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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성계신곡 렉스렉시온3

2010.04.24 19:33

azelight 조회 수:647

렉스렉시온이란 성계신곡이라고 불리던 공멸 전 시대의 노래였다.

지금은 소실한 구문명과 공멸한 적. 빛을 두른 신(아우레프)이자, 허공 너머에서 온 ‘사자’인 그들의 염파는 현계에 유출되어 음파로서의 성질을 가지게 되는데 이를 렉스렉시온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유는 성계신곡이라 불리며 사랑받던 렉스렉시온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기 때문으로 이제 완전히 정착되어 그들의 염파 반응 자체를 렉스렉시온이라고 불렀다.

문제는 바로 이 제 9연구소는 무단으로 이 렉스렉시온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세르네티가 데려와야 할 유이스는 그 연구를 위해 연구소에서 격리조치 당한 상태였다.

화상플레이트에 떠 있던 마지막 문구와 함께 에인스티아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흥미본위란 말이지.’

실소가 세르네티의 입에 머금어졌다. 웃긴 것은 자신도 흥미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뭐라고 해도 현 인류 중에서는 유일한 존재다. 세르네티는 ‘이런. 이런’하고 속으로 한숨 쉬었다. 아무래도 함장인 에인스티아의 느긋함이 자신에게도 감염되어버린 것 같았다.

“여깁니다.”

소장과 함께 따라온 경비병들이 둘. 양쪽 다 엄중하게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완전 차폐기능이 발휘되고 있을 것이 분명한 그들의 복장에 세르네티는 실소했다.

소장이 유이스를 어떻게 취급했을지 상상이 갔다. 아무래도 역시 취급주의라고 써 붙인 상품 이상으로 주의 깊게 다뤘을 것이다. 어쩌면 완벽하게 격리조치가 취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하지 말았어야지. 죽인 후에도 조사할 방법은 많았을 것이다. 굳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채택하다니. 이런. 이런.’

세르네티는 한숨을 쉬었다.

1년 내내 이런 식으로 대해 졌다면 각오를 좀 해둘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저 안에 들어있는 것은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료에 의하면 정신파장에 이상반응은 없었지만 알 수 없다. 현재 의학은 군데군데 구멍이 있는 불완전 영역이기 때문에 정신에 관한한 어떤 것도 확증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조명이 어두워졌다.

소장은 세르네티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의 시각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런데 정말 방호복을 입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그는….”

세르네티는 고개를 저었다.

“문제없다. 아인스트는 그렇게 판단했다. 혹시 의심하는 건가?”

아인스트라는 단어가 얼마나 마법적인 단어인지 소장은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자, 그럼 문을 열어. 나는 실물이 보고 싶으니까.”

세르네티가 지시하자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병들 중 한명이 문을 열기 위한 버튼을 누르자 방공호를 연상케 하는 엄중한 봉인을 새겨진 두터운 4중문이 열렸다.

좁고 어두운 공간.

그 어둠 속에 말라비틀어진 남성이 웅크린 자세로 앉아 있었다. 아마도 그가 유이스. 전혀 손질되지 않은 지저분한 몸으로 격리실로 들어온 세르네티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사나운 눈초리에 세르네티는 귀엽다는 듯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이런.”

흔들림 없는 의지와 의문, 분노, 실의, 절망. 그의 감정선들은 부정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1년의 시간 동안 쌓인 악의. 염술사이기도 한 그는 노골적으로 악의를 표출하며 자신을 감금했을지도 모를 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증오, 분노, 살의. 고형이 되어 도리어 안정적으로 보였다.

어지간해선 흔들리지 않을 부동의 감정선.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즐거울 것이다. 그 신념을 송두리째 부순 다음 굴복시킨다. 의문, 분노, 실의, 절망. 그 모든 것을 굴종으로 바꿔줄 마음이 충분히 있었다. 설득을 하러온 것이 아니다. 폭력을 행하러 온 거다.

‘조금 다루기 쉽게 만들지 않으면 임무에 지장이 초래될지도 모르니까.’

라는 이유를 마음대로 붙이며 세르네티는 룰루랄라 유이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벨론의 개인비서로 일했던 그 나날들의 스트레스를 몽땅 푸는 것이 세르네티의 목적이었다.

“안녕하신가?”

가볍게 말을 붙였지만 대답을 돌아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세르네티는 일단 소장과 경비병들에게 물러나 달라고 손짓했다.

소장은 잠시 주저했지만 순순히 물러났다. 애초에 그에게는 세르네티에게 저항한다는 선택이 없었다. 겁이 많은 인물이다. 하긴 그러나 보통은 저런 인물이 오래 산다. 현명하다고 속으로 칭해주며 세르네티는 웅크려 앉은 유이스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서부터 세르네티의 놀이 시간이었다. 괴롭히는 재미가 있을 것 같으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힌다.

“자, 이제 조용히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네게 제안을 하러왔어. 혹시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

싱글싱글 미소를 짓고 있는 세르네티를 노려보던 유이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 큼. 크흐. 으. 아. 너. 음! 너는 누구냐?”

1년 만에 입을 열게 되어 어색한지 유이스는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감정선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것이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기에 세르네티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1년 동안에서 독방에서 사고가 돌고 돌아 딱딱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 것일까?

제정신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칭찬해줄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사고가 유연할지도 몰랐다.

아니면 차원간섭형 유인전투기의 코어로서 조정된 자의 저력일지도.

