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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3

2009.03.29 21:27

azelight 조회 수:665

2.
  에크로반이 기합소리도 내지 않고 양손에 든 검 두 자루를 교차해 찔렀다. 이도류교차찌르기. 처음에 당할 때는 막아내기 다소 애매한 덕에 좀 고생했지만 지금은 도끼의 머리와 자루 끝부분을 이용해 손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야예이는 위아래로 도끼를 터는 것 같은 동작만으로 교차찌르기를 막아내고 즉시 반격에 들어갔다. 2번 상당베기에 이어 상단에서 하단으로 비스듬히 내려치기. 에크로반은 뒤로 딱 세 걸음을 물러나는 것으로 그 공격을 피했다. 그 다음 곧장 2단 베기. 야예이는 몸을 뒤로 물린 후 반 회전 하면 손을 휘둘렀고 에크로반은 고개를 숙인 후 뒤따라오는 발차기를 재주넘기로 피해냈다.
  야예이는 에크로반이 피하자 자세를 가다듬으며 에크로반의 공격에 대비했다. 곧 에크로반이 교차베기와 회전베기를 넣어왔고 야예이는 그 공격들을 모두 막아냈다. 하지만 에크로반의 공세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빨라졌다. 마치 관절이 세게인 생물처럼 에크로반은 유연하고 변화무쌍하게 양 손의 검을 휘둘렀다.
  야예이로서는 적절하게 방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에크로반이 만약 마음먹고 공격한다면 순식간에 야예이를 거꾸러뜨릴 수 있을 것 이 틀림없었다.
  야예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간격을 벌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도끼를 뻗을 공간이 없으며 더 이상 반격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거기에 에크로반은 교묘할 정도로 간격을 유지하며 공세를 유지했고 야예이는 육탄전으로 끌고 갈 생각 역시 접어야했다.
  슬슬 결정을 내려야겠다고 야예이는 생각했다.
  야예이는 에크로반의 공격을 피하는 척 하며 크게 물러섰다. 동시에 양팔을 슬쩍 들어 올려 하단을 비웠다. 하단 찌르기를 유도할 생각이었다. 뒤로 물러나는 상대를 쫓아오며 깊이 찌르기를 넣는 것이 에크로반의 버릇이었다.
  에크로반은 야예이가 원하는데로 빈틈으로 하단찌르기를 넣어왔다. 야예이는 재빨리 검을 밟으려고 했지만 에크로반의 검은 이미 그 위치에서 빠져나간 뒤였다. 하지만 야예이는 내디는 다리 그대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자 에크로반은 거의 종이 한 장차이로 피하더니 야예이의 품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검의 옆면으로 야예이의 옆구리를 치고 지나갔다.
  “또 한판이다. 하지만 내 찌르기를 유도한 것은 좋았다. 그걸 이제야 이용할 생각을 한 것은 좀 그렇구나.”
  검을 쥔 양팔을 늘어뜨리며 에크로반이 웃었다. 야예이는 머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제 야예이는 10살이었다. 그러나 덩치는 어른만 했다. 어렸을 때부터 한 훈련 때문인지 아니면 오크의 기질 때문인지 몸은 근육이 붙어 우람했다. 에크로반이 작은 편이 아니었건만 야예이의 옆에 서면 왜소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럼 좀 쉬자꾸나. 나도 일이 좀 있고 말이지.”
  “그럼 전 나가서 더 훈련하겠습니다.”
  야예이는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에크로반이 “그래라.”하고 허가를 내리자 야예이는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함정이 있는 장소지만 상관없었다. 야예이는 이 산에 있는 것들은 무엇하나 모르는 것이 없었다. 가장 높은 장소와 낮은 장소. 마을의 아이들 혹은 어른들이 숨겨놓은 덫, 가장 큰 바위가 있는 곳이며 가장 전망 좋은 장소 등.
  야예이는 남는 시간의 대부분을 갈색 산맥을 헤매거나 아니면 책을 읽거나하며 보냈다. 몇 권 뿐인 소설들은 이미 너무 읽어 너덜너덜해져 다시는 손대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야예이는 에크로반이 새로운 책을 구해올 때까지 나무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요령은 에크로반에게 배웠다. 에크로반은 틈틈이 나무 조각을 깎아 마을아래에서 팔곤 했다. 그가 가져온 가죽만큼이나 조각품들 역시 팔려나갔다. 보통 마을 주민들보다는 도시에서 마을까지 오가는 떠돌이 상인들이 사가져 갔다. 근처의 올랜스 자작령으로 가면 가죽들 못지않게 조각들 역시 팔리는 것 같았다.
  야예이는 그 중에 자신의 것이 끼이기를 바랐다. 언젠가 도시에서 훌륭한 조각가에 대한 풍문이 퍼지고 그 조작을 만든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이 밝혀져, 그것을 계기로 유명해져 사람들 속에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그런 상상들을 하곤 했다. 막연하고 가능성 적은 상상이긴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며 자신의 내면에 쌓여가고 있는 답답함을 털어냈다.
  하지만 그런 자기위안은 갈수록 허탈함만 더해가게 할 뿐이었다. 야예이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언젠가 힘이 생기고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게 된다면 그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
  야예이는 마음속에서 ‘아니오’라는 답이 떠오른다는 것을 느끼며 숲 속을 걸었다. 무릎까지 오는 잡목들이 우거져있었지만 야예이는 전혀 방해되지 않는 듯 움직였다.
  특별히 목적한 장소는 없었다. 그저 대충 걷고 있을 뿐이었다.
  한 낮에 방문자들이 오가기 때문에 야예이는 될 수 있는 한 오두막 근처에 있기 보다는 밖으로 나가있기를 원했다. 손님이 올 때마다 뒷문으로 나가 숨는 것은 왠지 오두막에서 쫓겨나는 것만 같아서 기분 나빴기 때문이었다. 물론 누구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마치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야예이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랬기에 야예이는 에크로반과 연습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산을 떠돌아 다녔다.
  물론 숲 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소설처럼 가녀린 엘프 아가씨를 만나봤자 오크를 닮은 외양 덕에 화살이나 안 맞으면 다행인 만큼 야예이는 기척을 죽이고 숲을 돌아다녔다. 때론 숲 속 깊이까지 사냥 나온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을 몰래 호위해주기도 했지만 결코 자신이 존재한다는 티는 내지 않았다.
  야예이는 그 정도의 위치가 자신에게 옳다고 믿었다.
  마음 속 깊이 사람들과 결속될 수 있기를 갈망했지만 그런 일들이 자신에게는 주제넘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에크로반의 과보호 덕이기도 했고 일찍이부터 그에게서 자신과 인간들, 오크들과의 차이와 그가 처한 환경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탓이기도 했다.
