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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31

2008.12.22 18:04

azelight 조회 수:468

 4번 째 불침번이던 야예이는 다시 잠들 생각이 없었기에 마지막 불침번인 낸시를 깨우지 않았다. 에크로반과 함께 지내던 시절에도 새벽이 채 오기 전에 일어나 등불 아래서 책을 읽거나 조각을 하고는 했었다. 그 일들이 단 며칠도 지나지 않았는데 먼 옛 일로 여겨지는 것은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일까 그저 낯선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일까. 야예이는 그 때의 일들을 멀게 만 느끼는 자신을 왠지 웃기다고 생각하며 잠시 손 놓았던 취미를 재개했다.
 사각 사각하고 외날 나이프로 야예이는 시원스럽게 나무를 깎았다. 아직 딱히 뭘 만들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손놀림에는 거침이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뭔가를 조각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래왔다.
 야예이는 불이 꺼지지 않는지 신경을 쓰며 드워프제 소형난로에 고형 연료를 집어넣곤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어둔 하늘이었지만 새벽이 올 때쯤이 되자 태양이 뜨는 동편의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야예이는 그저 나무를 깎고 있는 것이 아닌 조각을 하고 있었다. 땅에 웅크린 곰의 모습이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평화로울 때라면 분명 지금처럼 이른 시간에 일어나 일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전혀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로딘의 말대로 정말 무슨 마법에라도 걸려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야예이는 생각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이 느껴질 정도였다.
 야예이는 세부 묘사를 시작하면서 지금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은 후 언데드가 된 것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키엘리니가 음적 원기를 한 번에 몰라내는 그 순간에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것이었다. 아니면 그들은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금제당하고 있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키엘리니가 마법을 무효화 시킨 것은 아니니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일이었다.
 야예이는 곰의 머리를 완성시켰을 때 낸시가 깨어났다.

 “어...”

 눈을 뜬 낸시는 멍청하게 하늘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 뺨을 세 번 쫙! 쫙! 쫙! 하고 치고는 정신을 차린 듯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내가 일찍 깬 거야? 아니면 네가 깨우지 않은 거야?”

 야예이는 거의 완성이 되어가는 조각을 깎으며 대답했다. 대충대충 칼을 놀리는 것 같지만 그러면서도 실수없이 정확하게 도려내야할 곳을 도려내고 있었다.

 “깨우지 않은 거야.”

 “그래? 뭐, 이득 봤으니 됐나. 그보다 뭐하고 있는 거야?”

 낸시는 스스로 납득하더니 침낭을 정돈하며 야예이에게 물었다. 야예이는 낸시에게 설명하지 않고 말없이 깎고 있던 조각을 들어 낸시에게 내밀었다. 낸시는 제법 정교한 목상을 보고는 재미있어 했다.

 “오. 의외의 면인데.”

 넨시는 히죽 웃더니 야예이의 손에서 목상을 강탈한 다음 이리저리 훑어보고 돌려주었다.

 “완성하며 나주지 않을래? 이걸로 뭔가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뭐에 써먹을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야예이는 일단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낸시는 만족한 듯 피식 웃더니 소매에서 커다란 책을 꺼냈다. 야예이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책을 보며 황당한 느낌이 들었지만 물어보았자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웠던 지라 묻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로딘, 탬퍼, 키엘리니가 차례차례로 깨어났다. 만드는 것이 귀찮았던 탓인지 아침은 간단하게 스튜와 꿀을 바른 호밀빵으로 때워졌다. 비스킷과 건육을 잘라 넣어 건더기로 삼은 스튜는 특별히 맛인지는 않았지만 나름 먹을 만했다. 식사를 마치곤 일행은 마을의 우물에서 물을 채우고 뒷정리를 했다.

 “습격은 없었군.”

 로딘은 두 자루의 소검을 등에 참으로서 무장을 마치고 말했다.

 “그렇군요. 어쩌면 저희가 마을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요?”

 “함정을 파고?

