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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25

2008.12.15 15:22

azelight 조회 수:557

한 몇 시간 고생하던 야예이는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 결국 낸시가 잠 재워 버리고 말았다. 구석에 어울리지 않게 웅크린 자세로 뻗은 야예이를 탬퍼와 냄시, 키엘리니가 힘겹게 구석에 구겨 놓았다.
 물론 키엘리니는 안 좋은 자세로 수면을 취한 후 각성 시 올 치명적인 고통에 대해서 경고하고 우려했으나 낸시와 탬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야예이 정도의 거구가 편한 자세로 쭉 뻗고 잘 경우 그들이 마차 안의 좁은 면적으로 인해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이런 처리야말로 그들에게 있어 상책이었다. 야예이의 인권을 빼놓고 생각하면 말이다.
 그리고 낸시는 야예이의 인권을 완벽히 무시하고는 지도를 꺼내들며 말했다.

 “지금 아마 여기쯤 와 있을 거다.”

 로딘이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곳을 짚었다. 방금 전 로딘은 탬퍼와 교대해서 마차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마을까지는 이제 곳이지. 저 친구도 마을에 도착하면 좀 나아지겠지.”

 로딘의 시선을 따라 남은 둘의 시선도 구석에 구겨져있는 야예이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멀미와는 달리 육체적 고통은 신의 은총으로 치유할 수 있으니 키엘리니는 가여운 눈초리로 보면서도 크게 걱정하진 않고 있었다. 곧 그들은 야예이에게서 눈을 돌려 다시 지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런 외딴 곳에 마을이 있다니 신기하군요.”

 키엘리니는 거의 산길로 접어든 풍경을 떠올리며 말했다. 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왕래가 없진 않은 지역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산속에 있는 마을에 올려는 자가 과연 있을지 키엘리니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쯤 낸시가 시키지도 않났는데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리슨은 희귀금속을 캐는 소규모 광산 도시에요. 애초부터 마을이 생긴 원인도 희귀금속을 채광하기 위해 파견 된 인력들을 보조하려다가 생겨나 거거든요. 이 광산의 실질적 소유자인 세나인 백작의 영지는 좀 떨어진 곳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외진 곳에... 굳이 마을이 형성될 정도라면 상당히 가치 있는 것인가 봐요.”

 “맞아요. 플래티넘이 생산되죠. 연 생산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다보니 이 마을 전체를 유지하는 것은 일도 아니죠. 아쉽게도 매우 입지가 안 좋아서 이 이상 발전을 못했지만 좀 더 좋은 입지였으면 나름 볼만한 형태로 성장했을지도 모르죠.”

 키엘리니는 낸시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렇겠구나.’하고 생각했다. 플래티넘은 금 이상으로 영원을 상징할 만큼 변형이 적고 아름다운 빛을 가진 금속이었다. 불사와 영속을 동경하는 인간들에겐 불변을 상징하는 플래티넘이 고가로 거래되는 점이 이해가 갔다. 더구나 희귀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니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키엘리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굳이 일행이 이런 외진길을 선택한 이유는 노르윈까지 좀 더 빨리 가지 위해서였다. 세나인 영지를 거쳐 가는 편이 제대로 된 길을 타고갈 수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모리슨 마을을 통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시간제한이 있는 여정은 아니긴 했지만 어떤 일이든 빨리 해결하면 할수록 좋다는 탬퍼와 낸시의 지론으로 경로를 이렇게 정한 것이었다. 키엘리니로서도 꽤나 기억에 대한 갈망이 큰 만큼 서두를수록 좋긴 했다. 하지만 비포장도로의 강력한 공격에 의해 야예이는 지금 마차 구석에 구겨진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고 애초에 짐마차를 개조한 것인지라 승차감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만들어진 이 마차는 일행의 엉덩이에 지속적이고 괴로운 자극을 선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낸시 일행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지 별로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키엘리니는 자신 역시 서두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불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조금 괴로웠지만 그녀가 가진 인내와 갈망이 참을성을 부여했다. 야예이는... 불평할 기회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조금 기대되는 군요. 전 광산 마을은 처음이에요.”

 키엘리니의 고백에 로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광산 도시라고해서 그리 볼 것은 없소. 여느 도시랑 비슷하지. 광산 자체도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어서 볼 수도 없고 말이오. 분위기도 여느 마을이랑 비슷하오. 다만 드워프 세공사들이나 인간 세공사들이 마을에 들어와 있으니 장식품 정도는 구경할 수 있을 거요.”

 로딘은 별 거 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키엘리니는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그녀가 살아온 시간은 고작 6년이었고 몇 개의 시련을 겪고 만연한 혼돈을 퇴치하는 모험동안 도시나 마을에 머무를 일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녀가 가진 마을과 도시에 관한 지식이란 신전에 들른 순례자들이나 사제들이 들려준 이야기나 책으로 본 지식들이 전부였다. 게다가 고작 6년의 삶은 사람들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거기다 그녀는 그 시간들 대부분을 네달렉스를 이해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는 일에 사용했기에 그 무용과 직위에 비하면 어떤 의미로는 순진하다고 할 만한 했다.
 키엘리니는 책 속에서 얻은 지식과 들어둔 지식으로 광산 마을인 모리슨을 상상하며 느긋한 자세로 도착을 기다렸다. 낸시는 마차의 흔들림 속에서도 아랑곳 않고 책을 읽고 있었고 로딘은 위험하게도 단검을 던지고 받는 묘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고 황혼이 질때쯤 탬퍼의 당혹스러운 외침이 마차 안으로 들려왔다.

