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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47

2009.01.17 18:07

azelight 조회 수:521

가장 높은 산편 끝이군요.
다음 편부터 여명의 마녀편이 시작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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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두는 사냥꾼들과 함께 일행들을 이끌고 빈 천막들로 안내해 주었다. 사냥을 떠난 12명의 사냥꾼의 천막이었다. 그 곳은 지금 비어있었고 차갑고 적막이 가능했다. 사냥꾼들은 그 천막들 중 두 곳에 불을 피워주고 재를 뿌리고 향을 피웠다. 다른 일행들은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오직 야예이는 알고 있었다. 저것은 부정함을 막는 의식이었다. 그것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락 내에 머무르게 해야 할 외지인들이 끌고 올 부정을 막는 것이었다.
 마라두가 나직이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의식은 끝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두 천막은 성별로 나누어 차지하게 되었다. 여성들은 가장 먼저 의식을 처리한 천막을 차지했고 남성들은 그로부터 좀 더 떨어진 위치에 있는 다른 천막을 받았다.
 불을 피워놓은 천막의 내부는 주황빛으로 달아 있었다. 침묵하고 조용히 검의 날을 살피는 로딘과는 달리 탬퍼는 천막 속의 장식들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야예이는 그것들이 일종의 부적이며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부정함을 막아준다고 알려주었다.
 확실히 그것들은 힘을 가진 것들이었고 그렇기에 탬퍼는 쉽사리 내부의 장식들을 손대지 않았다. 이런 힘을 가진 물건들은 그 위치도 매우 중요한 법이고 허락되지 않는 자가 손을 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었다.
 
 “잘 하신 겁니다. 케자드 족은 부정함을 외지인에게 묻혀 보내기도 하니까요. 아, 물론 예의 없고 무례한 자들에게만 입니다.”

 야예이가 뒤에 덧붙이긴 했지만 탬퍼는 떨떠름한 얼굴로 ‘정말 괜찮으냐?’라는 표정을 지었다. 야예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걱정말라는 대답을 열심히 피력해 보였다. 하지만 이런 강한 긍정은 되레 의심을 부르는 지라 탬퍼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야예이는 그 시선을 슬며시 외면했다.
 그때 천막이 들춰지며 마라두가 불쑥 안으로 걸어들어 왔다.

 “실례하오.”
 
 그의 제국어는 어눌했지만 알아들을 순 있었다. 탬퍼와 야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에게 들어오라고 말했지만 마라두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괜찮소. 그보다 야예이를 좀 빌려줄 수 있겠소?”

 탬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탬퍼의 승낙이 떨어지자 마라두는 야예이를 바라보았다. 이미 야예이는 자리에  일어나있었다.
 마라두와 야예이는 천막을 걸어 나왔다. 천막을 나오자 사냥꾼들이 주위를 둘러싸듯이 서 있었다. 야예이는 그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들은 모두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무장을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수 있을 정도의 수준. 야예이는 대부분 무표정하지만 틈틈이 섞인 적의가 담긴 눈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눈을 돌리면 안된다.
 야예이는 천천히 느린 동작으로 그들을 바라본 후 야예이를 바라보았다.

 “따라와라.”

 마라두가 앞장섰고 야예이가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길을 지나갈 수 있도록 저리를 비켜준 그들은 곧 마라두와 야예이의 뒤를 따라왔다.
 그들은 부락을 벗어나 산을 타고 올랐다. 밤에 설산을 오르는 일은 극도로 위험하지만 그들은 별 빛만으로도 길을 찾고 빛없이도 산을 탈 수 있는 자들이었다. 삶이자 터전인 곳이며 태어나고 죽는 곳이 이곳이었다. 만약 이렇게 밤길을 걷다가 누군가 한 명이 실종되더라도 그들은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가야할 곳으로 간 것이므로...
 야예이는 달빛을 반사해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눈 밭 위를 걸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 이곳에는 에크로반이 있었다. 현재의 마라두인 샤람은 사냥꾼들 중 한명이었고 에크로반은 외지인이면서도 마라두와 12명의 사냥꾼들로부터 인정받은 자였으면 부락을 구한 영웅이었다.
 그렇기에 야예이는 불경시 되는 혼혈이면서도 그들의 무리에 낄 수 있었다. 그나마 사람들과 인연을 주고 싶었던 에크로반이 무리했던 것이리라. 어쨌든 케자드 족은 야예이를 에크로반의 아들로 그를 인정했었다. 하지만 야예이는 여전히 그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최후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에크로반의 아들이 되지도 후계자가 되지도 못했다.
 그의 피가 절반 밖에 안 되는 것처럼 그는 여전히 어중간한 존재였다.

