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연재 마법소녀 하랑 - 02화

2010.09.11 20:12

카와이 루나링 조회 수:430

 

마녀들의 밤.

전 세계의 마법 소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커다란 축제의 장으로 그 수는 거의 300에 가깝지요. 제일 초기에는 모든 마법 소녀들이 전부 한 곳에 모였었다지만 물론 그 숫자가 한 번에 전부 모인 다는 것이 시간 적으로나 장소 적으로나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지금은 각 대륙에 하나씩 해서 여섯으로 나누어져 열리고 있다고 하네요. 거기에 동시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기간을 두고 열리는 행사로 원한다면 다른 대륙의 행사에도 참가가 가능하구요.

초기에 목적은 마법 소녀들 간의 정기 보고 및 그를 통한 경쟁심 유발로 좀 더 활동적이며 적극적인 업무 수행을 목표로 했던 듯 합니다만... 지금은 아무래도 친목 도모를 위한 잔치의 개념이 더 큰 것 같다고 합니다. 정기 보고 같은 것은 현재 특별히 하지 않고 새로운 마법 소녀가 탄생하거나, 아니면 마법 소녀의 임무에서 해방된 소녀에 대한 보고 정도로 끝나는 정도라고 하구요.

“그럼 굳이 갈 필요는 없는거 아닌가?”

[일단은 신입이니까. 왜? 가기 싫어?]

“아니, 이런 행사는 가능하면 안 빠지는데 그렇게나 걱정을 하니까.”

린에게 마녀들의 밤에 관한 긴 설명 중간중간에 하랑이는 몇 번이나 ‘남자인 것을 절대 들키지마라.’ 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답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봤었다면 누가 보더라도 린이 상당히 불안해하고 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거에요. 뭐, 지금도 굳이 모를 것 같지는 않지만요.

[일단은 신입이니까 이번만큼은 반드시 가야해. 게다가 장소 자체도 한국이라 빠질만한 이유가 없어.]

“그거야 난 좋지만. 너무 걱정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내가 다 불안하다. 그만 좀 해.”

[노력 중이야.]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네?”

린의 말에 가볍게 쏘아주며 하랑이는 정말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몸을 날렸습니다. 린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는 그 쪽에서 이쪽으로 데리러 오기 위한 장치나 수단을 마련해 준다고 하지만 린이 거절했다고 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불안하니 직접 가야한다는 것이 이유였지요. 뭐, 그 덕분에 하랑이만 고생을 하는 중... 인가요?

하랑이에게 허락된 것은 12분의 시간. 하지만 절반의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하랑이는 이미 50km 이상을 뛰어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아무리 변신하고 있는 중이라지만 음속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뛰어갈 정도라니 새삼 하랑이가 대단해 보이네요. 그러는 와중에도 할 말은 다 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마법 소녀들 중에 운동 능력으로 따지면 거의 손에 꼽힐 정도 같아요. 뭐, 운동 능력 외에 다른 능력까지 포함한다면 더 대단한 마법 소녀들도 있지만요. 주문 하나 삐끗할 경우 재수 없으면 세상이 날아가 버리는 성격 더러운 절벽 소녀라든지...

어쨌건,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마녀들의 밤 회장 근처에 도착한 하랑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옷차림을 정리해 보는군요. 저번에 보았던 것과 같은 푸른빛의 원피스. 그리고 그 위에는 검은색의 가디건을 걸쳤네요. 그 가디건은 마법 소녀의 복장이 아니고 따로 집에서 챙겨온 것이랍니다. 아무래도 가슴 위쪽으로 아주 훤하게 드러내는 것이 그리 익숙하지는 않은가봐요.

[뭐, 마녀들이 밤 한정해서 행사장에서는 변신이 풀리진 않으니까 특별히 말실수만 하지 않으면 될거야.]

“알아, 알아. 그거 9992번 정도만 더 들으면 만 번 채울 것 같은데?”

린의 말에 가볍게 웃으며 대꾸한 하랑이는 적당히 숨을 고른 뒤 회장 쪽으로 가는군요. 사실 여덟 번 정도가 아니라 더 많이 이야기 했던 것 같기도 한데...

다들 저번에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하랑이는 본래 남자랍니다. 하지만 린의 착각으로 마법 소녀가 되어버린 거지요. 이전부터 마법 소녀의 곁에는 어느 정도 비슷한?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마법 소녀를 도와준다든지, 되지도 않는 라이벌 의식을 불태운다든지 하는 남자 아이들이 있었던 경우도 있지만 그래봤자 그 애들은 남자일 뿐이잖아요? 점차 공기가 되어버리는 인간 남캐일 뿐이잖아요.

