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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카시오페아..(5)

2006.06.25 09:38

오얏나무 조회 수:145

하암..
하고 제일 앞에 앉은 남학생이 하품을 했다. 그 뒤로 교실 안에 폭탄이라도 떨어졌는지 어느새 과반수 가량 되어보이는 학생들이 시체처럼 책상 위에 퍼질러져 있었다. 세계사 선생의 수면 폭탄과도 같은 수업 공격에 다들 맥을 추리지 못하고 뻗어버린 것이었다.
잠에 취한 교실의 풍경을 흘끗 바라보다, 흐음...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매부리코의 세계사 선생은 말했다.

"다들 조금 지루해하는것 같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대제 이게 어디가 조금이냐구요, 라고 반박하고 싶은 안나, 평소 낮은 목소리에 느린 말투로 '슬리피 할로우'(?)란 별명까지 얻고있는 할로우 선생이었지만 어째 오늘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제발.. 그만..
이란 호소력 짙은 시선을 선생에게 보내보는 안나.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도 다 소용없었던지 할로우 선생은 예의 그 느긋하고 변화없는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La Morte라고 다들 알고 있겠죠? 이탈리아어로 사신이란 뜻이죠. 타로카드에서도 곧 잘 등장하기도 하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재미있기를 바라느니 지금 이 순간 교실문을 열고 운명처럼 멋진 남자가 등장하길 바라는 쪽이 더욱 실현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

안나의 가시돋친 말에 에리카는 피식 웃었다.

"안나.."

그러자 할로우 선생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네에.."

하며 안나는 작은 대답과 함께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선생은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 La Morte라는 단어가, 사실 구 남미 지방에서 무기 판매업을 하는 회사의 이름이었기도 했죠. 뭐, 지금은 망해버렸지만요. 주로 총과 탄, 탄약을 제조하는 회사였는데 이 회사의 제품엔 모두 회사의 이름을 새겨 넣는게 이 회사의 특징이었데요. 그러던것이 이 회사의 총알 하나가 3년 전,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졌던 블랙 먼쓰(Black Month)의 시발점이 되었다니 놀랍지 않나요?"

와, 총알이 두개였으면 심장마비라도 걸릴 얘기군요, 라고 누군가 빈정댔다. 아까전 구겨진 종이를 들고있었던 그 남학생이었다.

"그 총알이 당시 국가 체제가 아직 다잡아지지 못했던 상황의 아르헨티나를 양분하고 있던 두 마피아 세력, 레드하우스와 디에고 중, 디에고 쪽의, 말하자면 지부장즘 되는 사람의 몸에서 발견 되었던 거죠. 아, 정확히는 몸 안에서죠. 그 사람은 그 총알에 의해 피살되었으니까요. 중요한것은 당시 아르헨티나 안에서 그 총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란 오직 레드하우스 측 사람들 밖에 없었다는 점이에요. 그때의 아르헨티나 정부는 개인의 총기 휴대와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있었고 덕분에 총과 총알은 마피아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독자적인 루트로 밀거래 되고 있었던것 같아요. 그 중에 레드하우스는 이탈리아산 La Morte의 총알을 공급받고 있었다는 말이죠.

아무튼 그 피격사건을 자신들에 대한 도발로 받아들인 디에고는 레드하우스의영역 안에 있었던 시가지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그렇게 그 유명한 암흑의 한달이 시작된 거였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겨우 복구 되어가던 시설들이 다시 무너지고, 사람들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어요.

그때 U.G.G.는 당시 태평양함대의 제 1한대 함장이었던, 레하르 제독을 총사령관으로 임명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타개시키려 함대를 이동 시켰어요. 제독은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두 마피아를 거의 궤멸 지경까지 몰고 갔고 이후 아르헨티나는 U.G.G.에 가입하면서 세계 연방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과거 UN이라는 조직과는 달리 현 U.G.G.는 세계의 상황에 능동적이고 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세계 3차 대전 이후 아르헨티나처럼 국가 체제의 기반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던가 소정부 상태로 남아있는 국가들이 아프리카, 남미, 중동 지역에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는 점 이겠지요? 오늘 수업의 핵심인 U.G.G.는 이런 국가들을 편입시킬 장기적인 방안을 2046년 스톡홀롬 정상회담에서........"

