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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46

2009.01.16 11:50

azelight 조회 수:587

헉헉. 겨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일주일마다 한번씩 꼭 슬럼프에 빠지는 징크스는 여전한듯;;;
일주일 정도 실컷 잘 적더니 또 이러는 군요;;;
아우;;;
하지만 최근 정말 한계를 느낍니다.
제 단점은 보이는데 어떻게 고쳐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할까요;;;
이런 저런 예시를 찾고자 사뒀던 책을 재탕하곤 하는데;;;
정작 쓰다보면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게 절 또 미치게 만들어주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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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거의 기울었을 때쯤에 일행은 케자드족의 부락의 근처에 다다를 수 있었다.
 다행히 트롤과 맞닥뜨리지도 않았고 전투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멀리서 한 번 예티들을 목격하긴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야예이는 신중하게 흔적들을 살피며 길을 골랐다. 그리고 피해야할 것들은 피하고 숨어야 할 때는 숨으며 산을 올랐다.
 다행히 진지해진 야예이는 그 어떤 레인저보다도 유능하게 행동했고 일행들은 이유도 모르고 숨거나 길을 돌아가며 결국 예티 외에는 다른 몬스터들을 보지도 못했다.

 “죽겠다.”

 낸시는 헉헉 거리면서 중얼 거렸다. 처음에 비하면 한결 따라갈만 했지만 신체의 단련이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는 낸시는 그럼에도 죽을 지경이었다.

 “거의 다 왔어. 저기 능선을 넘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

 야예이는 손을 들어 지금 올라가고 있는 산등성이의 끝을 가리켰다. 야예이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낸시에게는 사형선고 같은 말이었다.

 “여기서... 더... 가야한다고?”

 낸시는 결국 주저 앉더니 “안돼. 이젠 못 가. 좀 쉬어!”라고 소리치며 징징거렸다. 야예이는 난감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른 동료들은 상태만 낸시보다 조금 나았지 마음은 똑같은 모양이었다. 시장에 올라온 생선처럼 죽은 눈으로 그들은 야예이를 바라보았다. 오직 걷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지치지 않는 뮬리아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럼 좀 쉬기로 합시다.”

 야예이는 모두의 의견을 반영해 결정을 내렸다. 아직 해는 떠 있었고, 좀 쉰다고 해도 황혼 무렵이면 케자드 족의 부락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예이는 일행이 쉬는 동안 혼자 능선 위를 미리 갔다와보기로 했다. 야예이가 움직이자 토른이 그 뒤를 따랐고 가장 멀쩡한 뮬리아 역시 따라왔다. 산 등선이를 올라 능선에 서자 완만한 경사가 쭉 보였다. 그리고 그 끝에 아주 작은 검은 점이 보였다. 그곳이 케자드 족의 부락이었다. 그 곳을 뮬리아 역시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부족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가 케자드 족의 부락인가요?”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 에크로반이 아직 살아있었을 시기에 그는 이곳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었다. 에크로반은 그가 케지드 족으로부터 배웠던 것을 야예이도 배우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야예이는 에크로반의 의도대로 그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이해하는 법. 그 힘을 빌리고 이용하는 법. 야예이는 케자드 족의 사냥꾼장인 마라두로부터 배운 것들은 셀 수 없었다. 그는 아들처럼 여기는 에크로반의 제자를 위해 금기시되는 혼혈인인 야예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작군요. 세계의 지붕에는 몬스터들 역시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 저런 작은 규모의 부락을 유지해오다니 대단하네요. 게다가 방책도 취약해 보이는데.”

 뮬리아는 감탄한 듯 말했다. 나무 목책이 서 있지만 그것들은 아이스 트롤과 예티들의 힘 앞에서는 그렇게 견고한 방어책은 되지 못했다. 거기다가 몬스터들의 개개의 힘이 평균적인 인간들의 능력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생각하며 적은 수 역시 생존에 유리하지 못했다.
 물론 많은 숫자는 이런 험지에서 식량 공급 등의 근본적인 제약을 겪게 될 것이지만 저래서야 몬스터들에게 저항할 수 있을지 조차 의아할 정도의 수였다.

 “그들은 모두 사냥꾼입니다. 심지어 아이 조차도 말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요. 저들 중 가장 못한 이가 다란 지역에 간다면 가장 뛰어난 사냥꾼으로 추앙받을 수 있을 정도 입니다.”

