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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이렇게 한 자리에 계속 앉아만 있는 것은 역시 심심한 일이랍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그저 하는 것이라면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 뿐. 그 것도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말이죠. 노동법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있는 이런 가혹한 일터에서 그나마 즐거움을 찾아보자면 역시나 가끔씩 발생하는 특별한 사건 정도일려나요?

그 몇 없는 즐거움 중 하나. 언제나 혼자서 지켜만 보고 있는 제게도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답니다. 말 그대로 가끔이기는 하지만 짧게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확실히 즐거운 일이에요. 더군다나 오늘은 드물게도 두 명이 동시에 찾아오기로 되어 있어서 더 기대가 되네요. 적어도 제 기억에 두 사람이 동시에 찾아온 일은 없었으니까요. 미리 차 정도는 준비해 놓는 것이 좋을까요?

... 랄까, 벌써 온 모양이네요.

“...여기 맞아?”

익숙한 목소리네요. 그러고 보니 저 아이는 이곳에 처음 오는 거였군요. 같이 오는 아이는 세 번째였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요. 저와는 만나본 적이 없지만 이전에도 두 번 정도 왔었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여전히 말이 없긴... 들어간다.”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군요. 같이 온 친구는 역시 이전부터 보아 왔던 모습 그대로 참 과묵한 아이인가 보네요. 그리고 저 아이가 그 성격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여전한 것 같아요.

‘스릉’ 하는 소리와 함께 방 안으로 몸이 옮겨지네요. 그 순간의 흔들림에 균형을 잡지 못한 것인지 ‘꽈당’ 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지는군요. 순간 이동이라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화려하게 넘어지면...

속옷이 그대로 보이게 되지요. 당연하게도. 그런 식으로 다리를 벌린 채 엉덩방아를 찧어버린다면. 이, 이것은 좋은 것... 흠흠.

어쩐지 이상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것 같아서 살짝 헛기침을 해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눈은 돌리지 않은 채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네요. 그 옆으로 또 한 명의 손님이 들어오며 부드럽게 땅을 딛은 후에도 말이에요.

“... 그만 보고 일어나면 좋겠는데 말이죠?”

“아, 미안. 미안. 예상 못했던 상황이라.”

“저에 대한 이야기도 못 들으셨던 거에요?”

“단 한 마디도. 아니, 그 이전에 말을 아예 안 한단 말이야.”

옆에 서 있는 아이를 가리키며 투덜거립니다. 고개를 돌리자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보이네요. 뭐, 그러려니 해야죠.

어깨를 으쓱여보이자 쓰게 웃으며 코끝을 긁네요. 그 아이의 버릇이 옮은 걸까요? 큰 키에 마르고 굴곡이 적은 몸매. 푸르스름한 느낌이 감도는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과 고양이 같은 느낌을 주는 진한 파랑색의 눈동자. 속이 비쳐 보일 정도로 얇은, 연한 파스텔 톤의 파랑색 원피스까지. 하나도 변한 모습이 없는 익숙한 모습의 소녀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말하는군요.

“그럼 자기소개. 이미 알고는 있겠지만.”

“그래요. 헤롤라인느. 그리고 니르나에스.”

고개를 돌리자 끄덕 하고 가볍게 목례하는 소녀가 있네요. 헤롤라인느와는 반대로 작은 키와 아담한 체구. 그리 길지 않은 잘 정돈된 짧은 머리카락과 색기가 넘치는 새빨간 입술. 해골과 눈알, 가죽 벨트와 사슬로 장식된 짙은 보랏빛의 노출이 심한 의상. 그리고 가터벨트까지. 이 쪽 역시 변한 것이 없군요.

그리고...

“너무 길어. 린이라고 불러.”

이런 점 까지도 말이죠.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그 동안. 린은 손을 들어 니르나에스를 가리키면서 ‘이 녀석은 아예 무시하는 것이 속 편하고.’ 라는 말까지 덧붙인 뒤 다시 제 쪽을 바라보며 코 끝을 긁적이며 말하는군요.

