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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마법소녀 하랑 - 09화

2010.09.21 21:12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342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과는 전혀 관계없는, 하지만 꽤나 시간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그 때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어쨌든 대충 10년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 10년 전 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던 한 집단이 부서졌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이혼이라는 것은 분명 어려운 선택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문 것도 아니었기에 두 사람의 헤어짐은 주변에서도 있는 그런 것과 비슷할지도 몰랐습니다. 아니, 비슷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었습니다. 시작부터, 그 원인부터 어긋나버린 마지막은 절대로 그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요.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폭력을 지켜주기는 커녕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놓는 커다란 벽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부부 사이에서만 오가던, 정확히는 일방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향했던, 폭력과 욕설은 언제부터인가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났던 어린 아이에게 까지 그 마수를 뻗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말로, 조금 뒤에는 손으로,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몸으로.

너무나 작고 약하기만 했던 어린 아이에게 성인의 폭력은 어떻게 막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대를 가지고 또 한 명의 성인을 바라보지만 그 역시 폭력의 희생자일 뿐, 그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요.

그 어린 아이가 가정이라는 이름의 지옥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때 까지 아이는 수백 번, 아니 그 이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한 사람이 세상을 등진 뒤에나 그렇게 할 수 있었고요.

- 이제는 괜찮을거야. -

그 감옥 같은 울타리를 빠져나오면서, 소녀는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던 그 누군가의 말에 겨우 울음을 그칠 수 있었지요. 몸에 새겨진 상처에 새 살이 나고, 마음에 난 상처는 시간에 희석되기를 바라면서. 앞으로는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네. 그제야 소녀는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시리도록 파란, 하지만 왠지 포근해 보이는 그런 넓은 하늘을. 지금까지 어둡게만 보였던 모든 것이 겨우 자신의 색을 찾아가기 시작했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잿빛으로 바뀌었지만요.

어째서 일까요? 이곳은 다를 것이라 믿었었는데. 어째서...

그 중에서도 더욱 소녀를 슬프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차이 났지만 비슷한 형편의, 서로의 고통을 알고 있을 것이라 믿어왔던 사람들이었는데.

결국 소녀는 틀어박혔답니다. 달아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역한 냄새를 풍기며 이상하게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계속 자신을 괴롭혔지요.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답니다.

아무 것도...



“빛도 들지 않는 방구석에서, 언제나 웅크리고 앉아 있던 소녀는 그저 끊임없이 중얼대기만 했답니다. 다 끝났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 그건...”

“모두 잊어버리고 싶다. 인형처럼.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그저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리아의 모습은 그 말 그대로 인형 같았답니다.

“자신이 그렇게나 싫어했었던 일이지만,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인형처럼,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지만... 예전과는 달리 그 하나하나의 기억이 몸에,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그 때마다 무언가를 하나씩 잊어간다는 것은...”

리아의 검은색 눈동자 안에 주먹을 꽉 쥔 채 떨고 있는 하랑이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생기없는 그 눈동자 앞에서 하랑이는 말 하는 것도 잊은 채, 피가 흐를 정도로 세게 입술을 깨물고 있군요. 하랑이의 턱 아래쪽으로 흐르는 빨간 핏방울. 그 것을 손가락을 가볍게 훔쳐내며 리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네요.

“너무나, 행복했답니다.”

라고요.

“‘그랬었지...’ 라는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지만, 꿈에서도 몇 번씩이나 볼 정도로 몸과 마음에 새겨진 하루하루는 점차 지워지고 있으니까, 그 안에 담겨있던 모든 감정까지 함께.”

“그게... 뭐야...”

말 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지, 떨리는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새어나옵니다. 하지만 리아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이, 책을 읽는 것처럼, 녹음 되어 있는 소리를 틀어 놓는 것처럼,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멈추지도 않은 채 계속 말을 이어나가는군요.

“그래서 그 소녀는...”

“그만해!”

하지만 하랑이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나봐요. 리아의 양 어깨를 세게 잡으며 크게 소리를 지르는군요.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제 그만...”

몇 번이나 그만하라고 외치던 하랑이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듭니다.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떨고 있는 하랑이를 보며 리아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우네요.

“그럼 여기서 문제. 대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 소녀는 누구일까요?”

“... 뭐야 그게... 난 도저히 이해가...”

“이해하지 못한다니, 이제 보니 너 꽤나 둔하구나?”

손을 들어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져있는 하랑이의 팔을 치우는 리아. 그러더니 몸을 돌려 하랑이에게 등을 보이며 말을 이어나가네요.

“이렇게 남의 이야기처럼 ‘이나마’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남의 이야기처럼 ‘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는 것을 슬퍼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한 리아는 잠시 숨을 고르는군요.