 야예이는 그리운 표정을 하고는 그렇게 말했다. 에크로반과 함께 몇 안되는 추억의 조각들이 있는 장소를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각별했다. 에크로반이 없는 지금도 그들이 그를 받아들여줄이지 알 순 없지만 그럼에도 야예이는 각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흐음. 굉장한 평가네요. 하긴 이런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겠죠. 야예이씨와 비교하면 어때요?”

 “저와 말입니까?”

 “네.”

 뮬리아는 대답을 기대하고 있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하지만 야예이는 난감했다. 그런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케자드 족의 사냥꾼들을 깎아 내릴 생각도 없었다. 그렇다보니 해줄 이야기도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과 딱히 겨뤄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런 생각을 해본적도 없고요.”

 야예이의 대답에 뮬리아는 예상했던 대답이라는 표정을 짓고는 케자드 족의 부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는 야예이가 딱히 저들에 비해 모자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야예이는 자신이 없나 보죠?”

 야예이는 뮬리아의 말에 조금 생각해보았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금세 떠오르지 않았기에 침묵은 길게 이어졌다. 왠지 상대를 무시하는 듯이 보여 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뮬리아는 그런 우려와는 달리 생글생글 웃으며 야예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예이는 어째서 그녀가 이런 질문을 하는지 궁금해 하면서 대답했다.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자신감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자기가 말했지만 왠지 우울한 기분이 드는 야예이였다. 뮬리아도 야예이가 침울해하는 것을 눈치 챈 듯했다. 뮬리아는 물었다.

 “야예이. 당신은 아직 자신의 힘을 비교해 본 적이 없지요?”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예이에게 있어 비교 상대는 언제나 에크로반 뿐이었다. 케자드 족들 틈에서 잠시 있었다곤 하지만 그 때의 그는 그들의 상대조차 되지 못했었기에 비교의 대상이 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는 겁니까?”
 
 야예이의 질문에 뮬리아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찡그린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이었다.

 “흐음. 그냥 이랄까요. 왠지 당신이 답답하게 굴어서 말이에요. 전에 마차에서도 그랬고. 제가 좀 참견쟁이 기질이 있거든요. 하하하.”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뮬리아는 말했지만 야예이는 그리 믿음이 가지 않았다. 보통 만난지 일주일도 안되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간섭하던가? 야예이가 사람 경험이 짧긴 하지만 주변인들을 비쳐본 것만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째보면 일행 내에서 가장 참견장이 기질이 보이는 탬퍼도 이러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랬기에 야예이는 미심쩍다는 눈빛을 뮬리아에게 보냈다. 뮬리아는 그 시선을 알면서도 딴청을 부리며 토른을 상대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만. 돌아가죠. 더 이상 쉬게 하면 도착하기 전에 밤이 될 것 같아요.”

 야예이는 하늘을 보고는 그 말이 옳다는 사실을 알았다.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일행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
 산길을 타고 올라오는 외지인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케란이라는 사냥꾼이었다. 그는 그럭저럭인 사냥실력과는 달리 제법 눈은 좋은 편이었지만 그 덕에 외지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새하얗게 펼쳐진 산길에 깐만 점들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자들은 없을 것이다.
 케란은 처음에는 예티들인가 했지만 좋은 눈 덕에 금세 그들이 무장을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케란은 곧 이상함을 느꼈다. 신성한 산을 정복하겠다고 가끔 씩 올라오는 대규모의 원정대에 비하면 무척이나 소수 인원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물자도 그렇게 풍부하게 챙기고 있지 않았다. 마치 금세 내려가기라도 할 것처럼...
 하지만 그 보다 케란은 더 중요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다. 케란은 그들이 부락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었다.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그들은 외지인들의 방문에 민감했기 때문이었다. 케란은 쳄바라가 모두에게 알린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저들이 쳄바라가 말한 그 손님일지도 몰랐다. 케란은 일단 마라두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판단한 즉시 몸을 움직였다.

 부락에 거의 다다른 일행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 부락을 나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예이는 일행들을 멈추게 하고 혼자서 케자드 족의 사냥꾼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사냥꾼의 손짓을 했다. 그러자 무리들 중 대표로 보이는 남자 역시 같은 손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야예이. 오랜만이구나.”

 “샤람. 오랜만입니다.”

 “이제는 샤람이 아니다. 나는 마라두다. 네가 아는 전대는 3년 전 돌아 가셨다. 평온한 죽음이셨지.”
 
