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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Chains -2-

2006.06.04 01:32

삭구 조회 수:171

늦은 밤길. 그렇다. 달라지는 것 따윈 없다.
언제나 같은 일상, 불필요한 변화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이런 생활이 난 너무 마음에 들고 또 감사한다.
인간은 변화를 추구하는 동물이라지만 난 싫다.
혁명은 혼란을 부추길 뿐이라고 난 생각하며 믿는다.

달은 점점 모습을 감추며 요요해진다.
보랏빛. 칠흑 같은 어둠이 비추는 빛.
그 은은하고 아름다운 빛에 사람들은 감동하기도 하고,
또한 미쳐버리기도 한다. 예상외의 행동을 한다든지 말이다.

먼 옛날. 그때도 그랬으리라.
댕. 건너 옆 마을 예배당의 종소리가 울린다.
넓게 퍼져가는 위엄에 찬 종소리.
복종의 종소리. 그 저주받은 예배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들.

그래. 그때도 그랬다. 차가운 종소리가 울리던 밤에.
연보라색 달빛이 내리던 밤에. 슬픔으로 가득 찬 날에.

찬바람이 골목길 사이사이를 흐르며 울고 있다.
바람이 울고 땅이 울고 있었다.
과거 희망도 없던 나날을 기억하듯이.
꼭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았다.
슬픈 두 눈과 메마른 입술로 말이다.

난 단숨에 집으로 내 달렸다.
목이 타들어간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고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욕지거리를 하고 있다.
잊고 싶다고,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아 아버지여.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굳게 닫힌 흰색의 아무런 장식도 없는 철문.
시야가 흐릿해지고 숨이 가쁘게 돌아간다.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녹슨 대문이 열린다.
마당은 고요했고. 사람의 인기척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게 재차 다짐하지만 마음은 진정되지 않는다.

순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한 나머지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떨리는 손을 붙잡고선
천천히 방문을 열어본다.
고요했다. 꼭 어떠한 존재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신성한 장소와 같이. 방안의 공기는 죽음을 넘어선 무언 가였다.
그야말로 지옥의 냄새가 아닌가.

방 안은 가지런히 정리 되어있었다.
무엇도 뒤틀리지 않고 곧음. 그 자체였다.
단 하나 어긋남이 있다면. 바닥에 곧게 누워있는 사람.
곧게, 바르게 누워있는데 무엇이 잘못 되었느냐고?
맞다 잘못은 없다. 다만 사람이 둘이면 숨소리도 둘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뿐.

어째서.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걸까.
무엇이 잘못되었고 또 삐뚤어 진걸까.

그날도 그랬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비참한 몰골로 죽어갔을 무렵.
이후 유일하게 날 감싸주던 오빠조차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사라졌을 무렵.
그 시절 왜,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꾸미고
또 우린 그런 놀림에 이리저리 치여야 하는 걸까.
분노하고 저주를 퍼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지금은 쉬자. 잠시만 아주 잠깐만 눈을 감자. 편안히.

‘차라리 눈을 뜨지 않는다면 ........’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늘 전쟁터였다.
그 때의 나로서는 상대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그저 우리 가문의 숙적이 있다고 그들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그런 쓰레기 같은 소리에 둘러싸여 살아갔다. 진실에 눈 가려진 채로.

왜 쓰레기 같은 소리냐고?
그런 생각 때문에 저택 앞 아름답던 강물이
검붉은 빛깔로 가득 차버린 게 아닌가. 잔인했다.
정말 욕망에 가득 차 제 가족도 몰라보는 것이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구역질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 시절엔 뭘 알았겠는가.
집안 어른들의 얼굴빛에 따라 우리의 표정도 달라져왔다.
그렇게 해야만 했고. 하지 않으면 재미없던 시절이었다.
웃기지도 않는 그런 나날이었다.

그때부터 내 손엔 인형이 아닌
날카롭게 날이 선 단도가 쥐어졌고,
소꿉놀이 할 친구 대신 눈물 날 만큼 훈련과 연습만 강요하는
검은 옷의 사람들만 내 주위에 있었다.
넌 언젠가 집안을 위해 큰일을 해내야 한다며
일그러진 웃음으로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잔인한 인간들.

피라는 건 나에게 아무런 공포도 주지 못했다.
막말로 음료수로 준다면 마실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물론 명령에 한해서지만.
하지만 이렇게 내가 성장할수록
그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은 펴지기보다 괴물이 되어갔고
빈말이라도 해주던 것들도 더럽게 변질되었다.
말 그대로 쓰레기로 밖에 보여 지지 않았다.

그리고 14살이 되었을 때 난 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뒤늦게 어린아이라며 인형 따윌 주진 않았다.
바라지도 않았다. 어울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바보 같으니까.
아무튼 멋진 금색 상자엔 한 쌍의 단도가 들어있었다.
회색빛 날에 검은 손잡이엔 가문의 문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손잡이는 천년을 간다는 주목. 약간 붉은빛이 도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도 검은 정장이었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액세서리였다.
난 그걸 상당히 소중히 여겼는데.
안타깝게도 한 개는 잃어버린 상태였다.
아마도 ‘그 날’에 어디론가 숨어버린 듯하다.

그 후 난 어느 날 잠시 집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떠나는 날, 그날따라 맑았던 강물을 보고선
문뜩 재수 없는 생각이 떠올랐었다.

‘아마도. 이 강물이 더 이상 깨끗해 질수는 없겠지.......’

실제로 이후에 내가 본 강물은 집을 떠나던 그날만큼 깨끗하지 못했다.
적어도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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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편은 3개월 전인걸로 기억합니다 -_-/
잊지 않은게 더 신기할 지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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