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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19(수)

2008.12.07 17:47

azelight 조회 수:575


 재미있는 글이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아직 저는 자기만족 적인 글을 쓰는 것이 한계인 것 같습니다.
 물론 자기만족적인 글이 모두에게 재미있는 글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못하죠.
 노력이 과연 이 문제를 타파해 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재능이 없다면 뚫고 지나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죠.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래서 쓰고 있는 것이 패스파인더 입니다만...
 (한숨)
 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저로서도 잘 모르겠네요.

******************************************************************************
 엘리엔은 문을 두드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조금 망설였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생각해두었던 말들을 조금 정리했다. 그래도 왠지 횡설수설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과히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지금 엘리엔은 태어나서 몇 번 해보지 않은 행위를 하기 위해 야예이의 방 앞에 서 있었다.
 그게 뭐냐고 하면 흔히 위로라고 부르는 일이었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실상은 골방에서 책이나 보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엘리엔은 강력한 마법사이며 원한다면 사람의 마음을 조작할 수도 있지만 그런 조악한 수단을 제외한 세련된 설득에는 좀 서툰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그런 면모를 발휘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었지만 옛동료의 제자에게 그런 마법적인 강제를 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실례 같게 느껴졌다. 거기에 야예이는 자신의 삶에 깊게 결부될 인물로서 낸시 처럼 어느 정도 대우해 줄 필요가 있었다.
 ‘똑똑’하고 작게 문을 두드린 엘리엔은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늑대가 작게 짖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방 안에 없을 리가 없다며 속으로 생각하며 안을 투영해 보려다가 곧 그만뒀다. 그런 것은 실례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한다. 낸시를 데려다 가르치고 기를 때도 그런 면에서 가끔 실수하곤 했던 일들을 되새기며 엘리엔은 잠시 낸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보았다. 덕분에 겉도 속도 같은 인간이 되었으니 잘됐지 않니? 엘리엔은 조금 더 기다리다가 문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야예이가 함께 데려온 늑대 한 마리가 자리에 앉아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엔은 뭔가를 요구하는 듯한 늑대의 눈길이 귀찮았기 때문에 손짓을 하며 잠의 주문을 뿌렸다. 하지만 늑대는 졸린 듯이 눈을 깜빡 거리면서도 마법에 저항했다.
 엘리엔은 그 사실에 흥미를 느끼며 늑대에게 다가갔다.  손을 가져가서 이마에 얹었지만 늑대는 특별히 거부하거나 하지 않았다. 엘리엔의 행동에 딱히 나쁜 의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여전히 졸린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엘리엔은 접촉함으로서 간단한 마법적인 운용을 실행하여 늑대에 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평범한 늑대나 교감수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늑대치고는 영적으로 좀 더 뛰어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흔히 산의 수호신이라고 불리울 만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늑대라고 할까. 어쩌면 그 일족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엘리엔은 그 사실을 확인하고는 좀 더 힘을 보태어 토른을 잠재워 버렸다. 이제 토른은 누군가가 억지로 깨우지 않는 한 어지간한 소란에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엘리엔의 신경은 더 이상 토른에게 가 있지 않았다. 엘리엔은 자신이 왜 굳이 토른을 잠재우려고 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운 것이다.
 평소에 하지 않으려는 짓을 하려니 당연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진 상태이고 좀 더 감성적이니 이런 부조리한 일을 벌이는 것이다.
 엘리엔은 자신에게 납득하고는 몸을 돌렸다.
 야예이의 위치를 잠깐 탐색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엘리엔이 탐색해보기도 전에 야예이는 욕실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엔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다 다시 제자리로 돌려야 했다. 그럴것이 야예이가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야예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덤덤한 목소리로 엘리엔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엘리엔은 대답하기 보다는 곁눈질로 야예이 쪽을 흘겨보았다.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는 야예이에게는 딱히 부끄러움이라던가 감정적 동요는 보이고 있지 않았다.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좀 나눠볼까 해서...”

