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단편 [18금][단편] 전장의 늑대

2004.05.20 22:43

느와르 조회 수:2119

...음. 맘에 안드는 단편이 하나 나왔습니다만...
나중에 리뉴얼을 올리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올리겠습니다.
18금이 소프트 한터라 재미는 없습니다.  

....캐릭터는 다 내 취향인데 어째서 맘에 안들까....




  전쟁이 끊이지 않기에 용병 또한 사라지지 않는다.
  포연이 식은 곳에 머물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삶.
  저열하고, 지저분하고, 난폭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삶.

    

  
  “빌어먹을!”

  손가락 마디 하나까지 완전히 침묵. 페어는 미동도 않는 암 디바이스(腕部統制)에서 손을 떼고
고글과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좁아터진 콕핏(操縱部)의 해치를 걷어차듯 열어버린 그는 바깥
으로 몸을 내밀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녹색의 초원. 그런 초원 한가운데 전신에 연기를 뿜으며 서있는 페어
의 슬레이브(裝甲機動兵)은 마치 망망대해의 등대처럼 보였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등대이긴
했지만. 페어는 그대로 손을 뻗어 정비용 사다리를 잡고 슬레이브의 어깨로 기어올랐다. 매캐
한 연기가 관절부마다 뿜어져 나오는 꼴을 보아하니 이미 자기 혼자서 어쩔 수  있는 수준인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그는 혀를 차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페어가 속한 서(西)제국 중전기사단 제 17 십인대의 다른 기체들은 대파, 혹은 반파된 상
태였지만 기사(Slave Master)들은 모두 사망한 듯 일체의 움직임은 없다……. 페어는 담뱃
부리를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염병. 이래서 보수를 홀수로 받으면 죽을 쑨다니까. 애초에 판금화 5개로 평원족 게릴라
를 맡기다니, 염병할 제국 짠돌이 새끼들.”

  욕을 연거푸 내뱉으며 성냥을 꺼낸 페어는 기세 좋게 불을 당겼지만,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은 실패했다. 슬레이브의 숄더조인트((腕部貫節)가 거창한 소리를 내며 벌어지고 물총처럼  
뿜어져 나온 냉각수가 페어의 좌반신을 직격했다. 가히 살인적인 기세였기에 안 그래도 불
안정한 자세였던 페어의 몸은 그대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컥……!”

  슬레이브의 어깨부터 지면까지 5미터의 중력이 단박에 전신을 짓누른다. 턱하고 숨이 막
히며 심장이 멈추어 버리는 것 같은 끔찍한 감각. 페어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에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심장아! 내가 널 죽일 수는 있어도 네놈이 날 죽이는 건 하극상이
다! 당장 다시 뛰어! 자신의 장기에 욕을 뱉어대는 탓에 어이가 없던 탓인지 퉁하고 심장이
다시 튕긴다. 페어는 있는 힘껏 숨을 내뱉으며 그 자리에 뻗어버렸다.

  “하악. 하악. 하아아……젠장!”

  페어는 그 상태로 드러누운 채 정신건강상 안 좋은 욕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보수는 쥐꼬리에, 전투는 진데다가, 슬레이브는 움직이지도 않는다. 살아 돌아가도 개털이
요, 살아 돌아갈 확률은 짜증나게 적다. 페어는 험하게 머리를 긁다가 무언가를 느끼고 자
리에서 튕기듯이 일어났다. 쿠우웅, 하는 낮은 땅울림이 귓가에 들려온다.

  “쳇. 평원족 놈들인가.”

