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쿠즈류시의 상가에 있는 유명한 도시락 전문점.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는 지금의 시간 즈음이라면 자신들의 생활자금을 걸고 많은 사람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장소이지만, 오늘만큼은 마지막 도시락을 놔두고 단 두 명을 제외한 사람들이 가게의 문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더냐. '나에게 어울리는 식사를 준비해라.' 이것은 네 녀석의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잘 알고 있다고? 네놈의 특기라면 이 나를 만족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점은 광대이자 신하를 칭하는 네 녀석이 생존을 위해 해야 하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가게 중앙에 서 있는 인물 중 한 사람,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미인의 입에서 고압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앞에 서는 것만으로 고개를 넙죽 숙이며 그 말에 따르겠지만, 그녀의 동행인인 오카자키 쿄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나마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
"시, 신하를 칭한 적은 없어. 다만, 네가 만족하는 그 식사에 대해 얼마만큼의 돈이 든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며 도시락을 슬쩍 집으려 하자 금발의 미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더욱 강해졌다. 그 분위기에 가게 주인이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본 쿄우지는 빨리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고 싶었으나 도시락 앞에서 멈칫멈칫할 뿐이었다.
그렇게 가게 내부에 묘한 정적이 찾아오려 할 때, 불쑥 까만 모자가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흰옷에, 검은 앞치마를 한 소녀는 마지막으로 남은 도시락을 보더니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호오? 아무래도 그 물건에는 경쟁자가 나타난 것 같군."
"아, 그러니까…헬로우?"
소녀의 이국적인 외모에 쿄우지는 어수룩한 영어를 사용하여 말을 꺼냈으나, 그것은 쓸모없는 걱정이었는지 소녀는 매우 자연스럽게 일본어로 대답했다.
"일본어는 문제없습니다."
"이, 일본어 할 수 있구나. 다행이다…가 아니라. 이게 필요한 거니?"
소녀의 목적을 어렵지 않게 눈치챈 쿄우지는 도시락을 가리켰다.
"그렇습니다. 저의 동거인이 도시락을 먹고 싶다고 하기에."
소녀는 그것이 불만이라는 듯이 말을 하더니 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말을 더했다.
"일단, 저의 요리 실력은 완벽합니다. 문제가 된 것은 동거인의 요구 쪽입니다."
소녀가 도시락을 노려보자 쿄우지는 잠깐 생각하더니 웃으면서 도시락을 건넸었다.
"그럼 양보할게. 이쪽의 왕님은 필요 없는 것 같거든."
"잠깐 기다려라, 잡종! 그건 나를 위한 공물이 아니었더냐!"
"싫다고 안 했어?"
왕님으로 칭해진 여성은 쿄우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감히 나를 위한 공물에 손을 대다니…"
험한 표정으로 말을 계속하려는 찰나 쿄우지는 그녀를 밀어내고는 귀에 어떤 말을 속삭였다. 그러자, 여성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한 채 입을 다물었고, 쿄우지는 도시락을 소녀에게 건넸다.
"이제 문제는 없는데…자, 사과로 이것."
소녀의 손에는 특이한 포장을 한 사탕 하나가 쥐어졌다. 그것을 본 뒤의 여성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으나 소녀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저기 무서운 언니가 입은 험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
쿄우지가 뒤의 여성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기분이 상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도시락을 양보해 주신 점을 감사해야겠지요."
"별거 아니야, 저 언니는 다른 걸 먹기로 했거든."
쿄우지는 여성의 기분을 최대한 빨리 맞추어 주기 위해서인지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렸다.
소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떠나려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손에 들린 도시락을 보고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쿄우지를 붙잡았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니?"
"이것 받아두세요."
소녀는 쿄우지의 손에 무엇인가를 쥐여주고는 열지 못하게 잡았다.
"고작 돈입니다만, 이건 제가 당신에게 하는 답례입니다."
"괘, 괜찮아. 별로 돈 받을 행동 같은 건 하지 않았고."
"당신이 제게 사과를 하며 돈을 쥐여준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저와 더는 대화할 시간은 없을 텐데요."
쿄우지가 무엇인가 말할 틈도 없이 뒤에서 금발의 여성이 소리쳤다.
"언제까지 꾸물댈 거냐!"
쩌렁쩌렁 울리는 왕님의 말에 쿄우지는 깜짝 놀라며 손에 쥐어진 돈을 확인하지 않은 채 주머니에 넣었다.
"아, 그럼 고맙게 받을게."
"이걸로 당신이 모시는 분의 심기를 맞추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모시는 걸까나? 단순히 부려 먹히고 있는 기분이 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