하지만 하랑이는 달라서 말이에요. 말 그대로 하랑이는 마법 소녀가 되어버린 거랍니다. 단순히 능력이나 복장 같은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아예 몸 자체가 ‘소녀’가 되어버린 거에요! 벗겨서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요. 확실하게 아래쪽에 아무 것도 없었답니다. 이따가 확인해 보세요. 저 원피스, 시스루 형이라서 밝은 곳에 가면 아래쪽에 속옷이 보인답니다. 위에 속옷도 있기는 하지만 정작 그 내용물은 변신 전이나 후나 없는 것은 매한가지니까 굳이 신경써서 보려고 하지 않아도 될 거에요.

“... 응?”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아니, 왠지 기분 나쁜 말을 들은 것 같아서. 기분 탓인가?”

[거참. 놀라게 하지마. 순간 쫄았네.]

... 여전히 감이 좋은 아이군요. 흠흠.

어쨌건 전에 하랑이가 린에게 했던 말을 해보자면... 자신은 본래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다는군요. 집안 자체가 무슨 무술을 하는 집안인데 그게 사실 여자만 배울 수 있다나 어쩐다나... 하지만 그 집안에서 그 족보를 이어나가야 하는 자신이 남자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네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제대로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고,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았어요. 그래서 최대한 여자처럼 살려고 행동거지도, 생활 습관도 최대한 여성스러운 느낌으로 해보려고 했다고 하구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성과도 없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 덕분에 린이 커다란 착각을 해버린 거겠지요. 전 아직까지 기억한다구요. 처음 린과 하랑이가 어떻게 만났는지를.



몇 명의 안 좋은 사람들에게 잡혀 안 좋은 일을 당할뻔 했던 소녀를 구하려고 뛰어든 하랑이. 자기 말로는 상당히 부족한, 남자라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던 무술이라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슨 무술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을 거에요. 그 정도로 나름 대단한 능력을 지닌 하랑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참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지요. 뭔가 하니... 사람을 때리지 못했거든요. 발차기를 날려도, 주먹을 날려도 언제나 바로 앞에서 정지. 아마 자신은 그렇게 위협을 하는 정도로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었나봐요.

하지만 세상 참 생각처럼 돌아가는 일이 몇이나 있나요? 하랑이의 그런 태도를 눈치챈 것인지 그 안 좋으신 분들이 반격에 나섰고, 날고기는 하랑이라고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핀치에 몰렸었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린이 등장. 정말이지 우연이라면 우연인데, 그 당시에 린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하랑이에게 손을 내밀었었답니다. 후에 린이 이야기 했지만 정말로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여자로 알고 있었다고 하면서요. 하랑이가 배워왔던 무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랑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나 느낌은 ‘여자’ 그 자체라고. 하랑이와 처음으로 몸을 섞을 때도 거부감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면서.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해서 하랑이가 마법 소녀가 된 것이랍니다. 린과 합체해 마법 소녀가 된 하랑이는 꽤나 흥분한 듯, 앞뒤 가리지 않고 그 곳에 있던 안 좋은 분들을 두들겨 패고, 안 좋은 부분을 꽁꽁 얼려서 걷어 차 버리기까지 하더라구요.

하랑이는 보통의 소녀가 린과 합체할 경우 가질 수 있는 능력보다 좀 못하던 수준의 실력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요. 그런데다가 여자의 몸이 되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던 능력을 완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실력이 배 이상으로 증가. 거기에 마법 소녀가 되면서 추가되는 능력까지 포함하면서 뭔가 예상했던 것 보다 3배 이상 강한 마법 소녀와 계약을 하며 린은 대박이라며 즐거워했습니다만...

이후 하랑이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 거의 한나절 동안 방바닥만 긁고 있었다는 사실은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다들 예상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흠흠.



어쨌든 하랑이는 변신하지 않았어도 일단 여장을 하고 있는 상태이긴 하군요. 린이 본래 마법 소녀의 진짜 모습은 다른 누구에게 들켜서는 안된다는 - 그래서 다들 딱히 모습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복장만 바뀌어도 못 알아본다... 라는 말도 덤으로 하면서 - 뭔가 이상하면서 연관성이 없는 듯한 그런 불문율을 들고 나오며 변신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로 한참이나 하랑이를 괴롭힌 덕에 지금은 변신해 있기는 하지만요. 덧붙이자면 마녀들의 밤 행사에는 변신을 하건 말건 그건 자신의 자유랍니다. 일단 변신 상태가 기본이라는 말은 있지만요.

“그럼 들어간다.”

[긴장하지 말고. 조심해.]

“네가 놀라게만 안 하면 괜찮아.”

린의 말에 실실 웃으며 다시 대꾸한 하랑이가 회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군요. 회장이라고 해봤자 인적이 없는 높은 산의 공터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특별한 것은 없지만요.

회장을 보면 이미 많은 마법 소녀들이 자리에 있군요. 수십명이나 되는 것 같은데 다들 제각각의 의상을 입고, 머리 색깔은 왜 이렇게나 특이하고 다채로운지... 척 봐도 마법 소녀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면을 쓰고 보라색 단발머리에 망토를 두른, 마법 소녀와 살짝 거리가 있어 보이는 모습도 보이고. 사이사이에는 귀여운 동물, 혹은 특이한 생물체와 동행한 상대적으로 외모만은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보이는군요.