  페어는 거의 구르듯이 슬레이브의 다리로 달려가 종아리 부근의 장갑을 거칠게 열어젖혔
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처박혀있는 구식 마탄 발사기. 보통 [Spear(單發式魔彈銃)]라고 부
르는 물건을 집어 들고 잔탄을 확인한 페어는 슬레이브의 다리 사이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총구를 들어올렸다. 평원족의 슬레이브는 낡은 프레임을 사용하는 조악한 조립품이라 콕핏
이 개방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 코어(核)를 몸 밖으로 매달아놓은 슬레이브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땅울림으로 보아서는 적은 한 기. 콕핏의 기사를 제대로 맞춘다면 단발 장탄식
인 스피어로도 쓰러트릴 수 있다. 페어는 눈을 감고 짧은 시간동안 가상의 적을 수도 없이
정조준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쿠우웅.
  둔중한 진동, 페어는 반사적으로 눈을 떴고, 숨을 들이마시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겨냥
은 빗나가지 않았다. 붉은 섬광을 뿌리며 날아간 마탄은 눈앞에 나타난 슬레이브의 콕핏을
정확히 강타하고
  ……튕겨나갔다.

  “…….”

  의외에 사태에 놀란 페어는 갑자기 나타난 검은 색의 슬레이브를 그냥 멍하니 바라볼 뿐
이었다. 경장갑(Half Plate)에 기동형(Knight Form). 양쪽 어깨에는 흰색의 표범모양 엠블
렘을 새긴 날렵한 슬레이브였다. 여기저기 제멋대로 커스텀(變形改造) 되어있는 전형적인
용병형 기체. 페어는 총을 내던지고 검은 슬레이브 앞으로 나섰다.

  “나는 제국 중전기사단 제 17십인대 소속 용병기사! 이름은 페어!”

  끼익하고 해치가 열린다. 검은 슬레이브에서 고개를 내민 기사는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
스크를 머리위로 들어 올리며 페어에게 말했다.

  “전장의 늑대, 불사의 기사. R. E. E. 페어 맞지?”

  낭랑한 여자목소리. 설마 여자 기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페어는 조금 움찔했고, 흑발
의 여기사는 날랜 몸놀림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긴 흑발에 검은 눈동자. 왕국적인
생김새의 미인. 뺨에 길게 자리 잡은 흉터가 안타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페어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야. 생각했던 것 보다 미남이네? 어떤 전장에서도 살아남는 불사의 남자라기에 좀 더
험악하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몇 살? 스물 대여섯?”

  “……스물넷 이다. 그보다 그쪽 본대는?”

  필요이상으로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페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여자가 정찰이라면 분
명 멀지 않은 곳에 본대가 있을 텐데. 여기사는 그런 페어의 행동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
보다가 말했다.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대장이야.”

  “뭐? 그럼 그쪽 부대도 전멸인가?”

  “음……. 아직까지는 사상자 Zero.”

  손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그려 보이며 즐거운 듯이 중얼거린다. 그녀의 말을 잠시 이해하
지 못한 채 주위를 둘러보던 페어는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단독돌입! 여자혼자서?”

  따악, 하고 경쾌하게 페어의 이마를 튕기는 여기사. 갑자기 당한 당돌한 공격에 페어는
눈을 날카롭게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고, 여기사는 혀를 쯧쯧거리고 차며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거렸다.

  “시대가 어느 땐데 건방진 남존여비야? 당신, 제국계 혼혈이라고 들었는데 사고방식은 꽉
막힌 왕국 꼰대들 같네.”

  “아, 그러신가. 그럼 여성우월주의자 기사양반. 평원족 게릴라가 날뛰는 망각의 평원 한가
운데에 단독돌입이라니. 그쪽이 무슨 은빛화살이나 극속의 흑표범이라도 되시나?”

  페어의 비아냥거림에 여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페어는 이젠 두려운 표정으로 갈수록 황
당한 짓을 하는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고, 속으로 맘에 드는 표정이네, 하고 중얼거린 여
기사는 씩씩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내가 바로 극속의 흑표범이야. 이름은 문주렴. 스리사이즈는 비밀.”

  “……부대를 이끌면 속력이 느려지기에 늘 필마단기라는 무적의 여기사.”

  “오우. 그거 길어서 맘에 든다.”

  소녀처럼 크게 웃으며 손바닥을 마주치는 주렴의 모습에 페어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일단 인사는 해두지, 고맙다. 극속의 흑표범."