 마라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야예이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예상은 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듣고 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슬퍼하지 말거라.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않느냐? 그보다 손님들을 모시고 따라 오거라. 쳄바라께서 이미 네가 올 것을 예견하고 계셨단다.”

 마라두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것을 야예이가 막았다.

 “잠시만... 스승님에 대해 전해야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크로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라두는 손을 들어 막은 다음 말했다.

 “쳄바라께서는 기다리고 계신다. 일단은 따라오도록 해라.”

 완고한 태도로 야예이의 말을 막은 그는 걷기 시작했다. 사냥꾼들도 그들의 우두머리인 마라두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걸어가기 시작하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야예이에게로 다가왔다.

 “어떻게 되었나?”

 이미 야예이에게서 케자드 족이 배타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탬퍼는 걱정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야예이의 행동과 표정을 보니 왠지 잘되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탬퍼는 그를 책하기보다는 위로해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야예이에게 물었다.

 “따라오라고 합니다. 쳄바라께서 이미 저희가 올 것을 예견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쳄바라?”

 모르는 단어가 나오자 낸시가 마법사다운 혹기심을 담아 바로 질문해 왔다.

 “가면서 설명하겠습니다. 일단은 따라가지요.”

 야예이는 사냥꾼들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미 사냥꾼들은 듬성듬성한 목책들의 사이를 지나 부락 안 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사냥꾼들의 어께 너모로는 누크와 예티들의 모피로 만들어진 케자드족 특유의 천막인 예눅의 모습이 보였다. 야예이는 몇 년 만에 보는 마을의 광경에 침울해졌다. 아무리 케자드 족의 사냥꾼의 길을 따르고 있답지만 그는 여전히 문화적인 타인이었다.
 야예이는 자신에게 뿌리가 없음을 직시하며 쳄바라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발치에서 부락을 보았을 때 느꼈던 그리움도 그 괴리감에 희석되어 버렸기에 그의 목소리 자체는 평탄하게 흘러 나왔다.

 “쳄바라는 일종의 정신적 지도자입니다. 샤먼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실제적인 부락을 일을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부분을 인도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부락의 이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쳄바라는 부락의 정신적 지도자이지만 저 신성한 산. 여러분들이 세계의 지붕이라고 부르는 영산의 사자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부락과 산을 연결하는 다리인 것입니다.”
 
 야예이는 나름 단어를 짜내서 설명했지만 일행들이 잘 알아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쳄바라의 존재는 말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의미가 통할 것 같은 단어를 말하더라도 이쪽에는 그쪽에 없는 뜻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런데 낸시가 “저요.”하고 손을 들었다.

 “그녀라면 쳄바라는 여자가 하는 거야?”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쳄바라가 정확히 족장이 아니라면 족장의 역할을 하는 자도 있어?”

 “그게 마라두야. 설명은 조금 있다가 하지. 쳄바라의 천막에 다 왔어.”

 낸시의 질문에 대답해준 야예이는 그렇게 말하고 사냥꾼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냥꾼들은 쳄바라의 천막을 호위하듯 입구 양편에 쭉 늘어섰다. 마라두는 천막입구를 들춰 쥐고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야예이는 몸을 숙여 천막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행들이 뒤이어 들어왔고 마라두는 맨 마지막에 들어왔다.
 천막 안에는 따뜻한 공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연기가 나가도록 뻥 뚫린 천막 아래에는 화로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천막의 외벽에는 가죽공예품이라던가 목조상이 늘어서 있었다. 목조상은 전부 사냥꾼들을 조각해놓은 것들과 몬스터들을 조각해둔 것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특별히 연관성을 띠고 있거나 하진 않았다. 그리고 일행이 들어온 입구 맞은편에 작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잿빛 털모자를 포함해 케자드족 전통옷을 입고 있는 노인이바로 쳄바라였다.

 “겔겔겔. 오랜만이구나아. 야예이야.”

 쳄바라는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말했기에 야예이는 그녀의 시각에 이상이 생겼음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야예이는 특별히 언급하거나 하지 않았다. 쳄바라는 초월적인 존재였고 시각은 쳄바라에게 있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네, 오랜만입니다.”

 야예이는 정좌를 하고 앉고는 말했다. 야예이의 뒤에 서 있던 일행들은 어떻게 해야할 지 알지 못해 웅성거렸지만 곧 마라두까지 야예이 옆에서 정좌를 하자 똑같이 따라 하기로 했다. 쳄바라는 일행들의 웅성거림이 느껴졌던지 또 다시 웃고는 말했다.

