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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가희등천 1

2009.06.22 15:42

azelight 조회 수:680

가희등천 歌姬登天

 

안녕하신가요. 제 이름은 이브즈. ‘이야기 사냥꾼’이랍니다.

‘이야기 사냥꾼’이 뭐냐고요? 아, 이야기 사냥꾼은 이야기 사냥꾼이랍니다. 말 그대로 이야기를 사냥하는 사람이지요. 화살로 쏘아 맞추던, 검을 사용해 찔러 잡던, 세치 혀로 끌어내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이야기를 붙잡는 것이 저의 일이랍니다. 그리고 사로잡은 이야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오로지 저만의 것으로 삼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모은 이야기를 제가 전부 독점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지금부터 하려는 행위가 바로 그런 것이지요. 자, 저는 이번에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야기를 들려드릴 것입니다.

아아. 물론 기대하시라고 말할 마음은 없습니다. 정말 시시한 이야기거든요.

이야기를 너무 사랑하기에 사냥하고 독점하는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 줄 이야기라는 것이 얼마나 시시한 이야기인지 알 수 있으시겠지요. 정말 대단찮은 이야기랍니다.

특별한 복선도 없고 반전도 없으며 정해진 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 같은 이야기이랍니다. 이야기를 사냥하기 위해서 소비했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시시했던 이야기지요. 물론 저는 이야기의 인물인 ‘마물의 왕’의 바람을 따라 이 이야기를 사냥하지 않았지만 사냥할 필요도 없었던 이야기였어요.

정말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이 이야기를 사냥하기 위해 들인 시간이 얼마나 긴데 말이에요. 하지만 어쩔 수 없답니다. 저는 이야기 사냥꾼이며 엮는 자이지만 어디까지나 방관자.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 될 수 없으니 말이에요.

정말 서글픈 이야기. 이야기를 사랑하는 저이지만 이야기의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사랑하지만 배우는 될 수 없는 것처럼, 소설을 사랑하지만 주인공은커녕 등장인물 1도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것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불행이지요?

너무나도 서글퍼서 가슴에 구멍이 날 것 같은 사실입니다.

고약한 환상정원의 정원사, 엔들리스 레인(Endless lain) ‘루시 루시’는 매번 그 사실을 가지고 저를 놀리기에 더욱 서글퍼지는 것입니다. “이브즈씨는 정말 고약하군요. 방관자 역할에서 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일부러 그런 짓을 하다니. 정말 질이 나쁘다는 것은 이브즈씨는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는 다는 점이에요. 가장 중요한 결실만 가로채는 행위를 하시다니. 정말 천벌을 받으실 거예요.”라고 말이에요.

정말이지. 제가 끼어들기 싫은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저의 테일즈 위버(tales weaver)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지요.

아... 너무 잔말이 길었군요. 제 이야기는 이쯤 해두죠. 어차피 세상에 중요한 것은 이야기이지 그를 엮는 자, 사냥하는 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럼 들어보세요.

이 이야기에는 중요한 두 인물이 있답니다.

세상에 광기를 부여하고 본질에 마를 부여하는 ‘마물의 왕’.

달의 빛을 타고 태어나 마에 대항하는 힘을 품은 제마은령(銀魔制令)의 힘을 타고난 소녀.

‘타고나길 운명이 그러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자 결말이 보이지요?

그런 이야기랍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약속된 결말을 향해가는 그런 이야기 말이에요.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인 것입니다.

왕도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

그렇지만 감동이 부족한... 길게 이야기하기에는 입이 아프고 적기에는 종이가 아까운 그런 이야기이지요. 그러니 반드시 이야기를 듣도록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야기를 시작할 생각이랍니다. 자, 막을 열도록 하죠.

 

빛의 성지. 왕국 플라티나.

가장 풍요롭고 빛나는 왕국의 서쪽 끝에 불길한 검은 안개에 뒤덮인 숲이 있습니다.