“그리고 그 쪽은...”

“이미 아실거라고 봐요.”

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을 해 봅니다. 린의 눈에는 제가 어떻게 보일까요? 뭐, 거울을 보면 스스로가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저도 꽤 예쁜 편이랍니다. 특히나 매력적인 것은 눈.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 눈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는 별을 본다면...

“네, 바로 제가 Black ro...”

“... 스톱. 거기까지. 그냥 ‘별’ 이라고 하면 되겠지?”

... 농담도 못하게 하네요. 치사해라.

“그나저나 의외네.”

“그래요?”

“응. 난 엄청 대단한 느낌일거라 생각했거든. 높은 산 위에서 얼음으로 된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 정도를 상상했는데.”

대체 린은 절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걸까요?

“... 휠체어라니, 정말 예상 밖이야.”

“뭐 별 수 없는걸요. 몸이 이러니까.”

다리를 톡톡 쳐 봅니다.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 어떻게 보면 덕분에 이 일하고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 그다지 마음에 든다고는 못하겠어요. 그래도,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참아보려고요.

“정말이지, 덕분에 해, 달, 별 세 명에 대한 이미지가 싹 바뀔 것 같다니까? 해 쪽은 아직 못 봤지만, 달은 저 모양이고...”

말을 끊은 린은 힐끔 이쪽을 바라보네요. 뭐,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겠지만요.

“별은 이 모양이라고요?”

“미안한 말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응, 일단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린. 역시 그렇겠지요. 특히나 린 같은 타입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뭐, 원한다면 확인도 시켜드릴 수 있어요. 다만 그 전에 니르나에스를 이길 수 있다면요.”

“자신있나보네? 뭔가 있나보지?”

“있기야 하죠. 어떻게 하실래요? 덧붙이자면 니르나에스가 에너지 드레인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것도 큰 오산이라는 것 만 말씀 드릴께요.”

제 말에 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네요. 정말로 그렇게 알고 있었나 봐요.

“... 그냥 실제로 경험하는 것 보다 참고 영상을 보시면 어떨까요?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요.”

한숨을 푹 쉬면서 그렇게 말하자 린은 고개를 끄덕이네요. 뭐, 지금까지 해 왔던 것만 본다면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까 싶지만... 아니, 예전에 자신이 말했던 것, 그러니까 그 가설은 대체 어디에다 던져 놓았길래, 그게 맞는 말이라는 것 까지 확인 다 해놓고 이렇게 까맣게 잊어버린 걸까요?

“아, 참고로 말하지만 ‘해’는 지속적으로 엄청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어서 강하다는 거지만요, ‘달’은 조금 달라요. ‘달’은 ‘해’가 어떻게 못 하는 적이 나타났을 때 처리해 주는 거거든요. 그 때까지 계속 힘을 모아놓고 있는 거에요. 단 한 방을 위해서.”

린에게 ‘해’와 ‘달’에 대한 설명을 해 주며 이전에 기록되어 있던 영상 중 하나를 재생해 봅니다. 지금까지 ‘달’이 자신의 힘을 해방했던 경우는 단 두 번. 그 중에 하나를 재생해 봅니다.


[자! 이것이 나의 전력 전...]


‘삑’ 소리를 내면서 영상이 끊기는군요. 옆으로 보니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바로 영상을 꺼버린 린의 모습이 보입니다.

“더 이상 안 봐도 알 것 같아. 내가 잘못했어.”

한숨을 푹 내쉬는 린의 모습에 어쩐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아요.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요.

“아, 참고로 말하자면 ‘별’은 사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하나하나가 ‘해’ 라는 정도만 말해둘께요.”

“... 스케일이 아주 우주로 가는구나?”

“아하하, 뭐 그래요. 평소에는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지만 실제 임무는 말 그대로 최종 병기라고 하니까요. 저도 선배님에게 들은 내용이지만 오래 전에 있던 어떤 분은 은하를 잡아서 던지며 놀았다던데요?”

