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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 48

2009.01.19 17:18

azelight 조회 수: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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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여명의 마녀



야예이가 조금 늦을 것이라는 케자드 족의 말에 키엘리니는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탬퍼는 조금 걱정하는 눈치였고 로딘은 언제나처럼 무표정, 낸시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눈치고 뮬리아는 대단히 기분이 좋은 듯 야릇한 미소를 유지하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키엘리니는 그런 일행들의 모습이 불만스러웠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지금 이상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왠지 모를 조급함에 종용당하고 있는 키엘리니는 침착함을 잃어가고 있었다. 단지 그녀가 지닌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지금 당장 쳄바라와 마라두가 있는 천막으로 쳐들어가 야예이를 끌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것도 키엘리니는 잘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심정이 그렇다는 것이었고 그것이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것도 키엘리니는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 야예이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그가 걷고 있는 갈의 정점에 이르를 수 있을 길. 그리고 인생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의식. 결코 방해해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키엘리니는 기다림 속에서 자신이 침착함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우려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무턱대고 천막 안으로 뛰쳐들어갈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 때 옆에서 누군가 키엘리니의 손을 잡았다. 돌아보니 뮬리아가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키엘리니는 뮬리아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입을 열려하다가 곧 자신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뮬리아는 그런 키엘리니는 끌어안듯이 잡더니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진정해요. 당신이 선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요. 기억을 되찾아야하는 의무감도 모두 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당신의 본성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에요. 억누르려하기 때문에 더운 단단히 되팅겨 오르는 것.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그것을 다스릴 수 있어요.”


 “저는...”


 “이해해요. 하지만 이 산을 오르고 ‘여명’을 만난다면 당신은 그 공허의 정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에요. 아시겠죠?”


 뮬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빙긋 웃었다. 키엘리니는 딱히 뭐라고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고개만을 끄덕였다. 미래를 본다곤 하지만 과연 물리아가 어디까지 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모호하고 이상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째서 느끼지 못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무슨 밀담을 나누는 거예요?”


 낸시가 둘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겼는지 물어오자 뮬리아는 키엘리니에게 떨어지더니 이번에는 낸시를 껴안아 주었다.


 “키엘리니가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낸시도 같이 해줄게요.”


 꼬옥 하고 뮬리아가 껴안자 낸시는 당황한 것이 역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뮬리아가 이런 반응을 해올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 음. 전 괜찮아요. 그보다 야예이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요?”


 낸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뮬리아를 밀어내고는 말했다. 뮬리아는 선선히 밀려나주는 대신 낸시의 팔짱을 끼고 반대편에 키엘리니의 팔을 끼더니 마치 앉으라고 준비해놓은 듯한 와석 위에 앉았다.


 “그는 사냥꾼의 비의를 배우고 있어요. 케자드 족의 비전 중 가장 깊고 심오한 것이죠.”


 “비의?”


 탬퍼가 관심을 가진 듯이 물어왔다.


 “네, 비의에요. 하지만 당신은 익힐 수 없어요. 로딘도요. 여기 있는 마법사나 성기사나 저같은 이도요. 그것은 오랫동안 한 길을 걷고 구도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에요. 아마 야예이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겠죠.”


 뮬리아는 쳄바라의 천막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녀는 그 의식 속의 비전에 대해 상상하는 듯이 먼눈을 하고 있었다.


 “뮬리아는 그 의식이 뭔지 알고 있나요?”


 키엘리니가 옆에서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뮬리아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네? 아뇨. 저는 그런 것이 있다고 들은 것뿐이에요. 케자드 족의 비전을 얻기 위해서는 부족의 시험을 치러야한다는 사실과 그 비의를 얻은 자들에 관한 정도만 알고 있죠. 저 흑암자나, 폭풍군주같은  자들이 그런 자들이죠.”


 “폭풍군주와 흑암자?”


 “네. 그들 외에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전을 손에 넣은 외지인들이 더러 있긴 했었죠. 하지만 누구도 비전의 극의까지 다다르진 못했어요. 단 한 사람만 빼고요.”


 “그게 누구죠?”


 모두들 뮬리아의 다음 말을 듣기 위해 진지한 태도로 귀를 기울였다. 그들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이었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유명하고 강력한 이들의 이름이 거론되었기에 더욱 그랬다.


 “바로 여섯 탑의 엘리엔이죠. 그녀가 흑암자 다르카신도 그 극에 다다르지 못한 비의의 끝을 본 유일한 자예요.”


 동시에 낸시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돼요!”


