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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Pray ver.B

2009.01.22 22:58

azelight 조회 수:683

패스파인더는 한 동안 잠수 탑니다.
왜냐고요? 이거 쓸려고요.
설정이 아직 애매한 베타 버전입니다.
단편이고 분량은 1부 40페이지 2부 40페이지 씩으로 할 *예정*입니다. 아직 확정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에 한번 이거 올린 것 같은데... 결국 뒷 내용을 못 썼거든요.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작정하고 이걸 완성 시킬 겁니다.
후우-... 하지만 1년 가까이 붙들고도 고작 8페이지 이상 넘어가본 적 없는 글을 어떻게 해야 완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로군요. 의문...
뭐,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있다면 단점 같은 것을 절실히 까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언젠가 완성 될 그날 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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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

0.
 저는 ‘황혼’의 직후 만들어졌습니다.
 처음 눈 뜬 곳은 주인님께서 그저 실험실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새하얀 천장과, 새하얀 바닥, 새하얀 벽에 새하얀 문이 붙은 그저 하얀 공간이었습니다. 제가 누워 있던 이동식 침대 역시 하얀색이었고 시트며 기기며 모두 하얀색이었죠. 단지 기계의 정보를 출력해주는 화면만이 각가지 색을 띄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하얀 세계에서 처음 만난 주인님은 하얀 세계 속에선 위배적인 존재셨습니다.
 비교한다면 불길 속에 새빨갛게 달궈진 쇳줄이 떠올리게 만드는 적동 빛의 긴 머리카락. 약간 치켜 올려진 눈매 속에 깃든 일렁이는 불꽃같은 눈동자. 입술은 얇고 입술색은 연한 연분홍빛이셨습니다. 피부는 새하얀 이 공간만큼 하야셨지만 잡티 하나 없으셨지요. 그리고 머리카락들 사이어 잎사귀 모양으로 뾰족한 귀 끝이 살짝 들어나 보이셨습니다.
 의복은 연보라 빛 긴 코트을 두르시고 속에는 검 푸른빛의 스웨터와 바지를 입고 계셨습니다. 왠지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답니다. 주인님은 그런 푸른색의 인상과는 반대로 달리 주인님께는 ‘불꽃’이라는 인상이 있으셨으니 까요. 빨강이 어울리는 그런 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개의치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안녕.”

 주인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이름은 밀레니아야. 처음 본 세상은 어떠니?”

 주인님의 시선으로 저는 그 질문이 저를 향한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물론 애초에 질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저 밖에 없었지만 제 양자두뇌는 거기까지 발달되어 있지 않았었습니다.
 이것을 뭐라고 표현해야할까요? 안개가 낀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지만 일단 그런 표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멍한 느낌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멍했던 저는 지금도 그리 유능치 않지만, 그때는 더욱 심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었습니다. 그 대답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예요.”

 제 대답에 주인님께서는 “풋.”하고 웃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딘가 안쓰러운 표정을 저를 둘러보시더니 체념한 표정을 지으시고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하얗구나. 그보다 일어날 수 있겠니?”

 저는 주인님의 요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제 몸은 철과 흙, 나무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있는 생물보다 더 매끄럽게 움직이고 느끼며 마시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해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요.
 저는 맨발을 땅에 디뎠습니다. 서늘하고 매끄러운 감각이 발바닥으로 통해 느껴집니다. 저는 눈을 감고 싸하게 올라오는 감각에 몸서리쳤습니다. 낯설고 이상하고 두려운 느낌이 저를 지배해왔습니다. 찌릿하게 올라오는 차가운 감각. 처음 세상을 느끼는 저에겐 너무 자극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바닥으로부터 발을 때고는 침대위로 올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애원하는 표정으로 주인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까요?” 그런 애원이 담긴 표정이었겠죠.
 주인님께서는 저의 그럼 표정을 보시고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시며 손을 내미셨습니다. “응석부려도 괜찮단다. 하지만 그래도 너는 네 힘으로 발을 디뎌야만 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미소와 손길에 저는 용기를 내서 주인님의 손을 맞잡았습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 가녀리고 연약한 듯 하지만 단단하게 붙잡힙니다. 그 손길이 의지가 되어 저는 주인님이 이끄는 대로 바닥에 발을 디뎠습니다. 차갑고 낯설지만... 주인님이께서 손을 잡아주시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주인님을 향해 싱긋 웃었고 주인님 역시 저의 손을 끌어와 잡으시며 저를 곁으로 이끄셨습니다.

