

 룰러는 흘끗, 이샤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그는 여전히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이름에는 마력 비슷한 게 있어서. 마스터에게 쓸데없는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 너희들에게도 그런 변수는 좀 더 상황이 안정된 다음에 살펴보는 게 낫지 않겠어?"

 "그렇다 한들, 지금 네 말은 우릴 못 믿겠다는 것 같은데."

 "그런 건 아니라고 해 둘게. ...문화의 차이인가, 역시 그리스, 라고 해야 하나... 그럼 여기선, 네 의향을 물을게. 마스터. 어떻게 하고 싶어?"

 

 수십 개의 눈이 자신을 향했다. 그리고 이샤나 아르시오네는 솔직히 말해, 전혀 상관이 없었다. 본인이 말하기 싫다는데 어쩔 것인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위험할 가능성도 있다고는 하나, 이전 전달받은 내용에 따르면 룰러 클래스는 기본적으로 성인, 혹은 그와 유사한 마음가짐의 사람이 소환된다고 한다. 마스터로서 눈에 보이는 성향도 누군가를 배신할 것 같지는 않았다.

 

 "── 그러니까, 나는 상관 없어."

 "그럼, 이걸로 양해 완료, 라고 봐도 되겠지?"

 

 룰러는 어깨를 으쓱했다. 랜서는 여전히 마뜩찮은 표정이었으나, 일단은 이샤나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앞으로의 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시원찮으면 가뿐하게 일대일로 대련이라도 해 보면 될 일이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은, 아처나 라이더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으나, 아처는 쓸데없는 사견을 덧붙이지 않는다는 듯 집사마냥 이샤나의 바로 뒤를 따를 뿐이었다. 라이더는... 앞으로 하루에 세 번씩 저 놈을 족치라고 이샤나에게 말할 것 같구만.

 

 "그럼, 일단 닥터. 여러분. 소환은 이걸로 마무리, 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오늘 저녁은 바쁠 것이다. 물론 성향에 따라 대화의 깊이나 종류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샤나 아르시오네 아르델비제는 마스터로서 그들에 대해서 필요최소한의 것이나마 파악해야 했으므로. 일단 연회다! 하고 외치는 랜서와 그에 맞춰 환호성을 지르는 버서커의 목소리는 애써 부정했다. 약간 술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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