“우주를 드릴로 파버릴 기세야! 응, 자중하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는 린을 보며 콧대를 세워봅니다. 엣헴. 그런거에요. 저 이래뵈도 대단한 사람이랍니다. 에헤헤.

“그런 힘이 있으면 현장에서 좀 쓸 것이지. 대체 왜 기록 같은 것에 이런 고급 인력을 쓰고 있는거야?”

투덜거리며 준비해 둔 의자에 털썩 소리가 나게 앉는 린. 어라? 린은 기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나보네요.

마법 소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기록. 그리고 그 기록을 최고의 힘을 가지고 있는 ‘별 - 천개의 눈’이 맡아서 하고 있는 것은 그 만큼이나 중요하고, 또한 나중을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예전에는 그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들었지만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가 발견된 뒤로는 모든 것을 기록해 남기게 되었다고 해요.

“기록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역사지요. 그 것을 통해 저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또한 그를 통해서 미래를 준비할 수도 있고요.”

“역사 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올 것 같은 소리는 그만해.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기록이길래 이렇게 스토커 같은 짓을 하고 있는건... 아니, 스토커 맞잖아. 지금 전 세계의 마법 소녀를 감시, 도청, 도촬 하고 있는거 아니야?”

크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키는 린. 그런 린의 팔을 잡아서 앉게 하며 하나의 영상을 틀어보입니다.

“이게 뭔데?”

“그 최초의 기록이에요. 이 곳과는 다른 세계의 것인지,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있던 이 세계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멸망했던 세계의 기록. 그 곳에 있던 최후의 마법 소녀 5명이 남겨 놓은 유산. 이것을 보면 얼마나 기록이 중요한지 알게 될 거에요.”



[만약에 이 이후가 있다면... 그 때는 그 들이 우리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기록을 남기도록 해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소녀는 저 멀리 보이는 무언가를 노려보는군요. 아직은 점으로 보이지만 곧 그 것들은 선으로, 그리고 면으로 변해갑니다.

[새까맣게 몰려오는군. 전 세계가 불타고 있어. 이제 싸울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인가 보네.]

[뭐,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같이 가는거지. 안그래?]

그렇게 말하며 또 한 명의 소녀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고쳐쥡니다. 검은 색의 망토와 갑옷을 차려 입고 있는 소녀, 젬은 커다란 검을 몇 번 휘두른 뒤 자신의 주변을 둘러봅니다.

굳은 표정으로 저 멀리 몰려오는 ‘악’, 그래요, 쉽게 표현하기 위해 그냥 ‘악의 세력’ 정도로 말할께요. 어쨌건, 그 ‘악’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 우르. 커다란 집게를 닮은 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네요.

그런 우르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올리는 무뚝뚝한 표정의 소녀, 다루는 자신의 몸 보다 커다란 레일건을 들어 보이는군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하나만으로도 우르의 표정이 좀 풀어지는 듯합니다.

[뭐, 오늘은 정말 마음껏 놀아보자고.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

셀린느는 점점 가까워지는 검은 물결을 바라보며 품에 안긴 인형들을 쓰다듬어 주는군요.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수 없이 많이 싸워왔던 친구들에게 힘을 주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군요.

[응.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 영원히 기억될거야. 최후의 생존자, 최후의 항전으로.]

그 말을 받으며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던 소녀, 알타니아가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다섯 명의 소녀는 서로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그 거대한 검은 물결, 끔찍한 괴물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알타니아의 시공간 왜곡, 동료들을 지켜주며 적은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시작으로 셀린느는 자신의 인형들을 풀어 놓습니다. 셀린느를 닮은 작은 인형들은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괴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네요. 다루는 특히나 강해보이는 상대를 골라가며 레일건을 마구 쏘아댔고, 누루는 커다란 집게로 괴물들을 잡아서 찢어버리는군요. 거기에 젬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괴물들은 둘, 셋씩 마구 쓰러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 너무 많아...”

