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연재 패스파인더7

2009.04.03 14:38

azelight 조회 수:611

6
  에크로반은 간신히 불길을 피할 수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그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에크로반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몇 바퀴 더 굴러 불길의 주변에서 물러났다.
  잭은 불길을 내뱉고 숨을 고르고 에크로반에게로 달려들었다. 화살만큼 빠르게 그는 에크로반의 지척으로 달려갔다. 에크로반은 황급히 일어나 그을린 땅을 박차고 불타고 있는 헛간을 향해 뛰어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등하던 흐름이 이젠 전부 잭에게로 넘어가 있었다. 단 한 번의 예외적인 공격에 의해 서로 간의 균형을 잃은 것이다. 잭은 에크로반이 다시 공세를 갖추기 전에 해치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덤벼들었다. 잭은 결코 방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냥감에 대한 맹수로서의 예의였다. 무엇보다 얕보다가 먹이를 놓치는 것은 바보짓이 아닌가? 잭은 우아하게 움직이며 에크로반의 뒤를 쫓았다.
  반면 에크로반은 흉한 몸짓으로 잭의 공세를 피했다. 감히 반격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반격하기 위한 자세를 잡는 순간 에크로반은 잭의 발톱에 산산조각이 날 것이었다. 에크로반은 어떻게든 잭의 공격을 피해 반격의 실마리를 마련해야 했다.
  공, 방, 체.
  어느 것 하나 자신보다 떨어지는 것이 없는 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뭔가 결정적인 반격의 기회가 필요했다. 그를 위해선 이렇게 도망다니는 수 밖에 없었다.
  에크로반은 잭의 앞발을 기듯이 피하고는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불완전하게 휘둘러진 검격은 잭에게 상처조차 줄 수 없었다. 잭은 그냥 그 검격을 향해 재차 앞발을 놀렸고 에크로반은 거의 검을 놓칠 뻔 했다.
  하지만 에크로반은 그 기세를 따라 또 한 번 바닥을 구르고는 일어섰다. 그리고 잭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잭은 이마로 에크로반을 들이 박았고 에크로반은 헛간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힘의 차이가 워낙 컸기 때문에 에크로반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가 민첩함도 저쪽이 한수 위다. 기교로 심각한 피해는 피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승기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잭은 여전히 냉정했고 재빨랐으며 강인했다. 에크로반으로서는 찌를 수 있는 틈이 보이지 않았다. 기지를 발휘하려해도 약간의 빈틈도 놓치지 않는 집중력과 극적인 위기에서조차 빠져나가는 반사신경은 도저히 어쩔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만으로는 저 엄청난 무리를 막아낼 수 없었다. 에크로반은 캐논에게 도움을 청할 것을 그랬다며 후회했다.
  그는 이 전투가 숲을 놓고 보이는 일종의 세력다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 대 늑대 무리. 잭이 워낙 강했기에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자면 한 무리 안의 우위다툼이라고 여긴 것이다. 누가 우두머리인지 정하긴 위한 전투.
  오크 무리가 나가떨어진 이상 새로이 영역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에크로반은 생각했다. 그리고 최근 보이는 잭의 행동은 이런 영역결정을 위한 활동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상대에게 힘을 우위를 보이는 것이다.
  최근 긴장된 상황을 보이고 있던 잭의 영역에 야예이가 들어감으로서 에크로반은 잭에게 새로운 영역 다툼의 빌미를 줬다고 생각했다. 야예이가 그의 영역에 들어간 것은 말하자면 영역의 침범. 에크로반을 포함한 인간들 쪽에서 그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보일 수 있었다.
  그랬기에 에크로반은 캐논을 부르지 않았었다. 그는 이 일이 늑대와 인간들 사이의 영역다툼 정도로 생각했고 자연에 속한 존재로서 이런 영역 다툼은 당연했다. 물론 캐논이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와의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캐논은 달려와 줄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에크로반은 공정해야할 숲의 지배자가 비록 우정이란 이름하에서라도 한 쪽편을 들게 하곳 lv지는 않았다. 숲의 주민들 사이의 알력은 공정한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에크로반의 생각은 틀렸다.
  잭이 바란 것은 ‘전멸전’이었던 것이었다. 그는 이 갈색산맥에서 인간들을 완전히 내몰 생각이었고 힘이 닿는 데로 학살할 생각이었다. 그가 자신의 무리에 몬스터들까지 끌어들여 데려온 것은 그런 잭의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었다. 몬스터들은 그들의 분노와 살육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는 한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중도의 성향을 가진 미르키엘의 신도로서 에크로반은 잭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갈색 산맥의 전체에 널리 퍼져있는 늑대신과 곰신의 후예들 중 잭은 그 사고방식이 독특한 존재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홀로코스트는 미르키엘에게 충실한 짐승들 보다는 오히려 인간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 납득 불가의 행동을 미르키엘의 이름하에 중단시켜야 한다고 에크로반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대화를 시도할 틈은 전혀 없었다. 잭은 에크로반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공격을 되풀이했다.
  에크로반은 그때마다 간신히 그 공격들을 받아 넘겼지만 점차 한계에 다가가고 있었다. 앞으로 몇 번의 공격을 더 버티면 거의 한계에 부딪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인데도 잭은 전혀 방심하지 않았다. 에크로반으로서는 찌를 수 있는 빈틈이 없었다.
  고고하게 잭이 발을 지상에 내딛었다. 그 어떤 짐승보다도 우아하고 날렵한 그는 분명 지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생명체들 중 하나이겠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한 수렵자이기도 했다. 불길이 타오르고 서로 간의 살육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잭은 여전히 고고했으며 우아했다. 그리고 날렵하고 완벽한 몸놀림으로 다시금 에크로반을 몰아붙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크로반은 쌍검을 쳐들며 동시에 몸을 느슨하게 풀었다.
  비기를 풀 때였다. 잭의 돌격을 이미 여러 번 봤기 때문에 그는 충분히 맞출 자신이 있었다. 만약 제대로 타이밍만 맞춘다면 완전한 카운터가 될 것이다.
  잭은 뭔가를 느낀 듯 돌진하려던 동작을 멈추고 에크로반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심한 듯 뛰어들었다.
