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단편 그린슬리브스(Greensleeves) 上

2010.02.09 14:44

세리카 조회 수:709

 

 

 한참동안 그녀는 이 색깔 저 색깔의 넥타이를 나에게 대어보고 가늠하더니 윽고 “이 색깔이 가장 잘 어울린다”면서 하나를 내 눈앞에 내 밀었다. 며칠 전부터 그녀는 필요없다는 나에게 굳이 생일 선물로 넥타이를 사주어야겠다고 주장을 하고 있었고, 쇼핑에 – 또는 패션에 – 필요이상(?)의 큰 관심을 쏟지 않는 나였지만 모처럼의 호의를 무시할 수도 없어 아침 일찍부터 그녀의 손에 끌려 나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적당히 마음에 드는 걸로 하나만 고르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이 날의 쇼핑은 벌써 3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쇼핑’이라는 것은 아마도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해의 영역일 것이라고 나는 새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내 마음에 든다고 생각된 (무난한 색깔의) 타이는 여지없이 그녀에게 퇴짜를 맞았고 초기의 목적과 동떨어진 이런저런 제품들의 ‘시착식’에 지쳐버린 나는 종국에는 아무려면 어떠냐, 라는 느낌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넥타이를 나에게 메어보고도 여전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는 눈치였기 때문이었다.  ‘과연 이 세상에 그녀가 마음에 들어하는 종류의 넥타이가 존재하기나 할까?’ 하는 의문에 빠져 있을 때 즈음이 되어서야 그녀는 겨우 마음을 정했던 것이다. 어차피 넥타이라는 것처럼 실용성이 전혀없는 물건도 세상에는 드물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한다면 조용히 잠자코 받아들이면 되겠지, 그걸로 이 긴 쇼핑의 여정은 끝나게 되는 거니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손에 건내어진 넥타이를 본 나는 나도 모르게,

 

“또 녹색이야?”

 

하고 말해버렸다.

 

“하지만 역시나 자기한테는 녹색계열이 제일 잘 어울리는걸...”

 

그녀는 약간 입술을 삐죽이며 내 말을 받았다. 아마도 자신이 골라준 물건에 대한 내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지. 그렇다면 처음부터 녹색부터 시작했으면 좋잖아,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너무도 뻔하다. 지금까지는 3시간이었으니까 아마도 갑절은 되는 시간을 다시 처음부터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기 위해서 그녀는 나를 끌고 다닐 것이다. 이럴 때는 적당히 내 패션센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다시보니까 역시나 그녀가 골라준 물건이 제일이라고 얼버무리면서 수습하는 수 밖에는 없겠지.  다행히도 그녀는 내 목에 넥타이를 걸어보고는 역시나 마음에 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값을 치뤘다.

 

이 날, 헤어질 무렵이 되자 그녀는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정장도 녹색 같은게 있으면 좋을텐데. 분명히 잘 어울릴 거야 그것도”

 

“하지만 그런 색깔의 정장은 너무 눈에 띌 거라고 생각하는데. 꼭 배트맨에 나오던 캐릭터 같잖아.”

 

“그런 게 있어?”

 

그녀는 오히려 호기심이 생긴다는 눈빛이 되었다. 이런, 다음에는 그 영화를 보자고 하겠지. 베트맨과 로빈. 죠엘 슈마허 감독이 만든 ‘두 번째로 최악인’ 배트맨 영화다. 베트맨은 이 때부터 자의식 과잉인 사춘기 소년스러운 배트모빌을 몰고 다니게 되었고 로빈의 갑옷은 무려 젖꼭지까지 그려져있다. 그리고 짐 캐리가 녹색의 전신 타이즈를 입고 나온다. 오리지널 캐릭터는 녹색 정장이었는데 말이다. 그나마 이 영화가 ‘두 번째로 최악인’ 배트맨 시리즈인 이유는 그 다음에 나온, 같은 죠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 포에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배트맨한테 사죄해라,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있어. 자기가 좋아하는 짐 캐리가 녹색 옷을 입고 머리를 빨갛게하고 나와. 정말 이상하다구.”

 

“하지만 자기는 잘 어울릴거야. 필요하면 내가 염색도 해 줄께. 다음번에는 그 영화 보자.”