 마라두가 멈춰 섰다. 
 그의 앞에는 원형으로 거석이 세워져 있었다. 열두 개의 거석. 케자드 족의 고유 문자가 새겨진 거석은 시험장을 의미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 장소에서 가장 강한 전사를 뽑는다. 그리고 그가 마라두가 된다. 시험은 10년에 한 번씩 열리며 가장 오랫동안 역임한 자는 전대 마라두인 라둘. 외지인인 에크로반을 받아들이고 혼혈인 야예이를 인정해준 남자였다.
 동시에 이곳은 시험장이기도 했다. 외지인을 받아들이는 시험. 외지인은 이곳에서 열두 명의 전사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들 전부를 이기던가... 그렇지 않으면 패하더라도 그에게 인정받던가.
 그렇게 해서 열두 명 전부의 인정을 받으면 그는 부족의 사냥꾼이 된다. 그의 일은 부족의 일이며 그는 부족의 호출에 응할 의무가 있다. 동시에 부족의 가장 깊은 비전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사냥꾼 열두 명 전원을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단 한명이라도 반대해도 통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시험은 오직 극한에 가까운 정신력과 체력, 기교를 가진 자만이 통과할 수 있었다.
자신이 작겨이 있음을 사냥꾼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야예이는 어째서 자신이 이 시험장으로 오게 되었는지 속으로 곰곰이 생각했다. 일단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전대 마라두의 인정을 받았다. 자신에게는 자격이 있다. 자격이...

 “이제부터 시험을 시작한다.”

 “시작한다!”

 마라두가 선창하자 사냥꾼들이 소리쳤다. 이미 그들의 목소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처럼 변해있었다. 사냥꾼들의 말이며 짐승의 말이며 사냥하는 자의 말이다.

 “외지인이며 혼혈이지만 그 기량을 인정받은 자가 여기 있다. 이름은 야예이! 명예로운 외지인 에크로반의 후인이다. 그가 자격을 갖추었고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에크로반의 아들인 야예이여 그대는 수호자의 본분을 지닌 자들의 일원이 되겠는가?”

 “되겠습니다.”

 야예이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거부할 리가 없었다. 이곳은 에크로반이 힘들여 남겨놓은 터였다. 없다시피 한 야예이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이제는 죽은 에크로반의 자리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신성한 산은 그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오직 너의 힘과 역량만이 인정받을 것이다.”

 마라두는 그렇게 말하고 산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에크로반의 아들 야예이가 우리의 일원이 되고자 합니다. 신성한 산이여! 그가 문을 열 자인지 판단해주옵소서.”

 산사태가 일지도 모를 만큼 큰소리였지만 목소리가 잦아든 후에는 오직 정적뿐이었다.

 “무기를 짚어라.”

 야예이는 이미 준비되어 있던 무기들 중 도끼를 정애 짚어들었다.

 “원 안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느린 걸음으로 거석들이 만들어 낸 원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거석의 하나하나에 사냥꾼들이 한명씩 서 있었다. 그들이 심사관들. 나머지 사냥꾼들은 모두 원진의 밖에서 진지한 얼굴로 야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센탄! 앞으로 나와라.”

