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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8금>Magician loved Witch - 1

2004.09.01 20:52

느와르 조회 수:1856

Magician loved Witch


  레종과 키스하면 언제나 담배연기의 맛이 난다. 그녀와 키스하고  있으면 그것이 단지 입
술만 맞닿는 가벼운 키스 건, 혀를 타고 넘는  농밀한 키스 건. 그 부드러운 입술과 달콤한
혀에서는 늘 담배연기의 맛이 난다.
  끊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물으면 이게 없으면 사는 이유 49%가 줄어, 라고 대답한다. 나
머지 50%는 자기 때문이고, 라고  웃으며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녀가 담배를 끊으면,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의 나머지 1%가 그 자리를 잠식시켜버릴 것
을 알고 있기에.


  1. 나는 언제나 51%를 기다린다.


  "리즌. 리즌은 내 어디가 좋아?"

  여느 때처럼, 섹스를 끝내고 난  후 침대에 길게 누운 레종은  나에게 그런 걸 물어왔다.
저건 그녀의 버릇이나 마찬가지다. 처음 만났을 때, 처음으로 몸을 섞었을 때, 그녀는 그 말
을 너무나도 여상스럽게 물어왔다.
  마치, 나는 그것에 대답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가슴."

  "그거 말고는?"

  "레종이 맘에 안 들어하는 부분까지 전부."

  침대 맡을 뒤지는 레종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렇게 대답한다. 가슴에 와 닿는 그녀의 훌
륭한 가슴의 감촉. 그녀는 입술  끝을 조금 들어올려 미소를 짓고는  찾던 물건을 집어들었
다. 구겨짐도 없이 깨끗한 담배 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익숙한 모양의 지포라이터
로 불을 붙였다. 나는 그대로 담배를 피우는 그녀의 어깨에 핥듯이 키스했다.

  "간지러워."

  쿡쿡, 웃으며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 레종의  가느다란 손가락.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느
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이  맞닿은 부분과 마찰해 스치는 듯한  소리를
낸다.
  그 훌륭한 가슴의 사이에 찍혀 있는 붉은 각인. 꼬리를  붙인 채 방사형으로 퍼져있는 세
개의 숫자를 아가리 안에 담고 있는 붉은 늑대 얼굴모양의 정교한 각인.

  "리즌."

  "왜?"

  그녀는 말을 잇지 않았다. 나에게 안긴 채로 담배연기를 빨아들이고, 그리고 조용히 연기
를 내뿜는다. 나는 조용히 레종을 품에 안고, 그녀가 뿜어낸 담배연기를  들이마시며, 왜 그
녀가 나의 이름(Reason)을 불렀을까 하는, 이유(Reason)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레종과 만난 건 1년 전 이었다.  아직은 반쪽 짜리 풋내기였던 나는 직장  선배의 꾀임에
빠져 멋도 모르고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왠지 으리으리한 클럽까
지 끌려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클럽의 단골이었던 듯한 선배는  붉은 머리칼의 멋드러진 아
가씨를 옆구리에 끼고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결국 혼자 남은 내가 비어버린 술잔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왜 지금 여기 있는 걸까  따
위의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멍하니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내 곁에 와 앉았다.

  "혼자야? 한가하네? 불 있어?"

  한번에 세 가지 질문. 그걸 한꺼번에 예, 라고 대답해 버릴 수 있던 게 어찌 보면 신기했
다. 어슴프레하고 몽환적인 불빛아래에서 마치 깊은 바다처럼 푸른 머리칼의 그녀에게 불을
붙여줄 때까지도 나는 알코올이 꼬여서 데리고  가버린 정신이란 녀석을 찾아 헤매고  있었
다. 그녀는 내가 켠 지포라이터의 불에 담배 불을 붙여 연기를 마시고는,

  "이상하네? 담배도 안 피우면서 왜 이런걸 가지고 다닐까?"

  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멍한 채 질문을 이해 못하고 있자, 그녀는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
들여 그것을 나에게 내뿜었다. 마치 피처럼 붉은  그 연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나는 단번에
정신을 차렸다.
  
  "이건 마법……."

