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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몽환록]1장-사망전이-(1-4)[10]

2007.02.14 00:15

울프맨 조회 수:184

[도독. 오도독]

영준은 등 뒤에서 들리는 기묘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기묘한 소리를 내며 목과 관절을 돌리고 있는 붉은 안광을 빛내는 시체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또 만났네.........”

이곳 병동은 현재 영준에게 닥친 설명할 수 없는 이 위기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보루였다. 그런 장소에서 지금, 모든 사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바로 그녀가 서 있었던 것이었다.
우진이 본 귀신이기도 했으며, 일주일 전에 일어난 소문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자신의 눈앞에서 참사를 당한 주인공.
시체는 교통사고를 당한 그 여고생이었다.
낯익은 얼굴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여고생의 등 뒤에서 붉은 안광을 빛내며 몇 명의 인물이 더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여고생을 친 운전사, 육교에서 뛰어내린 청년, 그리고 우진.....................

[이제 어떡할 거야?]

그들은 영준을 바라보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당장 해치울 수 있는 상대에게 이 얼마나 친절한 배려인가..........
상대는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처럼 병원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한 영준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준 것도 모자라, 지금 다 잡은 상대에게 다시 기회를 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영준은 고개를 저으며 호의를 거절했다.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은 영준에게 뭔가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별 볼일 없는 상대에게 이렇게 많은 병력을 투입하며 이렇게 많은 기회를 공짜로 베풀어줄 리는 없었으니까.........
분명히 그 기대와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한, 이 기회는 베푼 만큼의 독이 되어 영준에게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영준은 이 기회를 이용해 재기할 만큼 숨겨둔 능력이나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졌어. 이번에야 말로 술래잡기는 끝이야.”

백기투항.
하지만 영준은 그 투항 가운데 사족을 남겼다.

“단..... 예의가 아니잖아.”

[예의....?]

너무나도 가볍게 투항을 받아낸 탓이었는지, 잠시 실망 반 허탈 반에 빠져있던 시체들은 호기심과 기대로 눈을 빛냈다.
그리고 영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말을 이어나갔다.
육체적인 능력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또래의 학생보다 뒤떨어지는 영준이었지만, 단 하나 스스로가 내세울 만한 것이 있었다.
상대가 제공해준 기회는 육체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 그러나 지금 영준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기회는 상대의 타입을 분석하고 설득하는 영준만의 특기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 2층 3층의 계단이 잠겨있는 것은 병원안쪽에서 이미 손을 썼다는 거겠지? 그럼 어차피 4층이나 5층으로 도망쳐봐야 막혀있거나, 뭔가 수를 써 놓았을 게 분명해. 해봐야 결과가 정해진 게임에서 놀아줄 이유는 없어. 그래서 기권하는 거다. 그리고 병원 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어.”

거기까지 말하고 영준은 볼을 따라 흐르는 땀줄기를 닦아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자연스럽게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이는 것.
그것은 상대의 호기심을 유발하게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화술의 일종이었다.
모든 속내를 보여주는 것보다 잠시 뜸을 들임으로써 대화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그런 상대의 반응을 자연스럽게 살피면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비록 상대는 시체였지만................

‘녀석도.... 병원의 인원이 실종된 것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어. 자기도 잘 모르는 거야!’

시체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영준은 안심하고 말을 이어갔다.
만약, 자신이 직접 저질렀거나, 어떤 일인지 대충이라도 알고 있다면, 내기까지 허용했던 상대의 성격상 그것을 자랑했거나 힌트를 주는 식으로 시험해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문을 잠글 만한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신 혹은 조종하는 시체가 했겠지. 하지만, 당신의 시체들은 때려 부수고 힘만 쓸 줄 알지, 문고리를 돌리는 세세한 짓거리는 잘 못하는 것 같더군......... 따라서 문을 잠근 것은 시체가 아닌 당신. 고로........ 시체를 조종하는 당신은 이 병원 안에 있어! 그리고 아마 옥상 같이 잘 보이는 곳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즐기고 있겠지!!”

영준은 말을 마치고 잠시 시체들의 눈치를 살폈다.
시체가 문을 잠글 수 없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넘겨짚기 일뿐이었다.
허나, 상대가 자신의 주장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것이 아무리 엉터리라 하더라도 결국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영준이 우려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시체들은 박장대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둠속에서 붉은 안광을 폭사하며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미친 듯이 웃어대는 모습은 오줌을 저릴 만큼 무시무시한 광경이었지만, 영준은 속으로 기쁨의 탄성을 터뜨렸다.