 처음 상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름은 센탄.
 야예이는 그를 알고 있었다. 아니... 12명들 중 대부분은 그가 아는 자들이었다. 그때는 자신과 같이
새파란 애송이였던 센탄은 지금은 노련한 전사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모습에 틱틱 거리던 어린 전사.
 야예이는 그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의 그의 얼굴과 비교했다. 여전히 가늘고 긴 얼굴에는 이제 깊은 흉터가 져 있었다. 짐승의 손톱자국은 아니었다. 뾰족한 뭔가에 의한 상처였다.
 무엇일까?
 야예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도끼를 쥐고 자세를 잡았다. 센탄 역시 마찬가지로 무기를 들어 올려 자세를 취했다. 센탄의 무기는 장창이었다.
 센탄이 먼저 창을 찔러 들어왔다.
 야예이는 창을 피하는 동시에 창대를 타고 센탄에게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센탄은 그보다 빠르게 창을 회수하고 연거푸 2번을 더 찔렀다. 야예이는 그 공격을 모두 피하고 센탄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 팔꿈치를 날렸다. 그것을 센탄은 피하고는 잔걸음을 놀리며 뒤로 물러섰다. 물론 바로 뒤로 물러선 것이 아니라 조금 대각선으로 돈 후 창을 휘둘렀다.
 야예이는 그 공격을 막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저 창대 안쪽으로 뛰어들어 날만을 피했다. 그리고 주먹을 센탄의 얼굴을 내질렀다. 이미 공격하던 중이던 센탄은 그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한 아름정도 되는 자작나무를 반파시킬 수 있는 야예이의 주먹이 센탄의 얼굴에 닿았다.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센탄의 몸이 붕 떴다. 그리고 절대 놓아선 안될 무기도 놓쳤다.
 옆구리를 부여 잡으며 야예이는 뒤로 물러섰고 센탄은 다른 사냥꾼들에 의해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졌다. 힘 조절을 했으니 죽지는 않았겠지만 센탄으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승부였을 것이다. 어쨌든 자신의 부족함만을 더 깨닫게 된 승리였을 테니.

 “메잔!”

 두 번째 사냥꾼 역시 아는 얼굴이었다. 그는 어릴 때에 비해 한결 선이 굵어졌기에 과거의 모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야예이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저 본 것만이 아니라 한 번 겨뤄보기까지 했으니 기억에서 잊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메잔은 센탄이 쉽게 당하는 것을 보곤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야예이는 그의 무기가 바뀐 것을 보았다. 예전에 그는 단창을 썼었는데 지금은 템퍼처럼 마울을 쥐고 있다.체형이 바뀐 만큼 민첩함을 살리는 무기보다는 힘을 살리는 무기를 택한 것 같았다.

 “오랜만이군, 야예이.”

 메잔이 말을 걸어왔기에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과묵하군. 전의 패배에 대한 설욕을 해주지.”

 메잔이 말을 마치고 야예이에게로 파고들어왔다. 예전에도 돌진하는 속도가 빨랐는데 지금은 커진 덩치만큼 더욱 빨라져 있었다. 야예이는 같이 달려들어 그를 어께로 받았다. 덩치에서도 힘에서도 야예이가 훨씬 뛰어나기에 메잔은 오히려 뒤로 밀렸다. 민첩함도 야예이는 메잔을 압도했다.
 야예이는 그렇게 단 한번 부딪쳐 본 것만으로도 메잔의 신체적 역량의 대부분을 파악했다. 잘나봤자 메잔의 신체적 역량은 고작 탬퍼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다음 몇 번 무기를 대보는 것으로 그의 기교도 알아챘다. 아마 탬퍼랑 비슷한 수준일까?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야예이는 그렇게 생각한 다음 곧 바로 그의 옆에 달라붙었다. 초접근전의 전문가였던 탬퍼와는 달리 멘잔은 그렇지 못했기에 야예이는 탬퍼에게 당한 기술을 그대로 멘잔에게 시도해줄 수 있었다.
 멘잔은 결국 시무룩한 표정으로 패배를 시인했다.
 그는 자리로 돌아가다른 사냥꾼들로부터 비틀린 팔을 교정 받아야 했다.

 “라르크.”

