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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夜雪錄) - 1장 눈속의 책2

2009.04.16 11:18

G.p 조회 수:673


 어젯밤 내린 눈이 수북히 쌓이고 내가 내딛는 걸음 마다 발자국이 크게 남는다.
 살짝 얼은 눈마다 선홍빛이 가득한 발자국이 늘어져 있고, 그 발자국으로 놈들이 움직
이는 모습이 머리속에서 그려진다. 놈들은 이곳에서 냄세를 찾으며 오랜시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냄세를 맏을수 없으니까 다른 곳으로 이동 하려 했는데 습격 당했다.
 놈들의 피냄세가 녹아가는 눈속에서 분명하게 풍겨져 온다.
 분명하게 그자리에 있는 놈들의 대설물에서 뼈로 보이는게 밖으로 삐져 나왔다.
 주변에 있는 종이 같은걸 주워서 그걸로 이 뼈만 꺼내본다. 변이 좀 묻었지만 새하얀
그 뼈의 길이는 내 허적지 보다 길어 보였다.

                                                     이 녀석들 어제 결국 사람을 먹어 버린 건가.

 

 


                                                1997년 1월 25일

 

 

 

 몇일전 부터 같이 지내던 아저씨가 결국은 쓰러졌다. 아저씨 말로는 감기라는데 내가
봐도 감기로 보인다. 그러나 아저씨에게 먹일 간단한 약은 커녕 비타민C도 없다.
 과일이란 것은 4년 전에 전부 이곳에서 먹을수 없는 걸로 변해 버렸다. 먹을수 있는건
 통조림과 냉동 식품뿐. 그나마 그 양도 얼마 안남았다. 4년전의 습격으로 이 도시도 무
너져 버렸으니까. 참고로 내일이면 놈들이 습격한지 5년째 되는 날이다. 하루하루 살아
가는 것도 숨막히는 이 생활에서 나는 아직도 살아 남은것도 행복한건데 건강 하기 까지
 하다는 행운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다.
 이 마을엔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놈들의 이빨과 발톱의 흔적이 가득한 도로는 이
미 땅거죽을 드러내고 눈속에 파묻혔다. 깨져버린 유리창 너머로 명품 상품의 짝퉁을 파
는 가게의 바닥에 널부러진 가방이었던 것들이 인식되면서 나는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
다. 식량 같은게 있는건 아니지만 가방같은건 의외로 필요하다. 기왕이면 용량이 큰 가방
이 있으면 하는 마음에 들어가서 이곳 저곳 만져 본다. 이런 가게는 창고의 문을 거울이
나 다른 무언가로 가려서 미적 회손을 막고 가네의 분위기를 살리는 경우가 많다.
 늘상 그렇듯 거울을 하나씩  깨면서 찾는게 빠르지만 그 깨지는 소리가 싫어서 하나 하
나 직접 더듬거려 보았다. 한참 동안 더듬거려 보니 손에 무언가 다른 감촉이 느껴졌다.
마치 틀어진 듯한 감촉이 느껴져서 손바닥으로 밀어 보았다.
 거울이 옆으로 밀리며 안에 있는 문이 보였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뭐 어차피 식량은 내
일 찾아도 될 만큼 비축분은 있다. 전에 습격당하지 않은 편의점의 모든 통조림과 냉동
식품을 가져온게 많이 남아서 걱정이 들하다. 창고문을 열고 평소의 조심성이 몸에 배인
것 때문에 고개만 살짝 내밀어서 창고안을 바라본다. 가끔 알을 낳는 놈들은 이런 건물
안에 알을 낳아놓고 떠나기도 하는데 이 알이 부화한 경우 이렇게 문 뒤에 숨었다가 열리
는 즉시 습격하는 영리한 놈들도 있다. 주로 날개 달린 놈들이 이런 경우가 많은데 날개
달린 놈들은 그 개체수가 극도로 적고 크기가 작은 편이라 비교적 대처가 쉽다. 물론 그
대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면으로 맏붙엇을 경우다. 사람 만한 크기에 뼈가 약해서
전력을 다해서 때리다 보면 죽는다. 대신 이쪽은 3명 정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하지만 말이
다. 물론 총이 있다면 그럴 걱정은 없다. 이녀석들은 몸이 약해서 총알에도 쉽게 죽는다.
 무리지어 다니는 귀 큰놈이나 가장큰 네발로 달리는 놈은 총알도 먹히지 않는 괴물이지
만 이놈만은 대처가 어떻게 가능 하긴 하다. 그렇다고 나 혼자서 대처할수 있는 것도 아
니지만 말이다.
 창고에 아무런 위험이 없음을 느낀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손에는 길가에서
주운 각목을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그러나 창고는 내 생각 보다 큰곳은 아니었기에
 나는 각목을 벽에 기대고 천천히 적당한 크기의 가방을 찾고 있었다. 선반에 놓인 가방
을 뒤지며 뒷일 볼때 필요한 종이도 챙기는 것은 잊지 않고 챙기고 있었다. 가방 포장이
란 용도로 꾸깃꾸깃해진 종이들을 하나하나 펴가며 그나마 가장 큰 배낭에 종이들을 집
어 넣고 있을때 내눈에 그동안 본 가방과는 다른 모양의 기형의 가방이 보였다.
 길쭉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그 가방의 살며시 열린 틈사이로 삐죽 쏟아 오린 하나의 손
잡이가 창고의 무너져 버린 지붕에서 여과없이 흘러나오는 햇살에 마치 한자루의 성검
인 마냥 그 도도한 자테를 요과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우와."