 

그녀는 내가 그런 모습을 하는 것을 보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듯한 얼굴로 웃었더. 그리고는 나의 새로운 녹색 넥타이를 잡아 당겨 내게 입을 맞추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 날 그녀에게 미안하게도 나는 그녀가 내게 그 녹색 넥타이를 보여준 순간 부터 다른 여자를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미도리’를 알게 된 것은 2000년 12월의 일이었다. 물론 ‘미도리’는 본명은 아니다. 그녀는 끝까지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루이다’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바에서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작은 규모의 - 이런 숫자의 손님으로도 과연 가게가 운영이 되는건가, 하고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 몇몇 단골 손님들만이 찾아주는 그런 종류의 바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단골 손님들 중의 한 명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여름의 일이었다. 7월의 끝이었는지, 8월의 첫머리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항상 3명이서 매주 토요일 밤 11시에 가게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 3인조의 구성이 미묘했던 것은, 그것이 항상 그녀와 그녀의 애인, 그리고 올 때마다 사람이 바뀌는 또 다른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토요일, 11시가 되면 그녀가 남자친구의 팔짱을 낀 채로 문을 열고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가 3잔의 칵테일을 주문하는 사이에 그녀의 남자친구와 ‘일행’인 다른 남자는 바의 가장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는다. 이윽고 칵테일이 나오면 그녀가 칵테일을 남자들에게 가져다주고는 남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  그건 보통 2시간 정도였다 - 카운터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서 칵테일을 만들거나, 글라스를 닦거나 하는 일을 지켜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그 전까지 . 그리고 남자들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금 남자친구의 팔짱을 끼고는 사라졌다. 남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지금도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일주일마다 다른 남자와 만나서 바에서 2시간의 정도를 이야기를 하는 직업은 어떤 것일까 하는 것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그 남자들의 이야기가 ‘일’에 관련되어 있는 것인지 조차 확실하지가 않다. 항상 그녀는 미도리 소다와 마티니 2잔을 주문했다. 미도리 소다는 그녀 자신이 마시는 것이었고, 마티니는 남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남자가 한 번 정도는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라고 말하지 않을까, 하고 상상을 해보기도 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매주 오던 3인조는 12월달의 둘째 주부터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작은 규모의 바라고는 해도, 연말 분위기를 타고 있던데다가 얼마 안 있어서 문을 닫는다는 이유도 있어서  단골손님들이 더 자주 들러주는 바람에 당시의 나는 평소보다 2배는 바빳다. 그런 이유로 나는 마스터가 폐점 시간이 되었을 때,

 

“미도리 아가씨가 오지를 않네...? 문 닫을 때 까지는 계속 와 줄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라고 말 할 때 까지는 그녀(와 그녀의 일행들)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도리 아가씨요?”

 

“왜 매번 와서 미도리 소다 주문하는 아가씨 있잖아, 토요일마다. 네 앞에 찰싹 달라 붙어앉아서 너만 쳐다보고 있는.”

 

“아, 그 사람... 에이, 매번 애인이랑 오는 거 뻔하게 아시면서 무슨 말씀이에요.”

 

우리는 모두 피식, 하고 웃음을 짓고는 다시금 하던 일을 계속 했다. 

 

마스터는 기묘한 남자였다. 고아원 출신으로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 했지만, 행상과 공사판의 노가다에서부터 시작해서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일을 거쳐서 서른 셋이라는 그다지 많다고 할 수는 없는 나이에 자신의 건물(절대로 세련되다고 할 수는 없는 3층짜리의, 허름해 보이기 까지 하는  상가건물이지만 말이다)을 손에 넣은 입지전적인 남자였다. 그 건물의 아래 두 층은 식당에 임대를 주고 3층을 바 ‘루이다’로 운영하고 있었다. 손님의 수가 별로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가 적자를 보지 않고 운영되는 이유는 아마도 임대료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한 재산을 모으고도 그 나이에 아직 그는 독신이었는데, 이유인는 자신이 10년정도 ‘짝사랑’했던 상대가 결혼을 해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대방인 여자는 결혼을 한지 3년만에 사고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되어 홀로 어린 딸을 키우고 있었는데, 재혼을 할 생각은 없는 듯 했고, 마스터는 그런 그녀 옆에서 평생을 가까운 친구로써 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가끔씩 영업개시 시간 직전에 들러 마스터와 맥주 한 잔 정도를 나누고는 돌아가고는 했다. 두 사람이 낭만적이긴 하지만 왠지 약간 슬프다고 느껴졌다.

 

물론, 그를 ‘기묘하다’라고 한 이유는 단순히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첫째로 그는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특히 싫어했다.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형식적, 이라고 해도 좋을 간단한 면접을 마친 후에 내가

 

“예,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라고 하자 그는 ‘절대로’ 사장님, 이라고 부르지 말고 마스터, 라는 호칭을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나중에 어느정도 그와 가까워진 후, 폐점후에 함께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사장님’ 이라는 호칭만큼 비전문적이고,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호칭은 없어.”

 

라고 대답했다.

 

“비전문적이라던가, 자본주의 냄새가 난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둘 다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렇게 말 할 줄 알았다는 듯 한 웃음을 지으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록 글라스에 얼음을 채우고는 거기에 죠니워커의 블랙 라벨을 솜씨 좋게 부으면서 말을 이었다.

 

“너는 아직 젊어서 모를지 모르지만, 세상을 잘 쳐다봐봐. 나이가 좀 있는 상대방을 불러줄 적당한 호칭이 없으면 다들 ‘사장님’이라구. 사실은 그 사람이 말단 직원일지, 중간 관리직일지, 그도 아니면 무직인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그리고 돈만 있으면 누구나 다 ‘사장님’이 되는거야, 돈만. 그게 너무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역설해 주는 것 같아서 또 싫어.”