 세 번째 사냥꾼은 두 개의 창을 쥐고 있었다. 그는 모르는 얼굴이었다. 단창 두 자루라는 일견 전혀 유용성 없어 보이는 무기를 선택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야예이는 그를 경계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앞의 둘 보다 그는 훨씬 강하다.
 대화 없이 바로 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야예이는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히며 도끼를 휘둘렀지만 남자는 그 공격을 거리를 두며 피했다. 그리고 손목을 이용해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리던 전광석화처럼 휘둘렀다. 야예이는 어께 보호대와 팔꿈치 보호대로 그 공격들을 막아내고 도끼자루를 사냥꾼의 복부에 휘둘렀다. 그는 그 공격을 맞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로 창을 찔러왔다. 상당한 맺집이라고 야예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야예이는 도끼를 놓고 찔러 들어오는 창의 날을 잡았다. 동시에 남은 주먹으로 그의 복부를 후려쳤다.
 세 번째 사냥꾼이 쓰러졌다.
 야예이는 피를 흘리는 손의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 심하게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오래 무기를 휘두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처였다.

 “윕스.”

 네 번째 사냥꾼은 수풀로 몸을 감싼 자였다. 그는 강인해 보였지만 동시에 연약해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육척봉을 휘두르며 야예이에게 덤볐고 야예이는 봉에 실린 강력한 힘에 놀랐다. 남자는 봉을 쌍날검처럼 사용했고 야예이는 그 짧은 단타들을 다 막아낼 순 없었다. 야예이는 단타들을 꿇고 도끼를 휘둘렀다. 남자는 물러섰지만 야예이가 놀린 것은 남자가 아니라 무기였다.
 육척봉이 부러진 남자는 이번에는 단봉처럼 무기들을 빈ㅇ글빙글 돌리며 공격해왔다. 야예이는 그 능숙함에 또 한 번 놀라고 그 공격을 받았다. 세 번째 남자처럼 무기를 잡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빠르고 강한 공격이었다. 야예이는 도끼를 크게 휘둘러 다시 한번 남자의 무기를 노려보았지만 역시 한번 경험했기 때문인지 힘들었다.
 하지만 야예이는 이번에 한 바퀴 빙들 돌며 도끼의 옆면으로 그의 몸을 후려쳤다. 우직하면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날려갔다. 야예이는 숨을 고르고 네 번재 남자가 치료받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남자가 나왔다. “크란.”이라는 이름의 그는 네 번째 남자만은 못했지만 노련하게 도끼 두 개를 사용했지만 야예이는 신속하게 그를 쓰러뜨렸다. 신속함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신속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타격을 허용하지 않으면 결정타를 줄 수 없는 자들뿐이었고 야예이는 여섯 번째 상대가 지나가고 일곱 번째 상대가 왔을 때는 거의 녹초가 되고 말았다. 한수 아래인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수와 상당한 격전을 벌이고 있으니 아무리 야예이라도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절대 져선 안된다는 생각이 그를 더욱 긴장케 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야예이는 숨을 몰아쉬며 여덟 번째 상대를 맞이했다.
 ‘타룬트.’라는 이름의 남자는 대검을 사용하는 자였다. 그는 빠르고 강했다.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닌 지금이라면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야예이는 허리에 상처를 입으며 ‘타룬트’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마라두는 그런 야예이를 냉정히 관찰하고 있었다. 다른 사냥꾼들 역시 무릎을 꿇은 야예이를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것은 패자뿐이다. 야예이는 아직 시험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야예이는 스스로 일어서야 했다. 단지 그들은 야예이가 일어설 때까지 시간을 줄 뿐이었다.
 비명 같은 전투 함성과 함께 야예이가 일어섰다.

 “아달론!”
 
