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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OR에 특화된 시나리오 작성 및 진행 방법 - 진행이 맘대로 안되는 마스터를 위해 (1)
초보 마스터 T양에게 고민상담을 받아서 OR에 특화된 시나리오 작성 및 진행법에 대해 강의(?)를 했다.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도록 텍스트로 정리해보기로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말로 하면 짧아도 글로 쓰면 길다는 거.... -.-;)


현재 OR 마스터인 T양의 고민은 '시나리오가 당췌 진행이 안된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가?'이다. (...뭔가 갑자기 무릎팍 도사 분위기가 된 듯도 하지만)

배경은 다음과 같다.

T양은 사실 쌩초보 마스터. 특히 OR은 이번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마스터링이며, TR도 예전에 짤막하게 시나리오 한두번 돌린 것이 끝. 플레이어로서의 경험은 제법 되고 TR 경험도 있으며, 스토리를 꾸려가는 능력도 있으나...
본래 T양이 생각했던 캠페인의 목표 플레이 기간은 6개월이었다. 그러나 이미 6개월은 지나갔고, 지금까지 플레이어들의 평가에 의하면 '절반도 못 온거 같은데?' '이제 시작 아냐?'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지나치게 캠페인이 늘어지면서 자신의 힘으로 완벽하게 꾸려나가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플레이어들은 모르겠지만) 구멍도 차츰 드러나고 있다는 고백. 대체 왜 이렇게 캠페인이 진행이 안되고 늘어질까요? 라는 심각한 고민에 봉착했다.


원인분석에 들어가자면, 일단 다음과 같았다.

1. 평일 플레이로 인한 짧은 플레이 타임. (불과 3시간)
2. 마스터가 타임 스케줄을 잘못 짬으로 인해 생긴 텐션 하락.
3. 플레이 중 쓸 데 없는 부분에 소모되는 시간이 많음.
4. OR에 대한 불충분한 파악으로 인해 배경 스케일 자체가 지나치게 컸음.
5. 마스터의 플레이어 성향 파악의 미비 & 플레이어 컨트롤 능력의 부족.

1~3번은 플레이 진행 자체에 대한 문제에 해당하며, 4~5번은 마스터의 캠페인 구성력에 대한 문제이다. 
물론 마스터보고 '네가 잘못해서 그래!' 라고 말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사실상 이것들은 OR에 익숙하지 않거나 초보 마스터라면 누구라도 행할 수 있는 실수이다. 다시 말해 이런 실수를 범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툴러서일 뿐.
그렇다면 각각의 원인에 대한 자세한 분석(어째서 저것이 진행이 안되는 원인인가?)을 해보고, 그것에 대한 해결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




1. 짧은 플레이 타임 (3시간)

짧은 플레이 타임은 캠페인 진행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일반적인 OR의 경우, 실질적으로 한 번의 세션에서 진행이 '본 궤도'에 오르기까지 드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약 2시간.
즉, 앞의 2시간은 그날 플레이의 프롤로그 겸,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OR에서 사실상 시간을 가장 잡아먹는 주범은 다른 무엇이 아닌 '진행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타임'이다.
다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지각), 사람들이 준비 되었는지 체크하는 시간, 지난 과정을 되새기는 시간, 진행 순서를 정하는 시간,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실질적으로 내용에 집중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등등...

만약 '에이 설마?' 라는 생각이 드는 마스터가 있다면 직접 시간을 재보아도 좋다. 플레이에서 '아 이제 드디어 오늘의 본론이 나왔군'이라는 생각이 들 때, 과연 시간이 얼마나 지나 있는지. ('시작했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본론'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진도가 진행' 되니까)
실제로 TR에서조차도, 플레이어들이 완전히 시나리오에 몰두하기까지는 약 1~2시간이 걸린다. (그것도 물론 지각자나 딴짓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에) 

그러나 많은 초보 마스터들이 이 시간을 플레이 타임상 고려에 넣는 것을 무시하거나, 간과하게 된다.
사실상, 한 번의 플레이 타임 자체가 긴 경우(4시간 이상)에는 이 시간은 그다지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플레이 타임이 짧으면 짧을 수록, 이 시간은 진행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병목으로 작용한다.

만약 2시간이 이런 식으로 날아간다는 걸 고려에 넣는다면, T양 캠페인의 실질적인 플레이 시간은 얼마일까?
그렇다, 고작 1시간이다.
플레이는 3시간을 했더라도, 시나리오의 진행을 위해 쓰일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1시간 뿐이라면 이 캠페인은 진행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안되는 게 당연하다.
바로 여기에서 일단 T양의 치명적인 계산 미스가 발생한 것이다.

참고로, 3시간 짜리 플레이를 2번 하는 것보다, 5시간짜리 플레이 한번이 실질적인 '진행용 플레이 타임'은 훨씬 길다.
왜냐면 모든 플레이 마다 2시간은 진행용 커뮤니케이션 타임으로 소모되기 때문이다.
즉,

3시간 짜리 플레이 2번 = 실질 진행 시간은 3-2 + 3-2 = 2시간
5시간 짜리 플레이 1번 = 실질 진행시간은 5-2 = 3시간

만약 자신의 캠페인이 플레이 진행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마스터가 있다면, 이 점을 반드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버리는 2시간을 고려하지 못하는 마스터가 만약에 "아 이건 대략 3시간 정도면 끝낼 수 있는 시나리오겠군" 이라고 어떤 시나리오를 작성한다면, 과연 그 시나리오는 실지로 몇 번의 플레이가 필요하게 될까?

