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장면 0. 네차흐 : 소환

Elfriede 2018.06.02 15:14 조회 수 : 41

 "그럼, 이만 가볼게."

 

 남자는 지갑에서 두꺼운 현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얼굴에는 살짝 피곤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그걸 전혀 개의치 않는 행동이 직장인으로서의 스태미너를 증명하는 듯 했다. 어젯밤 내내 표독스런 말을 뱉어내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말끔한 회사원으로 변모한 그는 연인을 대하듯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즐거웠어."

 "들어가세요. 연락 기다릴게요."

 

 젠은 그런 남자에게 다가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남자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방을 나서자, 젠은 테이블 위에 놓인 현찰을 세기 시작했다.

 

 "여섯, 일곱, 여덟......"

 

 본래 지정했던 액수보다 더 많았다. 젠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누가 볼새랴 바로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물과 함께 몸에 쌓인 피로도 녹아내리는 듯 했다. 어젯밤은 고객의 특수한 취향에 맞추느라 상당한 무리를 했다. 그 덕분에 이렇게 비싼 호텔의 특실에서 묵고 있는 거지만. 그것은 젠에게 있어서 살면서 한 번 누릴 수 있을까 말까 한 호사였다. 원래 살던 집은 이미 수도나 전기가 끊긴 지 오래였고, 이럴 때가 아니면 제대로 몸을 씻기도 힘들었다.

 자신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처음 본 사람과 몸을 섞는 것에 더 이상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은. 오랫 동안 살아왔던 집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예약한 호텔에서 잠들기 시작한 것은.

 

 "어라......?"

 

 문뜩 손등에 생긴 이상한 멍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정교한 타투처럼 생긴 그것은 분명 어제까지는 젠의 기억에 없었다. 아마 어젯밤에 남자가 손목을 묵으면서 생긴 것이리라.

 

 "자국은 남기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서 더 준 건가."

 

 젠은 불만섞인 목소리로 혀를 찼다. 되도록 몸에 상처를 남기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손등 위의 멍에 대해서도 더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

 

 

 체크 아웃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젠의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조금 더 호텔 안에서 시간을 보낼까 싶었지만, 빨리 은행에 들리고 싶었다. 오늘 벌은 돈은 바로 계좌에 넣을 것. 그게 키사라기 젠의 인생 철칙이었다. 자고로 주머니에 여유가 있으면 금방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게다가 아직 목표 금액까지 남은 길이 까마득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뭐할 거야?"

 "친구들이랑 모여서 밤새도록 놀아야지!"

 

 때마침 출퇴근, 혹은 등교 시간이라 젠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젠은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어쩌면 한발 늦은 현자 타임이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 젠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럴 때 그가 찾아가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어서오세요."

 

 이른 시간이라 CD 샵은 텅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던 젠은 오히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젠은 최신곡을 들을 수 있는 코너로 향했다. 자기 머리보다 살짝 큰 헤드폰을 머리에 눌러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모든 것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보컬이 부르는 시원시원한 외침이 마치 자신을 대신해서 호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식인인 척 하는 녀석은 잘못된 거고, 울고 있는 녀석이 정답인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독한 사람이야말로 인간다운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부조리함을 울부짖는 소리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만 같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이 시간만이 그의 구원이었다.

 지금만큼은 배고픔도, 졸린 것도 모두 잊고, 그저 노래에 몰두했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4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약 6시간 동안 이곳에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젠은 아쉬운 마음으로 헤드폰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너무 오랫동안 끼고 있어서 그런지 귀가 멍멍했지만, 그조차도 여운으로 남았다. 하지만 몇번이나 반복해서 들은 덕분에 가사나 음은 전부 기억했다. 금방이라도 소리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젠은 가게를 뒤로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점원들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저 손님, 맨날 이 시간에 와서 계속 음악만 듣다 가네요. 귀 안 아픈가?"

 "어지간히 좋아하나보지. 요즘 KPOP이 잘 나가기도 하고."

 "근데 왜 CD는 안 사는 거지? 저 사람이 입고 있는 옷, 완전 명품이던데."

 "돈 많은 사람이 우리 같은 곳을 왜 오겠냐? 딱 봐도 여자가 사준 거더구만."

 "하긴, 얼굴도 반반하게 생겼더라구요. 저런 사람들은 인기 많을테니 인생 살기 편하겠다."

 

 한 동안 그들은 이른 시각에 찾아오는 의문의 손님에 대한 얘기로 떠들석했다. 그래서 그들은 젠을 뒤따라 가게를 나서는 다른 손님의 모습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아니, 그들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가게 밖으로 나간 사람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서구적인 외모를 지닌 금발의 미소년이었다. 딱 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법한 외모거늘 어느 누구 하나 그 소년에 대해 눈길을 주는 법이 없었다. 왜냐면 그 소년은 실체가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소년은 젠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늘렸다.

 

 "재밌는 계약자로다. 짐을 불러놓고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가버리다니."

 

 그야말로 성배의 부름을 받고 이 세계에 현계한 영령.

 인류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위인들 중의 하나이자 성배를 손에 넣기 위해 소환에 응한 7기의 서번트였다.

 

 

 

 

P.S.

 

간단 요약.

 

젠 : "(음악을 들으며) 혼돈! 파괴! 망가!"

아처 : "묻겠다! 그대가 짐을 부른 마스터인가!"

젠 : "후우....... 만족했다."

 

마이페이스 젠 님께서 로그아웃하셨습니다.

 

아처 : "......방치 당했어...... (오싹오싹)"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0.9 ver. 진행 규칙 카와이루나링 2018.05.10 372
공지 장면 2 : 밤 장면 행동 선언 [25] 카와이루나링 2018.06.21 306
공지 그리고, 세계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11] Elfriede 2018.05.27 166
공지 캐릭터 셋팅 방법 [추가] [18] 카와이루나링 2018.05.12 300
공지 0.9 ver. 진행 규칙 카와이루나링 2018.05.10 470
81 [스텔라나이트] 서번트, 스키르니르 secret 로하 2019.11.27 1
80 [☆night] 아나스타샤 스미르노바 file Sigma 2019.11.26 66
79 [스텔라 나이트] 베아트릭스 필리안 INSURA 2019.11.26 54
78 [스텔라나이트] 아르테사 샤를리에브나 로하 2019.11.26 29
77 ---------------------------------------------------- secret 카와이루나링 2019.11.25 0
76 어둠 속의 운명 (테스트) : 3. 서번트의 작성 [2] 카와이루나링 2019.08.02 54
75 어둠 속의 운명 (테스트) : 2. 인물 작성 [4] 카와이루나링 2019.07.25 92
74 어둠 속의 운명 (테스트) : 1. 배경 설정 [5] 카와이루나링 2019.07.25 289
73 ---------------------------------------------------- secret 카와이루나링 2019.07.25 0
72 장면 1. 네차흐 : 전투 패배 시 대사 [4] Elfriede 2018.06.14 62
71 장면 1 호드: refund [1] LiVERTY 2018.06.04 37
70 장면 0. 네차흐 : 달을 닮은 소녀 secret Elfriede 2018.06.03 0
» 장면 0. 네차흐 : 소환 Elfriede 2018.06.02 41
68 장면 1. 네차흐 : 광란의 밤 [1] Elfriede 2018.05.31 62
67 [장면 1] : 종료 [61] 카와이루나링 2018.05.31 362
66 장면 0. 티페레트 file 리아 2018.05.28 47
65 [공개 프로필] 클라우디스 에이버리 / 캐스터 file Sigma 2018.05.17 93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