“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이라는 말버릇이 나쁘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떠나서 세르네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부정한 감정선의 덩어리를 흔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유이스에게는 사고할만한 여유가 있어 보이니 좀 극단적으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실제로 유이스는 곧바로 반응해왔다.

“네가 할 소리냐.”

분노하기보다는 그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점에서 세르네티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확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 소리지. 척 봐도 높으신 분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아? 그리고 이제 부하가 될 녀석에게 존대할 필요 있겠어?”

유이스의 눈초리가 이상해 졌지만 세르네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는 이를 불안하게 하기에 충분한 웃음. 유이스는 소장 이상으로 섬뜩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아, 그래. 너 지금 왜 갇혀 있는지 모르지? 가르쳐 줄까? 존대하면 가르쳐 줄게.”

유이스의 눈초리가 차가워졌지만 세르네티는 무시했다. 어디까지 흔들어야 이성을 잃게 될까? 그 점이 궁금했다. 뭐,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시험이었다.

자신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 이유에 대해서 유이스는 궁금해 하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의 몸으로부터 일렁이는 감정선을 봐도 말이다. 하지만 워낙 원망과 분노가 쌓여있는 상태에서 얼마나 여유를 낼 수있을까가 세르네티가 궁금한 부분이었다.

그러니 그 분노를 흔든다. 폭발한다면 폭발하는 대로 좋다. 그렇다면 에인스티아에게 ‘그는 사용불가였습니다.’라고 보고하면 끝인 일이었다.

단순히 재미있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이스의 유용성 역시 고려하고 있었다.

“지금 처지를 생각하면 그 마음가짐이 이해가 가지만 말이지. 그래도 싸잖아. 자존심 따윌 세우느라 진실을 알 기회를 포기할 거야?”

적어도 세르네티의 눈으로는 유이스가 제정신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이성 적인지가 중요했다.

동료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령을 대리하기 위한 스카웃이었지만 그래도 1회용으로 쓰고 버릴 사람을 영입할 만큼 쿼레스의 일은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나 소수 인원만이 거대한 함선을 다루는 만큼 연계도 중요하다.

일단은 숙이는 법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 동안 굳어서 뻗뻗해진 목을 좀 부드럽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안 된다면 다음 후보를 찾겠지만….

“대답은?”

세르네티는 대답을 종용했다. 감정선에서 의문의 비율과 경계의 비율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세르네티는 유이스가 머리를 숙일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에겐 아직 충분한 이성이 남아 있었다.

“알겠... 습니다.”

“응. 응. 좋아, 그럼 대화를 시작해볼까? 아, 눈 가려.”

세르네티가 손을 들자 빛이 생겨났다. 유이스는 재빨리 눈을 감았지만 그 순간 새어 들어온 빛에 통증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흐~ 흐흥~ 흥~.”

빛에 눈을 적응시키며 유이스가 버벅거리는 동안 세르네티는 공간을 확장시키고 의자를 준비한 후 유이스를 앉히고 탁자를 꺼냈다.

차와 과자, 하얀 턴테이블 위의 꽃장식.

어둡고 비좁은 독방에 비하면 한결 화사한 공간이 세르네티의 손에서 창조되었다.

“자, 멜베야. 제 8성역 안티옥 19지구 산이지. 780년 전 꺼야. 그러니까. 공멸 전부터 보존되어 있던 거지. 귀한거야. 마셔봐.”

말로 형용하기 미묘한 향이 찻잔에서 물씬 풍겼다. 미각으로 치면 고소하다고 생각되는 향에 유이스는 간신히 빛에 적응한 눈으로 찻잔을 바라보았다.

“이게 차입니까?”

탁한 액체가 들어있는 잔을 보며 유이스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던졌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 차라는 것은 맑은 액체가 들어가 있기 마련일 텐데 이래서야 구정물 같아 보였다. 냄새는 나름 미묘하면서도 괜찮았지만 보기에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아아, 물론. 이건 우려내는 것이 아니라 잎 자체를 가루로 섞어서 먹는 거거든. 원래 진통제 같은 건데 약간의 정제를 하면 훌륭한 기호식품이 되어주지. 일단 마셔봐.”

생글생글 웃는 세르네티의 표정에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일단 정체불명으로 보이는 차를 마셨다.

텁텁하고 쓴맛이 입안에 퍼졌다.

“크흠.”

“엄청 쓰지? 그게 멜베의 맛이지. 자 그럼 환경도 가췄으니 이야기를 해볼까. 우선 네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부터 알려주기로 했었지. 자,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어?”

세르네티의 말에 유이스는 망설이듯한 몸짓을 했다. 세르네티는 유이스가 곤혼스러워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실히 대답해주고 싶지만 알 수 없겠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일 거고.

그러니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 처음부터 말해봐. 사실 그 때 자료가 남아있질 않거든? 16함대는 전멸했고 말이지. 절대방어선이 1선부터 최종 9선까지 3시간 이내에 흔적조차 못 남기고 멸절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해서 말이지. 기억나는 곳까지. 그러면 나는 뒷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

유이스는 한숨을 쉬었다.

1년 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유이스의 머릿속에서는 희미한 감이 없지 않았다.

독방에서 격리되어 있는 동안 사고가 굳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올리려고 하자 생생히 떠올라왔다. 개인 함정(艦艇)이라고 불리는 차원간섭형 유인전투기의 6세대 나이트에 탑승하고 있던 그 때 시점이.

머릿속에서 울리던 중력자수치 변동 경보가 그대로 들려오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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