 그러곤 곧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사실을 깨닫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곧 몇몇 케자드 족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곧 자신들의 일로 돌아갔다. 낸시는 머쓱한 표정을 한 번 짓고는 이번에는 소리 죽여 말했다.


 “ 6살 때 이후로 줄곧 스승님 아래에서 수련했지만 저는 처음 듣는 일이에요.”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저도 모르고 있는 일을 알고 있는 거죠?’라는 눈빛을 낸시는 보내왔다.


 “그거야 소문을 듣는 거죠. 친구의 친구의 이야기라던가. 제 지인 중에는 마법사들도 있거든요. 대부분 마법사들은 허튼 소리는 안하지만 믿을만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낸시의 스승님께서는 그리 남에게 자기 이야기를 잘 안하시는 분으로 아는데요. 그렇기에 대부분 그녀의 적이나 경쟁자들이 더욱 그녀에 대해서 잘 알지요. 저는 그런 경쟁자 분과 친분이 있을 뿐이에요.”


 ‘경쟁자’라는 말에 낸시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법사들이 폐쇄적이긴 하지만 뮬리아처럼 떠돌아다니는 이라면 그들 중 누구와 어떤 인연을 맺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예지능력은 *진짜*이기도 하고... 거기다가 엘리엔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덤으로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녀와 대화하고있다 보면 어느새 혼자 떠들고 있었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들을 그녀는 동기나 다른 마법사들로부터 들어왔었다. 그녀도 경험했던 데다가 자신은 4년이나 엘리엔과 떨어져 있었었다.

 “으음...”


 뮬리아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낸시를 향해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뜻으로 손가락의 엄지와 소지를 제외한 세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낸시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로 뮬리아를 바라보다가 똑같은 손짓을 해주고는 피식 웃었다. 딱히 물어봐야 제대로 된 답을 듣진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낸시는 그래도 일단 질문해야할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었다는 마법사는 누구에요?”


 “흑암자에요.”

 “네?!”


 낸시는 또 다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양 손으로 입 부여잡았다. 낸시는 다시 조심스럽게 키엘리니에게 질문했다.


 “흑암자라니 설마 그 흑암자요?”


 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낸시가 보이는 반응들이 하나하나 재미있다는 듯 반쯤 놀리는 태도와 반쯤 진지함을 가장한 태도로 낸시를 바라보았다. 탬퍼와 로딘은 그녀의 성격 나쁨에 헛웃음을 흘렸고 낸시는 안달을 냈다.


 “고객이죠. 단골이라고 할까. 여러모로 고액을 내기 때문에 좋은 손님이기는 하지만 너무 불쑥불쑥 나타나서 곤란한 손님이기도 하죠.”


 뮬리아는 생글생글한 웃음을 유지하며 가볍게 말했다.


 “거물이었군.”


 탬퍼는 팔짱을 끼고는 한쪽 눈을 찌푸렸다. 평범하지 않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이다. 그러자 탬퍼는 곧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들의 미래에 흥미가 있다고 했다. 저런 존재가 따라 붙었다면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탬퍼는 왠지 터무니없는 일에 끼어들었다는 예감이 자신을 엄습함을 느꼈다.


 “후후후.”


 뮬리아는 탬퍼를 향해서도 씨익 웃어 줬다.

****

 야예이는 일종의 명정 상태에 빠져 있었다. 쳄바라가 일러주는 단어, 보여주는 환상, 느끼게 해주는 환각들은 야예이의 내면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것은 산이 주는 힘이자 깨달음이었다. 언어로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기에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누르고 모든 감각으로 그것을 체험해야했다. 천년이 넘는 한 세기. 그리고 그 이상이었을 지난세기동안 산은 수많은 것을 보고 들었으며 품어왔다.

 그 역사 속에서 남은 강렬한 의식들과 경험, 감정들은 축적되고 쌓여 커다란 하나의 관념을 형성했다. 야예이는 축적되어진 그것들을 환상으로 보고 체험하며 느끼고 골라내야 했다.

 자신의 길. 그의 길.

 사냥꾼의 길인지, 전사의 길인지, 주술사의 길인지.

 야예이는 억눌려진 의식 속에서 자신의 내면 속의 야성을 직시했다. 그것은 이미 야수. 야예이가 스스로 거부해온 난폭한 의식들이 또아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었다.

 야예이는 그것들을 긍정했다.

 아직 그들을 품고 제어하고 가눌 수는 없지만 야예이는 분명히 그것들을 직시하고 인정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일부다. 흐름의 일부, 자연의 일부, 의지의 일부, 자신의 일부.