안개에 덮여 있다고 하여 그 이름도 건은 안개 숲,

그 가장 깊은 곳. 검은 안개 숲의 중심에 마물의 왕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칠흑빛 거대한 육체, 가시처럼 뻣뻣하게 뻗은 등의 갈기. 머리의 양쪽에 뻗어나 굽은 4개의 뿔. 선혈과도 같은 붉은 눈동자와 지옥의 폐부를 긁는 것 같은 울림과 불길같은 검은 숨결을 내뱉는 송곳니로 가득한 입.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에게는 공포를, 대적하는 이에게는 절망을 을 내릴 것 같은 모든 마물들의 왕. 가장 잔혹하고, 가장 저열하며, 가장 파괴적이고, 가장 더럽고, 가장 어두우며, 가장 사악해 마땅한 존재.

검은 안개 숲을 채우는 검은 안개의 근원. 모든 이를 광기에 받치게 만들고 광기에 찬 자에게 마를 품게 만드는 것.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마물이 아닌 것들에게 두려움을 받는 그런 존재가 살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누구도 검은 안개 숲으로 다가가지 않았어요. 천금을 준다고 해도 만금을 준다고 해도 세상의 그 누구도 검은 안개 숲만큼은 다가가지 않았답니다. 다가갔다가는 마음을 잃고 미쳐버릴 테니 말이에요. 아니, 그 보다 훨씬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답니다. 마를 품은 존재가 되어 마물이 되어 버리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렇기에 오직 마물들만이 이 검은 안개 숲에서 살았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곳이야말로 마물들의 성지. 마물들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었죠.

마물의 왕은 돌로 만들어진 왕좌에 앉아 그 전능한 영지로 그의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검고 어두운 건은 안개 숲. 그 속에서 살아가는 그의 백성이 마물들을 말입니다.

어느 날의 일입니다.

한 마리의 마물이 마물의 왕에게 알현을 요청해온 것입니다. 마물의 왕은 그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답니다. 그는 마물들을 다스리는 자. 대체로 마물들은 자유롭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지만 그들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 혹은 검은 안개 숲의 유구한 역사 자체인 마물의 왕의 지혜가 필요할 때 그에게 알현을 요청하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무척 드문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마물의 왕은 대체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편이니 말입니다.

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검은 안개 속에서 마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길다한 양팔과 둥그런 두 눈. 파충류를 닮은 얼굴 뒤로는 자잘한 가시들이 촘촘히 나 있고 열린 입으로 긴 혀를 늘어뜨리고 있는 전형적으로 기분 나쁘게 생긴 마물이었답니다.

그 마물은 왕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가 가져온 *것*을 양손으로 받쳐 왕 앞에 내밀었습니다. 천으로 쌓인 그것을 내밀로 마물은 말했습니다.

“오오, 왕이이시여. 이 양손에 들려져 있는 것을 보십시오. 보십시오. 보십시오. 이것을 보십시오. 이것은 미치지 않나이다. 우리가 되지도 않나이다.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않나이다. 않나이다. 않나이다.”

마물의 왕은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천을 들써 보았지요. 천속에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아이. 고작 살아봤자 1년을 넘지 않았을 인간의 아이.

마물을 제외한 모든 것을 미치게 만들고 마로 변화시키는 안개 속에서 아이는 여전히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보십시오. 보십시오. 그 아이는 마가 되지 않습니다. 미치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게 없는 표정을 짓나이다. 마치 빛나는 것처럼. 눈부시게 눈부시게.”

마물의 왕은 아이를 받아 손에 들었습니다. 은색의 머리카락과 자색의 눈동자. 월령의 힘을 타고난 제마은령의 소녀.

아마도 이형의 힘과 외견 덕에 버려진 것이겠지요.

“어디서 데려왔는가? 어떻게 발견했는가? 말해 보거라. 백성이여.”

마물의 왕이 지엄한 힘을 담아 명령하자 마물은 그 몸을 움츠리며 경위를 고해 받쳤습니다. 고개를 조아리고 혀가 땅에 닿도록 숙이고는 말했지요.

“왕이시여! 왕이시여! 왕이시여! 3일 전 저는 이 아이를 검은 안개 숲 가까이에서 발견했나이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있어 먹으러 갔었는데 그 곳에서 발견했나이다. 아이를 먹으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나이다. 도저히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나이다. 그 자색의 눈동자를 거역할 수 없었나이다. 그렇기에 열매의 즙을 먹이고 호수의 물을 먹여 연명시켜 왕께 데려왔나이다. 결정 내려 주시옵소서.”

