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눈을 떴음에 또다시 새벽 네 시임을 알았다.
잘 수 없는 것이었다.
항상, 매일.
덥지도 않았고, 춥지도 않았지만.
눈을 감으면 자신을 부르는 비명 소리에 잠겨들 것 같아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01.
그녀는 먼저, 한 쪽 눈을 꾹꾹 문질렀다. 붉었다. 붉은 빛을 도는 금색 눈. 검푸른 색의 반대쪽 눈과는 전혀 다른 이질감이었다. 이미 십수 년이 지나,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그녀는 아직도 이것이 자신의 눈이라는 감각이 들지 않았다. 한 쪽 눈으로 빤히, 그 붉은 눈으로 거울을 응시하자, 파직,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찌뿌드드하고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 금 간 거울 앞에 서서 뻑뻑한 렌즈를 억지로 눈에 우겨넣었다. 까만 색의 렌즈. 단순한 근시 교정용은 아닌 것이 명백한 듯 렌즈의 초점은 제멋대로 돌아가더니 균형을 맞추었다. 그리고, 시야를 제대로 확보한 후에야 그녀는 자신의 오른쪽 팔을 만지작거렸다. 비틀고, 누르고. 조정 완료.
배와 다리 쪽의 일부 또한 꾹꾹 누르고 자세를 꼬아보고, 쭉 펴보며 그녀는 몸의 균형을 맞추었다. 한 쪽 팔에는 여전히 위화감이 다소 남아 있었지만, 이만하면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천천히 블라우스로 갈아입고, 검은 색 재킷을 걸쳐입었다.
류 옌리는 작게 "다녀올게" 내뱉었다. 대답은 없었다.
/02.
그녀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회의실에서 나왔다. 북경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곳도. 어디든 윗선이란 치들은 제 안위와 부귀에만 급급하지 시민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물론, 옌리 또한 삶의 질이나 복지, 그 따위 고차원적인 가치와 정책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유형은 아니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어지간한 것이라면 상부의 명령을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인간이었고, 그렇게 살아온 결과 지금과 같이, 상당 부분의 자유를 허락받은 것이었다.
정부의 개. 마술사 살해자.
옌리가 지나가자, 제복을 입은 현지 공안이 재빠르게 벽에 붙어 경례 자세를 취했다. 살짝, 마주 고개를 끄덕여준 옌리는 차분히 로비 밖으로 나가 바이크에 올라탔다. 그녀와 그녀의 무리들이 직접적으로 '작업'에 집중하는 곳은 이 곳, 경찰청과는 다소 떨어진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이 건물 안에 있다는 것은 곧 상부의 시선 아래에 있다는 것과 동일하므로.
물론, 그녀와 그녀의 부하들이 "밖"에 있더래도 상부의 시선은 향할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더 이상 윗분들의 공간이 아닌 그들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을 알기에 '상부' 또한 애써 감시만 할 뿐, 직접적으로 발을 들이지는 못하는 것일 터였다. 잃을 게 없는, 그러나 누구보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닌 늑대개 떼거리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권장할 만한 행위는 아닐 테니까.
문득,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Jess! 아침은 또 왜 안 먹고 간 거니! 모처럼 열심히 준비했는데..!"
"미안해요, 로렌. 오늘은 7시부터 회의가 있었거든요."
"정말이지.. 지금 콜을 불러서 네 사무실로 샌드위치를 보냈으니까, 꼭 챙겨 먹으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알겠어. 고마워요."
정말이지 사람 좋은 집주인이었다. 허드슨 부인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일까. 제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옌리는 살짝 고개를 흔들고는 들고 있던 커피를 한 입에 들이켰다. 별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시원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제 혈육을 죽인 것으로, 너는 잘도 살아 있구나.』
한 때 형제였던 목소리가 귀에 속삭였다. 입 닥쳐. 옌리는 작게 속삭이고는 헬멧을 썼다. 부르릉 소리와 함께, 뺨을 할퀴듯 지나가는 다소 서늘한 - 그러나 습한 바닷바람이 소리를 묻어 주었다. 옌리는 이를 악물었다.
앞으로 약 2주는, 정신 없이 바쁠 것이다.
가여운 그녀의 아랫것들에게 술이라도 한 병씩 돌려야겠다 생각하며, 옌리는 도시를 가로질렀다.
이 아가씨가 마술사도 무서워서 피해간다는 홍콩의 공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