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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45

2009.01.13 22:47

azelight 조회 수:532

이제 50화까지 5화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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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낸시가 욕조에서 익사할 뻔한 소동이 있긴 했지만 일행은 무사히 목욕과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여관주인인 데타프는 호탕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친절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그가 받기로 약속된 돈 이상으로 일행들의 편의를 봐주었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줄줄이 들려주기도 했다.
 일행을 이곳으로 안내한 경비대장의 이름이 보스탄이라는 것과 이 여관이 노르윈의 단 3개 뿐인 여관이라는 이야기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일행이 세계의 지붕을 오를 예정이라고 하자 이유도 묻지 않고 몇 가지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모험가들이나 상인들과 대화하는 것에도 익숙한 듯이 보였다. 아마 그 나름대로 짐작하는 일이 있었을 것이었다. 사악한 마법사들과 투쟁하는 모험가라는 고전적인 구도는 여러모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일이었다. 아마 여관주인의 친절에는 이런 상상과 추측으로부터 오는 것들도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덕분에 일행은 노르윈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여러모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근 일어나는 몇 가지 문제들. 노르윈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상인들의 소식이 끊기는 일. 도시 외부를 순찰하던 경비병들을 습격한 라이칸스로프들.
 특히 라이칸스로프들에 대한 소식은 중요한 것이었다. 세계의 지붕으로 가는 도중 일행도 라이칸스로프들과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라이칸스로프인가.”

 야예이는 털썩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우며 중얼 거렸다. 갈색 산맥에서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인간에 비해 라이칸스로프들의 위협에 쉽게 노출되는 오크같은 종들이 변이한 웨어보어나 웨어울프들은 강력하면서도 끈질긴 적이었다. 트롤에 버금갈 만큼의 재생력과 완력, 그 이상인 야성과 민첩함, 지능. 거기다 그 폭력성의 근원이 트롤과는 달리 제어 불가능한 광기라는 점에서 그들은 위험한 존재였다.
 상처입어도 멈추지 않고 양팔이 끊어지고 양다리를 부숴도 끊임없이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기 위해 노력한다. 거기다가 타액을 통해 라이칸스로프 질병을 전염시키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물려서는 안 되었다. 

 “걱정되나?”

 한 칸 떨어진 자리에 놓인 침대에 앉은 로딘이 야예이에게 물었다. 야예이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됩니다. 아무래도 위험한 것들이 점점 늘어만 나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거기다 마법사의 일도 있고... 아무래도 가볍게 여길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로딘은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점점 위험만 늘어나는 느낌이야. 마법사에 라이칸스로프. 이렇게 끝도 없이 위기만 찾아오다니. 정말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

 드문 불평을 하며 로딘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렇게 목숨을 건사하기도 힘들 것 같은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일은 분명 드문 일이었다. 오랜 그의 모험 경력에 비춰 봐도 말이다. 거기다가 아직 몇  곳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뭔가의 커다란 일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환란의 때가 다가옴을 예고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탬퍼가 보고 있던 소식지를 내려놓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 역시 뭔가 조짐이 임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력한 흑마법사인 다르카신과 제국의 균형이 깨어지고, 그의 제자들은 타락하여 인세를 초월한 존재가 되었다. 거기다 노르윈에는 라이칸스로프들이 횡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어지간히 둔한자도 뭔가 큰일이 터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합니까?”

 로딘의 물음에 탬퍼는 “그렇다네.”라고 대답했다. 로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국의 운명 따위를 걱정하거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로딘은 고향에 두고 온 자신의 아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탬퍼는 그런 로딘의 표정을 보고는 로딘의 생각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했다. 뭐라 해도 그와 로딘은 낸시가 끼어들기 전에도 함께 모험을 했었던 동지였다. 전쟁에 대한 가능성이 보이는 이상 가족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했고 탬퍼는 쉽게 로단의 아들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다.
 
 “아들이 걱정되는 건가?”

 “조금 그렇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하군요.”

 로딘은 먼눈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분명 아들을 보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이곳은 그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타향이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본지 거의 4년이 넘은 지 오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낸시를 만난 이후 단 한 번도 그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야 찾아간다 해도 그를 알아볼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다.

 “지금쯤이면 나이가 10살 정도 되었겠군. 이번 일이 끝나면 함께 가보세.”