 키엘리니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허리춤에 주머니와 잡동사니를 잔뜩 단 낸시가 땅을 파는 흉내를 내며 말했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말하던 키엘리니는 그런 낸시의 행동에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낸시는 키엘리니를 향해 베시시 웃고는 마지막으로 단검 두 자루를 왼팔과 왼쪽 허리에 찼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후후. 그런 거 일일이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봤잖아요. 어제 다들 이런 저런 불길한 추측을 하면서도 다 그냥 넘어가는 모습요.”

 “쿡쿡” 웃는 낸시의 말에 키엘리니는 그랬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결국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지만 탬퍼, 로딘, 낸시는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는 듯 쉽게 잠들고 깊이 걱정하지도 않았다. 마치 불안 따위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랬었네요. 어째서 그런지 물어보는 것이 실례일까요?”

 “어째서냐면 역시 익숙하기 때문이죠. 어차피 앞일 이란 알 수 없는 거고 모든 위험을 예측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덤으로 세상에서 가장 목숨의 위협을 받기 쉬운 직업이 모험가잖아요. 그러니 그런 위험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하지 않는 거죠.”

 낸시의 말에 갑옷을 다 챙겨 입은 탬퍼가 반응해 왔다.

 “뭐냐. 그 말은 우리가 생각 없이 산다는 말이냐.”
 
 ‘따콩’하고 떨어지는 꿀밤에 낸시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는 항의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을 하려 했던 거네요. 말 좀 끝가지 듣지 항상 손부터 먼저 나오다니. 흥.”

 “넌 언제나 그 다리부터 올라가지 않느냐. 공평한 거야.”

 “흥, 그런 거라면 제가 훨씬 더 잘 안 다구요. 무엇보다 그 엄청난 근육이 방패가 되어줘서 제가 찬 건 별로 아프지도 안을 텐데요, 뭘.”

 낸시는 투덜거리고는 “뭐, 그렇단 이야기에요.”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꽤나 멋지게 말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는 느낌이 진하게 느껴져서 키엘리니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신전의 사제들과는 다른 유쾌함을 느끼며 키엘리니는 “충고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낸시에게 정중하게 말해 줬다.
 로딘과 야예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듯 상관없다는 듯이 각각 묵묵하게 준비했다. 야예이는 중무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였고 로딘 역시 비검을 뽑아 던지는 시늉을 해보이며 자신을 점검했다.
 
 “그럼 가보도록 하지요.”

 키엘리니가 준비를 마친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 뒤에 “오!”하고 낸시가 소리쳤다. 낸시가 큰소리를 친 덕분에 키엘리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낸시를 바라보았다. 탬퍼는 그런 낸시를 창피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봐줬고 로딘은 “큭큭.”하고 작게 웃었다. 하지만 낸시는 전혀 꿀리는 것이 없다는 듯이 “이렇게 기합을 넣어 줘야하는 거예요.”라고 단호하게 말함으로서 키엘리니가 “그렇군요.”하고 납득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탬퍼와 로딘은 낸시가 키엘리니에게 잘못된 지식을 주입하는 것을 “큭큭.”하고 작게 웃으며 지켜볼 뿐이었다.
 그 사이 야예이는 마차에 남기게 된 토른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있었다.

 “그럼 토른. 짐 잘 지켜라. 육포는 잘 나눠서 먹고.”