 이어 마라두의 선포와 함께 아홉 번째 사냥꾼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방패와 몽둥이를 쥐고 서 있었다. 털이 많은 외모와 왠지 원숭이를 닮은 듯한 얼굴. 백새의 머리카락과 털은 하얀 털가죽 갑옷과 어울려 그를 하얀 짐승처럼 보이게 했다. 실제로 그렇게 불리기도 했고...
 하얀 짐승 아달론은 한치도 움직이지 않고 야예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아달론은 상처 입은 짐승 곁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야예이가 스스로 쓰러지기를 기다리기로 한 듯 했다.
 하지만 야예이는 그가 기다리게 하기보다는 자신이 뛰어드는 쪽을 선택했다. 체력이 극심히 모자랐기에 봐주고 말 것도 할 것 없이 야예이는 처음으로 전력으로 일격을 가했다.
 단 일격에 방패가 부서졌다.
 하지만 아달론은 장검을 찔러 정교하게 야예이의 허리를 갈랐다. 그에 야예이는 노성을 지르며 찍어 가를 듯 도끼를 휘둘렀지만 아달론은 그 공격을 피했다.
 상처가 야예이에게 야성을 일깨우고 있었다. 오크의 피로부터 오는 공격성. 포학. 상대하는 아단론을 비롯한 사냥꾼들과 마라두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야예이도.
 야예이는 주춤하면서 자신을 갈무리 했다. 숨을 몰아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처에서 피가 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을 오래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야예이는 내면의 야수를 끌어내며 동시에 그것을 억누르려고 노력했다.
 야예이는 아달론에게 도끼를 내던지고는 바로 달려들었다. 아달론은 도끼를 피했지만 야예이가 달려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야예이의 주먹이 아달론의 뺨과 가슴을 후려쳤다. 그에 아달론 역시 검을 손에 놓고 야예이에게 맞서기 시작했다. 
 아달론과 야예이는 몇 분을 그렇게 치고 박았다.
 사냥꾼들은 그 둘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아달론은 야예이에 비해 덩치도 작고 힘도 적었지만 야예이는 상처를 입고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결국 먼저 쓰러진 것은 야예이였다. 빈혈을 일으키기 시작한 야예이가 빈틈을 내자 그 순간 야예이의 턱으로 아달론이 주먹을 올려친 것이다. 야예이는 그 일격에 몸을 한 번 비틀거리고는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제야 사냥꾼들은 야예이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라두는 아달론에게 물었다.

 “어쩌겠느냐?”

 아달론은 마라두의 질문에 야예이를 잠시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던 그는 결정을 말했다.

 “인정하겠습니다.”

 마라두는 아달론의 대답을 듣고는 다른 남은 3인을 쳐다보았다.

 “그대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인정하겠습니다.”

 셋 역시 그렇게 말했다.

 야예이는 눈을 떴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밤은 써늘했다.
 야예이는 곧 자신이 아달론에게 패해 쓰러졌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자신은 사냥꾼이 될 수 있었는가? 야예이는 고민했다.

 “깨어났느냐?”

 목소리가 들리기에 자리에서 일어난 야예이는 몸에 통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위로 올려다보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마라두가 보였다.

 “마라두?”

 “그래, 나다. 상처는 치료해 두었다. 몸은 어떠냐?”

 “충분히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야예이가 일어서며 묻자 마라두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를 만나고서 처음 보는 웃음이었기에 야예이는 그 웃음이 뭔가 의미있게 다가왔다.
 
 “너는 진정 에크로반의 아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후계자야. 합격이다. 네가 하프오크라는 사실 때문에 이 시험을 반대하는 자들조차 너의 역량에 감탄했단다. 너는 너의 육체와 기교, 정신으로 그들에게 인정받았다.”

 “그렇군요.”
 
 야예이는 실감이 나지 않았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주먹을 폈다 쥔다. 마라두는 그런 야예이를 보며 빙긋 웃었다.

 “야예이. 에크로반이 내 목숨을 구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

 야예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에크로반이 케자드 족과 맺을 수 있었던 인연자체는 전부 에크로반이 아이스 트롤에게서 마라두를 구했던 일로부터 였다. 그때 그의 이름은 아직 샤람이었고 겨울날식량을 구하기 위해 5명의 사냥꾼들을 이끌고 산을 방황했던 때였다.