  에크로반은 야예이가 그가 처한 환경으로 상처받지 않도록 해주려는 의도에서 그런 사실들을 어렸을 때부터 인식시켜준 거였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야예이가 주눅 들게 만드는 효과역시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야예이는 지금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에크로반의 말대로 후련에 임하고 있긴 하지만 그가 생각한 것처럼 불굴의 시련조차 넘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세상에 인정받고자 지금같은 훈련에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야예이에게 너무 자신감이 없었다. 그는 그보다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장소에서 지금처럼 자연을 벗삼아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 희망이 야예이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미래였다. 물론 괜찮다면 불편하고 괴롭다하더라고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는 것도 좋았다.
  야예이에겐 언젠가 에크로반이 말하는 희망을 터무니없게 느끼진 않았지만 너무나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인간이면서도 자신을 위해 헌신해주는 에크로반이 고마웠기에 그는 그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고 있었다.
  마치 빚을 진 것 같다고 야예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에게 샆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그의 헌신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다.
  물론 아직까진 어디까지나 희망상황일 뿐인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아직 어렸고 서툴렀다. 현실적인 사고보다는 상상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런 사실들을 야예이는 인식하고 있었다.
  “후-.”
  야예이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자신이 스스로 좀 조숙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할 것이 많은 삶을 살아서 일거라고 속으로 자화자찬한 야예이는 자신이 제법 산 속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 이 곳이 늑대들의 우두머리 잭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예이는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잭은 에크로반과 불가침의 협약을 맺은 짐승들 중 하나였다. 사냥꾼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정해 놓았다고 해야 할까. 그렇기에 잭은 만약 에크로반이나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다면 즉각 그들을 공격할 명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만약 발견된다면 정말 귀찮은 일이 된다.
  잭은 강인하고 끈질긴 사냥꾼이었다. 그리고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발각된다면 결코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다. 야예이는 흔적을 남기지 않게 조심하며 재빨리 영역을 벗어났다.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 평소라면 결코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야예이는 자신이 한 멍청한 짓에 짜증을 내며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황혼이 지기 시작해 붉은 빛이 틈틈이 들어오는 숲 속은 이미 짙게 검은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그 어둠 속에 뭐가 있어도 이상치 않다. 그런 생각이 들자 야예이는 조금 오싹해졌다.
  최대한 서둘러 숲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곧 야예이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지켜봐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야예이는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당황한 모습을 보이거나 틈을 보이면 공격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반대의 입장이라면 야예이 자신이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야예이는 곧 잭의 영역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영역의 경계에 잭이 남겨놓은 표식이 나무에 새겨져있는 것을 야예이는 발견했다. 정상적인 늑대가 낼 수 있는 발톱자국보다 훨씬 크고 예리한 자국이 나무기둥에 새겨져 있었다. ‘잭의 발톱자국’. 야예이는 작게 숨을 몰아쉬고는 경계를 벗어났다.
  그러자 감시자의 시선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야예이는 허리를 쭉 폈다. 그리고 긴장으로 지친 몸을 움직여 오두막을 향했다. 어쨌든 자신이 그의 영역을 침입했다는 사실을 들켰다는 것을 야예이는 알았다. 이것을 잭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무척 중요했다. 야예이는 별 일이 없길 바랬지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 비해 늑대 무리는 훨씬 더 커져 있었다. 에크로반과 자경단 덕에 오크들의 세력이 상당히 약해졌고 반면 늑대무리들이 훨씬 더 영역을 가지게 되었다. 오크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늑대들은 오크들에게 잡아들여지거나 사냥당하는 일도 줄었다. 위협거리가 줄어듦으로서 그들의 수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늘어난 그들은 보다 넓은 영역을 필요로 했다.
  야예이는 자신의 실수로 뭔가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또 야예이는 자신의 실수를 에크로반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실에 침울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잭을 자극했다는 사실을 에크로반이 듣는다면 결코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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