“뭐, 그렇게 하나하나 잊어간 덕에 지금은 이 정도라는 거지. 아직도 트라우마 랄까. 그런 것은 많이 남아있는 것 같지만. 이 정도로 웃게 되고,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

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걸어가는군요.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대어 먼 하늘을 바라보며, 조금은 잦아든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갑니다.

“그러던 와중에 한 사람을 만난거야. 별 것 아니었지. 유달리 특별한 사람도 아니었거든. 그저 장난치기 좋았던 아이였어.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사라질 기억. 그 전까지 내 멋대로 하면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리아야...”

“괜찮은 아이였다고 생각해. 특히나 나 때문에 그렇게나 힘든 일을 자처할 정도로. 그 때문에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우직하면서도 바보같은 면은 분명히 마음에 들었어.”

그렇게 말한 리아는 몸을 돌려 똑바로 서서 하랑이를 바라보는군요. 자신을 바라보는 하랑이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다가 말하네요.

“아까는 미안했어. 그저 지금까지 너무 많이 속아왔었던 바보 같은 아이의 투정이라고 생각하고 용서해줘.”

“아니, 그건...”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나름 많이 희석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아닌가봐. 단순히 말 뿐만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손이 먼저 나가는 것을 보면 여전히 많이 남아있나봐.”

‘어쩔 수 없다니까...’ 라고 중얼거리면서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리아. 하랑이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리아는 그렇게 놔두지 않네요.

“요 며칠, 기억은 지워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만은 꽤 좋았어. 나한테도 신경 써 주는 사람이 한 사람 정도는 있었구나... 라고 생각해서. 그런 친구가 한 명 정도만 있었다면 난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 때문에 아까는 속았다는 생각에 그렇게 화를 냈지만... 응, 이제 개운해졌어. 괜찮아.”

“... 리아야.”

“걱정마. 다시 평소처럼 대할 거니까. 그러니까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며 리아는 하랑이 쪽으로 다가가 손을 내미는군요. 자신에게로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며 하랑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그 손을 맞잡네요.

“그리고, 이젠 괜찮아.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아도. 이제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작은 미소를 지어보인 리아는 그렇게 말한 뒤 손을 놓으려 했습니다만, 하랑이는 한층 더 손을 세게 쥐면서 놓아주지를 않는군요. 꽉 쥐어진 손이 아픈지 리아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하랑이는 힘을 빼지 않았고...

그 순간 하랑이의 변신이 풀리네요.

“...”

리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하랑이는 손을 꽉 쥡니다. 찰나였지만 하랑이의 예민한 감각이라면 분명히 그 순간 리아의 몸이 흠칫 하고 떨렸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겠지요.

“... 싫어.”

손을 놓지 않은 채, 하랑이는 그렇게 낮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대충 기억을 지운다는 방법으로 도망치는 꼴, 절대 못 봐.”

“... 괜한 참견이야.”

“어쨌건 안 돼.”

“놓아줘.”

리아는 하랑이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말했지만 그럴수록 하랑이는 더욱 세게 리아의 손을 쥐는군요.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손을 잡고만 있을 뿐.

“... 놓아줘...”

리아가 다시 한 번 말을 해도 하랑이는 그저 묵묵부답이군요.

“... 제발...”

점점 잦아드는 리아의 목소리. 그 속에는 흐느낌마저 섞여있네요. 눈에 보일 정도로 떨기 시작하는 리아의 몸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 놓아... 줘...”

힘을 주어 빼지도 못한 채, 애원하듯 말을 해 봅니다만 하랑이는 말조차 하지 않고 서 있는군요.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리아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네요.

“으... 흑...”

“... 이 꼴을 보고 그만 두라고? 손만 잡아도 이런데?”

몸에 새겨진 트라우마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까요? 리아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포장해서 아무 것도 아닌 양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일까요?

“안 좋은 기억을 잊어버리기 위해, 이런 것을 억지로 참아가면서...”

하랑이는 가만히 리아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는군요. 그리고 비어 있는 한 손을 들어 리아의 머리 쪽으로 가져가려다가 다시 손을 치우네요. 동시에 잡고 있던 다른 쪽 손도 놓아줍니다.

“바보 같아. 그게 대체 뭐야? 사람을 괴롭혀도 정도가 있지. 이건 단순히 괴롭히는 수준이 아니잖아!”

한 번 벗겨진 가면은 쉽게 쓸 수가 없나봅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소리 내어 우는 리아를 보며 하랑이는 주먹을 들어 바닥을 세게 내리칩니다.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남자가 싫다.’ 라고 말을 했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보다는 ‘남자가 무섭다.’ 쪽이 아니었을까요? 리아의 경우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리아는 울음을 멈추었고 어느 정도는 진정이 된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아직은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하랑이도 그 것을 인식한 듯 리아와 약간 거리를 둔 채로 앉아있군요.