  저물어가는 저녁노을. 주렴의 슬레이브 손바닥 위에 앉아있던 페어는 꾸벅 고개를 숙여보
였다. 해치를 열고 팔짱을 낀 채 슬레이브를 몰던 주렴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름으로 불러도 돼. 그리고 난 어차피 당신을 도와주러 온 거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글쎄, 무슨 소리일까?”

  장난스럽게 윙크하는 주렴, 페어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나저나 당신 슬레이브 꽤 무겁네. 중량한도가 거의 한계야.”

  주렴의 슬레이브에 사슬로 연결된 채 질질 끌려오는 자신의 엉망진창 슬레이브를 슬쩍 바
라본 그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며 대답했다.

  “내껀 아무래도 타격형(Heavy-Armor form)이니까. 흉부장갑만 해도 그쪽 슬레이브의 3
배정도는 될 껄. 혹시 불 좀 있어?”

  주렴은 품을 뒤져 지포라이터를 던졌고 페어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담배에 불을 붙여 깊
게 빨아들인 후 길게 연기를 내뱉었다. 매캐한 연기를 음미하듯 눈을 감고 있다가 가늘게
눈을 뜨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손에 들고 있는 지포라이터가 상당한 고급품이란
것을 눈치 챘다. 금장몸체에 정교하게 조각된 것은 울부짖는 호랑이의 문장. 연료도 영구동
력석인지 상당히 묵직했다.
  별로 물욕이 없는 자신이 봐도 꽤 탐날만한 물건인 라이터를 한동안 바라보던 페어는 휘
파람을 불며 슬레이브의 레그 디바이스(足部統制)를 능숙하게 밟고 있는 주렴에게 라이터를
던졌다.

  “그 라이터. 여자가 쓸 만 한건 아닌데……?”

  “응? 아아……이거 남편유품이야.”

  받아든 라이터를 자켓 주머니에 넣으며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리는 주렴.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던 페어는 말의 내용을 깨닫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렴의 얼
굴을 바라보았고, 페어의 동작들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던 주렴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왜?”

  “아무리 봐도 나와 연배……아니, 그 아래로 보이는데.”

  “젊다고 말해주니 고맙지만. 난 당신보다 세 살 많아. 안 믿겨?”
  
  넋이 나간 채 고개를 끄덕이는 페어의 표정에 즐겁게 웃는 주렴. 어느새 노을도 사라지고
어스름이 깔려가는 광막한 초원. 비죽이 이마를 내민 붉은 달 때문인지 더위는 가실 줄은
모르고 슬레이브에 짓눌리는 풀의 냄새가 열기를 타고 올라와 페어의 코를 간지럽혔다. 담
배연기로도 지우기 힘든 고약한 냄새. 페어는 진절머리를 내며 이마의 땀을 훔쳤고, 주렴도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허리에 묶었다.
  슬레이브는 조종이라기보다는 통제하는 병기이기 때문에 기사의 체력적 역량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장기간의 사용은 힘들다. 콕핏의 마법적 장치로 어느 정도의 시원함은 유지된다고
하지만 자신의 슬레이브보다 3배나 무거운 짐덩어리를 매달고 폭염의 초원을 걸은 탓에 주
렴의 전신은 땀에 젖어있었다.

  “맥주랑 목욕탕이 있으면 좋을텐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힘주어 레그 디바이스를 밟는 주렴. 하지만 페달식의 레그 디바
이스는 안전장치라도 걸린 것 마냥 움직이지 않았다. 둔중한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멈추어
버리는 검은색의 슬레이브. 관성의 법칙 때문에 하마터면 또다시 슬레이브에서 추락할뻔한
페어는 기겁을 하며 몸을 뒤로 뺐다.

  “어이! 멈출 거면 애기를 하고……”

  “미안. 하지만 내가 멈춘 게 아냐. 코어가 오버히트(動力限界超過)해서 세이프티(安全裝
置)가 걸렸어.”

   하나도 남김없이 붉은색의 락이 걸린 콕핏의 패널을 손으로 건드리던 주렴은 한숨을 내
쉬며 몸을 기댔다.

  “미안, 늑대씨. 오늘은 여기서 노숙이야.”

  “아아. 어차피 침대는 기대도 안했어.”    



    
  “배고프다.”