마스터는 플레이 타임이 3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한 번의 플레이 내에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정은 다르다.

만약 5시간짜리 플레이 타임을 가진 캠페인이라면, 앞에 버려지는 2시간을 제외하고도 3시간의 진행 시간이 남는다. 마스터는 "처음엔 좀 늘어졌지만, 뭐 그럭저럭 예상대로 한번에 잘 끝났네"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그러나 만약 3시간짜리 플레이 타임을 가진 캠페인이라면? 앞에 버려지는 2시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플레이 타임은 1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면 마스터는 3시간 짜리 시나리오를 짰으니 실제로는 1번에 이 시나리오가 끝나리라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는 1시간 씩 3번으로 나뉜, 즉 3주에 나눠서 플레이가 진행되게 된다. 
그리고 이 마스터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 분명히 1주짜리 시나리오였는데, 왜 3주나 걸린 거야?! 우리 플레이어들의 진행이 너무 느린 거 아냐?"

아니다. 잘못은 플레이어들에게 있지 않다. 플레이어들이 진행상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약 2시간의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OR에서)
이 점을 고려에 넣지 못하고 플레이어에게만 집중해달라고 닥달한다고, 실제로 무언가가 변화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것. 잘못이 어디에 있냐고 굳이 따진다면 첫번째로는 '절대 시간의 부족 탓'이고, 두번째로는 '시간 계산을 제대로 못한 마스터 탓'이다. 


2. 마스터가 타임 스케줄을 잘못 짬으로 인해 벌어지는 텐션 하락

바로 앞에서 3시간이라는 시간이 실제로는 1시간의 플레이 타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물론 당면 문제로, 절대적 시간 부족이 가장 큰 트러블이 된다. 하지만 그 외에도 문제가 생긴다.

T양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9시에 시작하지만 항상 11시쯤 되면 저는 어떻게 플레이를 마무리 지을지 고민하기 시작해요."

이 이야기인즉슨 무슨 뜻이 되냐면, 플레이어들이 '이제야 플레이가 좀 진행되려 하네?' 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플레이가 끝나버린다는 뜻이다. 당연히 플레이어들은 '아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라면서 텐션이 쭉 떨어진다.

텐션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재미가 없다는 소리고, 재미가 없으면 그 시나리오는 기억하기 힘들다.
기억하기 힘든 진행이 되면 그 다음번 시나리오에서 '이어서 할 때' 집중을 하는 데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게다가 플레이어가 '지난 주에 원래 무슨 말을 하려 했지?' 라던가 하면서 가려던 목적성을 상실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되고, 그걸 다시 바로잡는 데에도 꽤 시간이 소모되게 된다.)

또 하나는, 사건의 부족이다.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말해서 '떡밥'이라고 표현하자.)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마스터가 3시간짜리 시나리오를 짰다고 하자. 그 마스터는 정석적으로 하나의 시나리오에 하나의 떡밥을 넣었을 것이다.

만약 이게 5시간 짜리 캠페인이었다면 마스터가 바랬던 대로 한 주에 하나의 사건이 터진다. 그러나 3시간 짜리 캠페인이라면 마스터가 넣은 떡밥은 '3주만에' 겨우 터지게 된다.
만약 마스터가 4시간 짜리 시나리오를 짰다면? 마스터는 약간만 길게 플레이를 하면 이번 주 내에 이 사건이 터지리라 기대했겠지만, 실제로 그 사건은 4주 뒤에 터지게 된다.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3주나 4주 내내 지루하게 진행만 되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이벤트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마스터가 2주에 한 번 터뜨릴 생각으로 커다란 떡밥을 준비해 넣었다면, 그 떡밥은 실제로는 8주나 10주, 즉 2달이나 2달 반 만에 겨우 터지게 된다.

사건이 2달에 한번 겨우 터지는 이런 플레이가 재미있는지는 일단 차치하고, 이렇게 되면 플레이어들은 '아무 일도 없는 세월아 네월아 진행' 상황에 익숙해져버리게 된다. 텐션이 바닥을 치게 된다는 뜻이고, 플레이어들의 태도로 인해 진행이 '실제로 느려지게' 되는 효과를 낳아버린다는 것이다.

만약 매 세션마다 반드시 사건이 하나는 터진다는 데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라면, 진행 속도도 저도 모르게 빨라지게 된다. 왜냐면 '빨리 오늘의 사건을 보고 싶다'는 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만디 텐션에 적응된 플레이어라면 스스로 나서서 빨리 달리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달려봤자 떡밥은 또 몇 주나 있어야 터질 걸 뭐~'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소꼽놀이 하듯 그날 적당히 해야 할 일들만 처리하고 넘어간다.

어느 쪽의 플레이가 실제로 진행이 빠를까? 당연히 전자이다.


3. 플레이 중 쓸 데 없는 부분에 소모되는 시간이 많음.

캠페인의 진행을 위해 소모해야 할 절대적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뒤, 나는 진지하게 T양에게 물었다.

"이 캠페인은 모험물이야, 에픽이야?"

만약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면, 진행속도를 빨리 하기 위해 남는 방법은 한 가지 뿐. '쓸 데 없는 부분은 모조리 쳐내야 한다'.
실제로 T양의 캠페인에서는 2~3 주에 한 번씩 여행을 위한 여비를 사용하기 위해 1시간씩을 소모하고 있었다. 진행을 위해 사용해야 할 그 피같은 1시간에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 때만 이상한 거였어요!" 라고 T양은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3, 4번씩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일이 최근에 여행경비 계산을 할 때마다 일어났다면 이미 그건 일레귤러가 아니라 레귤러로 파악해야 한다.