  놀란 얼굴로 그렇게 묻자, 그녀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면서 빙긋이 웃었다. 그 미소 또한
굉장히 아름다워서, 나는 순간 아까 들이마신 연기에 현혹의  효과라도 있는 건 아닐까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그녀는 테이블 가운데에 있는 재떨이를 끌어와  재를 털어 내고는 지나가
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왜? 고작해야 클럽의 아가씨주제에 마법을 쓰니까 이상해?"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녀는 내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걸치고 있던 옷의  
목깃을 슬쩍 들어 보였다. 흠칫 놀라 고개를 뒤로 빼자  그녀는 쿡하니 웃으며 아직도 생각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지포라이터를 뺏어 불을 당겼다.  그리고 어슴프레한 조명에 지포라이
터의 불빛. 게다가 필요 이상으로 집중되어 있던  눈으로, 나는 그녀의 가슴사이에 찍힌 각
인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눈살을 조금 찌푸려버렸다.
  붉은 각인. 모양까지는 확실히 알아낼 수 없었지만,  세 개의 숫자가 꼬리를 맞대고 방사
형으로 퍼져있는 그 각인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마녀……군요."

  "정답. 그러는 당신은 마법사지? 같이 온 그 남자도."

  기분 좋게 웃으며 짧게 말하고는 다시 담배연기를 빨아들인다. 가느다란 손가락을 휘감아
도는 연기. 바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 들어가는 담배.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녀의 입술과
손. 그 작은 동작들은 퇴폐적일 정도로 요염하고, 아름답고, 그녀에게 어울렸다.
  그 동작에 매료된 채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던 내가 겨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마주 고
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쪽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와. 마법사같이 어줍잖게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보
장된 사람들. 여기도 어줍잖은 고급 클럽이니까."

  "당신이 마녀라면, 이런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을텐데요."

  "왜? 마녀는 여자가 아니야?"

  도발적으로 다리를 꼬며 재미있다는 듯이 묻는다.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가는 시선을 겨
우 돌리며 솔직하게 내뱉었다.

  "악마의 창부를 품고자 하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맞아, 그래서 이 미모에도 불구하고 늘 파리 날리고 있어."

  조금은 무례한 내 대답에도 즐거운 듯이 까르르,  하고 웃으며 의자에 몸을 묻는다. 부드
럽게 흔들리는 푸른 머리칼은 말  그대로 물결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빙긋이 웃은 채
필터만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젊은 마법사 오빠."

  "리즌 골드카이트입니다."

  "나는 레종. 성은 악마가 가져갔어.  그럼 리즌, 당신도 악마의 창부는  여자로 보이지 않
아?"

  잠시 침묵이 떠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담배연기의 잔향이 테이블 위의 푸른 램프에 안개
가 되어 맴돈다. 나는 술병에 남은 술을 모두 따라 술잔을 채우고는 그녀 -  레종을 바라보
며 단숨에 비웠다.

  "무엇에게 안기든 당신은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술잔너머의 모습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냐."

  그렇게 말한 그녀는 갑작스러울 정도로 입을 맞춰 왔다. 담배연기의 향이 나는 혀가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술의 잔재를 씻어내려는 것처럼  입안을 관능적으로 헤집는다. 길고, 농염
한, 숨이 막혀 버릴 듯한 키스.

  "하아아……."

  입을 떼고 길게 한숨처럼 숨을 뱉은 레종은 갑작스러운 일에 어안이 벙벙한 나를 재밌다
는 듯이 바라보고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자, 똑바로 봐. 나의 어디가 맘에 들어?"

  겨우 숨을 돌리고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노출이 심한  검은색의 짧은 드레스가 그녀의
풍만한 몸을 감싸 그렇지 않아도 요염한 몸매를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보석 같은 보라색의
눈동자, 그리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

  "맘에 안 드는 부분을 대도 댈까요. 그쪽이 간단할 것 같습니다."
  
  "오우,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단 거……."

  그대로 그녀의 말을 끊으며 입술을 덮는다.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곧 눈을 감
고 목을 감아오는 레종. 나는 조용히 입술을 떼고 그녀에게 대답했다.

  "담배냄새 납니다."

  "신경 쓰여?"

  "전혀."

  내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그녀는 한번 더 나에게 키스해왔다.  짧고, 부드럽게. 그녀
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내가 그 손을 잡고 같이 몸을 일으키자
예의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상대해 줘. 리즌."

  그날, 나는 처음으로 여자를 안았다.


  "무슨 생각해?"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서로의 몸을 닦아주고 있자, 레종이 물어왔다. 아무래도 다른 생각
을 한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나 보군.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녀의 가녀린 허리에 묻은 물기
를 타올로 닦아내며 대답했다.