  슬레이브가 만든 그늘 아래에 길게 늘어진 채 중얼거리는 주렴. 그녀의 곁에 앉아있던 페
어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팔자도 좋군. 이 와중에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우수한 병사는 포만감이 키운다. 라고 철혈기사가 그랬었잖아.”

  “포만감이 아니라 충만감이겠지. 그리고 그건 린넬 아시모프의 말이 아니라 유라프 카스
트란의 말이야.”

  아무려면 어때, 하며 손을 내젓는 주렴. 페어는 상관하기도 싫다는 투로 고개를 들었다.
한계까지 오버히트해서 세이프티가 걸려버린 주렴의 슬레이브는 내일 아침이면 움직일 수
있겠지만, 자신의 것은 완전히 코어를 갈아치워 버리기 전엔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평원족
들이 득시글거리는 망각의 평원 한가운데에서 완전 무방비 상태로 노숙을 해야 하다니. 페
어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품을 뒤졌다.
  몇 개비 남은 싸구려담배에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 좀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페어는 만
족스럽게 웃으며 담배를 빼물었다. 그리고 그 초라한 위안조차 완전히 사라졌다. 냉각수에
젖어 버린 성냥을 바지 주머니에서 찾아낸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성냥을 밤하늘로 집어던졌
다. 하지만 흡연의 욕구는 집어던질 수 없었기에 페어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이. 나 불 좀…….”

  주렴은 몸을 조금 옆으로 튼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 벌린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고
른 숨소리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가슴.

  “아까까지는 배고프다고 난리를 치더니……속도 편한 여자로군.”

  페어는 기가 차다는 투로 투덜거리며 담배를 다시 담배 갑 안에 집어넣었다. 밤은 깊어도
두 개나 떠 있는 달 때문에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성냥을 잘 말려볼까, 하고 생각하던 페
어는 달빛에 물든 풀밭을 뒤질 생각에 고개를 내저었다.

  “우응…….”

  문득 허벅지에 무언가 닿는 감촉에 페어는 고개를 돌렸다. 자면서 뒤척인 탓에 주렴의 손
이 자신의 허벅지위에 올라와 있었다. 투덜거리며 그녀의 손을 치우는 페어. 문득 그의 시
선이 자고 있는 주렴의 얼굴에 닿았다.
  바닥에 흩어진 흑발 사이로 떠오른 얼굴은 달빛에 물들어 필요이상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뺨에 자리 잡은 긴 흉터까지 매력적일 정도로. 상반신을 벗어버린 탓에 부드럽게 뻗은 목덜
미 아래는 붉은색의 탱크탑뿐이었다. 날렵한 곡선이 튼튼한 어깨고, 부드러운 허리고, 풍만
한 가슴이고 할 것 없이 뻗어있었다. 몸에 있는 자잘한 상처들은 불쌍하기는 해도 혐오스럽
지는 않았다.

  “음, 흐흠…….”

  주렴의 몸을 보고 보듬어주고 싶다와 품고 싶다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낀 페어는 헛
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젠장. 옆에다가 남자를 두고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을 자는 여
자한테 어떤 병신들이 극속의 흑표범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거야? 이유 없는 분노로 불특정
다수의 누군가들을 욕하며 애써 그녀를 외면하던 페어의 고개가 천천히 제자리에 돌아왔다.
거의 속옷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짧은 탱크탑 때문에 주렴의 가슴은 아슬아슬할 지경까지 드
러나 있었다. 페어는 마른 침을 삼키고 조용히 손을 뻗었다.

  “…으응…….”

  숨소리에 잠깐 멈추었던 페어의 손은 그녀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다시 조심스
럽게 그녀의 가슴을 주물렀다. 부드러운 감촉에 환상적일 정도로 적당한 탄력. 페어는 자기
가 마지막으로 여자를 품은 게 언제인지를 따져보다가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보다는 눈앞의 부드러운 감촉이 더 좋았으니까. 페어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려
그녀의 다리사이로 손을 가져갔다.

  “순서가 틀렸잖아. 이 색마.”

  “우, 우왓!”
  