시간의 소모에는 '원래는 그럼 안되는 거잖아요. 플레이어들이 미리 계산했야죠' 같은 변명은 안 통한다. 왜냐고? 안한다고 어쩔 수 있는 게 아니거니와, 시간이 깎여 나가고 진행이 느려져 손해를 보는 건 지금 플레이어들이 아니다. 마스터인 것이다. 

용돈을 계산 해야 하는 사람이 '그때 그건 너무 배고파서 갑자기 사먹은 거니까. 원래 쓰려던게 아니었으니까' 라면서 갑자기 쓴 간식비 천원 이천원을 '일레귤러'로 치고 계산 안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일이 두번 세번 반복되는 사이, 그 사람은 월말에 빵구난 용돈 지갑을 보면서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레귤러'한 지출을 다음 달부터라도 고려에 넣어두지 않는 한 매달 똑같이 마지막에 돈이 모자란 사태를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대체 계획 잡을 땐 분명히 용돈이 충분한 거 같았는데, 왜 맨날 월말엔 돈이 모자라지???? -_-'

쓴 건 쓴 거다. 그건 시간도 돈과 마찬가지다. 만약 일레귤러가 생길 여지가 있다는 것이 한 번이라도 파악되었다면, 그것을 '시간 소모의 요소'에 넣을 준비를 하고, 실제로 넣어야 한다.

만약 여행 경비의 계산이 이 캠페인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면 몰라도, 그저 분위기를 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단 한번의 계산으로 족하다. 그 이후에는 여행 경비를 계산할 시간 같은 건 모조리 잘라야한다. 여행을 다니다가 만나는 인카운터도 마찬가지. 처음 한두번의 인카운터를 경험했다면, 그 이상의 인카운터는 필요없다. 그것이 파티원의 생존에 위협이 될만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들은 지나가다가 고블린 몇 마리와 오크 몇 마리를 만났고, 경험치는 얼마를 얻었어요." 라는 마스터의 한 줄 선언으로 충분하다. 

만약 이것이 에픽 캠페인이라면, 쇼핑을 하기 위한 시간, 사소한 전투에 할애할 시간, 여행 경비와 기간과 여관수를 따지는 시간 같은 건 모두 무의미하다. 반대로 이것이 모험물이라면, NPC와 만나서 토론하는 시간, 정치적인 논제를 놓고 고민하는 시간, PC간의 사이좋음을 위한 (혹은 연애를 위한) 시간 따위는 정말로 무의미하다.

쓸 데 없는 시간이란, 그것이 정말로 쓸 데 없어서 쓸 데 없는 시간이라 칭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 시간이 부족한 캠페인에서는 '이것이 빠지면 캠페인이 죽어!!!!!'라는 절박한 요소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쓸 데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잘라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마스터가 원하는 대로의 빠른 진행은 결코 얻어질 수 없다. 호쾌하고 빠른 진행을 선택하느냐, 아기자기고 세세하지만 느린 진행을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마스터에게 달린 것이다.


이상, 현재 T양의 캠페인에서 우선 진행 자체에 생기고 있는 문제에 대해 분석을 해 보았다.
그럼 이것들의 해결 방법으로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1. 플레이 타임의 '절대 시간'을 늘려라.

우선적으로 '진행용 시간'으로 못해도 2시간은 확보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3시간 플레이를 고수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4시간의 플레이 타임은 확보하지 않으면 '빠른 진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태. 현재라면 3시간 플레이를 4시간 플레이로 늘리는 것 만으로도 2배의 플레이 진행속도를 확보할 수 있다.

2. 떡밥을 나눠 뿌려라.

플레이어들은 '놀기 위해' 모여든 인종이다. 그 말인즉슨, 놀지 못하면 불만이 쌓이고, 불만이 쌓이면 '무슨 짓이라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쓸 데 없이 사고치기'라던가) 일단 플레이어가 사고를 쳐놓으면 그걸 수습하기 위해 가외의 시간이 또 들어가게 된다. 이건 매우 곤란하다. 
마스터가 원하는 대로 캠페인을 빨리 진행시키길 원한다면 텐션을 하락시켜선 안된다. 시나리오 플롯을 3시간 단위가 아니라 1시간 단위로 짜야 하며, 그 1시간 단위의 플롯마다 작은 떡밥이라도 반드시 떡밥을 하나씩 나누어 넣어라. 텐션이 상승하면 따라서 플레이 진행속도도 빨라지고 플레이어 집중도도 높아진다. 캠페인의 플레이어들끼리 만났는데도, 서로 화제로 삼아서 놀 꺼리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적어도 한 주에 최소 1개의 놀 꺼리(수다떨 꺼리, 세션 꺼리)는 던져준다는 마음 가짐으로 시나리오를 짤 것.

3. 캠페인의 목적성을 확실하게 정하고 쓸 데 없는 부분은 전부 생략해라.

에픽 캠페인이라면 자잘한 전투와 사소한 여행경로는 과감히 생략하라. PC들이 자신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걱정할 시간을 만들지 말아라. (에픽이라면 반드시 '조직'이나 강력한 '후원자'가 있으며, PC들이 '조직'에 소속하게 되거나 '후원자'를 얻게 되면 재정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세계를 구하려는 자들이 먹고 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된다면 어느 시간에 세계를 구하나?