 “할 수 있잖니. 이렇게.”

 “네.”
 
 엄살을 부렸다는 생각에 새빨개진 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그를 야단치기보다는 저에게 밖으로 나가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따라 아우렌시아님과 함께 ‘연구실’을 나섰답니다.
 연구실을 나서자 빛 한줌 없는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시야를 바꾸고 복도를 살핍니다. 암흑 시야로 전환되며 어둠은 음영이 사라진 입체감 없는 복도의 광경으로 바뀝니다. 깔끔하게 마감된 합금 벽은 바닥도 천정도 벽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천장에는 조명시설과 환기시설도 보이지만 어느 것 하나 작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확실할 것입니다. 어디에도 열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상태에서는 원근감에 미세한 영향을 미치기에 저는 한 가지 기능을 더 활성화 합니다. 몸 전체에서 일정 파장을 보내서 공간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주인님께서는 저보다 훨씬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손전등을 손에 드신 것입니다.

 “자. 가자.”

 연구실의 조명에 버금가는 백광이 조그마한 손전등으로 부터 흘러나왔습니다. 그 빛이 약간 푸르스름한 복도의 벽면의 비춥니다. 저와 주인님이 연구실을 나선 후 조금 지나자 연구실의 안의 조명이 자동으로 꺼졌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걷습니다. 원래는 자동문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냥 열린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문이라던가,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감식하는 인식장치 같은 것들이 시선에 들어옵니다.
 공기는 제대로 환기가 되지 않는지 탁합니다. 하긴 환기 설비가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주인님께서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탁한 공기와 어둠을 뚫고 주인님께서는 딱딱 직각으로 꺾인 복도를 걸어가셨습니다. 문과 문을 지나면서 저는 사용되지 않는 한 때는 사람이 있었던 흔적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이 꺼진 전광판, 벽보, 손길이 닿은 흔적이 군데군데 보이는 공공물품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보이지 않습니다.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염된 공기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주인님의 뒤를 쫒아 걷다보니 어느새 넓은 공간이 나왔습니다. 천장이 뚫려 위층까지 이어져 있는데 그 끝은 어둠 덕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암흑 시야는 볼 수 있는 거리가 짧고 제 몸에서 나오는 파장 역시 그리 멀리 뻗진 못합니다. 주인님께서 손전등을 비춰 주신다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주인님께서는 도리어 아래쪽을 비춰보실 뿐입니다.
 그래서 저의 시선도 난관을 잡고 아래쪽을 향합니다. 천장처럼 뻥 뚫린 원통형의 빈 공간은 60여 미터 정도의 아래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그 아래에 파손 된 흔적과 함께 파괴된 장식물이 최하층에 떨어져 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제 시선이 장식물을 향했다는 것을 알아채시고 저를 툭툭 쳐서 위를 가리키셨습니다. 손전등의 불빛과 함께요. 위쪽에도 똑같은 장식물이 존재했습니다. 머리 위로 층 두 개쯤의 높이 위의 난관을 파괴하고 박혀있다는 점은 아래쪽하곤 달랐지만 말입니다.

 “뭔가요? 저것은.”

 제가 묻자 주인님께서 대답해주셨습니다.

 “부유상이야. 척 보기에도 알겠지만 그냥 장식물이지. ‘낙원’자체가 동력을 잃게 되면서 부유상을 유지할 수 없게 돼서 말이야. 뭐, 저건 그 전에 저렇게 되어버린 모양이지만.”

 주인님께서 위쪽에 박혀 있는 장식물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하긴 동력을 잃고 부유력을 잃었다면 아래층에 있는 것처럼 되었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면 저것은 어째서 저렇게 된 것일까요? 저는 주인님께 물어보았습니다.

 “나중에 가르쳐 줄게. 지금은 위로 올라가자.”