  꼴사나운 소리를 내며 손을 뗀 페어는 자신을 바라보며 키득거리는 주렴과 눈이 마주쳤
다. 주렴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고는 페어의 까칠한 뺨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혀가 입
술을 타고 넘는 농염하고 긴 키스를 마친 그녀는 조용히 입을 떼며 미소를 지었다.

  “이게 먼저야.”

  “자, 자고 있던 게…….”

  “뭐야. 자는 여자가 아니면 덮칠 생각도 못하는 거야?”

  키득거리며 탱크탑을 벗어버리는 주렴. 눈앞에 드러난 모양 좋은 가슴에 페어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고, 주렴은 도발적으로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말했다.

  “자, 덤벼봐. 전장의 늑대씨. 흑표범의 맛을 보여주지.”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그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기세 좋게 외치고는 주렴에게 달려들었다. 양손으로 몸을
버틴 채 키득거리는 주렴의 귓불에 입을 맞추는 페어. 주렴은 손을 뻗어 그의 웃옷을 솜씨
좋게 벗겨냈다.

  “와우. 멋진 가슴.”
  
  단단한 페어의 가슴을 더듬으며 휘파람을 부는 주렴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던 페어는 그녀
의 몸을 일으켜 자신의 무릎위에 앉혔다. 크게 출렁이는 가슴에 입을 맞추고는 손을 들어
그것을 주무르며 페어가 말했다.

  “그래도 여자 것만은 못하지.”

  “오호. 가슴을 좋아하는 거야?”

  상반신을 내밀어 가슴의 계곡에 페어의 얼굴을 묻어버리는 주렴. 페어는 피식 웃고는 그
대로 그녀의 가슴을 탐했다. 주무르고 입 맞추고. 눌렀다가 빨아들이고. 쓰다듬었다가 핥아
보고. 잡아당겼다가 살짝 깨문다. 오른손과 입으로 그녀의 가슴을 마음껏 맛보며, 페어의 왼
손이 그녀의 허리선을 따라 움직였다. 페어의 귓불을 깨물고 그의 가슴을 더듬던 주렴은 페
어의 손이 바지사이로 파고들자 몸을 떼고, 그를 밀어냈다.

  “너무 성급하네. 늑대군.”

  “너무 뜸들이네. 표범양.”

  주렴은 장난스럽게 투덜거리는 페어의 모습에 낄낄거리고는 조용히 바지를 끌어내렸다.
다리가 길어서인지, 몸이 달아올라서인지 그 동작에조차 조바심을 내던 페어는 그녀가 바지
를 바닥에 떨어트리자마자 몸을 끌어당겼다.
  단단한 종아리와 튼튼한 복사뼈를 쓰다듬으며 허벅지에 입을 맞추는 페어. 주렴은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속옷의 끈을 풀어냈다. 허벅지를 핥던 혀가 그녀의 다리사이로 닿고, 그
감각에 주렴은 몸을 조금 움찔했다. 무릎을 꿇은 자세로 상반신을 세워 그녀의 다리를 껴안
은 페어는 그녀의 다리사이를 핥는 데만 신경을 쏟았다.

  “아……으응…….”

  숨을 뱉으며 페어의 머리칼을 더듬는 주렴. 균열을 핥고 그 안으로 혀를 집어넣은 페어는
타액과 섞인 그녀의 액체를 빨아들여 삼켰다. 가벼운 흥분에 길게 숨을 내쉰 주렴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맛이 어때?”

  “뭐라고 대답하면 예뻐해 줄래?”

  페어는 그녀의 비부에 짧게 입을 맞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의 흘러내린 앞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무릎을 꿇어 입을 맞추었다. 가슴을 핥고 손을 바지 속으로 집어넣는 주렴. 페
어는 부드러운 감촉이 자신의 분신에 닿는 감촉에 몸을 떨었다. 다시 길게 입을 맞추고, 주
렴의 몸을 껴안은 페어는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어이. 이제 해도 될까?”

  “전장의 늑대는 싸울 때도 물어보고 때려?”