  "레종 생각."

  "역시."

  만족한 듯이 중얼거리며 내 젖은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트린다. 쓴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그녀의 긴 다리를 닦아 내리고 타올을 들어올렸다.  질의 바로 위. 음모조차 없는 그곳에도
가슴과 같은 악마의 낙인이 있다. 그것은 출산과 수유 모두 악마를 위한 것이라는 증표. 레
종이 낳은 모든 아기는 모두 그녀에게 낙인을 찍은…….

  "리즌."

  타올을 치우고 나를 껴안는 레종. 나는 그녀의 허리를 껴안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레종."

  "그래. 리즌. 착하지."

  내 머리를 부드럽게 팔로 감으며, 나직하게 속삭인다. 나는 그대로 그녀의 아랫배에 뺨을
붙인 채 입을 다물었다. 따듯하고, 차갑고, 촉촉하고, 까칠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몸과  맞닿
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한층 누그러졌다.
  그 정도로 험하게 타오를 격정은 나에겐 없지만,  그래도 이 낙인의 감촉을 손끝으로, 입
술로, 몸으로 느낄 때마다 생각한다. 그녀에게 이  낙인을 새긴 악마에게 평생의 증오를 모
두 부을 수 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은 미워하지 않을 거라고.


  "아기를 나을 수 없어?"

  레종이 클럽 일을 그만두고 내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무렵, 그녀는 침대 위에서 그런 말을 꺼냈다. 샤워를 먼저 마치고 나와 침대 위에서 담배를
피우던 레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배를 재떨이에 아무렇게 집어던졌다.
  
  "정확히 말하면, 낳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어."

  "부탁……인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조용히 내 허리를 감고 있는 타올을 풀어내
고 나를 침대위로 이끌었다. 언제나처럼 담배 연기 맛이 나는 키스를 끝내고, 그녀는 내 페
니스에 입을 맞추었다. 따듯하고 축축한  느낌이 자칭 남자의 상징이라는  살덩이를 휘감자
그녀가 했던 얘기는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렸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남자란 건 참 단순한 동물이군."

  "으음……하아, 그래서 여자들이 키워주는 거야."

  축축해진 살덩이에서 입을 떼고 장난스럽게 중얼거리는 레종. 나는 쓴웃음을 짓고는 그녀
의 풍만한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살결위로 손을  움직이다가 그녀의 각인위로 손
가락이 스치고 지나갔다. 터무니없는 마력을  구겨 넣은 각인에서 찌릿한  느낌이 손가락을
마비시킬 듯 타고 오른다.

  "아……."
  
  그 반향은 어느 정도 레종에게도 전해진 듯, 나는 짧은  탄성을 지르는 그녀를 조용히 침
대 위에 눕혔다. 푸른색의 머리칼이 하얀색의 시트 위에 어지럽게 흩어지고, 아름다운 그녀
의 우윳빛 나신이 눈을 부시게 하고 있다.

  "리즌, 키스해 줘."

  깊은 보라색의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하는 레종. 나는 순순히 고개를 숙여 그
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눈을 감고 내 입술을 받아들이던 레종은 내 입술이 떨어져나가
자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리즌, 키스해 줘. 아래쪽도."

  나는 눈을 감은 그녀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그녀의 배꼽에, 허벅지에, 그
리고……. 그 저주받을 각인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얼얼해질 정도의 짜릿함. 오히려 그것
에 덤벼들 듯, 나는 그곳을 혀로 핥으며 입술을 움직였다.
  악마라는 강대한 힘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한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는 그것이 전부니까.


  아침에 눈을 뜨자, 레종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자리
에서 일어나 옷을 몸에 걸쳤다.
  커피메이커를 데우고, 식빵을 토스터에 밀어 넣는다.  냉장고를 열어 계란을 꺼내서 써니
사이드 업으로 프라이를 시작한다. 계란 프라이의 이름들은 입안으로 밀어 넣을 음식치고는
상당히 멋들어진 이름들이라고 생각한다.
  양배추와 파프리카로 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할 즈음에, 레종이 침실에서 걸어나왔다. 언제
나처럼 수수한 스타일의 바지와 와이셔츠를 입은 그녀는 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대충 빗어
내리며 조그맣게 하품을 했다.

  "좋은 아침. 레종."

