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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5

2009.04.01 14:55

azelight 조회 수:637

4
  야예이는 눈을 떴다.
  눈앞의 모든 곳이 껌껌했다. 아직 새벽이 오지 않은 것이다.
  손을 뻗자 침대의 거친 아마천의 감촉이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은 차가운 회칠한 바닥에 누워있다. 야예이는 침대로 뻗은 손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공기는 싸늘하다.
  야예이는 오싹함을 느끼며 일어섰다. 바르지 않은 자세로 잣기 때문에 몸이 굳어 있는 것 같았다. 야예이는 상체를 최대한 돌리거나 팔을 돌리며 오두막을 나섰다. 오두막으로 안개가 흘러들어왔다. 머지않은 곳에 호수가 있기 때문인지 이곳에는 정말 안개가 자주 끼었다. 그리고 그 호수에는 캐논이 살고 있었다.
  이 산의 우두머리. 거대한 검은 곰. 캐논.
  벌레에 물리기라도 했는지 가려운 배를 긁으며 야예이는 심호흡을 했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오두막으로 들어간다.
  어두웠지만 야예이는 정확하게 자신이 필요한 곳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오크의 피는 그에게 어둠 속에서도 가까운 거리라면 사물을 분간해서 볼 수 있는 시야를 주었다. 야예이는 불확실한 시야를 의지해 움직였다.
  항상 그가 자신의 장비들을 놔두는 장소. 야예이는 손을 뻗어 자신의 가죽 갑옷을 걸쳤다. 몇 번이나 분해하고 새로 엮은 흔적이 있는 그의 갑옷은 그의 급격한 성장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야예이는 손을 더듬어 가죽갑옷의 이음매를 만져보고는 잠시 그대로 서있었다. 그리고 무기와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도끼와 활 통을 등에 메고 허리에는 두 자루의 장검을 찼다. 장화와 가죽갑옷의 양 소매 속에는 단검을 숨겨 넣었다.
  단단히 무장을 마친 야예이는 다시 오두막을 나섰다. 그리고 경사를 따라 올랐다.
  캐논이 있는 호수는 오두막으로부터 서쪽 깊숙이 들어간 계곡에 존재했다. 에크로반과 올슨마을 사람들은 그 호수를 ‘레다란’이라고 불렀다. 전설에서 기인한 그 이름으로 악행을 저지르다 호수자체가 되어버린 물의 요정의 이름이었다.
  캐논은 전설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레다란에서 그의 무리를 이끌고 살았다. 레다란을 호수로 만든 존재가 바로 갈색 산맥의 곰신 크라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호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온당해 보였다.
  거기다 캐논 또한 거대하고 강력한 곰신이었다. 크라덴이 승천해 미르키엘의 왼쪽 권좌에 앉게 되었듯이 캐논 역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캐논이 크라덴의 후손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야예이는 자신의 2배가 넘는 키를 가진 캐논의 모습을 떠올리며 안개 속을 걸어 나갔다.
  호수에 도착하자 안개 너머로 거대한 검음 그림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야예이는 보았다. 야예이는 그 그림자의 주인이 캐논일 것이라는 것을 손쉽게 알 수 있었다. 야예이는 이 갈색 산맥에 그만한 크기의 생명체가 또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캐논 인가요?”
  야예이가 입을 열자 머릿속으로 낮고 강렬한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렇다. 야예이. 오랜만이군. 4년 만인가? 이제 꼬마라고 부르기에는 네 종족들 중에서 넌 지나치게 크군. 이제 에크로반과 거의 비슷할 정도인가?”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캐논은 야예이에게로 다가왔다. 저 검은 털로 덮인 가죽에는 화살도 제대로 박히지 않는 강인함이 서려 있었다. 아마 이 갈색 산맥에서 순순한 전투력으로 가장 강력한 생명체가 있다면 바로 이 캐논일 것이다. 야예이는 캐논이 3마리의 트롤을 단숨에 산산조각 내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다. 어렸을 때 이지만 워낙 강렬한 장면이었기에 그 모습을 흐릿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했었다. 지금에야 겨우 그런 일이었다는 것을 이해했을 뿐이다.
  “네.”
  “그렇군. 그럼 이제 네가 왜 왔는지 이야기해 봐라. 왠지 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나와 본 것이었는데 내 예측이 맞는 것 같아. 이제 얼마나 나쁜 일인지 들어보자. 아이야.”