 “손님들은 편안히 앉으시게나. 굳이 우리 두 아이를 따라할 필요는 없네. 그 절그렁 거리는 쇠옷을 입고 정좌하기는 쉽지 않지 않나? 이야기가 좀 길어질 테니 편히 앉게나.”

 쳄바라가 말한 후 일행들이 우물쭈물 거리자 마라두가 어서 편하게 앉으라는 식으로 손짓을 해 보였다. 쳄바라는 그것 역시 아는 지 “클클클.”하고 웃을 뿐이었다. 야예이를 제외한 일행들은 어쩔까 하나다 일단 고쳐 앉기로 했다.
 일행이 전부 각자 편한 자세를 취하자 또 다시 쳄바라는 입을 열었다.

 “흘. 저기 천족 아가씨는 여기로 나와 앉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누?”

 키엘리니는 쳄바라가 자기를 지목하자 깜짝 놀랐다. 실제로 이 세계의 지붕으로 와야 했던 이유를 가진 사람은 그녀 하나였지만 말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듯 그녀를 지목했기 때문이었다.

 “네. 헌데 어떻게 알고 계신 것이지요?”

 키엘리니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쳄바라에게 질문했다. 쳄바라는 또 다시 “클클클.”하고 웃더니 키엘리니의 의문에 답을 해줬다.

 “산이 알려주기 때문이네. 천족 아가씨. 네가 반드시 이 신성한 산을 올라야할 이유가 있다고 하는 구만. 하지만 나는 자네에게 숙고하라고 말하고 싶네. 만약 자네가 찾고자하는 것을 찾는 다면 자네의 인생은 크게 변하게 될 것이야.”

 쳄바라의 말은 네달렉스가 말했던 ‘시련’을 잠재적으로 예언하는 것이라고 키엘리니는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녀 속의 공허는 최근 기억을 찾고자 하는 의지 때문인지 잠자코 있었지만 만약 일을 그만둔다면 자신을 삼켜버릴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과연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가? 전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그리고 키엘리니는 자신이 있었다. 어떤 시련일지라도 헤쳐나갈 수 있노라고. 자신에게는 강한의지와 힘 그리고 신앙이 있었다.

 “저는 여기서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키엘리니는 단호히 말했다. 그에 쳄바라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탄했다.

 “그렇겠지. 자네에게서 단호한 의지를 느꼈네. 그리고 그 외의 것도.”

 “네?”

 키엘리니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자네는 굶주려 있네. 셀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과거와 단절되어 있었고 그 반동이 자네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네. 그리고 자네가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영원히 그 공허는 사라지지 않고 더 커지겠지...”

 “마치 저주 같군요. 하지만 셀 수 없는 시간이라니...”

 “천족의 수명은 범인이 헤아리기 힘든 경향이 있지. 아가씨는 무척 오래 살았네. 저 신성한 산을 수호하는 새하얀 드래곤보다도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과거과 죄로 점철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네. 무작정 거부하려고 마음먹을 필요는 없단 말일세. 자네 눈으로 스스로 보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네. 아가씨의 선택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키엘리니는 쳄바라의 말을 듣고 신의 계시를 받는 것 같은 태도로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토록 원했던 과거의 잔재를 이 산에서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인 듯 했다.

 “그리고...”

 쳄바라는 고개를 돌리다 뮬리아를 보고 움찔했다. 하지만 워낙 작은 반응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챈 사람은 오직 야예이와 뮬리아 뿐이었다. 야예이는 반사적으로 뮬리아에게로 시선을 고정시키려다가 그만뒀다. 굳이 쳄바라가 말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굳이 시선을 줘서 눈치를 줄 필요는 없었다..
 쳄바라는 뮬리아에게서 고개를 돌려 낸시를 바라보았다.

 “아. 마법사인 아가씨이로군. 오만한 존재들이지만 그만큼 책임을 지려하는 자들이지. 아가씨는 현재 자신이기를 거부하고 있지?”

 쳄바라의 말에 낸시의 인상이 맹렬히 차가워졌다. 얼음처럼 냉랭해져 더 이상 평소의 낸시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말하지 말아주세요.”

 낸시는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투 중에 몇 번 낸시가 냉정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이토록 돌변하는 일은 처음이기에 원래 일행이던 탬퍼와 로딘도 조금 놀라고 있었다.

