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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라낙의 성 -2-

2010.01.15 16:25

azelight 조회 수:553

안녕하세요 아젤라이트 입니다.

처음 글이 너무 길어서 솔직히 다 읽으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쪼개서 다시 올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이어 올립니다.

이번 글이 잘되면 한 번 공모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그런데 그만큼 질이 나와줄기 저로서는 잘 모르겠네요.

여튼 재미있는 내용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볼까 합니다.

 

읽고 즐거우셨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제목은 그라낙에서 그라낙의 성으로 고칩니다. 이후에 쓸 펜탈론의 동굴과 세멧라마의 탑과 동일성 있는 제목을 써야해서 말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 글은 한권 분량을 예정중이지만 같은 분량의 후편이 두개 더 있습니다.

그럼 전 다음 편을 올릴 내일 뵙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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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활을 내려놓았다. 몸집에 맞지 않은 대궁이었지만 남자의 비정상적인 길이의 팔 덕분에 그 커다란 대궁을 다룰 수 있었다.

남자는 활을 내리고 자신이 한 일의 결과를 바라보았다.

좀 전 부터 혼전으로 접어든 전장은 이제 더 이상 전쟁이라 부를 수 없는 경지에 접어들고 말았다. 질서정연했던 야만거인들은 본래의 본성을 마음껏 드러내며 끊어 오르는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명령을 수행시키기 위해 억압시켜 놓았을 자아가 표출한 결과일 것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가 상대해본 야만거인인 눌은 잔혹하지만 동시에 쉽게 흥분하고 앞뒤를 가릴 줄 모르는 성미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예민한 감각과 뛰어난 상황판단 능력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언제나 분노가 그들의 본성을 앞섰다. 과연 포학자에게서 창조된 종족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의 타고난 특성인 피의 분노에 의해 눌들은 다치면 다칠수록 더 빠르고 더 강해져 마치 현세에 강림한 악귀처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존재들을 전투 기계마냥 감정을 눌러 놓았으니 그 반동이 얼마나 크겠는가?

타고난 본성을 억압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안 그래도 시종일간 화내며 폭주하는 것이 바로 눌들이었다. 가고록스의 실패작이며 선주종족이면서도 잔혹한 괴물인 눌. 그런 존재들이 억압되어 있던 본성을 표출하자 사방을 뛰어나디며 닥치는 대로 공격해대기 시작했다. 심지어 같은 눌마저도 예외는 없었다.

남자의 어깨에 타고 있는 다람쥐가 헛기침을 했다.

“음. 에크로반. 이럴 필요까지 있었었나 싶은데.”

주문이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로 두 눈에 붉은 빛을 띤 다람쥐는 좀 불만스러운 듯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다람쥐는 주문의 영향을 받고 있는 듯 했다. 그것이 어떤 주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남자는... 에크로반은 이 주문사의 본체가 사실 제국 서편 끝에 있는 탑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크로반은 어차피 보기도 힘든 어깨 위의 다람쥐(의 몸을 빌린 마법사) 멜프하겐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고갤개를 저었다. 그로서는 보기 드문 리액션이었다.

“당연한 조치야. 멜프하겐. 저들이 어느 한쪽이 이긴다면 그건 현세의 천칭을 기울게 하는 일의 시발점이 될 거야. 그렇다면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하게 하는 쪽이 낮지.”

“그렇지만 저래서야 양쪽 다 그저 파멸할 뿐인 것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많은 생명을 동시에 잃게 만드는 일은 용납될 수 없네.”

멜프하겐은 에크로반의 조치가 불만인 듯 했다. 그는 이 조치가 과도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에크로반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특별히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이건 너무 심했다. 양쪽이 싸움을 붙은 후에 지휘관이나 적당히 무력을 보여주는 이들을 저격해서 균형을 맞춘다는 생각은 멜프하겐에게 있어서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가능한 가 불가능한가의 여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송곳니의 행동요원들은 대체로 전투에 있어서 최상급 능력자들로 곧장 불가능해 보이는 몇몇 일들을 가볍게 해내곤 했다.

예를 들자면 눈앞의 에크로반만 해도 몇 번의 사례가 있었다.

반년 전 타락한 주문사 세마즈를 단신으로 그 탑에서 격퇴한 일 같은 것 말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명손실이 있었다는 문제만 제외한다면 에크로반은 탑의 대가급 주문사가 할 만한 일을 해낸 것이었다. 희생을 내는 그 방식에는 찬성을 못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에크로반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에크로반은 조화의 숙녀의 비호를 받는 비밀결사 송곳니의 최정예 요원인 것이다.

더구나 단신 전투력에 있어서는 송곳니 내에서도 그를 따라갈 자가 전혀 존재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의 스승이었고 지금은 사망한 칼리쉬는 대단한 사냥꾼이었다.

세계의 지붕에 산다는 수호자 부족인 케자드의 마라두였던 칼리쉬는 그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전투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의 기술과 지혜를 에크로반은 고스란히 이어 받고 있었다.