‘통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때가 아님을 영준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최후의 수. 마지막 방법이 통하지 않는 다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될 테니까........ 게다가 상대가 순순히 받아들여줄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영준은 잠시 기쁨을 가라앉히고 시체들을 향해 당당하게 그리고 힘주어 외쳤다.

“그래서, 당신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으면 해. 당신은 지금까지 인형놀이나 하면서 나를 농락했지. 자신의 본 모습은 숨기고 말이야....... 나는 감출 것도 숨길 것도 없이 최선을 다해 맞섰어. 조금은 비겁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설마 나 같은 중딩이 무섭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 뭔가를 물어보고 싶다면 직접 얼굴을 보이고 물어보는 것이 예의야.”

영준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여고생의 시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 미소의 의미가 수락인지 무시인지 알도리가 없는 영준으로서는 속이 바짝 타오르는 것만 같았지만, 짐짓 내색하진 않았다.
그리고, 질식할 것만 같은 정적이 잠시 주위를 맴돌았다.
정적을 깬 것은 바로 여고생을 비롯한 시체들의 행동.
그들은 문에 바짝 등을 기대고 있는 영준을 지나쳐 윗층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아직도 자신들의 눈치를 살피며 긴장하는 영준을 향해 명령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따라와. 술래잡기는 이제 끝났으니까............]


시체들을 따라 영준이 올라온 곳은 옥상이었다.
영준의 추리가 운 좋게 들어맞았던 것이어서인지, 아니면 영준에게 흥미를 느낀 상대가 그 주장에 맞춰 몸소 옥상에서 기다려 준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상대는 옥상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성.
일주일전의 정체불명의 연쇄사고와 영준과 소연의 위기, 우진의 죽음........ 그리고 지금 시체를 조종하며 영준 자신을 생사의 고비까지 몰아넣은 상대는 바로 여성이었던 것이었다.
비록 어둡고 멀리 떨어진 상태여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남자라고하기엔 너무나 왜소한 어깨, 부드러운 몸의 굴곡, 허리를 지나 골반에 까지 닿은 바람에 흩날리는 긴 검은 머리........ 등등이 눈앞의 상대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저것 역시 시체가 조종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승리를 확신한 상대가 여기까지 와서 그런 조잡한 수를 쓸 리도 없을뿐더러, 눈앞의 상대는 분위기부터가 확연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일단 아름다웠다.
영준이 되살아난 우진의 모습을 보면서 기적을 느끼지 못한 것은 그 광경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추악했기 때문이었다.
우진 뿐 아니라 조종당하는 모든 시체들은 눈뜨고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여성은 매력적이었다.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벗어나 차가운 밤공기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우수에 잠겨 있는 모습은 지금까지 그녀가 자행해온 추악한 악행들을 잊게 만들만큼 신비롭고 매혹적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매혹의 주문에 걸려버린 영준을 향해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구나?”

지금까지 시체를 조종하면서 다 알고 있었을 사실을 새삼 모르는 양 딴청을 피는 그녀.
그녀는 영준을 향해 수줍게 미소지어보이며 손짓하는 것이었다.

“이리오렴. 이리 와서 같이 보자.”

그녀의 손짓, 그녀의 미소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숨어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거칠고 난폭한 사람이라 해도, 순한 양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리고 영준이 그런 분위기에 취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어리버리한 순진남을 앞에 둔 여성 마냥 키득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금까지의 신비한 매력과 환상을 단숨에 깨어버릴 만큼 잔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야경을 감상할 기회가 될지도 모르잖니?”

동시에 영준은 등 뒤에서 들린 작지만 차가운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소리는 분명 ‘철컥’하고 문이 잠기는 소리.
바로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잠기는 소리였다.
그리고 예의 그 날렵한 시체들이 문 앞을 가로막고 살기등등한 안광을 폭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눈앞의 상대는 진정 영준을 없애버릴 심산이었다.
단, 앞의 ‘어쩌면’이라고 복선을 깔아두긴 했지만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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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4장. 병동이 10편까지 나와버렸습니다.
1-1장이 3편, 2장이 4편, 3장이 4편인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길이............
게다가 아직 끝난것도 아니라는 거--;;; 끝날려면 아무래도 한편은 더 있어야 한다는 거......................

죄송합니다--;;;;;

거기다 또 한가지.......... 지금까지 저 시체 조종하는 여자.... 아직도 이름을 못정했습니다......... 거기다가 엑스트라가 될지 주연이 될지도........

죄송합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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