 “이것 봐. 이거 뭔가 이상해.”

 탬퍼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로딘과 낸시는 벌떡 일어서서 마부석으로 나갔다. 키엘리니는 뒤늦게 일어나 마부석으로 향했다.
 로딘은 마부석으로 나가 있었고 낸시는 천막을 들치고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덕분에 키엘리니도 마차 밖을 볼 수 있었는데 주변으로 점차 짙게 안개가 깔리고 있었다.

 “안개가...”

 “이 시간에 안개가 끼던가?”

 키엘리니가 말함과 동시에 탬퍼가 뒤를 돌아보며 일행에게 물었다.

 “으음. 그건 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이 안개 마법적인 느낌이 나는데요. 매우 희미해서 확실하진 않지만 불쾌한 느낌이 느껴져요.”

 낸시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저 불쾌하다는 느낌과는 달리 뭔가를 경계하고 있다는 느낌이 뚜렷하게 서 있는 표정이었다. 동시에 키엘리니 역시 뭔가를 느꼈다.

 “그렇군요. 저 역시 뭔가 불쾌한 것이 느껴지는 군요. 그것도 부정한... 야예이씨를 깨워야겠어요.”

 키엘리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야예이를 깨웠다. 마법적인 잠인지라 작은 자극에 깨지 않았기 때문에 키엘리니는 죄책감을 느끼며 야예이의 뺨을 때려야 했다.
 그 덕분인지 야예이는 금세 눈을 떴다. 하지만 여전히 괴로운 표정으로 눈 앞에 보이는 키엘리니에게 물었다.

 “도착한 겁니까?”

 키엘리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보다 저희는 마법적이고 부정한 안개에 휩싸였어요. 이 안개를 친 자가 불순한 의도를 지녔는지 알 순 없지만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키엘리니의 말에 야예이는 벌떡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경쾌한 동작이었다. 야예이는 마차 뒤편의 천막을 들치고 뒤 따라오고 있을 토른을 부르기 위해 피를 불었다.
 -피익
 바람빠지는 소리가 피리로부터 흘러나왔다. 동시에 토른이 화답을 하듯 짖으며 나타났다.

 “토른 주변에 뭔가가 있던?”

 야예이의 질문에 대답하라도 하듯 토른이 짖자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예이도 토른이 짖는 의미를 알고 있는 듯이...

 “당장으로서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 토른은 제가 살던 산의 영수였으니 그의 감각은 믿을 수 있습니다.”

 키엘리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예이를 깨울 때부터 이 쪽을 보고 있던 낸시는 야예이의 말을 듣고는 탬퍼와 로딘에게 전해줬다.
 그럼에도 일행은 조심스럽게 경계를 유지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낸시는 간단한 경계의 마법을 발동시켜 마차 주변을 경계케 했다. 토끼나 족제비 이상의 생물이 이 범위 안으로 다가오려 하면 요란한 소리를 내도록 하는 효과를 지닌 마법이었다.
 다행히 습격은 없었고 이변도 없었다.
 일행은 무사히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사히 들어온 정도로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탬퍼와 로딘은 마을의 입구에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탬퍼는 마차를 세우고는 마부석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탬퍼가 충분히 사람들의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 중 몇 명은 자신들에게로 다가오는 이방인의 존재를 깨달았다. 사람들은 아직 두려움과 경악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다가오는 탬퍼를 바라보았다. 탬퍼은 그들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음을 깨닫고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 전에 그들 사이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악. 팀. 또야. 어째서 이런 일이!”
 
 “우리는 전부 죽을 거야!”

 “으허허허어어엉.”

 “오! 란샤라여!”

 울부짖음과 절망, 경악의 외침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탬퍼는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이성적으로 보이는 사람 한명에게 질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모험가요? 아니면 여행자? 여행자라면 안 좋은 시기에 왔다고 해야 하겠구려. 보시오.”

 남자는 군중의 중심을 가리켰다. 탬퍼는 큰 키 덕에 발을 들어 사람들 너머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처참하게 찢겨진 시체를 보았다.

 “음.”

 “벌써 10명 째요. 이제는 더 놀랄 것도 없구려.”

 남자는 차분해 보였지만 그의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절망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 역시 저런 시체가 나온 것 치고는 조금 덤덤한 것 같았다. 여전히 절규하고 소란피우는 자들이 존재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망에게 활력을 빼앗긴 상태였다.
 탬퍼는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마을 전체에 죽음의 느낌이 감돌고 있음을 성직자인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이보시오. 일단 사정을 들어 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모험가고 이미 여러 곳에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 왔소. 어디, 여기 여관이 어디오? 이야기를 듣기에는 이곳은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장소를 옮깁시다.”

 탬퍼의 제의에 남자는 “소용없는 짓을...”이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한숨을 쉬고는 따라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우리 집이 바로 여관이오. 평소라면 우리 여관의 안락함에 대해 연설을 해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것을 용서하시오.”

 남자는 또 한번 한숨을 쉬고는 움직였다. 탬퍼는 마부석에서 고삐를 잡고 이쪽을 보고 있는 로딘에게 수신호를 보내고는 여관 주인이라는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군중들은 마을을 찾아온 이방인들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힘없는 동작으로 시체를 옮기고 있었다. 몇 명은 이젠 관심 없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몇 명은 기절한 친지를 옮기고 있었다.
 마차 안에서 키엘리니는 그런 불행한 광경들을 보며 그들을 위해 성문을 외웠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 재앙을 일으킨 악을 타파하겠노라고 성기사다운 맹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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