 엘리엔은 그렇게 말하며 야예이의 육체를 훑어보았다. 상상 이상으로 강인해 보이는 육체였다. 애초에 인간보다 평균 근력이 높은 오크의 피를 이어 받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로부터 상당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2m에 달하는 거구. 성인 두 명을 양옆으로 세워둬야 그 넓이가 맞을 듯 한 어깨넓이. 순수한 육체적 힘으로는 그녀가 지금가지 봐온 그 누구보다도 강해 보였다. 어쩌면 야예이는 그 육체만으론 이미 전성기 시절의 에크로반 따윈 오래 전에 넘어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알몸으로 있으면서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부끄러움이라는 감각을 상실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엘리엔은 그렇게 생각하곤 조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곧 한 가지 추측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가 이성과 접촉해본 적이 없고 문화적으로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이란 존재나 그에 대한 사회적 반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것이 엘리엔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것은 사회적인 요인에서 형성되는 것이니까.
 엘리엔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야예이는 엘리엔이 왜 그러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엘리엔 자체에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의 엘리엔은 낮의 엘리엔과는 다를 테니까. 하지만 엘리엔은 딱히 물어볼 때까지 해명할 생각이 없었다.
 야예이는 한참 동안 엘리엔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엘리엔은 생글생글 웃으며 그 시선을 받아줬다. 결국 야예이는 한숨을 푹 쉬더니 항복했다는 듯 질문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정말 메이거스 엘리엔입니까?”

 “그래, 내가 협회의 메이거스이며 이 저택의 주인이자 색의 칭호를 지닌 마법사이고 여섯 탑이라는 호칭을 지닌 엘리엔이야. 그리고 주인인 내가 원하지 않는 자들은 누구도 이 안에 존재할 수 없지. 설혹 내 스승인 ‘다르카신’일지라도.”

 ‘다르카신’의 이름을 말할 때 엘리엔은 강한 힘을 담아 그 이름을 발음했다. 상당히 감정이 담긴 듯 매서운 감각을 실은 이 단어는 야예이를 한 걸음 물러서게 하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야예이는 엘리엔이 그 이름을 말할 때 공격당하는 줄 알았다.

 “아아... 그렇지. 너는 그를 흑암자라고 부르도록 하렴. 그는 자신이 인정한 자가 아니면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거든. 자, 이제 내가 엘리엔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옆자리에 앉아 주렴. 계속 올려다보려니 목이 아프구나.”

 야예이는 엘리엔의 이번 요구에는 순순히 따랐다. 엘리엔은 야예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자신이 엘리엔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상대이니 공격의도가 없는 이상은 따라준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엘리엔은 이토록 자신이 의심받는 다는 사실에 흥미로워 했다. 어쩌면 그는 겉모습에 현혹되기 보다는 본질에 민감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당연한 사실에 대해 무지하지만 그럼에도 당연히 속을 수밖에 없는 외형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에크로반이 가르침 길잡이로서의 수련 덕이겠지만 에크로반 자신도 외피에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야예이는 그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고독 덕에 상당한 이득을 봤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본인은 깨닫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고 이대로 세상의 세파 속으로 떠나게 되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는 능력이지만 엘리엔은 야예이의 그 점을 높게 평가했다. 묘하게 장난기가 끌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엘리엔은 그 충동을 잠재웠다. 더 이상 야예이를 곤란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장난기 많은 자신을 억누르며 엘리엔은 부드러운 면의 자신을 강조했다.

 “조금 이야기를 나눌까 해서. 아까는 수호자 키엘리니의 문제가 우선이었고, 낸시들도 있었으니까.”

 엘리엔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단히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둔감하다 못해 그런 쪽으로 전혀 인식이 없을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미소였지만 야예이는 키엘리니의 진짜 모습도 보았기 때문인지 어느 정도 덤덤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엘리엔을 중심으로 주변의 운을 끌어들이는 흐름을 느낄 수는 있었다. 동시에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호의적인 느낌 역시 받을 수 있었다.
 야예이는 그런 엘리엔의 모습에 키엘리니에게 조차 느끼지 못한 설렘을 약간 느꼈지만 워낙 둔감한데다가 경험이 없는 터라 그런 감각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런 낯선 감각은 그가 딱딱하게 행동하는 데는 일조했다.

 “이야기 말입니까?”

 “그래.”

 야예이의 그런 작은 변화를 엘리엔도 눈치 채지 못했다. 아무리 그녀라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작은 변화였고 야예이가 평소에도 무뚝뚝한 편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너를 굳이 수호자 키엘리니의 여정에 따라 보내려고 하는 것은 네가 귀찮거나 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나는 너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세상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 에크로반이 너를 어떻게 대했는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너를 보호하느라 너무 폐쇄적으로 길렀다는 사실만큼은 방금 전의 일로 확실히 알겠으니까 말이야.”

 “방금 전의 일?”

