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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보자마자 나온 반응은 각자 달랐다. 먼저 움직인 것은 아윈이었다.

“선생~~!!”

아윈은 방금 전의 허무맹랑한 소리를 할 때처럼 만면에 태양 같은 미소를 띠며 상대방에게 와락 안겼다.

“있지. 선생! 나 오늘도 거기 갔다 왔어!!”

선생이라 불린 사내는 힐로아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다소 특이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키다리 나무 같이 훤칠하게 큰 키하며, 다소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약간 마른 듯한 몸매에 허리까지 닿는 긴 장발은 일랜드의 바다처럼 우중충한 느낌을 주는 짙은 회색빛을 띄고 있었고, 피부 역시 머리카락만큼은 아니었지만,  그와 같은 어둡고 창백한 색이어서 처음 보는 사람은 쉽게 호감을 가지기 어려운 그런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음습한 외모와 달리 아윈을 맞이하는 선생의 얼굴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따듯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반면, 상대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달려가 품에 안기는 아윈과는 달리 이디아는 일단 만난 사람이 선생이라는 것에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흠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아윈 좀 따끔하게 야단쳐주세요. 명색이 이곳 숲지기시잖아요. 아윈 같은 말썽장이가 마음대로 들어가게 두면 되겠어요?”

이디아가 선생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윈의 만행을 일러바치자 선생은 안경을 고쳐쓰곤 짐짓 엄한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

“아윈, 또 전망 좋은 언덕에 올라갔었군요.”

“응!”

“이디양 말이 맞습니다. 너무 자주가면 못써요.”

“응! 나도 어제는 안 갔어. 자주 온 거 아냐. 이틀 만에 온 거라고!”

선생 앞에선 순한 양이 된 것처럼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는 아윈. 대답한 내용으로 보자면, 여전히 문제가 많았지만, 선생은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이 다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아윈을 안아들었다.
그리곤 마치 친아들에게 해주는 것처럼 자신의 머리위로 번쩍 들어 올려 무등을 태우곤, 한손으론 이디아가 탄 노새의 고삐를 끌으며 마을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참.... 자꾸 그렇게 오냐오냐 해주니까 아윈이 말썽만 피우는 거라구요. 어제는 여기 안온 대신에 무슨 사고를 쳤는지 아세요? 세상에...”

“시끄러워! 고자질쟁이야!”

선생을 만난 덕분에 잠시 가라앉았던, 둘의 말다툼은 다시 치열하게 시작되었다.
하나는 선생의 어깨 위에서, 또 하나는 노새의 등 위에서. 가운데 끼인 선생으로선 시끄럽고 정신없을 법한 상황이었지만, 선생은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며 둘의 말다툼을 경청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렇군요. 그러면 어제의 소동은 이디양도 공범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되는군요.”

“그, 그런 게 아니거든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느 정도 말다툼이 끝날 즈음이 되면 선생은 둘의 이야기를 잘 듣고 결론을 내려주곤 했는데, 결론은 대게 비슷해서 둘이 모두 공범. 혹은 사이가 너무 좋아서 벌어진 말썽. 정도로 이야기했고, 그때마다 이디아는 지금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완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가만 보면 두 사람은 정말 사이가 너무 좋은 것 같군요. 어제 일도 그렇고... 어디보자 오늘도 그렇더군요. 이디양이 숨겨놓은 노새를 돌보고 있더라니, 숲 안에서 두 사람이 사이좋게 속삭이는 이야기가 숲 밖에까지 다 들리지 않겠어요?”

“아니라니까요!!”

이디아는 다시 한 번 세차게 도리질을 치곤 짐짓 단단히 토라진 것처럼 고개마저 휙 돌려버린 채, 입을 삐죽 내밀었는데, 선생과 아윈은 이렇게 삐친 이디아를 달래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방법은 바로...

“선생. 선생. 나 모험이야기 해줘.”

아윈의 부탁에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벌써부터 토라진 척을 하는 이디아의 귀가 심하게 쫑긋거리며 관심을 보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럼, 얼음산에서 무서운 얼음 괴물을 무찌른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선생은 목청을 가다듬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는 여기 힐로아에서 멀리 북쪽으로 올라가면 얼음으로만 뒤덮인 춥디추운 겨울만 있는 그런 신기한 땅이 있답니다. 저와 동료들은 그곳에서 아주 무서운 일을 겪었었지요. 지금처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바로 그런 때였습니다. 그때 저와 동료들은...”

선생의 모험이야기는 무시무시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아윈은 물론이요, 단단히 삐졌던 이디아도 어느새 노새를 바짝 붙이곤 선생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 새라 숨죽이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아윈도 지금까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의젓한 모습으로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며 선생의 이야기에 집중했는데, 때론 선생이 이야기 속에서 처했던 위기의 순간에 선생조차 생각하지 못한 해결방법을 얘기하곤 해서 선생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 그리하여 무서운 얼음괴물은 영원히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되었고, 공포와 두려움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마을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답니다.”

“대단해!!!”

선생의 이야기가 막을 내리자, 아윈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도 커서 선생 같은 모험가가 될 거야!”

“흥. 훌륭한 모험가가 되기 전에 말썽이나 그만 부려. 너 같은 말썽쟁이가 어떻게 모험가가 되겠니?”
퉁명스럽게 내뱉은 이디아는 잠시 아윈의 눈치를 살피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니가 다 클 때쯤이면, 세상엔 모험할게 없어질지도 몰라. 선생님만 해도 얼마나 많은 모험을 하고 괴물을 쓰러뜨렸는데, 세상엔 선생님 같은 모험가들이 많잖아.”

그러나 아윈은 이디아의 말에 주눅 들기는커녕, 오히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슴을 죽 펴고 자신 있게 외치는 것이었다.

“난 그 사람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훌륭한 모험가가 될 거야! 선생이 말해준 ‘진짜 바다’를 찾아갈 거라고! 선생 맞지? 세상은 일랜드가 전부가 아니지?”

선생은 따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럼요. 세상은 두 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답니다. 침묵의 숲보다 깊고 넓은 숲도... 영주의 도시보다 크고 멋진 도시도... 뜨거운 물이 나오는 이상한 호수도, 아윈과 이디아양이 보고 경험할 세상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답니다.”

선생의 말을 들은 아윈은 선생이 말해준 것들을 하나하나 상상해보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런 아윈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 역시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과거도, 정체도 알 수 없는 낯선 인물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샤농에 정착해 침묵의 숲 숲지기를 하고 있는 모험가. 선생.
그의 학식과 경험, 인품을 많은 마을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랐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거리낌 없이 순수하게 다가온 아이가 바로 아윈이었다.
그 어떤 비밀도 아윈은 선생에게 거리낌 없이 털어 놓았고, 선생도 그런 아윈에게 사랑과 정성을 가득 쏟아주었다.

자신의 머리 위에서 눈동자를 빛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윈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선생은, 어느 덧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음을 깨닫고 자신의 머리 위에서 아윈을 내려놓았다.

“아윈, 이제 이디양 하고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군요.”

선생의 이야기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던 아윈과 이디아도 그제야 고개를 들고는 자신들이 마을 어귀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을 어귀에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자 이디아 집안의 하인들이 이디아를 찾기 위해 막 모여 있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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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름 길었던 서장이 슬슬 끝나가는군요.
1장. 소년 모험가. 는 아마 다음이나 다다음 연재분에서 시작될 것 같습니다.

다들 건필하시고 추운 겨울 건강챙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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