 “클클클. 그렇다면 말하지 않겠네만... 하지만 외면해봤자 소용없어. 그건 분명 자네의 일부네. 자네의 일부조차도 자신을 싫어한다만. 그래도 그것을 끌어안아야 할 때가 올 거야.”

 낸시는 뭐라 반박하려하다가 “후.”하고 한숨을 쉬었다. 낸시는 굳은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쳄바라를 노려보았지만 쳄바라는 알랑 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날랜 전사도 있군. 걱정거리는 중요하게 생각 말게. 하지만 반년 안에 한 번 들리는 것이 좋을 거야.”

 로딘은 표정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듯한 낸시와는 대조적으로 대단히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의혹, 그리움, 일그러짐, 슬픔, 걱정. 온갖것들이 공존하는 듯한 그의 표정은 낸시처럼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전신의 사제. 자네에겐 이미 무에 대한 욕구 밖에 없군. 신앙이 욕구와 일체를 이루고 경지는 결코 낮다 할 수 없으니 이 불완전한 무리들 중 자네가 가장 낫구나.”

 “과찬입니다.”

 탬퍼 역시 드물게 겸손히 말했다. 쳄바라는 “클클클”하고 웃었다. 더 이상 눈 앞의 존재가 단순한 노인이 아님을 일행들 전부가 깨달았다. 숨겨져 있던 그 존재감은 예지와 예견이 발현될 때 여지없이 드러나 쳄바라를 마치 거인처럼 그리고 거북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자네들이 오를 산에 계신 분은 오랫동안 우리가 감금하고 가둬두고 계신 분이네. 힘을 가진 몇몇이 우리와 진정한 파수꾼을 꿰뚫고 그 분께 도달한 적이 있지만 말이야. 그 분은 풀려날 수 있으셨지만 스스로 거부하셨던 것이지. 이번에는 어떨지 알 수 없군. 천족 아가씨가 그분이 기다리시던 분일까? 궁금하군.”

 “쳄바라.”

 즐겁다는 듯이 웃는 쳄바라를 보며 마라두가 우려 섞인 질책을 담아 그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쳄바라는 그리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불경한 이야기가 아니지 않나. 걱정 말게. 어차피 우리의 수호의 기한이 끝나가고 있음은 이미 알고 있던 일이야. 그런데 이렇게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녀가 아닐지 의심스럽지 않나? 그것도 천족의 아가씨라면.”

 “음...”

 마라두는 말을 있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이 신성한 산에는 오래 전 신에 대항했다던 불경한 존재가 존재했다. 그리고 케자드 족의 오랜 전승에는 수호의 의무가 끝날 때 산의 예언자. 여명과도 같은 자를 해방시킬 자가 나타날 것이라 하였던 것이다.

 “예언이라니... 어떤 예언입니까?”

 키엘리니가 질문하자 쳄바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가르쳐 줄 수 없네. 산에 올라 드래곤의 수호를 깨부수고 직접 그 분께 가서 듣게나. 그것이 바로 자네가 해야 할 일이야. 그러기 위해서 오늘은 쉬어 두게나. 자네들을 위한 가장 빠른길을 준비해둘 터이니.”

 “쳄바라!”

 또 한 번 마라두가 소리쳤다. 하지만 여전히 쳄바라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예언의 사람이라면 어떤 길로 가든 그 분의 곁에 갈 수 있을 것이고 어떤 길이 있다 해도 찾아낼 것이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분의 의지이지 우리가 아니야. 네가 여전히 아직 아이인 샤람이라고 내게 말하고 싶기라도 한 것이냐?”

 마라두는 쳄바라의 질책에 입을 다물었다. 옛 이름을 불린다는 것은 굴욕 중의 굴욕이었다. 그가 지금 가진 이름을 유지할 자격이 없다라고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마라두는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분명 자신에게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마라두는 생각했다. 쳄바라는 결코 틀린 결정을 내리진 않는다. 비록 그것이 부락을 위한 일이 안된다 하더라도 그녀가 이 신성한 산에서 내린 결정은 전부 옳은 결정인 것이다. 신성한 산이 쳄바라에게 그런 영적인 힘을 내려주고 있었다.

 “이해했다면 마라두. 그대의 재량으로 이들에게 쉴 곳을 내주게나.”

 마라두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그리고 일행에게 나가기를 조용히 권했다. 일행들은 마라두와 쳄바라의 격한 대화에 눌려 있었기에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라두는 일행을 이끌고 천막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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