  주렴은 피식 웃으며 그의 바지지퍼를 내렸다. 기세 좋게 튀어나오는 발기한 물건의 첨단
을 슬쩍 누르는 주렴의 가느다란 손가락. 쓰게 웃은 페어는 그녀의 몸을 들어 올렸고 주렴
은 그의 가슴을 짚은 채 천천히 엉덩이를 내렸다.

  “웃…….”

  “하앙…….”

  페어는 민감해진 부분을 감싸는 따듯하고 둔중한 느낌 때문에, 주렴은 자신의 몸을 파고
들어오는 단단한 느낌에 신음을 내뱉었다. 페어는 팔에 힘을 주어 상반신을 일으켰고, 주렴
은 그런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입술을 겹쳤다. 서로의 혀를 맹렬히 빨아들이는 깊은 키스.
페어는 그 자세로 다시 몸을 뒤로 눕히고 손을 뻗어 주렴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앗, 흐응…….”

  페어는 주렴의 뜨거운 숨이 목덜미에 닿는 바람에 진저리를 치며 들어 올렸던 주렴의 엉
덩이를 내렸다. 따듯한 느낌과 차가운 느낌이 번갈아가며 그의 분신을 침범한다. 단지 한
번의 상하운동만으로도 꽤나 맹렬한 사정감이 느껴지는 탓에 페어는 속으로 혀를 찼다.

  “큭, 젠장, 이제……우웃, 기억났다.”

  “하아……뭐, 뭘? 으응…….”

  “탄식의 언덕 전……후우, 전투 끝나고 나서부터는…검은 대지의 전장만 돌아다녔으니까,
젠. 장. 여자를 안는 게 딱 1년 반 만이로군, 크읏……!”

  “아, 아읏. 요, 욕구불……만?”

  미소를 지으며 가쁜 숨을 내쉬는 주렴. 자신의 허리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요염한 여인의
육체. 페어는 쿡, 하고 웃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주물렀다. 땀으로 젖은 부드러운 피
부가 달빛을 반사해 요염하게 빛난다. 주렴은 자신의 가슴을 더듬는 페어의 손을 붙잡아 그
의 머리위로 내리 눌렀다. 슬레이브를 감당하는 기사들의 악력으로 맞잡은 손이 아플 정도
로 조여든다. 팽팽하게 조여진 주렴의 근육은 매끄럽고 더할 나위 없이 탄력적. 페어의 두
꺼운 손가락은 그 몸을 천천히 더듬어 올라가 민감한 부분을 찾아냈다.

  “앗. 하……아응. 앗. 으응. 하으읏….”

  흑표범 같은 주렴의 몸이 요동칠 때마다 긴 흑발에 맺힌 땀방울이 아롱져 떨어진다. 페어
는 한손에 힘을 주어 상반신을 일으켰다. 눈앞에 있는 여인의 몸을 껴안은 그는 호흡곤란을
일으킬 정도로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부비다가 얼굴을 뗐다. 양손을 뻗어 페어의 등을
감싸고 어깨에 턱을 기댄 체 신음을 삼키는 주렴. 하나로 얽힌 몸이 상대방과 보조를 맞추
어가기 시작했다.
  스치는 바람에 초원의 풀이 부딪쳐 교성을 흘리고, 달빛에 녹아들어간 열기가 가쁜 숨을
토한다. 얽혀든 몸이 갈구하는 것은 쾌락. 목적을 전도시키지 아니하고,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아니하는 쾌락의 몸짓. 페어는 그녀의 등을 힘껏 껴안은 채 허리를 쳐올리다시피 움직였다.

  “으, 우웃! 큭! 하아……웃!”

  “으, 으음! 흐으으, 흐읍! 으응!”

  섞여 들어가는 둘의 호흡이 겹친다. 민감해진 몸은 서로의 손이 닿는 곳마다 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탓에 이성의 고삐는 풀어진지 오래. 갈구하는 것은 육체와 정신 양쪽 다. 절정에
치달아가는 육체. 페어는 주렴의 몸이 조여드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그녀의 몸을 들어올렸
다.

  “하앗!”

  “큭!”