  "응. 사랑스러운 자기. 오늘도 프라이팬 위에 해가 떴어?"

  장난스럽게 인사를 받으며 다가온 레종은 식탁에 앉아 아침메뉴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
덕였다. 다 채우지 않은 와이셔츠의 틈으로 그녀의 큰 가슴이 도드라져 보인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음에도 모양이 망그러지지 않는  훌륭한 가슴. 타이트한 진바지와  와이셔츠에 의해
탄력적으로 조여진 허리와 긴 다리가 부드럽게 흔들린다.

  "나는 레종만큼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니까 참아."

  "하긴 오믈렛을 시켰더니 프라이팬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남자니까, 리즌은."

  꽤나 오래된 아픈 추억을  들춰내며 즐거운 듯이 웃는다.  나는 예이예이, 저는 오믈렛도
제대로 못 만드는 한심한 남자입니다. 라고 대충  맞장구 치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레
종은 커피대신 따라 놓은 우유를 마시며 즐거운 듯이 깔깔거린다.
  레종은 굉장히 요리를 잘한다. 아니, 굳이 요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가사전반은 그녀의
특기이다. 어머니가 전혀 하려들지를 않았으니까, 라고 레종은 말했다.  이야기를 들으면 그
녀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마녀인 것 같았다.
  집안에 무쇠 솥이 끓고 기괴한 재료들이 유리병에 담겨있는 집에서, 검은 챙 모자를 쓰고
기괴하게 웃으며 무쇠솥 안으로 말린 도마뱀이니 죽은 자의 손톱이니를 집어넣고 있는 어머
니의 옆에서 스튜의 간을 맞추고 있는 어린 레종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곤 한
다. 물론, 현대의 마녀들은 그렇게 기괴한 만큼 희극적인 존재가 아니지만.
  
  "마법이라……."

  마법이란 것은 아주 약간의 재능만  있다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마력은 대지에 충만해있
고, 그것을 다루는 기술은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면 누구나 익힐 수 있다. 그렇게 나처럼 하
나씩 차곡차곡 마법을 익혀온 사람들을 마법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마녀는 다르다. 그녀들은 보통 마법사가 수 십 년을 들여 배워나가는 마법들을 아
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 있다. 부조리할 정도로 강하고, 혐오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마법들
을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사용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의 대가를 수반하는 일.

  악마와의 성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때 쏟아져 나온 모든 악덕을 뭉쳐 만든 듯한 마계의 존재들 중, 인
간을 장난감으로서 농락하는 최악의 마(魔). 그런 악마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육체에 그들
의 낙인을 찍는 것으로서 마녀들은 그들의 힘을 자유롭게 빌려 쓸 수 있다.
  인간을 농락하는 이형의 존재들과 몸을 섞고, 그들의 힘을 빌려 사용한다. 사람들이 그런
그녀들에게 거부감과 혐오감을 지니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런 그녀들을 가장 증오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나 같은 마법사들이다.

  "리즌, 오늘 휴일이지?"

  "아, 그렇긴 한데 외근이 걸렸어. 먹고 나가봐야 해."

  "정말? 뭐야……. 오늘은 하루종일 침대에서 여왕님처럼 지내려고 했더니."

  실망한 듯이 중얼거리는 레종의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나는  그녀가 깨끗이 비운 접시를
들어 싱크대로 가져가며 말했다.

  "레종이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 있으면 나한텐 유혹이 너무 큰데."

  "그럼 더 유혹해주지. 리즌이 내 몸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게."

  윙크와 함께 키스를 날리는 레종.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고, 나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조용
하게 손위로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가 겹쳐온다.

  "난 그래도 좋아."

  "나도 물론 좋지. 내일은 공휴일이니까 그렇게 할까?"

  가볍게 지나가는 말처럼 물으며 접시를 꺼내 식기 세척기에  넣었다. 어째선지 대답이 돌
아오지 않아 고개를 돌려보니 뭔가 부조리한, 그런 맘에 안 드는 침묵이 거기 있었다. 레종
은 입에 문 담배에 불도 붙이지 않고 바닥을 바라보며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다가, 조용히
한마디를 뱉었다.

  "내일은. 발푸르기스의 밤이야."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향한다. 휴일이지만  다른 차들과는 진행방향이 다른  탓에 그렇게
심각하게 정체를 겪지는 않는다. 2시간 정도 차를 달려 교외로 빠져든 나는 미리 약속해 두
었던 저택 앞에 차를 세웠다.