 야예이의 말에 토른은 짧게 짖음으로서 답변했다. 야예이는 토른의 턱을 긁어 주고는 이미 출발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일행의 뒤를 쫓았다
 일행은 천천히 나아가 마을 출구까지 도착했다. 그 사이 탬퍼와 낸시, 로딘은 지도를 보며 마법사가 거점을 삼기 유리한 지형이 없을까 하고 뒤져보았지만 특별히 ‘잊혀진 옛 성채’라던가 ‘고대의 유적’같은 곧잘 마법사들이 거점을 삼을만한 장소는 없었다.
 그랬기에 일행은 낸시와 키엘리니 각각의 마법적인 요소에 대한 탐지능력과 음적 존재에 대한 탐지능력에 의지하기로 했다. 탬퍼 역시 성직자이기는 했지만 성직자로서의 능력 자체는 키엘리니에 비하면 미천한 터라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낸시와 키엘리니 역시 이런 탐지 능력은 일천하여 둘다 겨우 방향만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머지 역할은 야예이에게 맡겨졌다. 야예이의 추적술과 관찰능력으로 적의 거점을 추적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에 야예이는 적잖이 위가 쓰려올 듯한 압박감을 느꼈지만 내색않고 선두에 서서 일행을 이끌었다. 엘리엔이 말한 에크로반이 일행 내에서 했던 역할이 바로 이런 거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부담감이 생겨도 그 못지않은 의무감도 같이 생겨났다.
 키엘리니는 안개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성표를 쥐고 짧게 기도문을 외웠다. 그러자 상당한 넓이의 반구가 생겨났고 그 반구는 안개를 밀어 내었다.

 “안개 자체가 음적 원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 같네요.”

 낸시는 안개를 밀어내는 반구를 보며 말했다. 키엘리니가 만든 이 반구는 음적인 존재가 다가올 경우 탐지하고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안개가 시야를 막기 때문에 그에 대비하기 위한 거였던 것이다. 그래서 음적 존재에 대한 방어력 자체가 약해진다 해도 넓게 반구를 펼친 것이었는데 안개 자체도 음차원적인 힘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듯이 밀려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당한 이유는 어쩌면 안개 자체의 힘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어쩌면 이 안개 자체가 거대한 음적 존재일지도 모르겠어요.”

 키엘리니는 성표를 쥐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 전체를 인질로 잡혔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이 존재가 마을에 집중된다면 방벽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탬퍼도 그 사실을 눈치 챈 듯 눈썹을 움찔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어제 낸시로부터 이 안개 자체가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낸시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안개 자체가 음적 원기를 가지고 있는 탓에 탐지 마법 자체가 교란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원한다면 얼마든지 소굴을 조작해낼 수도 있었다. 안개의 일부를 집중시킴으로서 음적 원기가 집중된 공간을 만들어내면 되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낸시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안개 자체는? 안개 자체는 태양에 노출되어 있는데 이 음적 존재는 태양에 노출되어도 된다는 말인가?
 낸시의 머리가 더욱 복잡해지려는 찰나에 야예이가 일행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야?”

 낸시가 팔을 들어보인 야예이에게 물었지만 야예이는 대답하지 않고 땅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더니 조용히 경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무슨 일인데 그래?”

 낸시가 다시 한번 묻자 야예이는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입가에 검지를 세워 보였다. 야예이는 조용히 몸을 낮춘 자세로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그렇게 있더니 그의 행동을 살피는 다른 일행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짐승들이 죽어서 언데드가 된 것 같습니다. 저 털은 신체가 썩기 시작한 덕에 떨어진 듯 악취가 나더군요. 그리고 주변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금 우리는 포위되었어요. 정확한 의미에서 목적성을 가지고 우릴 포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들 사이에 둘러 싸여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야예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행은 각자 무기를 꺼내 쥐었다.

 “당장 맞붙게 되는 건가?”

 탬퍼의 물음에 야예이는 일단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꽤 멀어요. 하지만 이쪽으로 모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예이의 말에 낸시가 “와~.”하고 소리를 냈다.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굉장하네.”

 “세상 어디든 이곳이 세계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야예이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일행에게 다시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건 어디에서든 지금 같은 재주가 가능하다는 거야?”

 재차 이어지는 질문에 야예이는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낸시는 여기서 “어떻게?”라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마 그것은 야예이로도 설명하기 곤란한 것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낸시에게 마법을 어떻게 사용하냐고 묻는 다면 그녀로서도 대답하기 무척 곤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마나를 다룬다는 차원을 넘어 감각이란 현재의 언어로서는 결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야예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라는 것이 낸시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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