 “나는 그때 이후 계속 그에게 빚을 진 기분이었다. 그와 우정을 나누고 그를 부족의 일원이 되게 하여 우리의 비전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여전히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지. 하지만 이제야 그의 빚을 갚은 기분이구나.”

 “마라두...”

 야예이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기에 손을 들어 눈을 훔쳤다. 마라두는 야예이의 그런 모습을 보며  혼잣말처럼 계속 중얼거리듯이 말을 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그래. 그는 가장 높은 산이었지. 저 신성한 산처럼. 내가 아닌 외지인인 그가 마라두가 되어야 했다고 나는 항상 느껴왔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어. 하지만 이걸로 왠지 이제는 괜찮을 것 같구나. 그가 그것을 위해 너를 나에게 보냈다고 생각되는 참이란다.”

 마라두는 신성한 산을 올려다보았다. 

 “야예이. 그처럼 가장 높은 산이 되도록 해라. 뿌리가 깊고 넓어 흔들림 없이 모든 이를 포용하고 가장 높아 모든 이를 내려다보며 보살필 수 있도록. 내가 너를 가르치겠다.”

 기어코 야예이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마라두는 그를 다독여 줬지만 야예이는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이 끝나면 돌아 오거라. 너에게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일러주마.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네게 영구히 일족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하라고 말하진 않겠다. 외지인인 네겐 밖에 두고 온 인연들고 있을 테지. 하지만 네게 가족이 있음을 기억 하거라. 케자드 족의 사냥꾼은 누구라도 가족이다.”

 “네.”

 야예이는 대답했다.
****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지스나이 족의 처녀는 케자드 족의 전통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반대편에는 쳄바라가 화색을 띄고 처녀를 바라보고 있다.

 “오랜만입니다. 아가씨.”

 “응, 오랜만이야. 할멈.”

 “클클클. 그보다 어인일로 오셨습니까? 그것도 저런 이들 틈에서. 어머님을 뵈시러 온 것은 아닌 듯 한데...”

 “맞아. 아니야.”

 처녀는 미소를 지었다.

 “인연을 가진 이들이 둘이나 있거든. 하나는 지인의 전인이고 한 사람은 여섯의 제자지.”

 “아아. 그 전사와 마법사말이로군요. 그렇다면 그 마법사가?”

 “그래. 나를 찾기 위해 여섯이 만들어낸 것이지. 슬슬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일까?”

 “물론 그렇겠지요. 그들은 여섯이기에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그 마법사는 아직 불완전해 보이던데... 여섯의 솜씨는 아직 무딘 모양이군요.”

 “설마.”

 쳄바라의 말에 처녀는 어께를 으쓱했다.

 “거부한 것이겠지. 마법사는. 적어도 여섯을 따라할 만큼 말이야.”

 “흠, 그 생각은 못했습니다. 이제는 늙었으니 말이죠. 몸도 머리도 예전만 못하답니다. 아, 그리고 여섯이 찾아왔었습니다. 아가씨를 찾고 계시더군요.”

 “그래? 하긴 계들도 예지는 할 수 있으니까. 슬슬 큰일이 터진다는 것쯤은 눈치 챘겠지.”

 “그래서 만나실 겁니까?”

 쳄바라의 질문에 처녀는 손사레까지 치며 크게 웃었다.

 “설마? 어떻게 얻은 자윤데. 뭐, 조만간 만나긴 해야겠지만 아직은 예정 없음이야. 해야 할 일도 있고 말이지.”

 “그러시군요. 뭐, 이 할미는 아가씨께서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한시름 놓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군요.”

 쳄바라가 걱정 섞인 표정을 짓자 처녀는 웃음을 멈췄다.

 “흐음. 걱정마. 어차피 그 일은 지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걸. 좀 혼란이야 있겠지만. 게다가 일이 난다면 눈 깜작할 사이에 끝나버릴 거야. 아, 그런데 이 이야기 비밀이다.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줘서는 안되거든. 꼭 부. 탁. 해.”

 손가락을 들어 올려 입의 중앙에 가져다 대곤 처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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