“먼저 저 쪽으로 가 있을게.”

소녀들은 강했지만 그 것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많았습니다. 결국 누루와 다루가 먼저 괴물들 사이에 파묻히며 핏덩이가 되어버립니다.

“... 미안, 내 힘이 모자라서...”

인형이 전부 부서진 셀린느가 고개를 떨구는 순간 그 위로 커다란 괴물의 손톱이 날아듭니다.

“조금만, 더 일찍...”

미처 피하지 못한 쪽 팔을 괴물이 물어뜯어 버립니다. 그 괴물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서 뭉개버린 뒤 왼손에 칼을 쥐고 괴물을 열세 마리나 더 베었지만 결국엔 젬의 사지가 모조리 잘려 나가는군요.

“아... 아하하핫!”

차례차례 쓰러지는 소녀들을 바라보며 알타니아는 결국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듯, 방패를 내던지며 크게 소리내어 웃는군요. 어두운, 구름이 가득 낀 하늘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캐○건 이라니... 우리가 어찌..”



- 삑

“왜 끄는 거에요! 한창 감동적인 순간인데!”

“이게 저작권을 똥으로 아네. 지금 이게 무슨...”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는 린. 어쩐지 금방이라도 크악! 하고 소리를 지를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귀여운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잠깐 놀라기는 했어요. 흠흠.

“어쨌든 그렇게 기록이 중요한 거에요.”

“... 퍽이나.”

“저거 한 장에 69,000원이나 한다고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에 비해 미묘하게 싸다?”

한숨을 푹 쉬는 린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여 봅니다. 역시, 이런 대화는 즐거워요. 특히나 린은 이전부터 계속 보아왔지만 참 질리지 않는다니까요.

“뭐, 어쨌든 슬슬 마지막 기억을 넘겨주시겠어요?”

“네네, 후딱 처리하고 좀 쉬어야겠어. 동영상 한 방에 도무지 뭘 할 만한 기분이 안 생겨.”

투덜거리며 손을 내미는 린. 그리고 지금까지 한 마디도 말이 없던 니르나에스 역시 같이 슬쩍 손을 내미는군요. 천천히 그 두 손을 맞잡아 봅니다.




“하아, 하아...”

어두운 밤하늘 아래 자신의 가슴을 세게 움켜 쥔 채로 거친 숨을 내쉬는 소녀가 보이는군요. 누군가 했더니 린이네요. 아니아니, 아직까지는 하랑이 일려나요?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보니 그다지 몸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아요.

“괜찮아?”

“... 아마도?”

힘없이 웃어 보이는 하랑이의 손을 잡아주는 소녀. 네, 이쪽 역시 니르나에스가 아니라 리아겠네요. 리아는 잡고 있던 하랑이의 손을 내려주며 조금 더 몸을 가까이 붙입니다. 발돋움을 하며 고개를 들자 하랑이도 그에 맞추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리아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추네요.

“으응...”

리아의 작은 콧소리와 함께 둘이 맞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천천히 입술을 떼는 하랑이와 린. 발갛게 달아오른 둘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는군요. 둘은 잠시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다가 몸을 돌립니다.

“자, 그럼 충전 완료.”

“응. 힘내!”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며 하랑이가 지붕 위에서 풀쩍 뛰어내립니다. 이게 5명째. 아무래도 오늘은 이것이 마지막인 것 같군요. 리아와 하랑이가 따로 움직였을 때 보다 훨씬 더 나은 듯 합니다.

하랑이가 내려간 곳을 잠시 바라보던 리아는 그대로 지붕 위에 기대어 눕는군요. 오늘의 달은 거의 꽉 차있는 상현달이군요. 이삼일 후면 보름이 될 것 같아요. 그 달을 잠시 바라보던 리아는 작게 중얼거립니다.

“니르나에스.”

오늘도 답은 없네요. 하지만 딱히 기대했던 것은 아닌지 리아는 피식 웃어 보이고 말을 이어나갑니다.

