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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녀는 울지 않는다2

2010.04.06 00:00

azelight 조회 수:574

소녀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암녹색 장막이 일렁이는 밤하늘. 은청빛으로 은은히 빛나는 거대한 달과 하늘을 가로지르는 짙은 은하수였다.

그 광경은 소녀가 태어나 평생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평생 볼일 없는 풍경이었다.

너무나도 환상적인 광경.

홀려버릴 것 같은 감성으로 소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묘한 부유감과 세찬 바람을 느끼며.

‘세찬 바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소녀는 자신이 허공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이거. 어째서.’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생각이 마지막 꼬리가 비명으로 변하며 소녀는 자신이 낙하하고 있다는 사실을 때달았다.

어째서?

의문이 떠올랐지만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지금 원인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이대로 추락한다면 소녀는 틀림없이 즉사할 것이다. 떨어지는 부위부터 퍽하고 박살이 날 것이 틀림없었다. 그건 싫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죽는 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누군가 납치해서 비행기에서 던져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사인은 사양이었다. 어떤 영화도 소설도 이딴 식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며 소녀는 불평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도 소설도 아닌 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를 좌절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지금 자신에게 추락사가 확실하게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뭔가 붙잡을 것이라도.’

소녀는 떠올렸지만 그런 것은 근처에 없었다. 소녀가 떨어지고 있는 장소는 그야말로 허공. 지상이라는 것은 아직도 까마득하게 아래에 있었다.

물론 뭔가 잡을 수 있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소녀의 완력은 낙하하는 속도를 버텨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손바닥이나 다치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차게 올려쳐오는 바람이 시야를 어지럽혔지만 착실히 다가오는 대지를 보고 있으니 심장이 먹먹해졌다.

정말, 이런 식으로 죽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영혼을 앗아갈 것 같이 아름다운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낙하가 시작되었고 지금 현재 낙하가 진행 중인 상황.

어딘가 뛰어내릴 수 있는 장소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는 자신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자살하러 올라왔다는 가정은 폐기했다.

게다가 자신이 자살할 이유도 없었다. 오늘 본 수능 시험은 그럭저럭 잘 친 편이었다. 분명 목표한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성적을 비관할 이유는 없었다. 또한 소녀의 가정은 제법 화목한 편이었다.

그러니 자살 가능성은 폐지. 어차피 가능해 보이지도 않았지만…

다른 이유를 찾아본다.

갑자기 자신이 하늘에 떠 있을 만한 이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별로 납득하고 싶은 이유가 아니다.

직감이 강렬히 소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어쨌든 그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녀의 가정은 바로 이거였다.

여기는 바로 이세계고 소녀는 출구를 잘못 빠져나왔다.

‘미친소리지.’

속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소녀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그녀가 살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저런 거대한 달과 짙은 은하수는 소녀의 세계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소녀가 천문학에 그리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은 알고 있었다.

덤으로 저 빛나는 암녹색의 일렁이는 장막.

아마 소녀의 기억으로 저런 것은 남극광이라고 부르는 것일 것이다. 영상으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지상은 그런 극지로 보이지 않는다.

환경적으로 현실과 맞지 않았다.

그걸 알면서도 소녀는 머릿속을 지배하는 직감을 부정했다.

그건 너무 최악의 상황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소녀는 이 낙하에서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희망이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세상의 허허벌판에 떨어졌을 때 생존기술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는 평범한 소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가.

없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말이지.’ 소녀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왠지 위기감이 안 드는 걸.”

이상하게도 그랬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 불균형이라고 할까. 상식이 소녀에게 위기를 외치고 있는데 감성은 전혀 그 위기의식을 못 따라 오고 있었다.

실제로 소녀는 지금 상황에 황당함을 느낄지언정 공포를 느끼진 못했다. 그 덕에 소녀는 황당하다는 감정 외의 다른 위기감을 못 느끼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처럼 호들갑도 떨어볼 수 있었지만.

‘어째서일까?’

스스로도 이해가 안 돼서 머리를 갸웃거린다. 분명이 지상에 닿게 되면 그 순간 소녀는 ‘퍽!’하고 산산조각이 날 것이었다.

분명 지금 시점이라면 울고불고 난리는 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소녀는 자신이 냉정하다 사실을 깨달았다.

확신 같은 것이 소녀에게 있었다.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확신.

평소라면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감각이었지만, 지금 그 감각은 소녀의 내면을 너무나도 강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마치 계시를 받은 사람 같았다. 신의 계시. 절대 어긋날 일 없는 절대적인 존재의 지시.

아니면 불안 자체를 상실했다거나.

소녀가 자기 자신을 분석하는 사이 지상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10초도 안되어 소녀의 미래를 결판이 날 것이었다.

산산조각.

소녀는 눈을 감지 않았다. 기묘한 확신이 소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확신은 사실로 나타났다.

대지에서 빛 무리가 뿜어져 올라와 소녀를 둘러쌓다.

동시에 소녀의 속도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하지만 소녀의 몸에 부담감이 없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소녀는 감소했고 천천히 그리고 안전하게 지상에 안착했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어.’

그 사실을 놀래며 소녀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땅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마치 반딧불이 같은 빛무리들.

소녀는 그것들이 단순한 벌레 때들이 아님을 금방 알았다. 그것들은 모두 제각각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소녀가 알고 있는 벌레들의 모습을 하고 있진 않았다.

그것들을 보고 소녀가 떠올린 단어는 단 하나였다.

“요정?”

자기도 모르게 내뱉으며 소녀는 신기해했다.

요정이다.

요정이라는 말 외에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소녀는 다르게 대체할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전설 속의 엘프들이나 드워프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페어리, 스프라이트. 고블린.