  몸의 일부와도 같이 밀착되어 있던 이물감이 빠져나가는 감촉에 신음을 내뱉는 주렴. 뜨
거운 액체가 그녀의 둔부를 때렸고 페어는 주렴을 안고 있는 팔로 절정에 오른 그녀의 몸을
느꼈다. 숨을 몰아쉬며 절정의 여운이 가라앉을 때까지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있던 둘은 조
용히 서로의 몸에서 멀어져 나왔다. 천천히 호흡을 가라앉히는 페어의 뺨에 키스한 주렴은
그냥 알몸으로 드러누워 버리며 말했다.

  “고마워. 페어.”

  “인사할 사람이 뒤바뀐 것 같은데.”

  주섬주섬 옷을 정리하고 습관적으로 담배를 빼 물던 페어는 불이 없음을 세 번째로 깨닫
고 이마를 찌푸렸다. 주머니를 뒤져 성냥대신 손수건을 꺼낸 그는 더러워진 주렴의 둔부를
닦아내기 시작했고, 주렴은 그를 흘끔 바라보았다가 말을 이었다.

  “당신, 3개월쯤 전에 공국 반란군이랑 같이 싸운 적 있었지?”

  “응, 괜찮은 일이었어. 기본도 짭짤했고, 왕국놈들 한 대씩 뽀갤때마다 금화 10개였거든.
엉덩이 좀 들어봐.”

  허리까지 튀어 오른 자신의 액체를 닦아내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페어. 주렴은 엉덩이를
든 자세로 손을 뻗어 자신의 바지를 끌어당겼다.

  “그 전투에서 여자아이 구한 적 있지?”

  “여자아이?”

  너저분해진 손수건을 대충 구겨 주머니에 쑤셔 넣은 페어는 턱을 긁으며 기억을 더듬었
다. 그러고 보니 무너져가는 집을 지키고 있던 붉은 머리 여자아이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
6살이나 되었을까. 쥐방울만한 꼬맹이가 한손엔 총을 들고 수류탄을 쌓아둔 채 집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웃기지도 않아서 더 이상 왕국군 목을 따는 것도 포기하고 그 집을 지켜준 적
이 있었다. 꼬맹이가 보수랍시고 준 유치한 디자인의 목걸이는 그의 부적 제 7 호 로서 자
켓 안주머니에 잘 갈무리되어 있었다.  

  “아아. 있어. 꽤 맘에 드는 꼬맹이였는데. 이름이 뭐라더라. 유희? 연희?”

  “주희야. 문주희.”

  “그런가. 왕국이름은 다 그게 그거 같아서……아니,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

  주렴은 대답대신 팔을 들어보였다. 길고 튼튼해 보이는 팔에는 좀 조악한 디자인의 목걸
이를 거의 묶여있다시피 매달려있었고, 그것은 페어의 부적 제 7 호와 완전히 똑같은 디자
인이었다.

  “뭐야? 그거 가게에서 파는 악세사리였나? 장인정신도 없는 가게로군.”

  “이건 세상에서 단 두 개뿐인 목걸이야. 내거랑 죽은 남편 거.”

  실없는 농담을 던졌던 페어는 머쓱한 기분으로 입을 다물었고, 주렴은 페어에게서 등을
돌린 채 천천히 바지에 다리를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손재주라고는 슬레이브 마력회로 잇는 것 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갑자기 이런 걸 만들
어 와서 결혼하자고 했어. 그러더니만 갑자기 죽어버리고.”

  갑작스러울 정도로 말을 끊어버리는 주렴 때문에 페어는 목이라도 졸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황급히 자켓을 뒤지기 시작했고 주렴은 뒤로 돌아 앉으며 밝게 웃었다. 그 눈가에 한
순간 무언가가 빛난 것은 달빛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말야. 내 딸한테 나머지 한 짝을 줬었어. 반쯤은 농담으로 아빠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주렴. 하고 말했더니 정말로 당신한테 줘 버린 거 있지? 귀엽다니까, 그 나이 때 애
들은.”

