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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낮, 인형의 집

로하 2018.08.02 12:46 조회 수 : 25

 

 

   

/01.

 

 

미국 동부, 뉴욕 주 롱아일랜드.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되었던 뉴욕 교외의 거대한 호숫가는 널찍한 저택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영장이 있고, 때로는 연회장이 있으며, 때로는 커다란 - 물론 베르사유 궁이나 샹티이 성처럼 크지는 않으나 - 정원까지 앞에 갖추고 있는 호화로운 저택가는, 분명 백 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음에도 외지인이 발을 들였을 때 자신이 소설 속에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환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남자는 그런 저택 중 비교적 더 눈에 띄는 우아한 저택의 주인, 정확히는 임시 주인이었다. 물론 그 본인은 '임시'라는 타이틀을 달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으나.

 

1940년대까지만 해도 순백의 귀부인(White Lady) 홀이라고 불렸던 저택은 그 별명답게 하얗고 고풍스러우며 우아한 멋이 있었다. 

 

남자는 그 홀의 주인이었을 남자의 동생이었다. 다행.. 아니, 불행히도 형이 비명횡사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별장과 로스앤젤레스, 벨 에어의 저택으로 만족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형의 '도움'으로, 그는 화이트 레이디 홀을 비롯한 다섯 개 저택과, 일곱 개의 별장, 개인 전용기 한 대, 그리고 수많은 '비밀스런 유물'을 소유한 거부가 되었다. 

 

 

이 풍족하고 만족스런 삶에 대한 의무는 단 세 가지, 가문의 비밀 유지, 사업의 준수한 경영, 마지막으론 어린 계집아이 하나 돌보는 것이었으니, 상당히 그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였다. 첫 번째는 그 가문의 모두에게 있어 필요한 것이었으며, 두 번째는 결국 그의 재산을 늘려주는 것과 동일한 것. 결국, 그에게 있어 진정한 의무는 마지막 사항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조차 그에게 있어서는 득이 되는 것이었기에.

 

 

여느 오래 된 명가, 특히, 마술에 발을 걸친 - 혹은 그에 토대를 둔 가문들이 그렇듯 행해진 친족간의 혼인, 그를 통해 발현된 정신적인, 그리고 신체적인 병력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이었다. 

 

두 번째는, 본인조차 모르지만 극히 희소한 재능이라 여겨지는 허수의 재능. 아니, 그것을 인지하기 전에 본인이 마술이란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 턱이 없는가. 

 

마지막으로는, 우스꽝스럽지만 사실인 것으로, 계집아이가 상당히 - 그래, 객관적으로 보기 드물게 - 예쁘장하게 생긴 편이었다는 점이었다.

 

 

남자는 소녀에게 가문을 물려줄 생각 따위 하지는 않았으나, 아이는 정략에 있어서 기적적이라고 할 정도로 값이 높은 존재였다. 셋 중 하나를 갖춘 상품이야 종종 있겠으나, 셋을 한번에 갖춘 것은 희귀한 상등품이다.

 

 

제아무리 마술 사용자라 하더라도 동양인의 피가 섞인 것은 표면상으로는 흠집이 되겠으나, 마술사들의, 그리고 마술사가 아닌 상류층의 취향을 상당히 잘 파악하고 있는 남자는 그것이 오히려 값어치를 더해주리라 확신했다. 오리엔탈리즘, 쟈포네이즈 따위가 수백 년 전부터 유행한 것은 한 때의 변덕이 아닌 것이다.

 

 

물론, 단점이 될 정도로 멍청한 바보라면 또 조금 가격을 내려야겠지만, 소녀는 딱히 그리 보이지는 않았다. 수석을 다투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성적을 본다면 평균 A-. 그 지역에서 가장 명망 있는 학교니만큼 적당히 흠이 되지 않을 대학에 진학까지는 가능하겠지. 학위를 딸 때까지 다니게 둘지는 미지수다만.

 

 

따라서 남자는, 본래의 성품대로라면 죽이지는 않더라도 완전히 존재를 지운 채 살아야 했을 아이에 대한 처우를 바꾸었다. 만약 그가 기분이 좀 더 좋았더라면, 성씨는 허락하지 않고, 존재조차 기억하지 않을 것임에도 어쨌든 평생 적당히 먹고 살 만큼의 돈을 지급했겠지만. 어쨌든 소녀는 자신도 모르는, 남이 매긴 자신의 '값어치' 덕분에 호화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구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매달 전송받는 여자아이에 관한 보고를 접어두었다. 남자는 확신했다.

 

예쁘고, 어리고, '적당히' 멍청한 여자아이는 자신의 미래에 호박 마차 한 대를 더 얹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은 뚜렷했다.

 

 

크리샨테 아르코풀로스는 사랑스러워야 했고,

크리샨테 아르코풀로스는 그 나이에 맞게 밝고 활기차야 했고,

크리샨테 아르코풀로스는 '적당히' 어리석어야 했다.

 

 

 

   

/02.

 

 

 

"아아. 이건 다 뭐람. 내가 한 일주일은 의식 불명인 상태였던 줄 알겠어, 정말이지."