 그것은 찬란한 햇살을 가득 머금은 빛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채였다.
 가벼우며 강력한 신소제. 휘두를때 마다 울리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
 이제껏 내가 들고 다니던 강목과는 다른 재질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손잡이가 너무나 잡기 편해서 그대로 휘두르는 것에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마치 칼집도 챙기듯이 가방까지 챙기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가방과 종이를 구하고 다른 종이도 구하기 위해 언덕으로 향하는 길로 걸어갔다. 언덕의
끝에는 시립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들어 털만한 생필품을 파는 가게가 안보인
덕분에 휴지가 떨어 졌다. 아저씨 말로는 앞으로 사흘은 눈이 내일 거라는데 이런 시기에
미리 준비해 놔야 한다. 동시에 그 사흘동안은 밖으로 나올수 없으니 지하실에서 할만한
것을 준비해 놓는 것도 중요했다.
 깨져버린 유리를 밟으며 현관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서 책들이 쌓인 곳에 도착했다.
 이렇게 책이 쌓인 방의 이름을 뭐라고 한것 같은데 잊어 버렸다. 대화라는 것이라고 해
봐야 아저씨가 알려주는 산수 조금하고 글쓰고 읽는 법이나 놈들을 피하는 방법 같은게
오고 가는 언어의 전부이다 보니 이런 곳은 금세 잊어 버리고 만다. 3년 전만 해도 이곳
에도 여자가 있어서 그럭 저럭 잘 보살펴 주곤 했는데 여자는 약해서 금방 죽었다.
 아마 죽은 이유는 나때문인걸로 기억한다. 내가 식량 구하러 아저씨와 나간 사이 빨래를
널러 밖으로 나오다 날아다니는 녀석들에게 끌려갔다. 그후 나와 아저씨는 지하실에 빨래
를 널게 되었다. 어쨋든 그 여자가 나에게 이것 저것 가르쳐 준것은 많았다. 아저씨가 가
르쳐 준것보다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슬픈일은 일찍 잊으라는 아저씨의 말에
나는 그 여자의 이름을 잊어 버렸다. 얼굴도 이젠 가물 가물한다. 살아 가기 위해서 흘릴
눈물이 너무 많아서 죽은 사람에게 흘릴 눈물도 없는게 우리들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또한의 문을 넘어 책이 가득한 그곳에서 그림이 많은  책을 몇권 골라서 가방에 담았다.
 한동안 계속 내릴 눈을 생각 하며 지하실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니 온
몸이 근질 근질 하였다. 창문 하나 없는 그 지하실에서 그저 책만 바라보며 숨죽이고 있
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 기분 좋은 것은 아니다. 사흘이라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질
것이다.
 가방에 든 책이 내가 들기 힘들정도로 들어가서야 나는 그곳을 떠났다. 슬슬 어둑해져
가는 하늘을 보며 조금 있으면 내릴 눈이 예상되어 서둘러 지하실로 돌아갔다.
 