 야예이는 엘리엔의 말을 듣고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딱히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가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 엘리엔이 방에 들어와 서있었던 것 말고는 딱히 일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외면했던 것 같기는 했지만...
 엘리엔은 고민에 빠지는 야예이를 보고 역시 뭔가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모를 만큼 폐쇄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운 에크로반에게 속으로 좀 저주를 내리는 일도 잊지 않았다. 분명 고지식한 면이 있는 에크로반은 세상의 모든 상식 중에서 남녀가 서로에 대해 가져야할 예절이나 인식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정작 엘리엔 자신도 말하려고 하니 좀 껄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애들도 아니고 다 큰 청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다니. 엘리엔은 에크로반을 향한 저주에 몇 마디 말을 덧붙이고는 야예이에게 성멸했다.

 “성숙한 남녀라면 모름지기 서로에게 알몸을 보여주는 것은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것이지. 예외가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부부일 경우 정도란다. 아, 물론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좀 더 일찍 그럴 수 있겠지만 말이야. 네가 모를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사람끼리는 상당히 실례될 수도 있는 일이니 주의하렴.”
 
 야예이는 알겠노라고 대답했다. 표정으론 들어 나지야 않았겠지만 엘리엔은 그가 당황하고 있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이미 낮에도 그런 모습을 한 번 보았고... 압도적인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그는 사람사이의 대화나 갈등에서 쉽게 판단하고 행동하거나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엘리엔은 야에이의 대답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하려고 했던 말들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내 아래에서 배워나갈 수도 있겠지. 그리고 나는 네게 마법사의 길을 제시해줄 수도 있어. 그것들을 새로 배우는 것은 힘들겠지만 자연의 정령들과 교감했던 경험들이 어쩌면 마법을 배우는 일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적어도 아무 것도 안 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야. 그리고 나는 네가 네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소개시켜줄 수 있어. 브린자드 변경백의 병사가 될 수도 있고 레인저가 될 수도 있겠지. 그들 역시 네 용모에 편견을 가지겠지만 긴 시간 동안 함께하며 의무를 같이 한다면 그런 편견을 불식시키고 진정한 친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엘리엔은 말하면서 야예이의 표정을 살폈다. 굳은 하프오크의 얼굴은 변화할 조짐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눈빛에는 조금 이채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강한 의지나 욕구가 담기진 못했다. 오랫동안의 고독한 생활과 박대가 그에게서 사람들과의 친분에 대한 욕구를 부러뜨려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네가 수호자 키엘리니를 따라 나섰으면 좋겠단다. 에크로반을 위해서라도 말이지.”

 “스승님 말입니까?”

 야예이가 에크로반의 이름이 나오자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낮에 엘리엔이 했던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다. 그가 자신을 진실로 아들처럼 여겨서 성을 물려준 것이라고 했던가? 야예이는 자신의 내부를 옥죄는 것 같은 그 말에 정말 가슴이 아팠다. 결국 야예이는 그에게 받은 것 뿐 어떤 것도 해준 것 이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말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야예이를 슬프게 했다.

 “나는 에크로반이 자신의 것들을 이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생각해. 그가 특별히 너에게 말하거나 바라진 않겠지만 굳이 성을 물려주고 길잡이로서 가져야할 덕목들과 기술들에 대해서 가르쳐 준 것들을 봐서도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아.”

 엘리엔의 말에 야예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지금 겪고 있는 회한을 풀어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 같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저는 스승님에게서 오직 받은 것뿐이라는 사실 때문에 슬펐습니다. 저는 커오면서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제 삶의 대부분을 숲에서 보냈었죠. 저는 제가 스승님의 삶의 방해물 정도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인 그가 인간과 얽혀 살아야할 삶의 일부를 제가 빼앗아 쓰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는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저는 그럴 거라고 혼자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제 어리석음은 그에게 어떤 보답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었습니다.”

 아마도 태어나서 이토록 길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표정으로 야예이는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말을 말했다. 주먹이 꽉 쥐어져 있었다. 아마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 시각까지 내내 그 생각만 했었을 것이 틀림없다고 엘리엔은 야예이를 보며 생각했다. 엘리엔은 하프오크를 이렇게 섬세한 성격을 가지도록 키운 에크로반에게 몇 마디 저주와 함께 존경을 살짝 보태주었다.
 엘리엔은 생각했다. 야예이는 세상의 모든 하프오크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하프오크일 것이라고. 적어도 그녀가 아는 한 하프오크들은 생각하길 포기하고 욕망과 야생의 의지에 몸을 맡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부분 낮은 지능을 타고 나고 힘에 의지해 문제를 해결하길 즐긴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되는 이유가 그들이 자신의 본성에 결국 패하기 때문임을 엘리엔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욕망과 야심이 오크의 야성적 본능과 폭력성이 얽히어 만들어 질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야예이는 예외였던 것이다.