“... 어떻게 할거야?”

한참 만에 나온 리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는 것 같습니다.

“책임져.”

힘이 없는 목소리. 하랑이는 고개를 들어 리아쪽을 바라보았지만 리아는 여전히 몸을 웅크린 채로 작게 말을 이어나갈 뿐입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 책임져.”

지금까지 ‘기억을 잊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라는 말로 자신까지 속여 가며 달려왔지만 이렇게 가면이 벗겨져 자신의 속내가 드러난 지금. 더 이상 달리기는커녕 걷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겠다는 뜻 이려나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하랑이에 억지로 헤집어진 트라우마는 이제 리아가 마법 소녀의 계약에 따라 ‘기억을 잊어버리기 위해 필요한 행동’ 이라는 것을 아예 근본적으로 틀어막아 버릴테니까요.

“... 응.”

하랑이는 잠시 리아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답하는군요. 리아는 하랑이를 힐끗 바라보다가 다시 하랑이에게서 눈을 떼며 묻습니다.

“어떻게 할 거야?”

“... 글쎄. 잘 모르겠어.”

“무책임해.”

“그러게.”

짧게 이어지는 대화. 아무도 없는 옥상 위에서 뉘엿뉘엿 지는 햇빛에 주황빛으로 물든 두 사람의 목소리가 작게 울려퍼집니다.

“... 너 같은거 안 만났으면 좋았을걸.”

“심한 말을 하네.”

“그래도, 널 만나서 조금은 다행일지도.”

“대체 어느 쪽이야?”

“따지지 마. 이 되다 만 지지배야.”

“그 말도 조금 심하다. 나라고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남자로 태어난 것은 아닌데.”

“그럼 그냥 변태라고 해줄까?”

“그건 더 마음에 안 들어.”

“알아. 나도 전 세계의 트랜스 젠더들을 적으로 돌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

“잘 생각했어.”

실속 없어 보이는 대화. 하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리아가 하랑이에게로 눈을 돌리는 횟수가 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직까지 하랑이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요.

“... 그러고 보면, 지금은 어디서 살아?”

“... 말하고 싶지 않아.”

“아직도 시설 쪽인가 보네.”

“정말, 아픈 곳만 잘 찌르네. 너무해.”

“기본이야.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것은.”

“그래도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가? 미안.”

“당연히 미안해야지.”

쓴 웃음과 함께 리아를 바라본 하랑이의 눈과 힐끔 하랑이를 바라본 리아의 눈이 마주치는군요. 리아는 하랑이를 향해 살짝 혀를 내밀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는군요. 하랑이는 코를 살짝 긁더니 고개를 들어 어둑해지는 하늘로 시선을 옮기는군요.

“... 학교는?”

“반성을 안 하네. 중퇴.”

“여학교도 있지 않아?”

“여학교라고 남자 선생이 없는 것은 아니야.”

“시설에서는, 여전히 그래?”

“슬슬 짜증나려고 하네. 아니. 지금은 잡혀갔어.”

“미안해.”

“이미 상처를 후벼 팔 만큼 판 것도 모자라서 박박 긁어내려고 하는 것 같아.”

‘후~’ 하고 길게 한숨을 쉬는 리아. 하랑이는 다시 코를 한 번 긁더니 여전히 하늘로 시선을 고정한 채 말합니다.

“책임져야 하니까.”

“...”

“아무 것도 모른 채, 말로만 책임진다고는 못 하잖아.”

“헤에. 생각 없이 한 말은 아닌가보네?”

“조금 전 까지는 생각 없었던 것 같기도 해.”

“우와. 너무해.”

“솔직한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해주면 안 돼?”

“내가 미쳤어?”

다시 한 번 둘의 눈이 마주칩니다.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겹치는군요.

“우리 집에 와서 살래?”

“뭔가 뜬금없어.”

“설득할 때는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 하라고 하더라고. 이런저런 이유 대면서 질질 끌지 말고. 이유는 나중에 천천히 설명 하면 되니까.”

“흐응.”

“결론은?”

“성격 참 급하네. 안 그런 줄 알았더니.”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가는 것 같아서.”

“우와. 상처받았어. 책임져야 할 여자보다 저녁밥이 먼저야?”

쿡쿡 하면서 소리 죽여 웃는 리아. 아직 둘 사이의 거리는 변한 것이 없지만 어째서일까요? 조금 전에 손을 잡고 있을 때 보다 더 가까워 보이는 느낌이네요.

“이상한 짓 하려는거 아냐?”

“전혀.”

“이렇게 예쁜 리아랑 같은 집에 산다고 해도?”

“자기 입으로 예쁘다고 하는거야?”