 탬퍼의 말에 로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누웠다. 뭔가에 생각에 잠긴 듯한 그의 얼굴은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야예이는 자리에 눕는 로딘은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이까지 있다는 남자가 굳이 모험가 생활을 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묻거나 하는 눈치 없는 짓을 하진 않았다.
 로딘은 그 ‘아들’ 때문에 우울해하는 듯이 보였고 굳이 그에게 우울해질 일을 상기시켜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야예이는 눈을 감았다.
 평소라면 이런 이른 시간에 절대 잠들지 않겠지만 오늘은 너무나도 피곤했다. 마법사와의 전투도 그렇고... 비록 성직자들의 기도를 통해 육체를 회복했지만 피로는 여전히 축적된 상태였다.
 잠은 금세 그의 몸을 침식했다.
****
 아침부터 일행은 부산스러웠다.
 그들은 세계의 지붕을 오를 준비를 하면서 ‘대 라이칸스로프전’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있었다. 로딘과 탬퍼는 사비를 털어 공방을 찾아가 무기에 은도금을 했고, 낸시는 라이칸스로피 역병에 저항할 수 있는 주술을 일행의 몸에 일일이 걸었다. 덕분에 노르윈에서 맞은 첫 아침은 몹시도 분주했다. 겨우 일을 다 끝냈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떠오른 뒤였다.
 일행은 마차와 짐을 맡겨 놓고 여관을 나섰다. 노르윈의 유일한 입구이자 출구인 성문으로 왔을 때, 어제 일행들을 여관으로 안내해준 경비대장 보스탄이 일행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

 “여어. 출발하는 건가?”

 일행의 대표로 키엘리니가 나서서 대답했다.

 “네. 이제 올라갑니다. 하지만 먼 여정이 될 것 같네요.”

 멀리 보이는 광대한 세계의 지붕의 뿌리를 바라보며 키엘리니는 말했다. 원체 높아서인지 가장 낮은 산등성이들은 어마어마한 넓이로 퍼져 있었다. 저 둘레를 돌려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몇일은 걸릴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세상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산이지. 세상의 그 어디에도 이만한 것은 없다고 내 자부하네. 보는 자에게 숙연함과 경의를 품게 하는 산이지.”

 경비대장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수염 때문에 입가는 묻혔지만 가늘어진 두 눈을 통해 그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맞아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세계에 있어 티끌 같음을 알려주는 곳이지요.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는 용기를 가진 자들도 저 산앞에서는 대부분 그 용기를 꺾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하하하하. 하지만 자네들은 오를 생각이지 않나. 뭐, 건투를 비네. 자네들이 어떤 모험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중요한 일일 것 같은 예감이 드니 말일세. 아, 그러고 보니 자네들에게 알려줄 것이 있네. 혹시 라이칸스로프에 대해서 말인데.”

 경비대장은 말끝을 흐렸다.

 “어제도 그들과 경비병들이 맞닥뜨렸네. 그 중에는 나도 끼여 있었지. 그런데 이놈들이 보통 라이칸스로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

 “무슨 이야기이시죠?”

 키엘리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부정한 존재들이 강력한 힘을가지고 존재하다니. 우려할만한 일이었다.

 “그들은 변신 상태에서도 지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네. 곰으로 변한 상태에서 내 부하 한명을 붙잡고 그들은 도망쳐 버렸네. 그때 나는 들은 걸세. 놈들은 변신한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

 소름끼치는 듯 몸을 움츠리며 경비대장이 말했다. 그 와함께 낸시의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불가능해요.”

 경비대장은 낸시의 말을 긍정했다.

 “맞네. 불가능한 일이지. 사실 나도 내 귀를 의심했어. 잘 못 들었다고 말이야. 하지만 나와 함께 갔던 내 부화 대원들 역시 모두 들었다고 증언해 줬네. 그들 역시 그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을 들었어.”

 경비대장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다. 낸시 역시 “말도 안 돼.”라며 되뇌었다. 그리고 그건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야예이도 그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가 질병이기도 하지만 정말 위험한 이유는 그 광기 때문이었다. 변화한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광기와 포악성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 자신과 같은 감염자 외의 모든 것을 먹이로 삼아 미쳐 날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가장 흉포한 짐승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돌연변이 같은 것이지 않을까요?”

 뮬리아는 나름 의견이라고 내보았지만 곧장 낸시에게 부정당했다.

 “아니에요. 뮬리아. 라이칸스로피 역병은 유전적인 요인이 아닌 마법적인 요인이에요. 게다가 어지간한 마법적 관연 속에서도 잘 변하지 않죠.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인위적이라는 말인가?”

 “아마도요.”