모험 캠페인이라면 전투와 모험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라. NPC가 나와서 분위기 뿌리며 긴 대사하지 말아라. 요는 핵 앤 슬래쉬다. (이건 뭐 따로 설명 패스)

에픽 캠페인이라고 할 지라도, 절대 시간이 모자랄 경우에는 NPC와의 대화 시간을 과감히 축소해라. PC에게 호의적이고 튕기지 않는 NPC라고 할 지라도, 어떠한 서브젝트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경우에 걸리는 최소 시간은 1시간이다. 만약 이 NPC가 튕기기 시작하면 대화 시간은 2시간이 걸린다. 이 NPC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고,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튕기기까지 하고, 쉽사리 물러서지도 않는다면, 그 대화는 4시간은 족히 걸린다. 정말로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NPC와의 대화는 선언으로 넘겨라. 정 필요하다면, 어차피 협력할 NPC는 빨리 협력하게 반들고, 어차피 거절할 NPC라면 빨리 '사라지게' 만들어라. PC에게 '튕기는' 것은 '나를 더 괴롭혀주세요'라는 츤데레의 주문으로 들리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계속해서 대화에 응하는 NPC는, 어떻게든 하면 결국은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라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플레이어에게 '포기'를 바라지 말라. RPG 플레이어는 포기하는 인종이 아니다. (그럴 거면 누구 말마따마 집에서 농사짓지;)

....너무 길어져서 일단 이것부터 올리고, 2탄 작성. -.-;;; 2탄에서는 '캠페인 구성과 관련된 4, 5번 문제점'에 대해서 다뤄보겠다.

 

 


[강의] OR에 특화된 시나리오 작성 및 진행 방법 - 진행이 맘대로 안되는 마스터를 위해 (1)에 이어서, 계속해서 4~5번 문제에 대해 알아보겠다.

T양이 진행하는 캠페인이 진행이 당췌 안되는 문제점의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1. 평일 플레이로 인한 짧은 플레이 타임. (불과 3시간)
2. 마스터가 타임 스케줄을 잘못 짬으로 인해 생긴 텐션 하락.
3. 플레이 중 쓸 데 없는 부분에 소모되는 시간이 많음.
4. OR에 대한 불충분한 파악으로 인해 배경 스케일 자체가 지나치게 컸음.
5. 마스터의 플레이어 성향 파악의 미비 & 플레이어 컨트롤 능력의 부족.

1~3번은 플레이 진행 자체에 대한 문제에 해당하며, 4~5번은 마스터의 캠페인 구성력에 대한 문제이다. 
1~3번의 이유와 해결법에 대해서는 이미 (1)편에서 알아보았으니, 이번에는 4~5번이 어째서 캠페인을 늘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는가 하는 것과 그 해결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4. OR에 대한 불충분한 파악으로 인해 배경 스케일 자체가 지나치게 컸음.

이건 마스터가 TR만의 마스터링 경험을 가지고 OR 마스터링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OR은 사실 TR에 비해, 상상을 초월하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임이다. TR처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짜는 건 굳이 나쁘다곤 할 수 없다. 좀 텐션이 처진다 해도 1번의 준비로 4~5번의 플레이꺼리를 갖게 될 테니까. (...)

문제는 마스터가 시간을 단축하고 싶거나 정해진 기간이 있을 때이다. 느긋하게 시간 고려 없이 맘놓고 진행할 게 아니라면, 시간 눈대중 자체가 잘못되어선 곤란하다는 거다. 간단하게 분석해보자.

OR은 기본적으로 말을 타이핑으로 쳐야 하기 때문에, 똑같은 일을 해도 TR에 비해 2배의 시간이 걸린다고 어림잡는다.
거기에, 플레이에 집중하기 위한 프롤로그겸 집중을 위한 준비 타임도 조금 더 걸린다. (대략 2시간)

그럼 여기에서, T양이 현재의 조건 상에서 6개월 내에 하나의 캠페인이 끝나기 위해서는 몇 시간짜리 TR용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했을지를 계산해보자.

6개월 = 24주 = 총 24x3시간의 총 플레이 타임 = 24x1시간의 총 진행타임

T양이 6개월 동안 캠페인을 위해 가진 총 플레이 타임은 72시간이며, 그 중 진행용 타임은 고작 24시간이다.
이것은 몇 번의 TR 플레이에 해당할까?
우선 OR은 TR에 비해 2배의 플레이 시간이 걸린다. 즉 이것을 환산하면 T양이 가진 시간은 36시간의 총플레이 타임이며, 그 중 진행을 위한 시간은 12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TR플레이는 보통 1~1.5시간의 집중 타임을 필요로 하며, 총 플레이 타임은 6시간 남짓, 즉 진행 타임은 5시간 남짓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총 플레이 타임으로만 따진다면 T양은 여섯번의 플레이에 맞먹는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진행타임만으로 따지자면.... 고작 두번 반에 해당하는 플레이 시간을 가지고 있다.

즉, T양이 6개월 내에 진행할 수 있었던 시나리오는 아주 잘 봐줘서 여섯번 (즉 한달 반) 만에 끝나는 시나리오여야 했으며, 진행 타임만으로 보자면 TR 플레이 2~3번 만에 끝낼 수 있는 시나리오여야 했다.

이런 시나리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험 시나리오나 추리 시나리오가 되겠다. 마을에서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친한 친구들끼리 파티를 맺은 뒤 그것을 탐사하는 것이다. 처음엔 쉬운 일로 보였지만 중간에 알고보니 악덕 지주라던가 근방의 성에 사는 성주라던가가 뒷배경에 숨어있다는 반전 한 번 정도 있고, 결국 그 지주나 성주를 때려잡으면 완료되는 것. 이 정도가 6개월 내에 초보 마스터 T양이 해결할 수 있었던 시나리오이다.

