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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카시오페아..(3)

2006.06.23 22:35

오얏나무 조회 수:172

"하아....."
3교시가 다 끝나가는 그 무렵, 노이는 축늘어뜨린 어깨로 남들보다 한참 늦은 등교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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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렌시의 36번가는 골목마다 깔려있는 각양각색의 타일들로 유명한 거리였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마저 아스팔트가 아닌 원형무늬의 타일을 사용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일 시켜놓았을 정도로 이 36번가는 길에 대한 독특한 애착이 있는 듯 했다.
그 36번가의 네번째 골목으로 작은 상가 건물들이 오밀조밀, 골목길 가에 늘어서 있었다. 낮은 건물은 단층짜리, 아무리 높아도 3층을 넘기는 건물은 없었다. 돌로렌시는 상가 건물의 층 수 마저 도시 미관에 맞춰 조정되어있는 계획도시였던 것이다.

"무슨 테마파크를 보는것 같구만."

검은 중절모에 회색 반코트를 입은 남자가 그렇게 거리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피력했다. 두꺼운 입술에 꼬나문 시가 위로 언뜻 내비친 얼굴이 사나워 보이는 사내였다. 그리 큰키는 아니었지만 딱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체격덕에 결코 작다고 생각되어지지는 않았다.

저벅
하고 검은색 구두로 격자무늬의 타일을 밟으며 남자는 골목길을 걸었다. 몇개의 건물들이 사내 옆으로 지나갔고, 편의점과 카페, 옷가게를 지나 그는 여섯번째 블럭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시야를 가리는 중절모의 끝을 살짝 올려쓰며 위를 바라보자,

Ca.sio.pea..

라고 적힌 커다란 검은색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탤릭채도 아니면서 묘하게 구부러진 그 글자들은 어느 하얀 건물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Casiopea 란 글자 아래로 'Cookie & Cake & coffee' 라고 작게 적힌 것으로 보아 제과점 비슷한 가게인것 같았다. 가게는 건물의 1층 내부 전경이 훤히 들여다 보이게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유리창으로 벽을 대신하고 있었는데 외부의 하얀 색과는 달리 내부는 나무 질감의 인테리어로 되어있어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카시...오페아... 커피, 케익, 쿠키 전문점. 흠, 제대로 찾아왔구만."

사내는 간판에 새겨진 큰글씨와 그 아래 작게 붙여진 글씨를 읽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딸랑..
유리문에 달린 작은종이 그의 방문을 알렸다. 구리로 만든 종의 맑은 소리가 원목의 느낌이 물씬나는 가게 전체로 울려퍼졌다. 그 종소리에 맞춰, 카운터 쪽에서 이 가게 사람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와 그를 맞아 주었다.

"자네 시계는 하루가 마흔 시간이라도 되는 건가보구만, 아니면 시계약이 없던가. 뭐하다
가 이렇게 늦은거야. 대체 지금이 몇시 인줄이나 알고 있나? 가서 도시락이나 주고 빨리 돌아 올것이지......."

늦다니? 아직 충분히 이른 시간이 아닌가? 그리고 내 시계는 아무런 하자도없이 잘만 가고 있는데.. 또, 도시락이라니.. 그나저나 굉장히 불친절하군, 이 가게.
갑작스런 상황에 속으로 그렇게 두서없이 말하며 중절모의 사내는 입구 맞은편의 카운터 앞에 섰다. 불친절한 목소리는 바로 그 카운터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말하는 투로 봐선 쉽사리 끝날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가 제멋대로니, 원. 나티에, 자네 덕분에 나 혼자 가게를 여느라 1시간이나 개점 시간이 늦어졌잖아. 어떡할건가. 계속 이런식이라면 나도 가만있지 않아. 또 이런일이 생기면 다음달 봉급은.........."

"으흠, 흠!"

사내는 헛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들리는 이름으로 보아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닌것 같아서였다.
그의 헛기침에 뜨끔했던지 몇초간 불친절한 목소리는 말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운터 아래에서 부리나케 몸을 일으키는 한 중년의 남성을 중절모의 사내는 볼 수 있었다. 바로 레일리씨였다. 레일리씨는 카운터 아래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던지 양손에 알지못할 조리 도구들을 한가득 들고 있었다.
으음,하고 헛기침을 한 레하르씨는 조금 빨개진 얼굴로,

"죄,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다른 사람과 착각했군요."