 

“하지만 실제로 자본주의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그는 위스키가 담긴 글라스에 드람뷔를 부어넣어 ‘러스티 네일’을 만들어서 내 앞에 한 잔을 내려놓은 후 자신의 잔과 가볍게 부딪힌 후 다시 자리에 앉아서 내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마스터’라고 부르라고 하는 거지. 그 정도 반항은 해도 되잖아, 공산주의 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니까.”

 

 마스터는 바를 운영하기 전에는 다른 종류의 사업을 몇가지 했었다고 알고 있었기에 그러면 그 때에는 어떤 호칭을 사용했을까, 하고 상상을 해 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둘째로, 그는 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도 이유는 까먹었지만, 11살 무렵부터 자신만의 바를 가지고 싶다, 라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 ‘루이다’를 소유한 것으로 그의 꿈이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좀 더 크고, 구체적인 이미지의 바가 그려져있었다.

 

“내부에다가 그랜드 피아노를 놓고, 전속 피아니스트를 고용하는 거야. 그리고 ‘스타크로스드 러버(Starcrossed lover)’같은 곡이 바에서 멋드러지게 흐르는 거지. 그랜드 피아노로 라이브 연주,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아?”

 

묘하게 음악까지 구체적이다 싶었다니 사실은 어떤 소설책에서 읽었던 정경이라고 한다. 그래도 나는 바 ‘루이다’의 음악을 좋아했다. 잘 손질된 골동품같은 턴테이블에 비닐로 된 LP판으로 연주되는 음악은 깨끗한 음질의 CD와는 또 다른 느낌의 ‘따뜻함’이 있었다. 물론 이것도 마스터의 취미였다. 그는 영업시간중에는 클래식을 틀어놓고, 영업이 끝나고 뒷정리를 할 때에는 록 음악의 판을 얹어놓고는 했다. 그가 소유한 록 음악의 LP판이 상당히 레어한 것이라는 것은 나중에 안 일이었다.

 

셋째로, 그는 절대로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일이 없이 항상 무슨 일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바 ‘루이다’가 2000년 12월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는데, 브라질로 가서 5년정도 머물다 올 예정이라고 했다.

 

“예전에 같이 일을 하던 친구가 그 쪽으로 이민을 갔는데, 다시 함께 일을 해 보자고 연락이 왔더라구. 24시간 정신없을 정도로 사업이 잘 돌아간다던데, 한 5년정도 거기서 바짝 일을 해서 돈을 모으면 그 다음에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내가 원하는 그런 바를 열 수 있을거야.”

 

바 ‘루이다’가 있던 자리에는 모던 째즈 바가 새로이 들어서기로 되어있었는데, 새로운 ‘사장님’은 내부의 시설을 고쳐서 완전히 새로운 바로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장님’은 마스터가 가게를 팔아도 계속해서 근무해 주지 않겠냐고 물어왔지만, 나는 거절했다. 몇 번 인가 옆에서 지켜본 결과를 말하자면 그 사람은 정말로 자본주의 세상 속의 ‘사장님’이었던 것이다.

 

“5년 정도 후에, 길을 걷다가 피아노 연주가 라이브로 흘러나오는 ‘루이다’라는 이름의 바를 발견하게 되면 들어오라구. 술은 얼마든지 공짜로 마시게 해 줄 테니까.”

 

그는 가게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던 날에 그렇게 말했다.

 

“그 때에도 ‘루이다’라는 이름을 쓸거에요?”

 

“당연하지! 루이다는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니까. 여기서 헤어지니까, 다음에는또 여기서 만나는거야.”

 

 

 

하지만 그 말은 이루어지지 못 했다.

 

 

 

브라질로 떠나고 나서 4년 뒤, 마스터는 그 곳에서 죽었다. 피아노 음악이 라이브로 흐르는 바에서 술을 마시던 중에  지역 갱단끼리의 싸움에 휘말린 것이었다. 소유했던 건물과 재산들은 그가 ‘짝사랑’했던 미망인에게 남겨졌고, 나에게는 루이다에서 사용되었던 턴테이블과 LP판들이 남겨졌다. 마스터의 친구가 하나하나 깨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포장을 한 턴테이블 본체와 LP판들은 무려 5상자나 되는 분량이었다. 그는 브라질에 가서도 여전히 LP 판들을 모으고 있었나보다.

 

‘턴테이블과 판들은 모두 xx씨에게 남기라는 것이 故人의 바램이었습니다.’

 

만년필로 쓰여진 멋들어진 필체의 글은 간략하게 마스터의 죽음의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그렇게 덧 붙여져 있었다. 정말이지 그 사람다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2월 넷째 주의 토요일, 나는 ‘미도리’와 다시 만났다.

 

<계속>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