그런데 T양이 정작 준비한 것은 무려 '에픽' 캠페인이었다.
.......6개월?
헹 -_-

보통 에픽 캠페인을 TR로 돌리면 6개월~1년 정도가 걸린다. 여기에서 T양이 TR용으로 6개월짜리 에픽 캠페인을 준비했다고 상정해보자. 그럼 이것을 OR로 돌리면 (그것도 지금의 상황에서)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6개월 = 24주 = 24x6의 총플레이 타임 = 24x5의 진행타임

총 플레이 타임 144시간, 그 중에서 진행타임으로는 120시간.
에픽이므로 총 플레이타임으로 따지는 것보다 진행타임으로 따지는 게 좋다. (에픽의 경우 한 번의 플레이에 가외 시간이 많이 들어가므로)
현재 T양 캠페인의 진행 타임은 1주에 1시간이므로 간단하게만 보아도 120주가 걸리는 시나리오가 된다.
120주 = 30개월 = 2년 반.

T양은 현재의 OR플레이로 2년 반에 해당하는 캠페인을 준비해놓고, 그게 6개월 내로 끝날 기미가 안보인다며 좌절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님아, 쫌 매너혐?

TR과 OR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실질적인 플레이 타임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채 마스터링을 준비했기 때문에 벌어진 엄청난 시간 오차이다. 사실상 이 정도 되면, '님아 플레이 빨리 안끝난다는 소린 걍 포기하지? 그냥 에픽 캠페인 제대로 끌고 나가는 데만 신경써' 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 (그리고 실제로 말해주었...)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 점에 대한 해결방법은 없다. 이미 6개월 동안 벌여놓은 일을 갑자기 전원 몰살 엔딩으로 처리하지 않는한은, 이 캠페인은 어쨌거나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만약 마스터와 플레이어들이 합심해서 노력한다면, 빨라야 '앞으로' 1년에서 1년 반 정도까지 단축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것도 시나리오의 자잘한 부분은 과감히 잘라먹은 뒤에...)

OR 캠페인을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초보 마스터가 있다면,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OR은 TR에 비해 2배의 시간이 들며, 그나마도 '진행 시간'은 한 번의 플레이 타임에서 반드시 2시간을 뺀 뒤에 계산하라고. 그래야 아마 겨우 그럴듯하게 현실적인 플레이 시간이 나올 수 있게 될 것이다.


5. 마스터의 플레이어 성향 파악의 미비 & 플레이어 컨트롤 능력의 부족.

마스터가 플레이어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캠페인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 
어째서 그럴까?

여기에서 간단히 '플레이어의 성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주의할 것 - 결단코 캐릭터 성향이 아님)
플레이어에게는 다음과 같은 성향들이 있다.

1) 진행자
2) 리더
3) 스피크 퍼슨 (Speak Person)
4) 사이드킥
5) 방관자

그리고 매우 드물지만 6) 조정자.
각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진행자
시나리오를 '진행하게' 만드는 사람. 가끔은 '마스터의 꼬봉'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릴 때도 있다. 떡밥을 던지면 떡밥을 물고, 사건을 던지면 사건을 해결하려 하며, 문제가 있을 때는 두고 못보는 타입. 진행자 중에는 '능동적 진행자'와 '수동적 진행자'가 있으며, 보통 수동적 진행자는 노력으로 될 수 있지만 능동적 진행자는 타고나야(...) 한다. (능동적 진행자는 간혹 '시나리오 브레이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2) 리더
설명이 필요없지만 만약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파티의 의견을 종합하고 파티원을 한군데로 모으는 사람'. 리더 역시 노력으로 가능하긴 하지만 숙련된 리더는 역시 기질을 좀 타고 나야 한다.

3) 스피크 퍼슨 (Speak Person)
일종의 대변자인데, 리더에 의해 모아진 의견을 파티 바깥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주의할 점은, 나서서 말을 많이 한다고 스피크 퍼슨이 아니라는 것. 스피크 퍼슨은 NPC가 되었던 누가 되었던 파티의 의견을 '전달하여 그 뜻이 통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스피크 퍼슨은 센스와 말재주를 타고나야 한다. 노력에 의해 스피크 퍼슨이 되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4) 사이드킥
간단하게 말하면 주변인물. 리더도 아니고 진행자도 아니고 스피크 퍼슨도 아닌 사람은 보통 사이드킥으로 분류된다. 재미를 추구하지만, 실질적인 '시나리오의 진행'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며, 그냥 RPG를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RP에 심취한 사람이나 루니도 이쪽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그의 발언이나 행동이 '진행'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누구나 쉽게 될 수 있는 유형.

5) 방관자
스스로 나서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시킬 때만 발언을 하고, 선언도 누군가 시킬 때에만 한다. 무엇에서 재미를 느끼는지 궁금하지만, 분명히 재미가 있으니까 참여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하는 플레이보다는 관전을 즐기기도 한다.) 사실상 RPG 플레이어 중에선 매우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주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완벽한 생초보의 경우에는 자신의 성격과는 관련없이 어쩔 수 없이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6) 조정자
정말로 드문 경우이며, 있다면 마스터에게는 보물급. 그 파티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을 알아서 찾아낸 뒤, 알아서 그것을 땜질한다. 그들은 진행자가 되기도 하고 리더가 되기도 하고 스피크 퍼슨이 되기도 하지만, 만약 아무런 취약부분이 없다면 사이드킥이 되기도 하는 전천후 플레이어. 그러나 대부분의 조정자들은 나서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조용히 사이드킥을 하고 있으면 만족하지만, 몸 속에 흐르는 '수습의 피'가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그저 파티의 생존을 위해 '취약하니까 땜질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한 명의 플레이어가 하나만을 가지거나 하진 않는다. 또한, 어떤 팀에 속해있느냐에 따라서 같은 플레이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팀에서는 리더가 진행자와 스피크 퍼슨을 겸하기도 하고, 어떤 파티에서는 모두가 나눠져 있기도 하다. 마스터는 자신의 파티원들이 각각 어떤 성향에 속하는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마스터가 플레이어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시나리오를 진행해야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르고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마스터가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이 파티에는 리더가 있는가?