“그 동안 고마웠어.”

짧은 인사. 저 짧은 한 마디를 위해 그 동안 얼마의 시간을 보내왔던 걸까요? 가만히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리아의 앞으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모습이었고, 앞으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보랏빛의 소녀. 니르나에스.

니르나에스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워 보이는군요. 고양이의 모습일 때도, 지금도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지만 리아는 그 미소만으로도 충분한가 봅니다.

그리고, 순간 니르나에스의 모습이 사라집니다. 마치 그 곳에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본래대로라면 마지막까지 같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름대로 배려를 해 준 것일까요? 리아는 후련함과 아쉬움이 뒤섞인 것 같은, 그런 묘한 표정과 함께 멀리 떠 있는 달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군요.

“... 어라? 리아야?”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아가 누워있는 지붕 위로 돌아온 하랑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리아의 모습이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군요. 그저 작게 웃으며 상체를 일으켜 하랑이를 맞아주고, 가만히 먼저 손을 내밀어 하랑이의 손을 잡아주네요.

“뭐, 그럼 방해꾼은 이만 사라져 줄까? 너 나 없이도 여기서 내려갈 수 있겠지?”

동시에 린 역시 하랑이의 몸에서 빠져나옵니다. 이전과는 달리 사람의 모습을 한, 조금 전까지 하랑이가 하고 있던 모습 그대로의 모습을 한 채로.

“... 내려가는 거야 상관없지만, 집에 돌아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은데.”

코를 긁적이며 대꾸하는 하랑이.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나 봅니다. 하지만 린은 굳이 길게 설명해 줄 생각이 없나 봐요. 피식 하고 웃어 보이더니 조금 전 니르나에스가 그랬던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네요. 역시나 별 다른 말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 뭐지? 갑자기?”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는 듯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 리아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하랑입니다만 리아는 그저 웃고 있네요. 리아의 변신이 풀린 것도, 린이 갑자기 사라진 것에 대한 대답은 없이 그저,

“오늘은 주말이니까. 굳이 급하게 집에 가지 않아도 되잖아?”

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응? 아, 뭐 그렇기는 하지... 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리아의 시선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는 하랑이. 어쩐지 물기가 서려 있는 듯한 리아의 눈을 다시 한 번 힐끔 바라본 하랑이는 코끝을 긁으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그러더니 맞잡은 손에 힘을 주어 리아를 일으킨 뒤 조심스레 안아드네요.

“그럼, 일단은 좀 내려갈까?”

“응. 부탁해.”

자신을 안아든 하랑이에게 리아는 조금 더 몸을 묻으며 팔을 들어 하랑이의 목을 감쌉니다. 한층 더 붉어진 얼굴로 하랑이는 애써 리아의 시선을 피하며 가볍게 뛰어오르는군요.

“부탁해. 오늘 밤에는, 부드럽게...”

“쿨럭!”

그리고 그대로 추락해 버립니다.




“... 마지막까지 몸을 불사르는 슬랩스틱이라니. 하랑이 답네요.”

“6년 연애의 마지막이 저 모양이야. 아니, 마지막은 아닌가? 하여튼 엉망이라니까.”

투덜거리는 린의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네요. 겉으로는 투덜거리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는 것 같은 린의 모습. 역시 귀엽다니까요.

“그래도, 덕분에 저 둘이 잘 될 수 있었잖아요.”

“뭐, 솔직히 나도 놀랐어. 그런 뜨뜻미지근한 방법이 통할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어쨌건 잘 되었잖아요?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네, 그래요. 어떻게 보면 참 어중간한 방법이었지요. 리아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못하는 상태. 물론 그대로 시간이 지나간다고 해도 리아나 니르나에스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경우 이 곳 저 곳에서 터지는 사건들은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던 거지요. 물론 하랑이가 대신 해결해 주는 방법도 있지만 그 것도 잘 버텨봐야 일주일이 한계라는 것은 이미 경험했었고요. 차라리 계약을 강제로 해지해서 다른 마법 소녀와 계약하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그 것은 하랑이 쪽에서 거부.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그럼 리아가 하랑이를 도와주면 되잖아. 변신할 때 필요한 힘이 모자라니 전해주면 되는거 아니야?’ 라면서 그 해답을 제시해 주었던 것이 바로 린. 그리고 그 방법은 조금 전에 보셨던 것 그대로...