 “그가 바라던 것이 그것이라면 저는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야예이가 조금 비통함을 담아 말했다. 엘리엔은 야예이의 어께를 도닥였다.

 “그럴 생각이 있다면 수호자 키엘리니를 따라가렴. 너는 에크로반이 나와 나의 동료들이었던 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거야. 등을 보이고 앞으로 걸어 나가, 먼저 한 걸음을 디딤으로서 그들이 가야할 길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그들과 함께할 시련과 역경이 너를 제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줄 거야. 예지를 할 수 있는 내가 하는 말이니까 믿으렴. 물론 예언의 성취는 네 노력에 달려있다는 단서가 붙지만 말이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라도 가야하는 것이로군요.”

 “그런 거야.”

 야예이가 납득하자 엘리엔은 침대 위로 양다리를 모아 앉았다. 생각보다 대화가 잘 풀려서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 사실 아직 야예이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 못한 그녀는 수십 가지 경우를 상정하고 그에 맞는 상황별 대사를 하나하나 만들어왔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야예이는 그녀가 하고자하는 말을 받아들여 줬다. 소극적으로 보였기에 걱정하긴 했지만 야예이는 결코 약하게 크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런 육체를 가질 만큼 단련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의지와 끈기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니 엘리엔 자신이 야예이를 낮게 평가했던 것에 불가한지도 몰랐다.

 “좋아. 이제 해야 할 이야기는 전부 했으니까. 다른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엘리엔은 중요한 용무가 끝나자 사적인 대화를 종용했다.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단다. 네 삶, 에크로반과의 만남, 그의 죽음, 그가 살아온 길. 그의 영웅적인 행적 덕분에 그를 기억하는 자들은 무척 많지.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매우 적어. 하지만 살아있던 에크로반을 기억하는 두 사람이 서로의 추억을 공유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 까? 그리고 그의 제자라는 너와도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아직 하루 정도 날짜가 더 있지만 왠지 좀 더 서둘러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단다.”

 엘리엔이 웃으며 말했다. 야예이는 그런 엘리엔의 심정에 그 자신도 긍정했다. 그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에크로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두 사람은 침대에 앉아 각자가 그와 함께 겪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야예이는 엘리엔으로부터 그녀가 에크로반과 함께 했었던 모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가 일종의 동경이자 첫사랑같은 거였다는 이야기를 엘리엔은 수줍게 했고, 오거 치프틴 그락나와의 전투를 실감나게 해줘 야예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해주기도 했다.
 야예이는 그가 주워졌을 당시의 이야기, 처음 에크로반의 수업에서 동물과 소통이 가능했던 일,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맨손으로 한 겨울의 갈색산맥에서 살아남았던 일, 세계의 지붕으로 에크로반과 함께 다녀왔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엘리엔은 맨 손으로 곰을 잡았다는 야예이의 무용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동시에 감탄했다.
 무뚝뚝하게 집중력만을 발휘하는 야예이에 비해 엘리엔은 좋은 청자였다. 그녀는 낮은 그녀와는 전혀 다른, 방금 전의 그녀와도 전혀 다른 발랄함과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야예이의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여러 가지 표정과 행동을 취해 그가 서툴게 꾸려나가는 이야기를 길게 끌어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어느새 엘리엔은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고 야예이 혼자서만 말하고 있었다. 야예이는 태어나서 평생 그렇게 길게 그리고 즐겁게 말을 했던 적이 있었는지 의문스러운 기분이 들 정도였다.
 충분히 밤이 깊어지고 졸음이 올 때까지 야예이는 자신이 속에 품고 있었던 많은 이야기를 엘리엔에게 해줄 수 있었다. 엘리엔은 야예이를 도닥이고 그를 위로하고 때로는 눈물을 닦아 주기도 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마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엔의 손길에 참을 수 없는 잠기운에 빠질 때까지 야예이는 평생 겪어 본 적은 없는 아득한 기분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말하며 돌이켜 볼 수 있었다.
 마법사의 저택에서 보내는, 정말 마법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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