 전체가 될 수 없기에 그것은 강력하지만 불완전하고 작았다. 하지만 야예이는 실마리를 본 것 같았다. 고삐를 걸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한 마리의 야수가 되면서도 분노와 포학의 방향을 잡는 법의. 길들이지 않고 함께하며 힘을 보태는 법을.

 산이 주는 수많은 가르침 속에서 야예이가 잡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 이상은 볼 수 없었다. 몇 만명이나 되는 자들이 이 속에서 그들만의 뭔가를 잡았을 것이다. 그와 같이 야예이도 이 속에서 단지 일부만을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야예이는 부족함을 느꼈다. 정말 손에 쥐어야 할 것을 보지 못한 불안감. 그가 바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으면서도 작은 것이었다.

 그의 바람은 한 사람을 뒤를 잇는 것.

 레인저 마스터 에크로반의 길을 답습하는 것이었다. 그의 길일지도 모를 야수가 되는 길이 아니었다. 고삐를 풀고 광분하며 지적한 적을 파쇄하는 힘은 그렇게 되기에 부족했다.

 야예이는 고민했다. 자신의 진정 찾는 것은 무엇인지. 의식 자체가 억눌려져 있었기 때문인지 그는 자신의 욕구를 쉽게 긍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예이는 떠올렸다 케자드 족의 비의. ‘길찾기’라고 불리 우는 이 것.

 그 속에서 야예이는 에크로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산의 기억. 산의 추억.

 많은 것들이 남겨진 그 속에 야예이가 등을 보인 에크로반의 젊은 시절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는 등을 보이는 자. 항상 앞에 서는 자. 누구보다 먼저 나서는 자. 길을 찾는 자.

 그는 길잡이였다.

 야예이는 이해했다. 그는 길잡이였다.

 야예이는 인정했다. 자신 역시 그 길을 배웠음을...

 길잡이는 이끄는 자다. 앞서 움직이며 위험을 찾는다. 가장 앞에서 움직이기에 가장 먼저 장애물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상처 입고 가장 앞서 길을 뚫는다. 적 속에서도 길을 찾는다. 모든 이들의 앞에서.

 그렇기에 언제나 그는 앞에 서 있다. 언제나 등을 보이는 자.

 그것이 질잡이였다. 길을 찾는 자. 앞서 가는 사람.

 그리고 에크로반은 그런 이였다.

 야예이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더 뭔가가 더 있다면. 그에겐 뭔가가 부족했다. 결정적인 뭔가가. 아직 그의 손에 없는 것.

 외치고 싶다.

 가르쳐 달라고 외치고 싶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에게 허용된 모든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외침은 공허가 되고 머릿속 외에는 퍼지지 않게 되었을 때 야예이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환상과 환각이 깨어졌지만 야예이에게는 아직 그 선의 구분이 애매했다.

 마라두는 야예이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이미 경험한 것이었기에... 산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여주고 때로는 너무나도 절실한 것을 보여줄 때가 있었다. 감정이 벅차오르고 놀라움과 환희를 느낀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격통과 괴로움, 그리움을 느낄 때도 있다.

 신성한 산은 많은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적은 것만을 건네줌으로.

 하지만 분명히 산은 그것을 본 자들에게 무언가를 남긴다. 그것을 어떻게 키우는지, 어떻게 이해하는 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 되지만 대체로 결국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뚜렷한 의지와 세계, 바람이 없다면 결국 그 속에 깃든 의미도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아니, 설마 r런 것이 있다하더라도 때론 그 의지와 바람에 너무 상반되는 길을 보기에 외면하는 자들도 존재했다.


 “괜찮으냐?”


 마라두는 야예이의 어께를 집고는 등을 토닥였다. 아직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가 없기 때문에 마라두는 일단 야예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흐음... 제법 구체적인 것을 잡은 것 같군.”


 쳄바라가 입을 열었다.


 “굉장히 오래 붙들고 있더군. 그 흑암자나 아가씨도 이토록 오래 붙잡고 있지는 못했는데 말이지.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력도 상당한 것 같아. 에크로반이 후계자 하나는 잘 키웠군. 클클클.”


 마라두는 쳄바라의 칭찬에 야예이를 새삼 바라보았다. 돌이켜보면 자신도 에크로반도 그 비전을 이토록 오래 붙들고 있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떨까?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였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마라두는 부정했다.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야예이는 당시의 에크로반과 마라두를 이미 능가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성장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비전의 극을 깨우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껏 오직 한 명만이 산의 비전에서 그 극의를 찾아냈다.