  야예이는 캐논에게 모든 이야기를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들은 캐논은 고개를 살짝 틀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엉덩이를 아래에 두고 앉았다. 그러곤 마치 인간처럼 앞발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잭이 그럴 것 같긴 했지. 감히 내가 있어서 나서지 못했지만 동족의 수가 불어나면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군. 확실히 승산이 있어.”
  숙고하는 듯 가만히 앉아있던 캐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야예이의 머리 위에 그 커다란 앞발을 턱하니 올려놓았다. 그 나름의 호의의 표시인 듯 했다.
  “에크로반이 어째서 나를 부르지 않고 너를 보내기만 했는지 알겠다. 그래, 잭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캐논은 야예이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야예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 역할은 네 보호자역인 것 같군.”
  “절 보호한다고요?”
  야예이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캐논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했고 캐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많은 곰의 신은 고개를 한번 흔들어 투레질을 하곤 야예이를 위해 설명해 주었다.
  “잭이 최근에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너도 알거다.”
  캐논은 느릿하게 오른 발을 땠다.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잦았지. 명확한 도발이었기에 내가 경고하긴 했지만 잭은 무시했어. 자신이 있다는 표현이겠지만 그는 신중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대해서 잘 알지.”
  캐논은 말하면서 섬세하게 늑대의 머리를 그렸다. 높게 뻗은 목 뒤의 갈기. 잭의 모습이었다.
  “잭은 마을을 감시하고 있을 거야. 그건 에크로반도 알고 있는 바다. 잭은 완벽한 기습의 때를 노리고 있겠지.”
  캐논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잭은 산의 정상에서 올슨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의 시야로는 이곳에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이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용과 같이 날카로웠다. 
  인간들이 자신에게 대항할 수단을 강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그는 실소했다. 감히 신의 자손에게 대항하다니. 너희가 무얼 준비하건 나에게 대적할 수 없을 것이라. 잭은 발톱으로 자신이 발들 디디고 있는 바위를 긁었다.
  날카로운 발톱은 하얀 바위를 파고 들어가 짧은 흔적을 만들어냈다. 이 흔적은 긴 세월이 흐르지 않으면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
  자 어떻게 할까?
  잭은 생각했다. 저들에게 충분한 준비시간을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힘은 좀 들겠지만 그렇다면 저들의 의지 역시 꺾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걸리는 존재가 있었다. 곰의 신의 후예인 캐논. 그리고 레인저 에크로반.
  그를 단순하게 레인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잭은 그에게서 힘을 느꼈다. 그것은 앞날을 헤쳐나가는 힘. 길을 잇는 힘이었다. 능란한 추적자이자 전사의 잠재력을 에크로반은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잭은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가진 힘을 느끼고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꼈던 때를 잭은 기억했다.
  그러나!
  지금 에크로반은 늙었다. 처음 만나게 됐을 당시에도 아미 장년의 나이였다. 인간으로 치면 전성기는 찬함 전에 지났고 쇠퇴가 시작될 나이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10년이 더 지났으니 지금은 처음 만났을 때만한 힘을 지니고 있진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잭은 역시 에크로반을 무시할 수 없었다.
  모든 생물이 그렇듯 무리를 이루면 강해진다. 거기에 자신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있으면 본래의 힘의 몇 배나 발휘한다. 특히나 준비된 장소에서는 말이다.
  잭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크들과 인간들의 전투를 몇 번이나 이 장소에서 훔쳐본 그였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명분은 있었다. 몇 번이나 잭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눈감아 줬다. 애크로반이 데리고 사는 하프오크까지 그런 멍청한 일을 할 거라고 생각 못하긴 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다. 어쩌면 저쪽도 전쟁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잭은 공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더러운 오크들도 인간들도 몰아내는 편이 오히려 이 산을 위한 길이라고 잭은 생각했다. 캐논이 이들을 용인했지만 잭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들에겐 조화가 없었다. 숲의 여신이 과연 그들을 용인할까? 답은 없지만 잭은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분별하고 자각 없는 자들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집의 울음소리다. 마을까지 들리겠지만 상관없었다. 좀 두려움에 떨라지. 잭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곤 산의 정상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무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마을 사람들은 움찍하고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맑고 청명한 하늘이지만 어쩐지 메마르게 보이고, 따뜻한 날씨임에도 한기가 느껴졌다. 순식간에 체온이 내려가는 듯한 느낌에 사람들은 다들 하는 일을 멈췄다.
