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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녀는 울지 않는다4

2010.04.07 11:51

azelight 조회 수:616

소녀가 큰 바위를 발견했을 때는 요정들과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너머로 거대한 녹색의 벽 같은 것이 보였지만 소녀는 일단 코앞의 바위를 신경 쓰기로 했다. 거의 성벽 수준으로 보이는 저 녹색 벽의 정체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지금 코앞의 바위 아래에서도 소녀의 상상을 가볍게 넘어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턱시도를 입은 거대한 공룡과 광대옷을 입은 곰, 로브를 입은 벌레가 원형 탁자에 나란히 둘러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다가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다행이 저 세 사람(?)은 소녀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옷을 입고 있는 공룡과 곰과 다지류 벌레라.

소녀에게 거부감이 들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뇌리에 위험신호 같은 것이 오진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가가고 싶음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우아, 정신이 나가갈 것 같다.’

소녀는 저 초현실적 광경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도저히 판단할 수 없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대로라면 체서캣이 나온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 이미 요정 대무리를 만났던가?

소녀는 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것도 생각해보면 나름 끔찍한 기억이었다. 그렇게 제멋대로 생긴 놈들에게 포위당해 있었다니.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덕분에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 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요정 대무리만큼 엄청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네, 교만이었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7대 죄악 중 하나를 떠올리며 소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세계는 소녀의 상상 이상으로 초현실적인 세계였다. 그럼에도 다행히 소녀가 살던 세계의 요소들이 보여서 다행이었다.

곰에 공룡에 벌레라니.

그래도 소녀가 살던 세계에서도 있던 것 아닌가?

특히 광대 옷을 입은 곰은 소녀의 마음속에 왠지 모를 친근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확실히 정신 나갈 것 같은 광경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뭔가를 본다는 것은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광대옷이 심히 거슬리긴 했지만.

아직도 다가가야 할지 말아야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던 소녀를 광대곰이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오. 여기 또 한명의 방랑자가 있소만.”

광대곰의 말에 남은 두 사람(?)이 동시에 소녀 쪽을 돌아보았다. 소녀는 세 사람(?)에게 주목당하자 움츠러드는 자신을 느꼈다.

공룡과 곰과 거대 다지류 벌레에게 주목 당하는 두려움은 분명 겪이 모른 사람은 알지 못하리라. 왠지 주저앉고 싶어지는 소녀였다.

어느새 소녀는 공룡과 곰과 벌레의 다과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새 사람(?)은 친절히 소녀를 받아 주었다. 쥐라기파크에 나오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를 연상시키는 몸을 가진 공룡의 날카로운 이빨이 돋보이는 친절한 미소를 소녀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녀는 미아인거로구만.”

턱시도를 입은 공룡신사가 짧은 팔로 억지로 팔짱을 끼며 “음. 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광경이 소녀로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초현상으로 다가왔지만 일단 잠자코 있었다. 앉은 키 4미터의 대형 생물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옆에는 포유류 최강 생물들 중 하나인 곰이 있었다. 대형 다지류 벌레야 말할 것 없을 정도로 소녀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이 방향으로 온 것은 무척이나 잘한 일이 다오.”

벌레음유시인이 과장되게 여러 개의 팔을 움직이며 말했다. 팔의 수가 많아서 그런지 움직일 때 마다 그 동작이 엄청나게 과장되어 보였다.

“이 길을 쭉 따라 저 숲을 지나면 ‘낙언’이라고 불리는 관문이 있다오. 모든 외지인이 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저 관문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오. 아마 미아양의 일행들도 저 낙언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 다오. 왜냐하면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면 갈 곳이 바로 저 낙언 밖에 없기 때문이다오.”

벌레시인은 벌레인 만큼 표정을 읽기 힘들었지만 소녀를 염려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순 있었다.

공룡과 벌레의 위로를 받으며 소녀는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역시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 사이 광대곰이 소녀를 위한 차와 스콘을 담은 접시를 들고 왔다. 소녀는 자신의 몫이 오자 소녀는 감사 인사를 한 후 먹기 시작했다.

아침으로 요정들이 준 음식을 먹긴 했지만 이런 디저트도 나쁘진 않았다. 게다가 위험 신호가 전혀 오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소녀는 안심하고 먹었다.

여전히 그 신호에 관하여 의심하고 있긴 했지만 유용한 능력이라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소녀는 일단 의지하고 있었다.