라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떤걸 찾으십니까? 아직, 케익 종류는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만....."

물어보는 레하르씨의 뺨에 생크림이 조금 묻어있었다. 지금 막 오늘 팔릴 케익들을 만들다가 나온것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썹을 찡그리며 중절모의 사내는 말했다.

"그거 유감이군요. 아들 녀석 생일이라 케익 하나 사려했더니."

"오후 즘에는 준비가 되어있을 겁니다. 그때 다시 들러 주시겠습니까?"

"하하.. 그럼 손님으로써는 그때 다시 들르도록 하지요."

"네?"

'손님으로써'란 의아한 대답에 레하르씨는 되물었다.
중절모의 사내는 모자를 벗으며 레하르씨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이거 인사가 늦었습니다. 돌로렌시 경시청에 새로 부임한 청장, 뤄덕입니다. 케익도 살겸, 얘기도 나눌겸 들렀습니다. 많이 바쁘시지 않으시다면 시간 좀 내어 주시겠습니까?"

레하르씨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뤄덕은 그런 그의 반응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해서라 생각되었던지 코트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레하르씨의 앞에 펼쳐 보였다.

"이제 믿으시겠죠?"

레하르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든 조리기구들을 모두 카운터 한구석에 내려놓고, 앞치마를 벗고. 뺨에 묻은 크림을 닦아낸 다음, 레하르씨는 천천히 물었다.

"하하. 경시청장님께서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요?"

"긴이야기라.....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뤄덕은 왼편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에도 레하르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테이블로 가 나란히 마주보고 앉았다.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먼저 입을 열기 시작한것은 뤄덕 경지청장 쪽이었다.

"먼저 사전에 아무 얘기도 없이 불쑥 찾아 온것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개인적인 수사 과정이라 그런것이니 양해해 주십시오."

"경시청장이나 되시는 분께서 개인적인 수사라니. 저도 흥미가 생기는군요. 뭐든 물어 보십시오. 아는대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저같이 빵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수사에 도움이나 될른지 모르겠군요."

"하하, 아닙니다. 도움이 되고 말구요. 아무쪼록 수사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일리 레하르 함장님. 아니, 전 태평양함대 전시 사령관 레일리 레하르 제독."

꿈틀,
레하르씨의 미간에 순간 좁은 골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이상의 표정 변화를 자제하며 레하르씨는 담담하게 뤄덕을 바라보았다.

"............"

레하르씨가 그렇게 아무 말이 없자 뤄덕 경시청장은 이어 말했다.

"3년전, 레드하우스 사건 이후 갑자기 잠적해 버렸다고 들었는데 이런곳에 있었을줄이야....... 궁금한가요? 어떻게 당신을 찾아냈는지?"

담담했던 레하르씨의 눈이 칼처럼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뭐, 그런 사소한것은 차차 얘기를 듣다보면 자연히 알게 될테죠."

뤄덕의 말을 듣고있는 레하르씨의 굳은 얼굴. 이어지는 그의 대답 역시 그의표정만큼 딱딱했다.

"원하는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3년 전 그 사건에 대한 것이라면 난 아무것도 말해 줄 것이
없소. 아무것도 알지 못할 뿐더러......."

후우.. 하고 길게 시가를 빨아들인 뤄덕 경시청장은 레하르씨를 향해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회색 연기가 레하르씨의 시야를 흐리며 공기 중으로 흩어져갔다.

"그렇게 말할 줄 알고있었소, 레하르사령관."

"지금은 사령관이 아니오. 게다가 레드하우스 건은 UN재판부에서 모두 결말이 났소."

"아아,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맙시다, 레하르 사령관. 그렇게 바짝 긴장하고 있으면 이쪽에서 얘기하기가 힘들어지지 않습니까."

레하르씨의 딱딱해진 분위기에 뤄덕은 짐짓 여유롭게 웃어보였다.

"더군다나 제가 정말로 알고 싶은건 3년전 레드하우스 사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음, 뭐 전혀 상관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아무튼 그게 아니라 그때 이후 행방을 감춰버린 '레이
모트'의 존재에 관해서이니까요."

!!!!!!!!
뤄덕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온 순간 다시금 레하르씨의 미간에 좁은 주름이 잡혔다. 생겼다가 금방 사라졌던 앞 전의 것과는 달리 이번의 주름은 잔뜩 찡그려진 레하르씨의 얼굴 위에서 언제까지고 사라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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