 탬퍼가 끼어들자 낸시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녀로서도 섣불리 확신이 가지 않는 것 같았다.

 “흠, 결국 자네들도 전혀 짐작가는 바가 없다는 거로군.”

 경비대장은 아쉬운 듯 말했다. 그는 모험가인 일행이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있길 바란 모양이지만 일행들 역시 알고 있는 바가 없었다.

 “죄송하군요. 저희에게 친절히 대해 주셨는데 저희로는 도울바가 없으니...”

 키엘리니는 정말 죄스럽게 생각했기에 경비대장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경비대장은 퍼뜩 손을 들어 내저었다.

 “아닐세. 자네들이 알고 잇었으면 하긴 했지만 모른다면 별 수 없는 일이네. 하지만 그래도 인위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야. 그 라이칸스로프들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니 말일세. 아무래도 대대적으로 수색대를 조직해봐야겠군.”

 낸시의 말까지 듣고 나니 여태까지처럼 대처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경비대장은 수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는 그러고는 일행을 배웅했다.

 “덕분에 윗 놈들을 설득할 단서가 생긴 듯하네. 그러니 나는 자네들의 여정이 잘되기를 빌지.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될 테니 어서 가보게나.”

 일행은 경비대장에게 인사하고 세계의 지붕으로 가기 위한 등정에 올랐다. 한참 동안 비탈길을 걸어 내려간 그들은 어느 시점에서 길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마른 가지를 해치며 일행은 천천히 전진했다.
 야예이는 선두에 서서 일행들을 이끌어야 했다. 세계의 지붕을 찾았던 적이 있는 유일한 경험자이기도 했고 일행들 중 누구보다 흔적을 읽고 살피는 일에 탁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야예이는 그럼에도 지금 상황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일행 중 누구도 그보다 잘해낼 수 없을 것이지만 책임을 지는 입장에 서니 긴장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뻗뻗한 움직임을 보이며 야예이는 남은 일행들 전원이 그가 긴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야예이는 주변에서 단 하나의 흔적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부라리고는 앞장서서 전진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렀다.

 “야예이. 야예이!”

 옆에서 그를 따라오던 뮬리아가 몇 번이나 부르다가 안돼서 팔을 붙잡아 당겼을 때야 야예이는 그녀가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야예이가 묻자 뮬리아는 뒤를 가리켰다. 그러자 한참 떨어진 곳에서 헉헉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

 야예이는 달리지도 못하고 걸어오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얼빠진 소리를 냈다. 뮬리아는 그런 야예이에게 말했다.

 “너무 빨라요. 거기다가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고.”

 물리아 역시 숨이 차는 지 숨을 몰아쉬었다. 야예이는 자신이 긴장한 나머지 평소에 걷던 속도로 걸었음을 깨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야예이의 사과에 뮬리아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곧 옆구리를 툭하고 쳤다.

 “긴장했다는 것은 알겠지만 너무했어요. 이런 강행군이라니.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인 것 같을 정도에요.”

  뮬리아가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야예이는 가슴을 푹 찌르는 느낌이었다. 뭔가 잘 해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대실수를 해버리다니.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허억허억허억. 좀... 앉아서 쉬다가도록 하지.”

 겨우 야예이와 뮬리아가 있는 곳까지 도착한 탬퍼가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의 등에는 거의 초죽음이 된 낸시가 업혀 있었다. 키엘리니 역시 우아한 평소의 모습을 전혀 유지하지 못했고 로딘은 말할 시간조차도 숨 쉬는  일에 쓰겠다는 듯 인상을 쓰고는 호흡을 골랐다.

 “이제부터는  허억허억 좀 천천히 헉헉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겨우 숨을 돌린 탬퍼는 야예이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이제는 아예 눈바닥에 엎어졌다. 야예니는 부끄러워서 입도 열지 못한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움츠러들어 있었다.

 “부디... 약속해줘요.”

 야예이가 탬퍼의 권유에 대답하지 앉자 키엘리니가 죽을상을 하고 말했다. 야예이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일행들 중 멀쩡한 뮬리아는 재밌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그런 뮬리아를 낸시는 키엘리니보다 더 처참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어째서 당신은 멀쩡하냐?’라는 무언의 질문이 담긴 시선이었다.

 “이 신발 때문이에요.”