 지하실의 무거운 철문을 닫으면서 손에 묻은 녹을 털어낼 생각만 하였다. 아저씨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아직 아저씨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 했다. 감기로 죽는
건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약도 치료제도 없고 감기에 효능이 있는 채소나 과일도 구할수
 없는 지금 감기에 잘못 걸리면 그대로 폐렴으로 발전해서 죽거나 다른 사람에게 옴겨
서 같이 죽는 일이 흔한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저씨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고, 나
는 아저씨를 위해 같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아저씨는 자신 때문에 무리에서 나온
나 때문에 늘 미안해 한다. 항상 나갔다 들어오면 내 손을 잡고 미안 하다며 피를 토하고
 잠이 든다.

 오늘도 아저씨는 피를 토했다. 내가 지하실에 들어와서 아저씨를 보니 아저씨가 덥고 있
는 이불은 피에 젖어서 암갈색을 띄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할 정도로 아파하는 아
저씨에게 숨을 쉬기 편하게 해주기 위해 민가에서 가저온 고무 호스를 아저씨 입에다 물
리고 억지로 숨을 불어 넣어 줬다.
 폐가 너무 약해져서 스스로 숨쉬기도 힘들어 하는 아저씨를 억지로 살리기 위해 나는 숨
을 한껏 들이 마시고 그대로 그 고무호스에 불어 넣었다. 아저씨가 간신히 한번더 피를
토하고 숨을 쉬기 시작한다. 살날이 얼마 안남은 자신이 늘 날 괴롭히고 있다며 자책하던
 아저씨는 그저 하루 하루를 억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저 나때문에 편히 쉬지도 못한체 그렇게 움직이기 힘든 폐를 움직이며 살아 가고 있
었다.

 백화점의 지하 식품 창고에서 오래된 쌀을 반견한 적이 있다. 5푸대 정도 있던 것들이 지
금은 거의 없다. 한 바가지 정도 되는 양도 안남은 쌀로 나는 죽을 끓였다. 지하실 중앙에
 있는 드럼통에 나무를 넣고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철망을 깔아서 냄비를 올린다.
 냄비의 내용물이 보글 보글 끓어가며 나는 침을 삼킨다. 그러나 이건 내가 먹을게 아니
다. 아저씨가 먹을 죽이다. 나는 그 옆에 있는 통조림중 하나를 열어서 죽 안에 참치를 넣
는다. 소금은 소금이나 설탕은 많이 있으니까 걱정이 없는데 그외의 물건은 일찍 상한다.
 소금을 조금 뿌려서 간을 하고 난뒤에 간이 맞는지 한입 먹어 본다. 적당히 간이 맞으면
 그제서야 아저씨 에게 한입 먹이곤 했다. 아저씨는 턱을 움직이는 것도 힘든지 그것을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키며  신음을 한다. 아저씨가 얼마나 더 살수 있는지 예상하기는 힘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까지는 아저씨를 버리지 않았다.

 아직 까지는… 아저씨가 나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지겨운 사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저씨는 그세 몸이 좋아졌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밥을 하고 있었다.
 참치와 마실수 있는 빗물에 백화점의 조미료를 이것 저것 넣고 남은 쌀도 넣는다. 냄세
가 내 코를 자극해서 일어나 버렸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다 끓인 그 죽을 나에게 건낸다.
 드디어 아저씨가 건강해 진 것을 믿은 나는 그만 기뻐서 아저씨를 업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아저씨가 끓인 죽을 다 먹고 나는 아저씨와 밖으로 나갔다. 다시 백화점에 들려서 쌀을
가져 오기로 했다. 백화점의 문을 어루만지는 아저씨가 갑자기 살짝 웃곤 하였다. 분명
그저 웃기만 한 것인데도 내 마음은 불안 했다.
 지하의 식품 창고에서 몇가지 먹을걸 챙긴 나와 아저씨는 리어카에 그걸 올려놓고 잠깐
 옥상에 올라갔다. 아저씨는 오래된 자판기를 열더니 안에서 커피를 뽑아 왔다. 천천히
옥상에 불고 있는 바람을 느끼며 옥상의 난간에 기댄 나는 아저씨가 준 커피를 마시며
 나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며 일하고 땀흘리고
웃으면서 울고 숨쉬고 죽어간 그 마을을 바라보며 나는 착착한 심정이 되었다.
 
 "희창아."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나는 아저씨를 돌아 보았다.

 "아줌마 기억 하니?"

 아저씨는 커피를 한모금더 마시며 계속 이야기 했다. 커피의 쓴맛이 가득 배어나오는 침
울한 목소리로 내가 기억속에 지운 여자를 거론 한다.