없다면 매우 곤란하다. 이 플레이어들은 진행은 커녕, 자신들의 의견 조율에만 2~3주의 플레이 타임을 허비할 것이다. 때로는 파티가 조각조각 찢어지기도 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나온다. 최악의 상황.
마스터는 어떻게 해서든 가장 리더 기질이 있는 사람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중재하는 사람'이다.)에게 리더를 맡겨 파티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또한 파티원들 각자에게 '알아서 파티에게 붙어있지 않는자는 마스터가 챙겨주지 않으며, 나서서 파티를 깨는 자는 플레이에서 빼버리겠다'라는 경고를 내보내야 할 때도 있다. 리더와 마스터는 상부상조해야 하며, 마스터는 리더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가 없다면 파티는 성립하지 않으니까.

2) 이 파티에는 진행자가 있는가?

있다면 기뻐하라. 당신은 그에게만 떡밥을 던지면 된다. 없다면 고민하라. 아무리 떡밥을 던져도 '아무도 안움직이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진행자는 떡밥을 던지면 반드시 그것을 캐치하여 파티원에게 물고가며, 그것을 해결하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물론 결론을 내는 것은 파티원의 의견을 모은 리더의 역할이지만, 진행자 없이는 마스터가 파티원들의 눈 앞에 떡밥을 들이밀어도 눈치채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만약 쓱 봐서 진행자가 없다 싶으면, 가장 진행자의 기질을 가졌을만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건이나 NPC에게 엮어넣어라. 사이드킥은 그 사람의 취향에 따라 손쉽게 진행자로 변화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남을 좋아하는 사이드킥이라면 사건과 깊이 관련된 미남 NPC 한명으로 즉각 진행자로 돌변시킬 수있다.) 리더가 분열없는(=쓸 데 없이 시간 끌지 않는) 파티의 성립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면, 진행자의 존재는 빠르고 화끈한 진행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다만, 마스터가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파티에 있는 진행자가 '수동적 진행자'인지 '능동적 진행자'인지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수동적 진행자라면, 눈 앞에 떡밥이 던져지는 것은 놓치지 않고 물어서 파티원에게 돌아가지만, 아무런 떡밥도 없다면 굳이 찾아 헤매지 않는다. 마스터가 떡밥을 던지지 않으면 그 역시 몇 주동안 세월아 네월아 손빨고 앉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능동적 진행자라면, 주변에 떡밥이 보이지 않는 순간 떡밥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더 무서운 것을 알려줄까? 그들은 만약 전혀 떡밥이 없다면 스스로 떡밥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파티에 있는 진행자가 만약 능동적 진행자라면, 마스터는 문제없는 진행을 위해 그에게 '항상 마스터가 의도한 떡밥을 제공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떡밥이 떨어지는 그 순간, 그는 어딘가에서 마스터가 상상치도 못했던 떡밥을 끌고 나와 시나리오의 분기를 만들어 버리거나, 심지어는 있지도 않던 떡밥을 만들어 내서 마스터가 의도했던 방향과는 전혀 어긋난 쪽으로 파티원을 끌고 간다. 때문에 그들은 '시나리오 브레이커'라고 불리기도 하고 '살아있는 파울웨더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물론 마스터는 그들을 탓할 수 없다. 왜냐면 사이드킥과 달리, 그들은 '떡밥이 없을 때에만'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상태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므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떡밥을 환영한다. 마스터는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속만 썩게 될 따름이다.
특히나, 시간 분배를 잘못해서 떡밥을 2~3주에 한번 겨우 던지게 된 마스터라면, 능동적 진행자는 환희의 대상이 아니라 때로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마을에서 끝날 간단한 시나리오를 역적모의가 가득한 에픽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3) 스피크 퍼슨이 있는가?

없다면 리더에게 스피크 퍼슨을 겸하게 하라. 있다면 그것이 2명이 되지 않도록 하라. 리더가 말발이 정말로 꽝이라서 스피크 퍼슨을 죽어도 못하겠다는 일은 웬만해선 벌어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리더 기질을 갖고 있지도 않다) 만약 스피크 퍼슨이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으면 파티원 다섯 명이 한꺼번에 NPC를 향해 중구난방 떠드는 꼴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시나리오 진행은 느려진다.)

4) 사이드킥이 있는가?

사이드킥은 플레이의 감칠맛을 더해주는 존재이지만, 빠른 진행을 요구하는 플레이에서는 사실상 '방해꾼'에 가깝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진행에는 도움을 주지 않고, 연애질에만 시간을 들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서서 하는 발언은 진행발언보다는 RP를 위한 것이나 웃음을 위한 것이고, NPC와의 대화를 하게 되면 파티원의 종합 의견을 전달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리고 심심치 않게 NPC와 싸운다) 그들의 발언은 항상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사실상 시나리오 진행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 그런 소재를 발굴해내는 데에는 나름 한가지씩 재능을 가지고 있다.