 뮬리아는 자신이 신고있는 장화를 한 번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걷는 걸로는 지치지 않도록 마법이 걸려 있거든요. 다리도 아프지 않고 근육통도 생기지 않고요. 가문 비전이라서 하한 켤레뿐이긴 하지만요. 상당히 유용한 물건이죠. 긴장한 나머지 일행을 돌아보지도 않고 전진해 나가는 레인저를 따라 잡기에도 편리하죠.”

 뮬리아의 말에 야예이는 더욱 침울해졌다. 그런 야예이를 보며 뮬리아는 “뮤휴휴휴.”하고 웃을 뿐이었다.

 “심술쟁이.”

 낸시는 불쌀하다는 듯이 야예이를 슬쩍 봐주고는 탬퍼 처럼 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추위도 추위지만 그 전에 폐가 터져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침울해하는 야예이를 두고 일행은 다시 힘을 모을 때까지 긴 휴식을 취했다.
 야예이는 일행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토른과 함께 여전히 주변을 경계했다. 딱히 특별한 흔적은 없어보였지만 그는 일행들 곁에 계속 서있다가는 수치심으로 죽어버릴 것 같았기에 의미가 없어도 서성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원하지 않았지만 뮬리아도 야예이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요.”

 뮬리아는 위로하듯이 말했지만 야예이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일을 굳이 상기시키려고 따라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까도 굳이 몇 번이나 일행들 앞에서 마치 그의 책임이라는 듯이 언급했었고... 물론 장난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지만 이성과는 달리 감성이 화를 내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야예이는 그러지 않았다. 적어도 뮬리아의 의도가 정말 걱정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뮬리아는 그런 야예이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거리며 야예이의 옆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야예이는 최대한 뮬리아를 신경 쓰려고 하지 않으며 주변을 살피는 일에 열중했다. 그러자 뮬리아는 더 이상 말은 걸지 않고 조용히 야예이의 행동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야예이는 뮬리아가 조용해지자 마음을 놓았다. 여전히 신경이 거슬리고 막막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한결 편해진 기분이 든 그는 그 덕인지 곧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번들거리는 기름기와 부러진 나뭇가지 였다.

 “뭔가를 발견했어요?”

 야예이의 행동이 변하자 뮬리아가 물어왔다.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무에 묻어있는 기름기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트롤이 지나갔었던 것 같군요.”

 “트롤요?”

 “네, 부러진 나뭇가지의 높이도 높고... 이래서야 일반적인 짐승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기름기. 물론 덩치가 크고 추위에 강한 생물들이 몇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털을 가지고 있지요. 이렇게 기름기보다는 털이 발견될 것입니다. 트롤이 분명한 것 같군요. 우리가 가려던 길로 올라간 것 같습니다.”

 야예이는 비탈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신진대사가 빠른 트롤의 피부는 항상 기름기로 번들거리며 고약한 암내를 풍긴다는 것은 뮬리아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야예이의 부족한 설명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녀는 위를 올려다 보다 곧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트롤들이 먼저 올라갔다면 밑에서 올라오는 우리를 발견하지 않았을 까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지만 야예이는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눈이 나쁩니다. 원래 동굴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는 반사광 때문에 눈이 더 쉽게 상하지요. 그래서 놈들은 눈보단 후각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바람도 없고 거리고 좀 될 듯하니 우리를 감지하거나 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경계정도는 하는 것이 좋겠군요.”

 야예이는 말을 마치고 일행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니 어느 정도 회복된 일행이 멀뚱멀뚱한 얼굴로 야예이를 바라보았다.

 “뭐라도 찾았어?”

 낸시가 묻자 야예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근처에 트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리는 상당한 듯 합니다만 저희가 올라갈 경로로 올라갔으니 조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예이의 말에 탬퍼는 팔짱을 꼈다. 그는 조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돌아갈 수는 없나?”하고 야예이에게 물어왔다.

 “돌아갈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면 훨씬 길게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나? 키엘리니양의 생각은 어떻소?”

 “저는 돌아갈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해가 상당히 기울어 있어요. 만약 돌아가다가 밤이 된다면 더욱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 지도 몰라요.”

 설원에서 밤을 맞느니 차라리 트롤을 맞닥뜨리고 말겠다는 말이었다. 탬퍼 역시 그렇게 생각한 듯 “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하지. 자, 모두들 일어나게. 우리 길잡이가 좀 실수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가 뛰어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네. 가지, 야예이. 이번에는 잘해주게.”

 탬퍼는 모두를 독려한 후 야예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야예이는 그러겠노라고 말하고는 묵묵히 걸어 앞장섰다. 야예이는 심호흡을 하고는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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