  "어서 오십시오. 골드카이트 마법사님."

  "안녕하십니까."
  
  맞으러 나온 늙수그레한 집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응접실로 안내를 받았다. 거장의 그림과
상당한 골동품으로 보이는 물건들로 휘황찬란한 응접실. 이 정도의 부호가 마법사에게 부탁
할만한 일이라면 꽤나 제한적이다. 재산을 위한 것. 혹은 가족을 위한  것.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건강에 관한 것. 어차피 나 정도 수준의 마법사에게  부탁할 만한 거라면 그리 복잡
한 건 아니겠지. 소파에 몸을 묻고 복잡할 정도로 호화로운 샹들리에를 멍하니 바라보며 레
종의 일을 떠올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같은 마녀들 중에서도 별 볼일 없는 마녀였다. 어차피 대 악마중 하나인
클라우드 나인이 패퇴당한 후로 붉은 뱀의 마녀 같은 초월적인 마녀들은 자취를 많이 감춘
상태였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 중에서도 저급이라고 불릴 정도로 허약한 마녀였다.
  악마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아무 남자나 받아들여 출산하는 아이들을 모두 악마에
게 바쳤고, 사람들의 멸시와 모욕을 견디기 위해  몸은 술과 담배로 찌들었다. 몸이고 마음
이고 엉망진창인 상태에서 일곱 번째 아이를 낳은  그녀는 끝내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태어난 여자아이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바다와도 같은 푸른 머리칼과 굉장히 드문 보라색
의 눈동자. 시간이 흐를수록  소녀의 미모는 빛을 더해갔고,  마을의 남자들은 모두 그녀에
대한 상사병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어떤  비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나날
이 아름다워지는 자신의 딸을 경외감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차피 마녀의 딸. 무슨 일을 배우고, 무슨 꿈을  꾸더라도, 결국은 악마를
받아들여야하는 소녀.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이 키워낸 아름다운 딸을 악마에게 바치
고 싶지는 않아 결국 그녀를 아무도 몰래  도망시켰다. 그렇지만, 바다를 마시고 태양을 가
리는 악마들에게 그것은 소용없는 짓.
  그녀가 태어나고 13번째의 생일인 발푸르기스의 밤. 끝내,  그녀는 악마의 비약에 자아를
잃은 어머니에게 잡혀 브로켄산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상에 존재하는 모
든 죄악의 향연, 그 환락의 바빌론에서 그녀는 셀 수조차 없는 악마들에게 윤간 당했다. 아
직은 연약한 자아가 파괴되어 부서져버리기  직전, 그녀에게 낙인을 찍은  것은 동부최강의
대 악마라고 불리던…….

  "골드카이트 마법사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늙수그레한 집사와 이  저택의 주인인 것 같
은 말끔한 옷차림의 중년사내가, 눈앞에 서있었다.

  "안색이 편치 않으신데……어딘가 불편하십니까?"

  걱정스러운 듯한 사내의 목소리에, 나는  눈앞의 사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호흡을
고르고 소파의 팔걸이를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손톱이 가죽을 파고들 지경으로 쥐고 있던
탓인지 손마디가 뻐근하다. 길게 숨을 두어 번 더 내쉬고 나서야 겨우 웃는 얼굴을 만들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젓는다.

  "아니, 아닙니다. 그보다 제가 할 일은?"

  "별건 아니고 금고에 걸린 매직락을 좀 수리해주십사하고……. 아, 일단 가면서  얘기하도
록 하죠."

  악수를 나누고는 기품 있는 동작으로  돌아 걷기 시작하는 사내. 나는  그의 뒤를 따르며
레종이 잠자리에서 마다 들려주었던 괴로운 천일야화의 마지막 한마디를 떠올렸다.

  "리즌, 내 몸에서 담배연기를 제외하면 남은 건 뭐가 있을 것 같아?"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그녀의 삶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반이 되어버린 지
금도, 그녀의 몸을 반이나 채우고 있던 것이  단 1%만 남았어도, 나는 아직 그것이 무엇인
지 알 수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레종이 나와 담배 때문에 살아간다는, 단지 그런 어린애 같은
소유욕을 채우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당연히 레종의 금연이겠지. 일단은 담배 맛 나는 키스도 나쁘지는 않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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