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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녀는 울지 않는다. 1

2010.04.05 19:44

azelight 조회 수:664

도입

스며드는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머리카락. 백옥 같은 피부. 은장식이 된 백색 드레스를 입은 여왕은 텅 빈 홀의 왕좌에 앉아 있었다. 옥좌의 양 편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 체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조각 같았다.

어둠과 정적으로 둘러싸인 홀 안에서 달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여왕은 천천히 눈을 떴다.

조각 같던 여왕의 육체에 생기가 돌아왔다. 짧은 한숨이 여왕의 각성의 마지막 과정이었던 듯 가늘고 긴 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들려 올려졌다.

영롱한 은색 눈동자가 두 눈에 떠올랐다.

여왕의 시선은 옥좌를 비추는 달빛을 침범하고 있는 어둠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이변이었다.

언제나 하늘에 부동하는 달은 결코 기울거나 차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한 때 그녀가 거쳐 왔었던 몇몇 세계에서나 있었던 일. 이 세계에 군림한 후로 여왕은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어둠이 왕좌를 절반쯤 가렸을 때 여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역장으로 보호받고 있는 투명한 천장을 통해 어둠이 차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달…

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이다. 이미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었다. 여왕이 이 세계에 자리 잡은 후로 몇 번이나 검은 달은 나타났었다.

이 세상의 누구도 기억하고 있지 못했지만 여왕은 기억했다. 그것은 오직 여왕만을 위한 이벤트였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여왕은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기쁨을 표현하며.

“아아. 때가 되었구나. 또 다시 찾아왔구나. 어리석게도. 얼마나 희생시켜야 포기할 생각이 들 건지.”

약간의 동정이 깃들어 그 활짝 핀 꽃과도 같은 미소가 시들었지만 여왕이 품고 있는 생명력을 무색케 하진 못했다.

“몇 번을 들어 안다. 그러기에 이리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덕에 희생당해야하는 것들은. 그래. 분명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내게 동정심이 없다고 생각지 마라. 적어도 나는 이중으로 고통주지는 않는다. 그 비참함을 보고도 여전히 도구를 사용할 생각 밖에 못하는 그대만 하겠는가.”

검은 달이 완전히 달을 갈리자 홀은 어둠에 감싸였다. 그러나 여왕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은빛으로 몸을 감싸고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그런가? 억지라고 생각한다만… 뭐, 좋다. 이 나는 단지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하지.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황홀할 정도다. 최근에 이르러 거의 나에게 닿을 뻔하지 않았나? 어쩌면 그 염원. 이루어 줄지도 모른다. 자아. 이제 왔구나. 느껴진다. 이 세계를 새로운 질서가. 감미로운 변화의 바람이.”

여왕은 한껏 양 팔을 들어 벌렸다. 차올랐던 검은 달이 기울기 시작하며 달빛이 다시금 옥좌를 비추기 시작했다.

빛을 바라는 그 미소를 달빛이 다시금 비추기 시작했다. 여왕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입꼬리를 더욱 올렸다. 기쁘고 기뻤다. 이번엔 정말 와 닿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이 감미로운 변혁의 바람조차 무색케 할 만큼 여왕은 그 순간이 기다려졌다.

“아아. 가슴 설레어라. 마치 사랑하는 소녀 같지 않은가? 이 설렘은.”

빙글 빙글 빙글 빙글

달빛을 받으며 몇 바퀴나 옷자락을 날리며 돌고 돈 여왕은 우아하게 옥좌에 앉았다. 뺨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서 만나고 싶도다! 짐은!”

여왕은 달을 향해 외쳤다. 닿았을까? 아마도 무리겠지. 분명 아직은 깨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곧 깨어나겠지.

여왕은 여전히 작은 미소를 입에 걸고 옥좌에 몸을 기댔다.

천천히 두 눈을 감는다.

아직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여왕이 나설 시간이 오지 않았다. 이제 막 맺힌 열매가 적당히 익기까진 제법 시간이 걸릴 터였다.

물론!

지금까지의 기다림에 비하면 훨씬 짧을 것이겠지만.

옥좌에 앉아 여왕은 언제나처럼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제 여왕은 더 이상 잠자는 소녀의 조각상이 아니었다.

발갛게 돌기 시작한 혈색이 여왕에게 생명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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