멜프하겐은 그런 에크로반이기 때문에 좀 더 도덕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고 하지만 이런 참사가 허용된다면 결코 옳지 못한 일이 되는 것이었다. 희생 위에서는 이상이 피어날 수 없다는 것이 멜프하겐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에 에크로반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여신께선 내게 어떤 재제도 가하시지 않으시네. 그대가 뭐라 할 만한 일이 아니야.”

에크로반의 말에 멜프하겐은 입을 다물었다.

조화의 여신의 승낙. 그게 문제라고 멜프하겐은 생각했다. 조화와 균형, 생태계, 사냥을 관장하는 수목과 숲, 초원의 여신인 미르키엘은 에크로반의 방식에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고 있었다.

에크로반의 임무에서는 항상 수명에서 수십 명의 희생자가 생겨나곤 했다. 지금처럼 수백의 희생자가 나는 일은 극히 드물었지만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조화의 숙녀인 미르키엘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에크로반의 임무에서 희생되어도 에크로반에게 어떤 제재도 내리지 않았다,

멜프하겐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이지만 그것이 여신의 의중이라면 거역할 수 없었다. 그저 여신이 에크로반을 현재 다른 방향으로 이끌려는 것에 대해서 전혀 제재가 없는 것으로 봐선 그 자신의 활동도 인정받고 있다고 예측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조화의 숙녀를 모시는 자연주의자들과 비밀결사 송곳니는 균형과 조화에 대해 상당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여신은 어느 쪽도 편들지 않음으로서 조화와 균형의 존재를 위해서는 다양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하였다. 그래서인지 자연주의자들과 송곳니는 수단에 의한 의견차이가 있더라도 서로가 옳다고 우기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따로따로 활동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여신의 계시에 따라서 일을 수행하곤 하지만 그 활동 내역과 방식은 천차만별이었다. 이런 추세다보니 송곳니도 자연주의자들도 모두 개인주의자들이 되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송곳니들은 그런 경향이 더욱 강했다. 아마도 그런 경향은 이들이 직접적으로 균형을 판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은 아닌가하고 멜프하겐은 생각했다.

결국 균형을 추구한다는 것은 편이 없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주종족들은 사회적인 생물인 만큼 성향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감정의 이입도에 따라 편을 갈라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송곳니의 일원으로서 그들은 여신 신앙을 따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그 감정적인 면모들을 버려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미묘한 사안들에서 개인적인 감정과 주변의 인연에 좌지우지되어 대의를 그르칠 수도 있었다.

멜프하겐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에게는 대의를 뒷받침할 선함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멜프하겐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잠시 영주군과 눌들의 전투를 살펴보고 있던 에크로반은 대궁을 등에 메고 전장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더 이상 그가 관여할 필요는 없을 듯 했다.

신명이 가져다주는 균형에 대한 감각은 생각 못한 변수가 없는 한 대체로 맞아 떨어지는 편이었기에 에크로반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만약 어느 한쪽이 승리한다하더라도 현재 형성되어 있는 전세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라고 에크로반은 확신했다.

혼자 무슨 생각에 빠진 것인지 말이 없어진 멜프하겐을 어깨에 태우고 에크로반은 엠필로스 평원을 걸었다.

지금 에크로반과 멜프하겐이 향하고 있는 곳은 원래 에카난스의 병사들이 향하고 있던 베링이라는 작은 촌락이었다. 멜프하겐이 그와 접선한 후 이르길 베링 촌락에 랑그라드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협력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그는 에크로반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동행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었다.

누군가와 동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에크로반이었지만 협력자가 멜프하겐만을 믿는다는 말 때문에 결국 동의를 허락했다. 물론 성향이 맞지 않는 만큼 지금과 같은 잔소리를 예측하고 말이다.

다행히 멜프하겐은 전에 만큼 시끄럽지는 않았다. 그 점에 에크로반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고독이야 말로 그이 진정한 친구였다. 그것도 일생을 함께 할 영원한 친우. 참고로 그 친구는 실존하지 않는 관념적인 존재인 만큼 불우한 사고로 인해 우정에 금이 갈 일도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멜프하겐이라는 인물은 그런 에크로반의 성향을 저혀 이해하기 못하고 있었다.

에크로반이 보기에 그는 그저 실없는 이상주의자일 뿐이다. 선을 설파하고자 하면 어째서 이 길로 온 거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조화의 숙녀를 섬기는 자들에게 있어 교리해석은 자유로웠고 다른 의견은 서로 존중될 뿐 침범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저 조용히 참을 뿐이다.

어서 임무를 끝내고 자신의 평소의 친구를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에크로반은 걸음을 빨리했다. 자정가지가 약속 시간이었다. 베링까지는 아직 반나절. 에카난스의 병사들과 눌과의 전투 때와 멜프하겐과의 접선에 할애한 시간만큼을 벌어야 했다.

가야할 길이 멀었다.

에크로반은 멜프하겐의 침묵 덕에 간만의 조용하고 쾌적한 시간을 만끽했다. 아마도 잠시 동안은 고요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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