 주인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난관을 따라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주인님은 이 안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승강기를 탔습니다.
 승강기의 내부는 네모반듯한 직육각형이었고, 실험실 이후로는 처음으로 조명이 존재한 공간이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숫자가 적힌 자판을 꾹꾹 누르셔서 올라가실 층을 설정하셨습니다. 당연하지만 도착할 층은 최상층인 지하 1층입니다.
 승강기 속에서 주인님은 팔짱을 끼시고 숫자가 점점 작아지는 입체영상을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런 주인님의 시선을 따라가 보기도하고 거울 면과 같은 역할을 하는 승강기의 벽면에 비치는 제 모습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승강기의 벽면에 비치는 저의 모습은 약간 둥그스름한 인상을 가진 소녀였습니다. 동글동글하게 말린 옆머리는 밝은 노란빛이고 눈동자는 호박색, 코는 오똑하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 애매합니다. 입술은 푸른색입니다. 마치 화장을 한 것처럼 요. 눈가에도 녹색 빛 분이 칠해진 듯 색이 들어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평범한 느낌의 얼굴인데 이렇게 들어간 색조 때문에 대단히 개성 있는 얼굴 같이 느껴집니다.
 음... 일부러 넣어두신 것일까요? 의문과 의심이 제 양자 두뇌 속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승강이는 목적한 층에 도착했습니다. 극히 약하게 관성의 법칙을 체감한 저는 곧 목적한 층에 도착했다는 의미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종소리가 울린 후 올라온 속도와는 달리 느긋하게 승강기의 문이 열렸습니다.

 “여기가 지하창고야.”

 손전등의 불빛으로 주변을 비춰주시며 주인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합금으로 만들어진 백색의 상장들이 저의 시야와 감각에 들어옵니다. 상자에는 전부 노란 바탕에 검은 색 무늬가 들어간 표식이 찍혀있습니다. 저건 위험물을 뜻한 표식인데 대체 저 상자 속에 뭐가 들어있는 것일까요? 제 투과 능력으로는 저 상자의 외벽을 투과할 수 없기 때문에 내용물을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저래보여도 외부 유출을 대비해 모든 우주복사와 우주선을 차단할 수 있게 되어있어 제가 사용할 수 있는 120종의 파형을 전부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제가 알고 싶어도 저 혼자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인님께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주인님. 저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뭔가요?”

 “응?”주인님께서는 손가락으로 손전등으로 상자들 중 하나를 가리키셨습니다.

 “이 속에 든 것들 말이니?”

 저는 그렇다는 의미에서 “네.”하고 대답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출구를 향해 걸어가시면서 대답해 주셨습니다.

 “널 만들 때 사용하고 남은 것들이야. 공간 압축을 안 해둬서 좀 부피가 크지?”
 
 “그러네요. 그런데 제 부품들은 다 위험물질인가요?”

 저는 손바닥 위에 위험을 뜻하는 표식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였습니다. 주인님께서는 그걸 보시더니 피식하고 웃으시고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네 동력인 보존계 축퇴로는 위험물이긴 한데... 그거 하나 뿐이야. 나머지는 그냥 보관하기 편하라고 저래 놓은 거고. 어차피 꺼낼 일도 없고 말이야. 아마 일이 끝날 때까지 널 수리할 일도 없을 걸.”

 확실히 꺼낼 일은 없었습니다. 제 부품들은 모두 반영구화 처리가 되어 있으니까요. 제 부속품들은 모두 외부세계에 비해 극단적으로 느린 상대시간을 지니고 있고 다른 시간대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받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흠집 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사실상 영구적인 내구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주인님의 말에서 신경 쓰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일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것이죠. 이상하게 처음부터 일에 대한 내용이 입력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설마 잊어버리신 것일까요? 그러고 보니 주인님의 상세에 관해서도 얼굴과 육성 외에는 전혀 입력되어 있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제가 작동을 시작했을 때 누가 주인님인지 판별할 수 있고 기본적인 사고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의 기능만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눈부실 만큼 엄청난 기술들의 혜택을 받았으면서도 사고능력은 평범한 소녀 수준에 불과한 저는 이제야 깨달은 사실을 주인님께 질문하려 했습니다.

 “주인님.”

 “응?”

 저의 부름에 주인님께서는 문을 여시려던 동작을 멈추시고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일단 양해를 구해봅니다. 저는 주인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다행히 주인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괜찮아. 물어보렴.”

 “저는 무엇을 위해 만들어 졌나요? 이제야 안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저는 살짝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는 제가 만들어진 목적을 모르고 있습니다. 호... 혹시... 빼먹으신 것인가요?”