“그나저나 어떻게 그런 방법을 생각하신 거에요?”

“월드 와이드 웹에서 배웠지.”

“... 패러디는 패러디인데 힘이 좀 없는 것 같네요.”

“뭐 있어? 어쨌든 꽤 많아. 키스로 힘을 전해 주는 설정은.”

“... 그래요?”

“동인지와 팬픽을 찾아보면 나름 나온단 말이지.”

키득거리는 린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아하하.

하랑이가 리아의 치부를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냈던 것이 어느새 6년 전의 이야기군요. 처음 분위기로는 이 상태 그대로 나이가 찰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리아는 그냥 그렇게 애매한 정도의 기억을 남기고, 하랑이는 그 옆에서 같이 지내면서 결국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하지만, 생각보다 그 균형은 빨리 깨지더라고요. 뭐, 그럴만도 했지만요. 아무리 하랑이가 좀 특이한 경우라지만 흔히들 말하는 ‘선천적으로 남자의 몸에 여자의 정신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는 아니었거든요. 후천적으로 길들여진 것이지. 그런 상황에서 매일 같이 붙어 다니는 상대, 동거 중, 하루에 몇 번씩이나 츄~♡. 분기당 한 번은 욕실 앞에서 딱 마주침 이벤트가 꼬박꼬박에, 주변에서는 이미 공인된 커플로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4년을 버틴 것도 참 잘 버텼다고 생각해요.

뭐, 리아한테 두근두근 하면서도 2년 이상 내색조차 못하고 플라토닉하게 지내온 것도 칭찬해 줄 만 하겠네요. 물론 그래봤자 시현씨와 리아한테는 이미 한참 전에 들킨 상황이지만.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결국 리아는 오늘 자신의 트라우마를 떨쳐내며...

“뭐, 그럼 슬슬 나도 가 볼까?”

“네? 벌써요?”

“새로 계약할 사람 찾아봐야지. 젠장, 그 녀석 때문에 괜히 눈만 높아진 것 같아.”

“우음, 아쉽네요. 이제 곧 재미있어질 부분인데...”

“당장 꺼. 그건 더 이상 기록할 필요도 없잖아.”

“아, 개인 용도에요. 지극히 개인적인.”

“그러니까 당장 끄라고!”

크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저한테 달려드는 린. 가볍게 손을 휘둘러 날려보내준 뒤에 혀를 내밀어 봅니다. 뭐, 농담이에요. 괜히 지금 진행되는 상황 봐 봤자 제 속만 쓰리지 재미있을리 있나요?

어쨌든 이렇게 또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을 맺었군요. 뭔가 뜨뜻미지근하게 진행된 이야기 같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남자와 자신을 위해 꿈을 포기한 남자의 손을 잡고 기어 올라온 여자. 앞으로 둘의 시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뭐, 앞으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네, 분명히 그럴거에요.

... 그나저나 진짜 배 아프네요. 이거 참... 녹화해서 인터넷에 뿌려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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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도촬 소녀 별이. 이 것으로 완결입니다. [어라?]

미묘하게 외전이 두 편 정도는 당연하게 튀어나올 것 같은 화입니다만..

... 진짜... 하랑이 이야기도 아닌 다른 영상쪽에 기합이 너무 들어가지 않게 조절하는거 힘들었어요. 엉엉


뭐, 그런거지요.

마법 소녀 하랑. 이 이야기는 일단 이렇게 마칩니다.

그 동안 보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므히히.

 

 

이 글은 10월 중 어느날 완결 게시판으로 이동합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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