옛 유럽의 전승지식이 등장하는 환상의 존재들.

이 들이 바로 그런 존재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유사한 존재일 것이라고 소녀는 생각했다.

날개를 달고 있는 작은 인형들과 소녀를 둘러싸고 모여 있는 제각각의 난쟁이들의 모습을 본다면 말이다.

그것들은 대부분 소녀 손바닥에 준하는 크기였고 가장 커다란 것조차 소녀의 허리보다 작았다.

팔이 세 개인 것, 눈이 10개 인 것, 다리가 4개인 것, 손가락이 셀 수 없이 많은 것, 손바닥에 눈이 달린 것, 온 몸이 둥근 것, 아름다운 처녀가 피어난 꽃 같은 것, 동물도 식물도 아닌 것 같은 것.

온갖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그것들은 조용히 소녀를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었다.

소녀는 이들이 자신을 구해냈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이 세계에 온 후부터 소녀는 자신을 지배하는 이 기이한 감각에 대해서 줄곧 생각해 왔었다.

마치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는 듯한 감각.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저런 일을 겪을 것이다. 이것이 맞을 것이다. 이쪽으로 가야할 것이다.

이런 느낌을 누구나 가져본 적 있겠지만 소녀가 지금 느끼는 감각은 매우 특별했다.

그런 막연한 감각을 한없이 키워 올려 확신을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느낌. 마치 예지에 가까운 듯한 감각.

자신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 같은 감각.

소녀는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그 기묘한 감각이 죽는 감정을 음미했다. 낯선 세계에서 갑작스러운 고공낙하고 시작하여 기괴한 요정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두려움 하나 느끼지 않는 자신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긴장감.

그것은 소녀가 배워온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함이었다.

굳이 그것을 말로 표현하자면 ‘미칠 것 같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자신이 아닌 듯한 기괴함.

소녀는 그런 감성에 휩싸여 있었다.

이토록 환상적이고 괴기하며 두려운 광경 속에서도 이토록 침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자신이라니.

소녀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당면하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성과 감성의 부조화.

마치 잠깐 사이에 자신에게 없었던 것이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소녀는 생각에서 깨어나 요정들을 주시했다. 일단 요정들이라고 마음 속으로 정의하기로 한 것이다.

요란한 웃음소리와 웅성거림.

하늘을 나는 것들은 소녀의 어깨에 앉기도 하고 빙글빙글 맴돌기도 했다. 땅을 걷는 것들은 소녀를 둘러싸고 원을 이뤄 특정한 박자에 따라 움직였다.

마치 축제를 벌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소녀는 자신이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이 환영받는 것인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녀가 환영받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부른 것이 이들이라고 생각해도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녀는 생각했다.

소녀는 말을 걸어봐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쉽사리 입을 땔 수 없었다. 저 축제의 흐름을 끊는 것이 소녀에게 과연 가능할까. 아니 그 전에 말이 통하기는 할까? 소녀는 의문스러웠다.

어째서 지금 확신이 오지 않는 것일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무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들이 우호적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말이 통할지 말지에 대한 것을 알 수 없는 걸까?

소녀는 의문스러워 하며 망설였다. 쉽사리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어째서 일까? 그렇게 생각할 때 요정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소녀는 흠칫하고 놀랐다. 그러나 소녀는 놀랐을 뿐 불안을 가지게 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불안이라는 것을 소녀는 가질 수가 없었다,

마치 그럴 수 없게 된 것처럼.

요정들 중 하나가 소녀의 앞으로 걸어왔다. 아니. 걸어왔다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에게는 다리가 없었다. 꽃잎 같은 것이 땅에 닿아 있긴 했지만 그것을 다리라고 부를 수 있을지 도저히 판단이 되지 않았다.

상반신은 인간 처녀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팔은 잎으로 되어 있었고 머리는 꽃으로 되어 있었다. 초현실주의 화가의 머릿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모습.

[변혁자여.]

대표로 나온 듯한 요정의 목소리가 소녀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변혁자?”

수단도 신기했지만 자신을 칭한 호칭 또한 특이했기에 소녀는 저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당신이 이 세계에 변화를 가져오실 분입니다. 수천 년에 걸쳐 이 세계는 더 이상 성장이라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명도 의식도 어느 하나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먹는 고결한 짐승이 세계의 모든 가능성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 고결한 짐승을 막아설 자. 그리고 그로부터 세상의 가능성이 해방시킬 자입니다.]

긴 설명이 이어졌지만 소녀는 그 설명의 반도 알아먹지 못했다. 요정의 대표는 태연하게 고했지만 그 내용들이 소녀가 듣기에는 터무니없는 스케일이었다.

세상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거야 나비효과처럼 자신이 계기가 되어 뭔가 일이 일어난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가능성을 먹어서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막는다는 놈을 처치한다는 부분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녀는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소녀에게는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손이나 눈에서 광선이 나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나오는 특수 능력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에… 뭔가 잘못 안 것 아닐까요? 전 그렇게 대단한 걸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소녀는 자신감 없이 말했지만 요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당신은 분명히 선택된 자입니다. 하지만 저에겐 더 이상 묻지 마시길. 당신에게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제가 다른 이의 역할. 저는 제 의무 이상의 일을 해선 안 됩니다. 자, 질문은 다른 이에게 해주십시오. 저는 제 의무를 시행하겠습니다. 예들아.]

요정 대표가 돌아보며 말하자 그 와 동시에 나를 둘러싸고 있던 요정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놈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하자 소녀는 움찔하고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앞 뒤 가리지 않고 포위당한 상황.

소녀는 곧 엄청난 수의 요정들의 무리들에게 덮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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