뭐야, 결국 수업으로 돌아왔잖아..라고속으로 안나는 중얼거렸다. 그녀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잠을 참지 못하고 대다수의 아이들처럼 책상 위로 엎어지려던 순간,

드륵!
교실의 앞문이 열렸다.
열린 문 뒤로 딱붙는 청자켓에 헐렁한 흰색티, 일자로 내려오는 청바지를 입은 한 남자가 서있었다. 남자..? 아니, 언뜻보면 여자로 착각해버릴듯한 곱상한 얼굴에 긴 속눈썹, 오똑한 코, 조그만 입술, 거기다 덧붙여 큰 키에 날씬하게 뻗은 허리라인. 그리고 그 허리 근처까지 찰랑찰랑 흘러내린 금발이 특징적이었다.
무슨 모델 화보사진 같은 그 광경에서 오로지 한 손에 든 도시락만이 그가 현실임을 일깨워주는 듯 했다.

비현실, 초현실적으로 잘생긴 누군가를 이렇게 가까이서 바라보는게 처음이었던 반 아이들은 뜬금없는 이 미청년의 등장에 어쩔 줄 몰라 얼어붙어 버렸다.
에리카 마저도,

"도..시락?"

이라 작게 중얼거리며 멀뚱히 미청년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는게 고작이었다.

덜컹,
그때, 교실의 맨 뒤에서 노이가 그를 보며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 미청년은 노이가 알고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차마 교실까지 찾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기에 노이는 그의 등장이 매우 당혹스러웠다. 그, 나탈리카 티에토의 등장이..............
그렇게 사뭇 조용했던 교실의 침묵을 깨고 노이가 일어나자 아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노이를 향했다.

"아, 노이. 휴,,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네. 맨날 도시락을 교무실에만 두고 가니까 너네 반이 어딘지 통 모르겠더라구. 우리 노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어?"

뒤이어 들려온 나티에의 말에 반전체는 경악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튀어나오며 경악은 순식간에 술렁임으로 번져갔다.

"뭐야, '오드'랑 아는 사이였어?"

"우와, 깬다, 진짜..."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왜 하필이면 '오드'같은 자식이랑..."

"흑, 전부 '오드' 잘못이야, 이건."

선생마저도 통제 할 수 없는 술렁임 속엔 노이를 향한 반아이들의 원인 모를 분노가 담겨있었다.

"아아.."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건가..
노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래서 학교에는 오지 말라고 그리 신신당부를 했던 것인데.......
노이는 터벅터벅 나티에가 있는 교탁 쪽으로 걸어나갔다. 나티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노이를 향해 웃음지으며 손까지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웃지마.. 먹지도 않을 도시락.. 왜 학교까지 들고온거야.. 왜 날 난처하게 만드는거야, 왜...'

노이는 어느새 나티에 앞에 서있었다. 그는 나티에에게서 빼앗듯 도시락을 받아들고 차가운 표정으로 나티에에게 작게 말했다.

"앞으로 학교에 찾아오지마. 도시락도 필요 없으니까, 괜히 헛수고 할 필요없어."

"아.."

그리고 뭔가 말하려는 나티에를 무시해버리며 곧장 앞 문으로 교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나티에는 노이의 너무나도 명백한 거절 의사표시에 할 말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어우, 진짜 못됐다,얘"

"너무한다, 그래도 도시락 갖다주려고 이렇게 온건데. 역시 오드는 안돼."

노이의 행동을 보고서 반아이들의 술렁임은 더욱 커졌고,

"아, 이거 본의아니게 수업 중에 소란을 일으켜 정말 죄송합니다."

나티에는 그렇게 말하며 세계사 선생에게 악수를 청했다. 자신때문에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 예.."

라고 멋쩍게 대답하는 할로우 선생과 악수를 나눈 후, 나티에는 이번엔 반아이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 이건 수업 시간을 뺏은 보답이랍니다."

화사하게 웃으며 나티에는 청자켓의 안주머니에 서 장미 한송이를 꺼내 한 아이의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또 하나를 더 꺼내 다음 아이에게,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24번째 아이의 책상에 까지 전부 장미를 한송이씩 올려다 놓고 나티에는 마지막으로 장미 하나를 더 꺼냈다. 할로우 선생을 위한 것이었다. 교탁 앞의선생에게 걸어가 셔츠 주머니에 장미를 살짝 꽂아 주고선,

"자, 그럼."

사교춤을 출때 하는 인사를 지어 보이고선 유유히 교실을 빠져나갔다.
등장만큼 갑작스런 그의 퇴장 후, 대다수의 여학생들의 눈은 이미 하트로 바뀌어 있었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는 남학생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우와,,,,, 머,멋있다."

"뭐하는 사람이지? 연예인? 모델?"

"나.. 태어나서 저렇게 이쁜 사람은 처음 봤어."

나티에에 관한 근거없는 추측들로 교실이 술렁이는 가운데,

"지,진짜로 나타났다. 운명의..................왕자님..."

얼빠진 표정으로 안나가 그렇게 말하는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앞에서 빨개진 볼을 수줍게 감추고있는 할로우 선생은 대체 어쩌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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