 "여기가 나와 아줌마가 만난 곳이다."

 백화점의 옥상에서 아저씨와 아줌마는 만났다. 아저씨는 백화점의 사장 아들이었고 아
줌마는 그저 말단중에 말단이었다고 한다. 말단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렇다니
그렇다고 치자. 여기서 아줌마가 무슨 사정으로 울고 있길레 아저씨가 나타나서 아줌마
를 꼬셨다는 소리다. 당시로 치자면 무슨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비유할수 있는 경우 였다.
 그러나 그건 의외의 반전이 일어난다. 백화점을 대신할 대형 할인마트가 생겨 나면서
 백화점이 문을 닫게 된다. 부도의 위기를 짊어진 아저씨는 백화점을 살릴려고 노력 하지
만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백화점은 무너지게 된다. 길거리에 내몰린 아저씨를 구한건
 그 백화점 옥상에서 울고 있는 아가씨. 그러니까 아줌마 였다고 한다.
 사실 아줌마는 엄청 거대한 집안의 따님으로 사회 수업의 일환으로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그때 아저씨의 방탕한 바람끼가 아저씨를 구원할 동아줄이 되어 하늘
에서 내려온 거나 마찬가지 였다.

 …나는 아줌마를 제외하면 여자 구경한지 10년째다. 무리에서도 여자는 귀했다. 다른 놈
들에게 여자를 뺏기지 않으려고 남자들은 여자들의 얼굴도 못보게 큰 천으로 얼굴을 가
리게 했다. 그외 여자가 습격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항상 지하에 숨겨두고 다녔다.
 남자에 비해 채력이 약한 여자는 언제나 그놈들의 표적이 되었다. 놈들은 여자를 좋아했
다. 남자보다 채력적, 근력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더욱더 노려 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놈들은 여자를 노린다. 여자를 보면 죽더라도 여자가 살수 없게 만든다. 도시 같
은 경우 위협 사격으로 날아다니는 놈들을 쫒을수 있는데 여자만 보면 그놈들은 환장을
하며 죽는걸 각오하고 여자를 공격 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남성과 여성의 성비율이 개판이다. 내가 전에 있던 무리만 해도 아줌마가 유일하
 살아 있는 여성이었다. 아줌마가 죽고 난뒤엔 무리들은 여자가 없기 때문인지 조금 더
난폭해 졌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보다는 버리는 무리가 되어서 아저씨가 나올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런 무리에서 지낼 바엔 아저씨를 따라가는 편이 더 안전한것 같아서
같이 나왔다.
 그리고 아저씨가 병에서 살아난 지금 아저씨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 마을을 바라본다.

 "내가 너에게 슬픈걸 잊는 법만 가르쳤구나."

 아저씨의 공허한 목소리가 단 두명의 남자만 들을수 있는 크기로 조용히 메아리 친다.

 "잊으면 편하긴 하지. 헌데 그것만 가르치고 말았지. 가장 슬픈걸 가르쳐 주지 않았어."

 아저씨는 커피를 다 마시고 종이컵을 구기며 허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뭔지 아니 희창아?"
 "알고 있어 아저씨. 잊으면 마음이 편한데. 잊는게 제일 슬퍼."

 아저씨는 그 종이컵이라 불리던 종이뭉치를 옥상 밖으로 던진다. 종이가 한없이 천천히
떨어지는 것 처럼 보였다.

 "아줌마를 잊은 후에 마음은 편했어. 근데 잘때 마다 내가 기억 하지 못하는게 떠올라."

 떨어지는 종이에 바람이 분다. 그래도 종이는 떨어진다. 종이를 접는 것에 따라 어떤건
  하늘을 날기도 하고 어떤건 땅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내가 기억 못하는 것들이 자꾸 잘려고 할때마다 떠올라."

 티틱-.
 금이 가는 소리다. 하지만 나는 그걸 듣지 못했다.

 "그래 그게 가장 슬프지."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 무너진 천장 부근의 벤치에 눕고 눈을 감았다.

 "잠깐 눈좀 붙이마 오렌 만에 밖에 나오니 졸음이 쏟아지는구나."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지하에 있는 창고로 다시 들어갔다. 나머지 더 옴길수 있는 것
도 챙겨서 옴겨야 했다.
 움직이지 않는 엘리베이터 옆의 계단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 딛으며 지하로 내려가던 중
이었다.