 산의 딸이라고 불리 우는 자만이.

 마라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야예이가 정신을 차렸다. 야예이는 몸을 움찔거리더니 멍한 눈으로 마라두 쪽을 바라보았다. 눈물에 콧물가지 흘러 흉한 얼굴로 야예이가 바라보자 마라두는 입가에 웃음이 들었다.


 “마라두?”


 “그래, 나다. 기분이 어떠냐?”


 야예이는 손으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고는 그것을 천 막 입구에 보이는 눈더미에 파묻어 닦아 냈다. 그리고는 아직 정신이 덜 깬 얼굴로 말했다.


 “머리가 멍하군요.”


 “그래, 멍하지.”


 마라두는 맞장구 쳐줬다.


 “그리고 굉장했습니다.”


 그와 함께 야예이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가 얻은 것들, 본 것들. 희미하게 머릿 속을 스쳐지나가며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그래, 굉장하지. 이것이 ‘길찾기’다. 부족원이 단 한 번만 볼 수 있는 것이지. 네 길을 보았느냐?”


 “네, 보았습니다.”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쳄바라가 “클클클.”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좀 눈이 사는 것 같구나. 에크로반에 비하면 너무 생기가 없어서 영 그랬는데 이제는 좀 보기 낫구나.”


 야예이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조아렸다.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한심한 존재라는 것은 그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와서 그의 성격이나 행동이 급변하지도 않았지만 야예이는 그때 분명 보았다. 그의 길을. 그에게 확신을 주는 뭔가를...


 “네, 그것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사냥꾼들의 강인함을.”


 과거를 떠올리며 야예이는 회환에 잠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쩌면 그때도 자신이 먼저 거절했었는지 몰랐다. 에크로반 때와 같이.

 이 신성한 산의 수호자들은 금기조차 넘어 그이 손을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어줬던 것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는 그때도 그것을 발로 차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째서 매번 그러는 것일까? 그리고 항상 나중에 깨닫는다.

 마라두는 야예이의 어께를 다독였다.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다. 우리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네가 뭔가를 깨달았다면 그걸로 좋구나. 신성한 산이 너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기를 바란다. 자, 그럼... 그래, 바쁜 일이 있었지. 어서 가봐라. 너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단다. 좀 불평을 들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겠군요.”


 야예이는 그렇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다 큰 키 덕에 천막의 골조에 머리를 부딪치는 실수를 저질러 마라두로부터 웃음이 나오게 했다. 야예이는 그 모습을 보고 같이 웃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그의 속은 상쾌했다. 모르는 사이에 많은 눈물을 흘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속에 누르고 있던 것들이 조금은 사라진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네. 그럼.”


 야예이는 그렇게 말하고 천막을 나서자 미묘한 분위기의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잖아.”


 낸시가 신경질을 내자 뮬리아는 빙긋 웃어 보였고 키엘리니는 “괜찮아요. 그보다는 괜찮으신가요?”하고 안부를 물어왔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더군요. 서둘러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밤늦기 전에 중턱까지 올라 가려면요.”


 야예이는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아직 중천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오전이라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흘려보낸 상태였다.


 “그거라면 괜찮네.”


 뒤에서 마라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르기 아주 편한 길을 알려주지. 그 길로 간다면 올라가는 동안 괴물들의 습격을 받을 일은 없을 거야.”


 마라두의 말에서 야예이는 떠오르는 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장소는 공개된 장소가 아니다.


 “제단을 말하시는 겁니까?”


 마라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쳄바라께서 허가하셨지. 나도 그리 반대하진 않네. 자네 일행들이 예정된 자라면 더더욱.”


 “예정된 자?”


 키엘리니가 마라두의 말을 듣고는 중얼 거렸다. 너무 작아서 마라두에게까지 들리진 않았지만 그녀의 주변에 선 자들은 똑똑히 들었다. 마치 키엘리니는 그 말에서 뭔가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내가 안내해주도록 하겠네.”


 마라두는 뒷짐으로 지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야예이는 떨떠름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것은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야예이가 다른 일행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치 금기를 범하려한다는 불안감이 깃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제단이라는 장소는 중요한 장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일행은 동시에 그 제단이라는 장소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뭔가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이해하긴 힘들지만 마치 산이 속삭이는 것 같은... 그런 영향력 속에 들어가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편한 길을 거절하고픈 느낌은 들지 않았기에 일행은 마라두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야예이 외에도 또 한 명 구체적으로 기이한 느낌을 받고 있는 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예정된 자?”


 키엘리니는 중얼거리며 일행의 맨 마지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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