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훌쩍훌쩍 울면서 앉아있는 가라호의 모습을 보며 슬쩍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피해자 쪽이지만 어째서인지 스스로가 가해자 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기, 이제 괜찮으니까..."

 

 "... 영웅 후배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당해놓고 그런 말이 나오시나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가라호를 꾸짖는 선배님을 보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리고 그 말에 찔끔하며 한층 더 자신의 몸을 웅크리는 가라호의 모습을 본다.

 

 겉모습은 확실히 바뀌었지만 속은 틀림없는 가라호가 맞는 것 같다. 뭐, 진짜 가라호가 맞다면 지금 이렇게 훌쩍거리며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백 번 죽어서 사과해!' 라는 말이 그렇게나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반사적으로 내질러진 가라호의 주먹에 한 대 더 맞은 것이 약 10분 전. 그리고 양호실 벽을 부수고 튕겨나간 내 몸 위에 올라탄 가라호가 주먹으로 수십번 때린 뒤 깍지를 낀 손으로 몸을 두들겨 부술 듯이 내리 찍어버린 것이 약 9분 59초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 걷어찬 가라호의 '모에!' 라는 외침과 함께 온 몸에 불이 붙은 채 하늘을 날았던 것이 약 9분 58초 전이고, 기겁한 선배님께서 달려와 날 구해주신게...

 

 ... 대체 마고씨가 만든게 진통제가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선배님 말로는 거의 전신이 으스러진 상태이며 죽지 않은게 신기하다고 할 정도였지만 난 그 때 완벽할 정도로 제정신이었고 무언가 몸에 닿았다는 것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내 온 몸에 붙은 불에 의해 옷이 다 타버리고 전신에 물집이 잡힐 정도의 심각한 화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선배님께 내 나신을 (그 것도 심각하게 상태가 안 좋은...) 보였다는 너무나 잊고 싶은 기억이 추가되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난 가라호에게 맞기 전과 지금이 뭐가 다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걸요. 죽은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고... 약도 곧 온다고 하셨으니..."

 

 ".... 정말이지. 왜 그렇게 사람이 좋은거에요?"

 

 한숨을 푹 쉬는 선배님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다.

 

 "너무 사람이 좋은 것도 문제에요. 말을 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

 

 "옆에서 보는 제가 미안한걸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실제로 선배님께서 화를 내시는 모습은 그 정도였다. 자신의 몸 상태를 잊을 정도로. 저 정도로 꾸중을 듣는다면 가라호가 원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말렸을 것 같다. 하물며 지금처럼 자그마한 소녀의 모습일 때는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라호 후배님. 하늘비 선생님께 약을 받아오세요. 지금쯤 다 되었을 거에요."

 

 "냐아..."

 

 선배님은 결국 이 이상 말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화가 풀리지 않은 것은 여전한 듯,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고 덕분에 가라호는 한층 더 꼬리를 내린 뒤 힘없이 양호실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역시 아무리 봐도 호랑이로는 안보인다.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라면 모를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선배는 긴장을 풀며 자리에 앉았다. 얼굴에 떠오른 씁쓸한 표정은 역시나 싫은 것을 억지로 한 사람의 그 것과 같았다.

 

 "괜찮으세요? 괜히 저 때문에."

 

 "아니에요. 미안한 것은 저에요."

 

 선배님은 내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실은 알고 있었어요. 가라호 후배님이 저에 관련한 일에는 저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는걸."

 

 ... 알고 계셨습니까?

 

 "그리고, 왜 그러는지도 알고 있구요."

 

 ... 그건...

 

 사실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정말 왠만큼 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정도는 눈치채고도 남았겠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도 가라호 후배님이 좋아요."

 

 자그마한 목소리. 선배님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런 말을 내뱉었다.

 

 숨을 삼킨다. 어쩐지 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충격을 받았다거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스스로는 너무나 무덤덤했다. 하지만 동시에 숨이 막혀온다.

 

 시끄러운 외침 소리. 복도 밖에서 들리는 발소리.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 자그마한 숨소리.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선배의 눈에 무언가가 맺혀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에요. 가라호 후배님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단지 그런 짧기만한 문장 뿐이에요. 네, 그 뿐이에요."

 

 "...."

 

 "왜 그럴 것 같아요?"

 

 "...."

 

 "답은 이미 알고 있어요."

 

 목이 말랐다.

 

 "전 이미..."

 

 "다녀왔다냐아~"

 

 선배의 마지막 말을 삼키며 가라호가 기운차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박살나는 문을 밟고 선 채로 가라호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내게 짙은 갈색빛의 액체가 가득 담긴 사발을 내밀었다.

 

 "하늘비냥냥이 만든 약이다냥. 쭈욱 마시라냥."

 

 "...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것 같네?"

 

 대답 없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몸을 돌리는 가라호. 그리고 잠시 선배님을 바라보더니 씩 웃고는 복도 밖으로 나간 뒤 크게 울부짖었다. 그래봤자 귀여운 고양이의 냐옹 거리는 소리였지만.

 

 "아마도, 들었나보네요."

 

 "네?"

 

 "전부는 아니겠지만요. 밖으로 나가서 서 있다가 제 말을 듣자 기운이 난 걸까요? 다행히도 뒤쪽에 한 말은 못 들은 것 같지만..."

 

 쓰게 웃음짓는 선배의 모습에 살짝 입술을 문다. '다행일지도...' 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선배의 모습.

 

 입안이 씁쓸해진다. 약의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