“예쁘고 귀여운 리아를 매일 보는 건데?”

“수식어가 늘었어?”

“예쁘고 귀엽고 깜찍한 리아를...”

“내가 잘못했어.”

리아에게는 어쩌면 조금 민감한 내용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이야기는. 하랑이는 힐끔 리아의 눈치를 보지만 리아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가족들은 어떻게 하고?”

“일단 나 말고 남자는 없어.”

“어째서?”

“내가 특이한 경우래. 원래는 계속 딸만 태어났다고 하던데?”

“아버지는?”

“남자들은 단명한대. 여자들의 음기가 너무 세서.”

“우와. 무서워.”

“어머님은 내 얼굴 보기도 싫다고 지방에 내려가 계시고, 집에서 같이 사는 것은 사촌 언니랑 할머님, 이렇게 셋.”

“어머니하고 사이가 많이 안 좋은가보네?”

“아들이니까. 할머님은 별로 신경 안 쓰시는 것 같았지만 본인이 못 버티셨나봐.”

“뭔가 이상한 집안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시 한 번 둘의 눈이 마주치고, 웃음소리가 겹칩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또 시작되는 시간. 거리는 점차 분주해지고 시끄럽게 변해가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옥상 위는 다른 세상인 것처럼 조용합니다.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할까?”

고개를 들어 난간에 머리를 기대며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는 리아. 그 눈동자 안에 점차 자신의 색으로 빛을 내기 시작하는 달이 비춰지고 있네요. 하랑이는 리아의 옆모습을 잠시 보다가 손을 슬쩍 들어 올립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하랑이의 팔 위에 작은 새가 내려앉는군요.

“어떻게 할꺼야?”

“너 마저 그러기야?”

린의 물음에 하랑이는 가볍게 쏘아붙입니다. 리아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쿡쿡 거리며 웃고, 하랑이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네요.

“뭐, 멋대로 해. 난 상관없어.”

“하긴, 문제 있는 것은 내 쪽인가?”

“아니, 문제가 있는 것은 저 아가씨겠지.”

“알고 있어.”

린의 말에 리아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슬쩍 손을 들어, 어느새 옆에 나타나 있는 작은 검은색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잇는군요.

“니르나에스는 이미 내 소원을 들어주고 있었으니까.”

“미묘한 문제지. ‘들어주었다.’ 가 아니고 ‘들어주고 있다.’ 라는건. 하여튼 뉘류나엣하고 어울려서 좋은 꼴로 끝난 사람을 못 봤어.”

“사이 안 좋은가보네.”

“별로. 그냥 개겨보고 싶었을 뿐이야. 본래는 이렇게 볼 수도 없거든. 레벨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린의 말에 리아는 피식 하고 웃어보이더니 옆에 있던 검은 고양이를 안아듭니다. 갸르릉 거리며 리아의 품 안으로 파고드는 고양이의 모습에 린은 콧방귀를 뀌며 투덜거리네요.

“저런 모습도 마음에 안 들어. 신경 안 쓸테니 니 멋대로 하세요. 라고 하는 듯한 태도가.”

“그래도, 나한텐 이쪽도 은인이야. 아니, 은묘라고 해야하나?”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니까.”

“역시 그렇지? 이런 경우, 난 마녀가 되려나?”

품 안의 있는 고양이의 목을 긁어주며 리아는 작게 웃는군요. 골골거리는 고양이의 모습에 린은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이어나갑니다.

“아니, 그게 아니야. 지금 문제는.”

“응?”

“계약을 중도 해지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가능해. 알고 있지?”

그렇게 말하며 린은 하랑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군요.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하랑이는 린의 말을 듣더니 순식간에 얼굴이 펑! 하면서 새빨갛게 변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린이 리아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리아는 쓴 웃음과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답니다.

“그게 문제야. 게다가 하랑이도 별로 그럴 생각은 없을 것 같고.”

“... 남자가 되어버리는 거니까. 싫어. 그런건.”

“책임진다면서?”

“그거랑은 별개. 덧붙여서, 잊고 있나본데... 나 이제 겨우 15살이거든?”

“... 그랬어?”

“그랬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는 하랑이를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리아.

“언니라고 불러.”

“리아 언니.”

“순식간이네? 재미없어.”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뭘.”

시시덕거리는 둘을 보며 린은 한숨을 쉬더니 하랑이의 손을 부리로 콕 찍어버리는군요.

“아파!”

“중요한 이야기 하는데 어디서 딴소리야?”

“그럼 본론 좀 꺼내봐. 뭘 어떻게 하라는건데?”

부리에 찍힌 손등을 문지르며 투덜거리는 하랑이와 고양이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앉아있는 리아 사이에 자리 잡으며 린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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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네요. 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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