 

  홍콩, 도심의 전경이 화려히 유리창을 장식하는 펜트 하우스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청소가 잘 되어 있다, 의 의미라기보단, 생각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취향을 자랑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공주님 방 같은 화려한 분홍색과 레이스, 장미꽃 자수를 좋아할 것 같은 방의 주인은 양 팔을 쭈욱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불과 반나절, '사람을 빨아들였다'고 전해지는 정체불명의 이상현상이 발생해 전교생 및 인근 주민들의 대피령이 떨어지고, 그 결과 다함께 조퇴라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게 된 소녀는 투덜거렸다. 그녀는 달리다 넘어져 살짝 긁힌 것 이외의 어떤 상처도 없었지만, 수많은 이 도시의 유력자와, 유력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보낸 꽃바구니와 편지는 한가득이었다.

 

  황금색 종 모양의 꽃. 크리샨테의 이름을 나누어 해석한 꽃은 한 사람이 보냈다면 센스가 있다 했겠으나 열댓 명이 같은 꽃을 보내면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쪼갤 필요도 없이 이름 자체의 의미(Khrysantemum)였다면 국화꽃이어야 했겠으나, '다친' 사람에게 국화를 보내는 몰상식한 짓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샤오샤오. 나 배고파~"

 

"아가씨는 참, 여러 의미로 대단하시네요. 그 난장판에서 뛰쳐나온지 겨우 세 시간인데 그렇게 태연하시다니."

 

"으응. 하지만 진짜인 걸? 나, 따뜻한 호박 수프가 먹고 싶어."

 

"에휴. 누가 속은 바ㅂ..초등학생 아니랄까봐. 좋아요. 해올 테니까 얌전히 누워 있어요."

 

 

   그런 소년의 말에, 소녀는 새삼 착한 척 고개를 주억거렸다. 커다란 침대, 새하얀 거위털 이불 속에 인형처럼 폭 파묻혀서, 최신의 아이폰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숙부가 아쉬워하려나, 아닐 것이다. 크리샨테 아르코풀로스는 숙부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을 어째서 남겨두고 있는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본처'와 이혼한 상태로, 자식은 없었다. 숙부에게는 자식이 있으나, 하나는 고도의 정신질환자, 하나는 절름발이다. 크리샤는 본래 숙부가 남의 눈을 더 신경 쓰며, 매우 계산적인 사람이란 것을 몇 번의 편지로 알 수 있었다. 샤오샤오는 통화 한 번으로 알아냈지만. 아무튼, 그래서 그 사촌들 중 하나의 뒷처리를 떠맡게 될 일은 없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정식 당주였던 형이 남긴 유일한 딸과 자신의 아이라니,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1초만에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크리샤는 일부러, 숙부.. 짜증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며 흔들거리는 손을 이불 속으로 숨겼다. 타자를 쳐 보려고 했지만 조금 어려웠다. 숙부, 마파. 코토미네. 교장 선생님. 숙부, 마파. 코토미네. 교장 선생님. 소녀는 계속 소리 없이 중얼거리며 꾸욱, 손을 쥐었다. 

 

   정말, 그 사람들 사라진 거야? 사라져버린 사람 중에는 그녀의 동급생도 있었다. 친하진 않았지만, 인사 정도는 하는. 욕심 많은 사람들의 사이에서, 혹은 저 뒷골목에서, 사람 몇이 하루만에 사라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의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상류도 하류도 어느 쪽도 폐쇄적이다. 자신들끼리 모략하고 쏘며 죽고 죽여도, 그걸 외부에 공개하는 일은 없다. 겨우 여덟 살 때부터 홀로 이 도시의 사회에 던져진 꼬마 공주님이 삶으로 터득한 것 중 하나였다. 

 

   요즘의 이 도시는 이상했다. 잃어나선 안 되는 일들이 생기고,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 한 번에 생겨. 크리샤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무서웠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는 있는데, 그녀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도망칠까?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녀가 부모님과 함께였을 때부터 살아온 모든 시간이 담긴 곳이었다. 물론, 부모님이 계셨더라면 지금과는 분명 무언가 달랐겠지.

 

   여덟 살의 나이에 당하기에는 너무한 비극이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어떤 추억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였으며, 이미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일어설 만큼 단단해지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크리샤는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시 머리칼이 파르르 흔들리다, 멈추었다. 소녀는 다시 천장을 보았다.

 

   크리샨테는 최대한 심호흡을 하려 애썼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척. 부러 소리를 내서 외쳤다. "샤오오, 아직 멀었어? 나, 좀 있음 졸릴 것 같아!" 좀 참을성을 기르세요, 바보 아가씨! 라는 대답이 돌아와 크리샤는 픽 웃고 말았다.

 

   샤오샤오는 그녀에게 무조건적으로 무르지 않았다. 그 점이 그녀는 가장 좋았다. 아무도 크리샨테 아르코풀로스가 어떤 사람인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그가 고마웠다. 

 

   아, 그러고보니 최근 비슷한 일이 있었지.

 

   그녀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곤 작게 웃었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지 뭐야.

   언뜻 듣기에도 정말 생각 없이 한, 삼류 각본 같은 말이었는데 말야.

   내 일이 되니까, 그게 예상 외로, 이렇게 퐁, 하고 내려앉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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