“미아양. 편히 쉬어라 곰. 내가 위로 공연을 해주겠다, 곰.”

아무래도 소녀의 명칭은 미아양으로 굳어 버린 것 같았다. 미아양이라니. 소녀는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서로 통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일까?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에 대해 물어보진 않았다. 괜한 참견 같은 데다가 왠지 이름에 대해서 물어봐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쩌면 이 세계에선 이름을 물어보는 일이 큰 실례일지도 몰랐다.

일단 이 세계의 문화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이상 수동적으로 행동하자는 것이 소녀의 방침이었다.

소녀는 광대곰이 처음 보는 과일 16개로 저글링을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며 차를 마셨다.

그 사이 벌레 시인이 시 발표회가 있었고 공룡신사가 자신의 수집품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미묘하게 화제가 맞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소녀는 자신이 말하기 보다는 듣는 쪽의 역할을 선택했다.

이 세계에 대해 될 수 있다면 많은 정보를 손에 넣고 싶었다.

문제는 이 셋이 하는 이야기는 전부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뿐이라는 점이었다. 곰은 곰곰 거릴 뿐이고 공룡은 책책 거릴 뿐이었다. 벌레는 되도 않은 시나 낭독하고 있고.

전혀 대화가 성립되지 못하는 이 카오틱한 광경 속에서 소녀는 스콘이 든 접시를 비웠다.

참으로 할 말 없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그 때였다.

소녀에게 엄청난 위험 신호가 머릿속에서 폭발했다. 순식간에 식욕이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엄청난 신호였다.

‘어라?’

그 신호에 놀라며 고개를 들자 소녀는 숲 쪽에서 다가오는 또 다른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양갈레 머리를 한 은발은안의 소녀. 거대한 낫과 함께 화사한 원색의 복장이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공룡신사는 소녀의 반응을 보더니 곧 그녀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아, 저분은 기사님이라고마. 저 숲에 사는 마녀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고마.”

“그렇군요.”

공룡신사가 보이는 신뢰와는 반대로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며 소녀는 소녀기사를 바라보았다. 어딜봐도 기사로 보이지 않았다. 낫이라는 상징적인 느낌이 강한 무기에 화사하고 화려한 복장은 아무리봐도 전투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공룡신사나 광대곰, 벌레시인은 저 소녀기사를 신뢰하고 있는 듯 했다.

“준비는 되셨나요? 이제 슬슬 출발했으며 싶네요.”

소녀기사가 웃으며 말하자 세 사람(?)은 즉각 일어났다. 그러다가 공룡신사가 떠올랐다는 듯이 소녀를 가리켰다.

“아, 잠시 소개할 인물이 있고마. 미아양이라고마.”

“아.”

소녀기사는 공룡신사가 소개하고서야 소녀의 존재를 깨달았다는 듯이 작게 감탄사를 냈다.

“안녕하신가요. 반갑군요.”

소녀기사가 손을 내밀자 소녀는 머뭇거리다가 손을 맞잡았다. 악수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소녀기사가 손을 잡고 흔드는 것을 봐선 악수가 맞는 듯싶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의 풍습이 이세계에도 있는 것은 신기한 일이지만 그보다 실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소녀에게 더 중요했다.

소녀는 소녀기사에게 절대 트집을 잡힐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소녀의 느낌으로 이 소녀기사는 몹시도 위험한 존재였다.

목숨을 빼앗길지도 모를 정도로.

“안녕하세요.”

굳은 목소리로 인사하자 소녀기사는 부드럽게 웃었다.

우아함과 친근함, 사랑스러움이 듬뿍 담긴 미소였지만 소녀의 입장에서는 왠지 지옥문의 수문장이 지을 법한 미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왕국의 기사라고 해도 저는 어차피 여러분들의 지팡이이자 검. 낙언으로 오는 모든 이들은 환영받아 마땅하며 지킴 받아 마땅하답니다. 자, 그럼 이제 출발하도록 하지요. 태양이 떠올랐을 것이니 마녀도 덤벼오지 못할 것이에요.”

소녀기사는 그렇게 말하며 소녀의 손을 놓았다.

목소리조차 외모만큼 아름다운 소녀기사였다. 소녀는 어째서 이토록 고결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존재에게 위협과 공포를 느끼는 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예감은 신뢰할만하다고 소녀는 생각하고 있었기에 주의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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