진행자와 마찬가지로, 사이드킥도 수동적인 사이드킥과 능동적인 사이드킥이 있다. 수동적인 사이드킥에 대해서는 마스터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들은 딱히 다른 떡밥이 떨어지지 않는 한은 좋은 협력자를 유지한다. 문제는 능동적인 사이드킥이다. 그들은 이야기가 너무 중심축에만 몰두되어 있으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마스터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최대한 그들의 '진행에 방해되는 발언이나 행동'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그들이 활약할 무대는 본플이 아니라 세션이며, 그들 자신도 세션만 마음껏 할 수 있으면 본플에서 별다른 활약이 없어도 크게 불만을 갖지 않는다. 마스터는 진행을 위해 그들을 위해서도 감칠맛 나는 떡밥을 준비해주는 게 좋으며, 사이드킥들은 보통 하나의 떡밥만 던져주면 마르고 닳도록 그것으로 알아서 노는 재능이 있다. (이 점이 진행자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다른 플레이어 유형과는 달리, 강력하게 문제가 되는 사이드킥으로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 않으면 불만을 가지는' 사이드킥이라는 것이 있다. 이 경우는 솔직히 말해 조용히 팀에서 제외하길 권한다. 그런 사이드킥이 있다면 빠른 진행은 커녕 스토리가 제대로 흘러가는 것조차 위험해진다. 그들은 현재 진행되는 떡밥이 있건 말건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고는 종종 캐릭터의 사망으로 이어진다 - 남을 휘말려들게 하는 것에 상관없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못받으면 그들은 '삐진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파티는 깨지게 되어 있으므로, 기분 나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빨리 그를 팀에서 내보내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 (이런 사람들은 수십명에 한 명 정도로 드물지만 10년 정도 플레이를 하다보면 한번은 만나게 된다. 조용히 그를 멀리해라.)

5) 방관자가 있는가?
....냅둬라. 그들은 적어도 방해는 되지 않는다. 물론 도움도 별로 되지 않지만. 
만약 진행을 빨리 하고 싶다면 마스터가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라. 그들은 대답은 반드시 해주기 때문이다.
만약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방관자가 있다면 일단은 경고를 보내고, 몇 번 이상의 경고로도 소용이 없으면 파티에서 내쫓아라. 그들은 RPG를 할 자격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게이머가 아니니, 그냥 관람객을 시켜라.


T양의 캠페인에서, T양은 플레이어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은 '이 파티에는 리더도 없고 스피크 퍼슨도 없다' 라는 결론이었다. (두둥)
원래 리더가 되어주었으면 하고 기대했던 모 캐릭터의 플레이어의 성향은 의외로 사이드킥에 가까웠으며, 놀랍게도 플레이어의 성향은 한 명의 진행자(...)와 다른 플레이어들은 모조리 사이드킥이라는 놀라운 결과였다. 그 중 한 명은 초보자인 편이어서, 심지어는 약간은 방관자의 기질도 겸비하기도 (....)

진행자가 있기 때문에 던져지는 떡밥은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지만, 리더도 스피크 퍼슨도 없기 때문에 파티는 항상 싸우고 의견은 중구난방이었다. 게다가 저 진행자는 하필 '능동적 진행자'(...) 마스터가 몇 주동안 떡밥을 던지지 않으면 마스터는 상상치도 못했던 떡밥을 어떻게 찾아내서 물고 돌아오곤 했다. (라고 마스터가 고백했다) 즉, 해결하지 못한 떡밥은 늘어만 가는데 의견은 뭉치지 않고 서로 맨날 싸우고 파티원들 내의 중요한 관심사는 시나리오 줄기와는 전혀 관련없는 연애질이나 파티원 내의 상관관계이고...

진행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

더구나 T양은 파티원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명목하에, 파티원들이 다른 길로 새는 것을 전혀 막지 않았다. (...아니 막으려고 노력했을 지는 모르지만 역부족이었을수도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 시피, 능동적 진행자가 물어오는 떡밥은 마스터가 의도했던 떡밥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스터가 "무조건 안돼!"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런 경우에 해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리더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파티원 중에서 가장 중재를 잘하는 플레이어를 골라 리더감으로 정하고, 그를 리더로서 교육시켜야 한다. 일단 리더가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파티 내의 분열이 확연히 줄어들게 되며, 리더가 스피크 퍼슨도 겸할 수 있으므로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현재 T양의 캠페인에서 가장 중재를 잘하는 플레이어를 추천해주었고, 그를 리더로서 앞으로 지지하고 밀어주도록 조언했다.)

둘째로, 진행자에게 고삐를 채워야 한다. 능동적 진행자에게 고삐를 채우는 방법은 플레이어를 따로 불러서 마스터 사정 좀 봐달라고 빌던가 (....다만 그럴 경우에는 각종 떡밥의 의미를 다 불어줘야 할 - 이래저러하니까 제발 그만! 이라고 말해야 하니 -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그에게 계속해서 시나리오의 중심에 관련된 떡밥을 던져주는 것이다.

마스터들은 항상 시나리오 속에 떡밥을 마련하게 되어 있는데, 이 떡밥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파티에게 전달되느냐에 따라서 시나리오 전개의 승패가 갈린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서 우스개처럼 나왔던 각 플레이어 유형 별 떡밥에 대한 반응을 적어본다.

진행자 : 떡밥을 보면 즉시 문다. 파티원에게 물고 가서 사건을 해결하거나 이 이벤트를 쫓아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심지어 떡밥이 없을 때에는 자기가 알아서 만들어 내기도 한다.