  오직 에크로반만이 그 속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에크로반은 옆에 같이 서 있던 자경단장 톰슨이 긴장한의 빛을 띄는 것을 보았다. 에크로반은 그의 어께를 툭 치며 말했다.
  “긴장을 풀게. 그렇게 뻣뻣한 상태에서 마을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진 않겠지.”
  에크로반의 말에 톰슨이 힘겹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차츰 마음을 가다듬더니 씨익하고 웃었다.
  “그렇습니다. 후우. 하지만 정말 섬뜩하군요. 에크로반님 말씀대로라면 저게 잭의 포효라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지금 건 전쟁 준비를 알리는 거지. 역시 정말로 위협을 위해 포효한다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네. 녀석이 아무래도 우리가 준비를 마치기 전에 칠 생각인가 보군.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라서 완벽한 준비가 되길 기다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나 보군. 톰슨 어서 대비하게!”
  에크로반은 소리치고 움직였다. 성큼성큼 걸어가며 멍하니 있는 사람들을 두들기고, 일어서게 하고, 손에 목재들을 놓게 했다.
  벽을 뛰어넘을 때를 대비해 뾰족하게 깎아 세워둔 통나무들의 사이사이를 오가며 큰 소리를 질렀다.
  “모두 전투 준비! 곧 늑대들이 온다!”
  톰슨은 달리면서 자경대원들을 준비하게 했다. 마을 사람들도 각자 무기를 들었다. 자경대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제대로 된 무기들이 존재하진 않았다. 쇠스랑과 식칼, 장도리 같은 것이 전부. 하지만 이들 역시 한 번씩 오크들의 피 맛을 본 엄연한 무기였다. 
  분주하게 사람들이 움직였다.
  목책에 존재하는 4개의 경비탑에는 활과 화살을 든 자경단원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 올라가 있었다. 에크로반 자신 역시 경비탑을 올라갔다. 뒤이어 톰슨이 따라왔고, 그 뒤로 촌장이 하디스가 따라왔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이 가득했고 안색은 창백했다. 멀리서 들려는 포효에 조차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힘을 가진 괴물리 마을을 습격하려고 내려오고 있었다. 간신히 오크들을 몰아내고 이제 평화를 되찾는가 했더니 괴물이 늑대들을 이끌고 쳐들어오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코 밝은 얼굴이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크로반 역시 생각지 못하고 있던 부분들이 있었다.
  곧 산들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잭의 무리를 보았을 때야 에크로반은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은 잭과 그의 늑대무리만이 아니었다. 잭은 늑대무리만을 수하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영역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짐승들이 산을 타고 내려와 올슨 마을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짐승들 뿐 아니라 몬스터들도 존재했다. 짐승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다란 높이의 트롤들과 오우거들의 모습이 보였다. 수도 적지 않았다. 이 근방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끌고 온 것 같았다.
  에크로반은 아연질색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톰슨과 촌장 하디스, 같이 있던 경비병들 전부 마찬가지였다.
  에크로반은 자신의 적의 전력을 잘못 계산했음을 생각하며 몬스터와 짐승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잭의 힘이 이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쩌면 잭은 캐논 만큼 강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르키엘의 늑대신 셀라의 후손답다고 생각하며 에크로반은 급하게 대책을 짜기 시작했다. 정말 이 목책은 벽의 역할을 조금도 수행할 수 없어 보였다. 벽을 무술 수 있을만한 존재로 잭만을 상정했던 에크로반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잭이 끌고 온 무리는 이런 작은 마을 따윈 단숨에 밀어버리고 남을 정도의 숫자였다.
  에크로반은 인상을 찡그리며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잭이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고개를 쳐들었다.
  에크로반은 즉각 화살을 쏘라는 지시를 내렸다. 화살은 잭에게 적중했지만 잭의 몸 안으로 파고들진 못했다. 마치 단단한 철벽에 부딪치기라도 한 듯 부러지면서 땅에 떨어졌다.
  주변의 아군들 뿐 아니라 자신조차 화살에 맞았지만 잭은 무시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커어어어엉”하고 기이한 포효를 내뱉었다.
  동시에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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