마물의 말에 왕은 고민했답니다. 아무리 보아도 인간의 아이. 이형의 힘을 타고났기에 버려졌음이 분명한 아이. 마물의 왕의 검은 안개 속에서도 눈물 흘리지 않고, 괴성을 내지 않으며, 손톱을 세워 내뻗지, 않고 피부를 긁지 않고, 눈을 부라리지 않는 아이.

어둠 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머리카락을 지닌 아이의 자색 눈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왕은 결정을 내렸답니다. 이 제마은령의 소녀를 마물의 아이로 이 숲의 백성으로 받아들이기로 말입니다. 검은 안개 숲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마물 뿐. 검은 안개 숲 속에서 미치지 않는 것은 오직 마물 뿐. 이 검은 안개 숲에서 여전히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마물이 돤 존재 뿐.

왕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왕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고하노라. 검은 안개 숲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은 오직 우리들. 마를 품은 자들뿐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서 태어난 아이라 할지라도 검은 안개 숲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존재는 이미 마라할 수 있으리라. 이 아이는 이제부터 내 딸이다. 나는 이 아이를 검은 안개 숲의 백성으로 인정하노라. 나의 왕국의 백성으로 인정하노라.”

야유와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왕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왕에게 도전할 수 있는 마물이 존재할 수는 없으니까요.

저 가공할 잔인함으로 무장한 인간들로부터 이 숲을 지키는 것이 바로 저 마물의 왕, 검은 안개의 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물들은 왕의 결정에 불만이 많았지만 대들 수 없었답니다.

물론 불만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저 탐스러워 보이는 작은 아이를... 인간의 아이를 먹지 못하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 괴로운 일일 테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가장 먹고 싶은 진미를 코앞에 두고 맛도 보지 못하고 입맛만 다셔야 되는 상황이라니. 정말 사양하고 싶지 않나요? 너무나 끔찍한 고문이 되지 않겠어요? 저는 정말 그런 일은 싫답니다. 분명 여러분들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찌되었든. 어찌되었든.

제마은령의 소녀는 검은 안개 숲의 백성이 되었답니다. 인간에게는 독수인 호수의 물과 열매의 과즙을 마시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제마은령의 소녀.

왕의 옥좌를 둘러싸고 모여든 수많은 마물들의 불만의 시선을 느끼며 마물의 왕은 제마은령의 소녀의 뺨에 무쇠조차도 갈라버리는 그 가공할 손톱을 가져다 되었습니다. 극히 느린 동작은 지극히 천천히 말이에요. 아주 살짝. 상처 나지 않도록.

“새로이 들어온 백성이여. 나의 딸이여. 그래, 이름을 주마. 내가 너에게 이름을 주마. 너의 이름을 ‘월령’이니라. 월광과도 같은 은색 머리카락, 밤 호수 같은 흑자색 눈동자를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업구나. 나 너를 ‘월령’이라 부르겠노라.”

그렇게 제마은령의 소녀는 ‘월령’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마물의 왕의 방치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마물의 왕을 탓하지 맙시다. 정말 마물이란 존재들은 제멋대로 성장하는 존재들이니까요. 내버려둬도 쑥쑥 크는 편리한 존재들이니까요. 그러니 도리어 칭찬합시다. 제마은령의 소녀의 생명력을 말이에요. 검은 안개 숲에서 마물들의 식의가 담긴 시선 속에서 성장하고 자라난 제마은령의 소녀에게 말입니다.

무럭무럭 무럭무럭 성장했답니다. 제마은령의 소녀는 말입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했음에도 말이에요. 아무도 몰랐답니다. 심지어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마물의 왕도 몰랐습니다. 그것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인간의 아이란 극진한 보살핌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마물들과 마물의 왕은 그녀가 진실로 인간들 속에서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마물들은 모르는 걸요. 인간이 마물들을 모르듯이 마물도 인간을 모르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의 호의도 받는 일 없이 제마은령의 소녀는 성장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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