  페어의 동작은 자켓에서 목걸이를 꺼내던 상태로 멈추었다. 주렴은 무릎으로 걸어와 그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잡고는 딱딱하게 굳은 페어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딸을 구해줘서 고마워. 애도 딸린 여자의 몸이지만 나쁘지 않았지? 돈으로 답례하면 주
희의 목숨이 싸구려 같으니까.”

  “처음부터 그런 이유로…….”

  “응. 당신이 이쪽 전장을 돌아다닌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이리로 와서 무작정 뒤지다보니
발견한 거야. 헤헷. 나 생각보다 운이 좋을지도. 당신한테는 좀 수지 안 맞겠지만 목걸이는
되찾아갈게. 혹시 좀 모자라다고 생각하면 날 더 안아도 좋아.”

  주렴은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목걸이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반쯤 빠져나오던 목걸이는 페
어의 손가락에 걸린 듯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손을 뻗어 그의 손을 펴던 주렴은 갑자기
자신의 손을 움켜쥐는 페어의 행동에 고개를 들었다가 페어의 눈을 보고 놀라버렸다. 그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렴에게 외쳤다.

  “당신은 싸구려가 아냐! 아무 남자나 이렇게 멋대로 안아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막 굴려도
되는 몸이 아니라고! 아니, 그런 몸을 가진 여자는 아무도 없어! 여자의 몸은 남자 놈들 목
숨보다 수십 배는 비싸다고!”

  “페어, 지금 무슨 소리를…….”

  페어는 대답대신 주렴이 가져가던 목걸이를 다시 빼앗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렴 앞에서 페어는 단호한 동작으로 목걸이를 자신의 팔에 묶어버리기 시작했고, 주렴은
황급히 그의 손을 잡으며 외쳤다.

   “잠깐, 뭐하는 거야! 빨리 돌려줘!”
  
   “시끄러워! 주희가 줬으니 이건 내꺼다! 더불어 당신도 내꺼다!”

   거칠게 소리를 친 페어는 그대로 주렴의 몸을 끌어당겨 안아버렸고, 휘둥그래진 눈을 하
고 자신을 바라보는 주렴에게 외쳤다.

  “이 목걸이를 받은 책임도! 당신을 안은 책임도 지겠어! 결혼하자!”

  “헛소리 하지 마! 너 바보야? 난 용병에다가 애도 딸린 여자라고! 이거 놓고, 빨리 목걸이
나……페어!”

  가슴을 밀어내는 주렴의 몸을 더욱 꽉 끌어안은 페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있는 힘껏 외
쳤다.

  “그딴 건 관계없어! 나는 당신 모녀가 마음에 든다구!”

  우와, 염병할. 이렇게 얼굴이 빨개진 건 처음 여자랑 잤을 때 빼곤 없던 것 같은데. 쪽팔
림을 감추기 위해 밤하늘을 있는 힘껏 노려보는 페어의 귓가에 주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너를 맘에 안 든다고 말한다면.”

  “맘에 들 때까지 곁에 있겠어. 뿌리칠 생각 같은 건 관두는 게 좋을걸. 늑대는 한번 물은
사냥감은 나자빠질 때까지 놓지 않는다.”

  다짐이라도 하는 것처럼 페어는 그녀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어이가 없는 건지 화가
난건지 그냥 아무 말도 없이 그의 품에 안겨있던 주렴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페어의 턱
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느낌에 페어가 조금 안도한 것도 잠시, 주렴의 매서운 어퍼컷이
그의 턱을 강타했다.

  “컥!”

  턱을 넘어 골이 흔들릴 지경, 깨끗한 클린히트였다. 하지만 가해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
고 피해자는 기절하기 직전이라 아무도 감탄하지 않았다. 달이 4개로 보일 지경에 이른 페
어지만 팔에서 힘은 빼지 않았고, 주렴은 한숨을 내쉬었다.

  “멋대로 해봐. 멍청아. 내가 쉽게 넘어갈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고맙군.”

  페어는 빙긋이 웃었다. 달빛은 밝고, 품안에 있는 여자는 엄청나게 아름답다. 페어는 이번
일의 보수가 상당히 괜찮다라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