 내려가는 중에 나는 놀래서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분명하게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
렸고 건물이 잠깐 흔들렸었다. 중심을 잡지 못한 나는 그대로 쓰러졌고 계단에서 구른 후
에야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알아볼 상황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는 순간 다리에서 부터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다리
에 힘이 안들어 가면서 머리에서 끈적하고 뜨거운게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꼇다.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 없이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으로 올라가서 아저씨의
 상태를 봐야 했다. 정신 없이 계단을 오르다 넘어 지면 기어서라도 올라갔다. 정신이 이
미 먼곳에 있건 없건 나는 아저씨를 보기 위해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손바닦에 유리가
박히고 무릎에서 피가 나고 등에서 불로 지지는듯한 고통이 느껴지고 숨쉬는 것 마저
폐가 타버릴듯한 고통속에서 정신없이 올라가다 보니 보이는 것은….

 무너저 버린 옥상에서 내가 있는 방향으로 뻗어나온 아저씨의 손이 전부 였다.

 나는 그손을 부여 잡고 우는게 전부였다.
 내가 아는 마지막 사람까지 죽어 버렸을때 아저씨의 손이 죽어서도 잡고 있던 한장의
종이가 떨어진다. 종이에 내 눈물이 떨어진다. 그래도 종이는 젖지 않는다. 그저 그 눈물
에 왜곡된 내 모습이 보인다.

 그것은 내 사진이다.
 나와 누나가 찍힌 사진 이다.
 나와 누나와 아빠와 엄마가 찍힌 4명의 가족사진.
 슬프다는 이유로 나는 가족을 머리속에서 지워 버리고 살아 있었다. 물론 지우라고 말한
건 아저씨 였지만 그때는 날 살리기 위해 머리속에서 지우라고 한것일 것이다. 아저씨는
 내가 가족을 잊고 사는 것이 늘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걸 모르고 가장 슬픈 것을 가진체 살아 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이미 알
고 있었기에 아저씨의 물음에 대답할수 있었다.

 잊는건 가장 슬픈 일이다. 즐겁던 슬프던 괴롭던 잊는순간 모든건 허상이 되고 자신이
살아온 삶은 거짓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책에서 본 기억 상실의 주인공들은 전부 자신
의 기억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그 기억들은 하나같이 슬프고 괴로운 추억들만 남은
쓰디쓴 독약같은 추억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찾아서 달게 마시고

 쓴 추억을 달게 변환시킨다.

 나는 그저 잊은체 살아왔다.
 하루하루 살아 남는것도 힘든 이 세계에서 쓰던 달던 추억이란 것이 얼마나 허황된건가
 라며 하루하루 달래며 살아왔다. 하지만 늘 눈을 감으면 가슴속에서 부터 올라오는 그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잠들때 마다 눈물을 흘린다.
 심장의 오열을 억누르며 기억의 망각이라는 수면제를 먹고 눈물을 흘리며 잠이 든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날이 밝을때 까지 눈물을 흘리며 견디고 견뎌왔다. 무언가에 기대
며 그 눈물을 마시며 살아 왔다. 그게 아줌마 였고, 아까 까지는 아저씨 였다.
 이젠 기댈것도 없이 홀로 잠들어야 하는 밤이 오는것이 점점 두려워 진다.

허나 그렇다고 나는 그렇게 하염없이 사라질수는 없었다.
 나는 사진을 품안에 넣고 아저씨의 무덤이 되버린 백화점에서 나왔다.
 리어카를 잡고 무릎에 힘을… 주며 끌고간다. 이곳이 아저씨의 묘가 되어 이곳에 자리잡
고 이곳에서 무너져 가겠지만 그걸로도 충분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곳은 아저씨의 묘로는 최고의 장소다. 아저씨의 추억이 깃들여 있고 아저씨의 삶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이 장소에서 지내왔기에 이곳이야 말로 아저씨의 묘로서 그 이상
의 가치가 있다.

 그렇게 무너지고 있는 백화점을 등뒤로 하고 나는 리어카를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한발 한발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이를 악물어 가면서 한발한발 전진한다.
 추억을 추억으로 남기고 잊지 않고 살아가야할 앞날을 생각하며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몇일후.

 

 

 아저씨의 묘는 날아다니는 놈들이 둥지를 틀다가 무게 때문에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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