리더 : 떡밥을 보면 파티원들을 돌아본다. 떡밥 자체에는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떡밥에 대한 파티원의 의견이 모두 모일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스피크 퍼슨 : 떡밥을 못 볼 가능성도 높다. 봐도 그냥 '저기 떡밥 있네?'라고 한마디 던진다.

사이드킥 :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게 아니면 떡밥을 봐도 무시한다. 그건 내 떡밥이 아니다.

방관자 : 어차피 어떤 경우에도 안 움직인다.

조정자 : 조용히 덮는다 (....)

가장 시나리오를 빠르게 진행시키는 방법은 진행자에게 직접 떡밥을 던지는 것이다. 사이드킥이나 조정자에게 던졌다간 그 떡밥은 그대로 강물따라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리더나 스피크 퍼슨에게 던지면 그것을 따라가느냐 마느냐에 대한 기나긴 토론이 생기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행자에게 던지면 진행자는 어떻게든 그 떡밥을 따라가게 만드는 당위성까지 알아서 준비한다. 얼마나 편한가? (....) 그러므로, 현재 있는 진행자에게 고삐를 잘 채워서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게 시나리오를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는 방법이다. 이것은 마스터 스스로의 진행방식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만들 때에 떡밥을 어느 위치에 누구를 위해 짜넣는가에 달린 일이므로 구성적인 요소에 해당한다. 

세째로, 스피크 퍼슨이 없다고 굳이 만들 필요는 없다. 다만, 여러 명이 한꺼번에 발언을 하려고 들 때에는 반드시 한 명만 말하라고 마스터가 지적해줘야 한다. 스피크 퍼슨을 만들려고 하면 서로 싸우게 될 수도 있으므로, 아예 리더보고 말하라고 지적하던가, 아니면 마스터가 말할 차례를 정해주도록 한다. 

네째로, 플레이어에게 친절한 것과 방종을 허용하는 것은 다르다. 플레이어들에게는 한없이 친절해야 하지만, 그들이 갈 길은 반드시 외길로(....) 짜도록 해라. 거기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아예 떡밥부터 원천봉쇄를 하도록 한다. 그래야만 부족한 절대 시간 내에 마스터가 원하는 대로 진행을 시킬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외길이 아니라 얼마든지 세상을 돌아다니게 해도 좋지만, T양의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으므로)
시나리오는 사방 팔방으로 튈 수 있게 짜놓고, 플레이어들의 행동 자체를 규제하려고 해버리면 플레이어들은 불만 투성이가 되고 마스터는 불친절한 마스터가 되어버린다. T양의 경우에는 실제로도 그렇게 되려다가 플레이어들의 지적 탓에 ('마스터가 까칠해요!' '설명이 부족해요!') 차마 불친절한 마스터가 될 수 없어서 결국 플레이어들에 대한 콘트롤을 놓치게 된 경우이므로 그걸 고치는 방법은, 앞으로라도 시나리오의 떡밥을 철저하게 자신의 관리하에 두는 수 밖에 없다. 플레이어의 성향을 완전히 파악하고 나면, 떡밥의 관리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섯째로, 구멍이 난 시나리오를 메꾸기 위해서 원래 자신이 짰던 거대한 설정에서 이것저것 갖다 쓰거나 새로운 설정을 만들게 되면 시나리오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빨리 끝내고자 하는 마스터의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건 필지. 만약 시나리오를 빨리 끝내고 싶은데 구멍이 점점 생긴다 싶으면, 이때에 구멍을 메울 소재는 '원래 거기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여태까지 나왔던 것'들 중에 하나로 끌어다 쓴다. 원래 거기 있기에 그럴듯한 놈을 억지로 옮기기 위해 만들어야 하는 새로운 설정과 시나리오를 짜느니, 이미 나왔던 소재들 중 하나를 마치 '원래 그랬어'라는 듯이 가져다 쓰면 플레이어들에게는 "오오오 설마 그게 복선일 줄이야?!" 라는 착각(...)을 심어줄 수 있고, 마스터는 쓸 데 없이 늘어나는 위험성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특히 앞으로의 시나리오가 더 벌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T양에게는 이 땜질 방법을 적극 추천한다.)

여섯째로, 만약 마스터가 하나의 떡밥을 던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플레이어 중 누군가가 (진행자일 확률이 높지만) 캠페인의 다른 요소를 떡밥이랍시고 물어왔다면, 시나리오 전개를 헝크러뜨리지 않기 위한 방법은 한가지. 그냥 그 떡밥이 진짜인듯 냅둬라. 내가 가지고 있었던 떡밥은 그 떡밥과 관련된 내용이 끝날 때까지 던지지 말아라. '원래 그게 아니었어!' 랍시고 들고 있던 떡밥마저 던져버리면 파티원들은 양쪽의 떡밥 사이에서 헤매고 고민하다 시간이 다 가게 된다. (물론 진행은 전혀 되지 않고)
만약 사이드킥이 자신의 취향에 따른 떡밥을 물어왔다면, 그 내용은 본플에서 처리하지 말고 세션으로 미뤄버려라. 그렇게 해야만 시나리오가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뛰어다니지 않고 외길로 달려갈 수 있게 된다.


이상의 해결방법으로 4~5번의 문제까지 해결하고 나면, 시나리오의 진행 속도는 상당히 높아져 있을 것이다. (사실상 4번은 해결이 거의 불가능한 거지만)

이 글이 OR 마스터링 경험이 적은 OR 한정 초보 마스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T양의 건투를 빈다. 


Special Thanks to Hawkwind
In the memorial of Gary Gyg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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