 저는 힘겹게 주인님께 실례되는 질문을 해냈습니다. 주인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아아... 하지만 묻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살짝 뒤의 일어날 일들에 대해 겁먹은 눈초리로 주인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주인님은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불꽃이 일렁이는 듯 한 적동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진 주인님의 두 눈동자 사이로 저를 주시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쪼오끔... 귀여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날카로운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해 처음의 인상을 지워버린다고 할까요. 원판이 아름다우신 분이니까 그런 것이겠지요. 주인님께서는 잠시 동안 저를 그렇게 쳐다보시더니 “하하하하하하하.”하고 웃으셨습니다.

 “아...”

 저는 완전히 당황해 버리고 말아서 감정적으로 허우적거렸습니다. 어째서 웃으시는지 도저히 짐작이 가시지 않았으니까요. 짐작할 여유도 없이 주인님께서는 시원스럽게 웃으시더니 제 이마를 툭하고 검지로 치셨습니다.

 “요런. 그런 걸 걱정했니? 후후후. 하하하. 아. 오랜만에 웃었다. 정말 넌 특이하게 개성을 구축했구나.” 너무 시원스러우셔서 그 이상 어울리는 존재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웃음을 머금으시고 주인님께서는 저를 바라 보셨습니다. “괜찮아. 빼먹거나 한 것은 아니니까. 그보다 자. 나가자. 이걸로 표층이야.”
 주인님께서는 그렇게 말하시고 잡고 있던 문손잡이를 당기셨습니다. 도저히 혼자서는 열 수 없을 것 같은 육중하고 두터운 문이지만 주인님께서는 가녀린 몸으로 손쉽게 잡아 당기셨습니다. 그걸로 어렴풋이 주인님이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평범한 소녀 사양인 저는 절대 저 문을 당길 수 없으니 말입니다.
 문니 열리자 계단이 저와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계단을 보고 설계도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지하를 통해 들어온 이 건물의 내부도입니다. 분명 주인님께서는 이 저택에서 거주하는 것이겠지요.
 계단을 올라오니 너른 거실이 존재합니다. 가구들은 대부분 수납형의 기능을 하고 있는지 눈에 바로 보이는 것들은 탁자와 의자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감지 기능은 즉각 수납형 가구들의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일반 소녀 사양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의 기능은 있습니다. 뭐랄까. 이 정도도 못하면 자동인형이나 일반 소녀나 정말 다를 것 없는 것이 되고 말테니까요. 정체성이 걸린 일인 것입니다.

 “이 곳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저택이야. 한 30년 전 쯤에 이사 왔지. 자, 이쪽이 네가 지낼 방이야.”

 주인님게서는 저를 부엌에 가까운 방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문을 열고 보여주시는 방의 내부는 거실에 비해 화사한 방이었습니다. 분홍빛 커튼이 달려있고 책상에는 아기자기한 장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마치 다른 공간 같았습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좀 부담되는 방입니다. 인형의 집이라는 느낌에다가 분봉빛의 반짝반짝한 느낌을 곁들인 공간이라고

 “좀 꾸며 봤어. 어때? 마음에 들어?”

 두근두근 거린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시는 주인님을 보며 저는 이 분이 참 이런 부분에서 감각이 없으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소녀 취향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말하신다면 저는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해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저렇게 기대하시는 주인님의 표정을 보니 차마 별로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네, 마음에 들어요.”

 저는 흐르지도 않는 피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인님은 제 대답에 기뻐하시며 “다행이야. 기뻐.”하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시간이 지나면 몰래몰래 저 장식들을 좀 치우던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눈에도 심장에도 나쁠 것 같은 부담스러운 밤이니까요.

 “자, 그럼 나가자. 내가 누군지. 지금이 어떤지 전혀 모르고 있지? 내가 네게 부여해주지 않았으니까. 취미도 흥미도 성격도. 모두 너의 것. 그러니 마음에 들어준다고 하니 기쁜 거야. 가자. 밖을 보면서 설명해 줄게. 지금의 세계에 관해서.”

 주인님은 제 손을 잡아 이끄셨습니다. 저는 주인님께서 들떠 계시다는 것을 피부로 온기로 목소리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째서 저렇게 들떠 계시는 것일까요? 곧 알 수 있었습니다. 곧.
 문을 열고 저택을 나선 주인님의 뒤를 따라 나와 처음 본 세계는 텅 빈 세계. 살아있는 것은 주인님뿐인 무의 세계였습니다. 그래요. 들뜰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인님은.
 몇 십 년 만에 겨우 대화할 수 있는 존재가 생긴 것이었으니까요.
 그것도 고작 한 개에 불과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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