  잭의 돌격에 맞춰 에크로반은 검을 하단에서 반원을 그리며 휘둘러 정면으로 내뻗었다. 에크로반의 팔은 마치 채찍처럼 휘어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궤적을 취하더니 돌진해오는 잭을 향해 휘둘러졌다.
  잭의 신영이 에크로반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멀리서는 캐논의 포효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야예이는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곰의 신의 언령은 사슬이 되어 그의 몸을 종속했고 야예이는 한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용을 쓴 탓에 야예이는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몸을 풀며 야예이는 풀어 놓았던 자신의 장비를 챙겼다. 그는 불안한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불안감보다는 죄책감이 강했다. 그가 이 전쟁에 불을 지른 것이다. 멍청했다. 멍하니 생각에 빠져서 엉뚱한 짓을 해버렸다는 사실이 그를 참을 수 없게 했다. 대체 그는 얼마나 많은 빚을 에크로반에게 지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그 빚들을 언제야 다 갚을 수 있을 것인가?
  야예이는 동굴을 나서며 떠올렸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동시에 가까운 시기의 일이기도 했다.
  에크로반은 마을에 내려가 있었고 야예이는 그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몸을 숨기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딱 맞게도 그의 피부색은 녹색이었고 풀잎들의 색도 녹색이었다. 적당히 위장을 하고 그들 속에 숨는다면 누구도 그의 모습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거친 녹색 풀들과 벌레들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야예이는 에크로반의 뒤를 쫓아 마을의 근처까지 당도했다. 야예이는 그대로 숨어 에크로반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스스로도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야예이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을 담아 마을을 바라보았다. 높은 목책이 세워진 마을은 그 속으로 들여다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을 밖으로 뛰어 나와 노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세상에 대한 불공평함? 아니면 한 없이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처지? 그도 아니면 저 따스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
  야예이는 과연 무엇에 대해 분노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일몰이 질 때가 다되었을 때 에크로반이 마을에서 나왔다. 야예이는 긴 기다림 탓인지 반가움을 느꼈지만 그는 수풀 속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되었다. 그는 이 속에 숨어있어야 했다. 만약 자신이 수풀 밖으로 뛰쳐나간다면 그것은 에크로반에게 폐가 되는 일일 것이다.
  야예이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와~.”
  함성을 지르며 아이들이 에크로반에게로 뛰어갔다. 그들에게 있어 에크로반은 영웅이었다. 존경받는 인물. 야예이는 조금 우쭐한 기분이 들었지만 곧 그런 기분은 싸늘하게 식었다.
  야예이는 자신과 그들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야예이는 그들에 비해 너무 컸다. 피부색도 달랐다. 얼굴도 다르다. 야예이는 자신이 그들이 보기에는 흉해 보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저들에게 그저 우둔해 보이는 녹색 괴물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야예이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졌다.
  곧장 몸을 돌려 숲 속 깊숙한 곳으로 달렸다. 하루 종일 숲을 내달리고 울음을 터뜨리고 한 동안 우울하게 지냈었다.
  세상은 불합리했다. 그리고 공평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야예이는 소외감에 더욱 괴로워했었다. 자신이 다른 가까이 하고픈 모든 것들과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이 절실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야예이는 그런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 일까?
  야예이는 의문스러워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그 때 일을 떠올렸다. 야예이는 마음속에 짙은 그늘이 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있는 힘껏 달렸다. 레다란에서 마을까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야예이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숲은 그의 영역이었다. 손바닥 위 보다 작은 세상이지만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야예이는 잘 알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솟아오르는 분루에 눈 앞이 흐려졌지만 야예이는 넘어지지 않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08 야설록(夜雪錄) - 1장 눈속의 책4 [1] G.p 2009.05.31 716
1207 저 하늘에 1 [1] 양군 2009.05.25 754
1206 권리 [1] 악마성루갈백작 2009.05.24 615
1205 야설록(夜雪錄) - 1장 눈속의 책3 [1] G.p 2009.05.05 762
1204 패스파인더3 [1] azelight 2009.04.23 639
1203 패스파인더2 [1] azelight 2009.04.21 648
1202 패스파인더 v3.0-1-(갈아씁니다) [1] azelight 2009.04.20 735
1201 야설록(夜雪錄) - 1장 눈속의 책2 [1] G.p 2009.04.16 673
1200 야설록(夜雪錄) - 1장 눈속의 책1 [1] G.p 2009.04.13 633
1199 패스파인더10 [1] azelight 2009.04.08 611
1198 패스파인더9 [1] azelight 2009.04.07 559
1197 패스파인더8 [1] azelight 2009.04.06 591
» 패스파인더7 [1] azelight 2009.04.03 611
1195 패스파인더6 [1] azelight 2009.04.03 576
1194 패스파인더5 [1] azelight 2009.04.01 637
1193 패스파인더4 [1] azelight 2009.03.30 663
1192 패스파인더3 [1] azelight 2009.03.29 665
1191 패스파인더-2- [1] azelight 2009.03.28 589
1190 패스파인더-1-새로써요 [1] azelight 2009.03.26 458
1189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1] 악마성루갈백작 2009.02.27 658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