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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걸 1

2008.12.06 07:28

愛一李安 조회 수:560




 

자신의 가옥임에도 그다지 오는 일이 없는 뒷뜰, 그 툇마루 위에서 아내는 내려오는 눈을 바라보고 있다.

예정일이 바로 코앞에 있음에도 임산부에게 찬 바람은 안 좋다 나무랄 사람 하나 없을 정도가, 뒷뜰이 얼마나 사람 찾지 않는 곳인지를 검

증하고 있어서, 아내는 아무런 훼방도 받지 않은 채 계속 눈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저 눈만을 바라보는 그 몽환같은 모습이, 너무도 청렴하면서도 고요해서, 그녀 자신이 내려져 쌓인 눈의 결정이 아닐까. 그런, 포근한 설

레임이 가슴 떨리는 감개를 안게 한다.

반면 그 새하얀 풍경은, 마치 아내에게 세상이 선물한 천상의 아름다움인 것만 같아, 그녀는 이 새하얀 풍경이 이 툇마루를 중심으로 펼쳐

져 있는 것만 같단 몽상을 의심치도 않고..

집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바깥만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를, 윤걸은 심히 어색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있어.. 예뻐.. 이렇게나 예쁜 요정들이 눈 앞에 있는데, 왜 사회는 이 환상적임을 믿지 않는 걸까..?"

갑작스런 아내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윤걸이 놀라 손을 뻗어보려 하지만, 아내의 등이 말해주고 있는 듯한 진의는 50:50의 확률인 것만 같

아, 뻗으려 한 손은 처량하게 허공만을 쥐어잡은 채로 미끄러져 떨어진다.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음에 윤걸의 심장이 희망에 차 두근거렸어도, 다음의 고동 소리는 우울 첨벙거리는 소리를 내있어서, 다시

윤걸의 심장은 수 리터 괴로움이 차있기만 하다.

그 일 이후로 아내는 윤걸에게 단 한마디 건네준 적이 없었다. 소심한 윤걸이 그것에 얼마나의 절망에 잠겨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잔인한

침묵을 고수해온 아내가, 이제 와서 윤걸에게 말을 건네줬다니.

'이이익.. 이익.. 이이, 이이, 익...!'

그럴 리가 없다. 아내의 용서와 위로를 기다리다 견디지 못해, 자신의 머리털을 손으로 다 쥐어뜯으려 드는데도, 그 반 발광의 기세도

허무하게 아내의 곁에조차 접근하지 못하는 윤걸은, 이젠 아내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다는 것조차 믿지 못한다. 그렇게나 기다리고 있

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걸어본 도박이, 아내의 불쾌함과 거부 의사, 그리고 실패로 돌아와 준다면, 윤걸 자신은 그 처량함을 어떻게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저 눈만을 바라보는 그 칼날같은 모습이, 너무도 살을 에는 듯이 차갑고도 고요해서, 그녀 자신이 내려져 쌓인 눈의 결정이 아닐까. 그

런, 냉온으로 심장이 후들거리는 감개가 윤걸을 혹한에 떨게 만든다. 그 옛날 그렇게나 포근해 보이던 눈(雪)이, 사실 맨살으로 닿으면 동

상이 걸려, 피부가 괴사할 정도로 너무 차가운 것이라고. 윤걸은 그걸 요즘에서야 알았다.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윤걸은 끝내 아내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윤걸과 아내. 이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고, 자신의 등 뒤에는 그저 상대의 등만이 있어, 예

상으로 서로의 속내를 유출해 내려함도 아닌,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만을 알고.. 그저 그들이 보고 있는 건 집안의 가구, 내려오는

눈밖에 없었다.


오늘 윤걸에겐 볼일이 있어, 지방에 내려갈 용무가 있었다.

저런 상태의 아내이기에 그녀로부터 하루라도 떨어지는 불성실을 보인다면, 안 그래도 먼 거리가, 하루 분량의 걸음 정도로는 이미 점에

불과할 정도로 손 쓸 도리 없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그런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이 일은 윤걸이 사회로부터 생존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

야만 할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도 필요한 일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 아내로부터 용서를 받기 위한 성실함을 보일 것인지, 중요한 볼일을 보

고 올 것인지, 윤걸은 고민 고뇌를 반복하며 심중의 논쟁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사회로부터 생존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것을 불러올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음할 때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원초적인 공포를 눈치챈 순간. 돌아본 윤걸의 저울은 이미 기울어진 채였다.

불안으로 머뭇거리는 발걸음으로, 끝내 윤걸은 한 가지 선택지에 몸을 싣는다.

대문 앞에 서있던 택시 한 대에, 윤걸은 몸을 올려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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