제일 앞쪽에는 그리 높지는 않지만 단상처럼 자리를 마련해 놓았고, 양 옆에 죽 놓인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음식들이 가득 놓여져 있었답니다. 전에도 말했던 거지만 정기 보고회 같은 느낌은 더 이상 없고, 그저 정원 파티 같다는 느낌뿐이랍니다. 뭐,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전 그렇네요. 중간중간 여러개의 잔을 올려놓은 접시를 든 채 돌아다니고 있는 웨이트리스 복장의 사람들도 보이고.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요? 하랑이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연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렇다고해서 하랑이 쪽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요. 가끔 하랑이 쪽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거나 하는 정도의 사람들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도 일일이 답례하며 회장 안을 살펴보는 하랑이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미쳐 신경쓰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보아하니 처음 오신 것 같네요. 도와드릴까요?”

싱긋 웃으며 하랑이에게 말을 거네요. 잘 다린 블라우스와 무늬 없는 치마. 거기에 안경을 쓰고 손에는 서류철과 볼펜을 지니고 있군요. 사무직 여성이라는 느낌일까요? 머리도 본래는 꽤나 길 것 같았지만 틀어올려 시원하게 뒷목이 드러나 보이는군요. 이 곳에 있는 소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장이 진한 편에 속하고,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분이네요. 뭐, 실제로 나이가 많기도 하고.

하지만 그 보다도 일단 하랑이가 보면 좀 놀라겠는데요?

“선생님?”

저렇게 말이죠.

“네?”

하랑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 하면서 안경을 매만지는군요. 눈이 살짝 가늘어지며 하랑이를 바라보지만 하랑이는 재빨리 눈을 돌려 그 시선을 피하네요.

[이, 이 바보가!]

린도 당황한 듯 목소리가 커지는군요. 물론 그 목소리가 눈앞에 있는 여성에게 들릴리는 없겠지만요.

“아, 아니에요. 그냥 말이 헛 나왔네요. 아하하.”

“아, 네...”

머리를 긁으며 재빨리 수습해보려 하지만 그다지 효과가 있을법 하지는 않네요. 저렇게나 표정 관리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건지.

“그럼 우선 이름부터 알려주시겠어요? 참가자 명단을 작성해야 하거든요.”

“아, 네. 이...”

[야! 똑바로 안할래?]

무심결에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하랑이가 막 말을 하려는 순간에 린이 정말로 커다랗게, 하랑이가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크게 외치는군요. 하지만 곧 표정을 고치고 재빨리 말을 바꾸네요.

“... 름은 ‘속삭이는 바람’입니다.”

“에롤리엔느 인가요? 그러고보니 이번에 새로 계약했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알겠습니다. 혹시 더 필요한 것 있으신가요?”

“아, 아니에요. 감사했습니다.”

다급하게 이야기를 끝내며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는 하랑이. 그리고는 그 여성분의 앞에서 재빨리 몸을 돌리는군요. 뭐, 아무래도 많이 당황할 수 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나름 어찌어찌 수습을...

“그러고보니, 왜 평일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오늘 누님 분 상견례 때문에 가족 모임 있다고 일주일 전부터 노래를 불러대서 결국 야자를 빠진 이씨 성을 가진 학생이 하나 있던 것 같은데 말이죠?”

... 하지 못했군요.

하랑이의 몸이 돌아갑니다. 만약에 만화였다면 ‘끼끼기익~’ 하는 뻣뻣한 소리가 날 것 같은 움직임이네요. 린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Oh Sh●t...' 같은 소리나 하고 있구요.

“네?”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 좀 했어요. 내일 학교에서 그 학생하고 면담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아서요.”

“아, 아하하. 네에.”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잘하는 짓이다. 어떻게 시작부터 들키냐?]

“아니, 저건 아무리 봐도 논외야. 어째서 선생님이 여기 계시는건데? 이미 소녀라고 부를 나이는 지난지 한참이라고. 아니, 나이는 둘째치고 거기서 바로 나라는걸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니야?”

열심히 자기변호를 해 보지만 아무래도 린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열흘 이상이나 열심히 떠들어댔던 이야기인데 이렇게나 순식간에 결판이 나 버리면 저럴만도 하겠지요.

[확실히 저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마녀로 있을 줄은 몰랐다지만... 그래도 조금만 조심하지 그랬어.]

“마녀건 마법사건, 너라면 그렇게 할 수 있어?”

[... 아마도?]

“아마도는 무슨 아마도야?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어.”

린의 말에 투덜투덜 거리면서 하랑이는 한숨을 내쉬는군요. 나름 철저히 준비한 일이니 그럴만도 하지요.

[몰라. 일단 내일 생각해. 분위기를 보니 딱히 너에 관해 발설하거나 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 그래주면 고맙겠는데 말이지.”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꽤나 안쓰러워 보이네요.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이 시선을 모은다는 자각은 좀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을 무렵, 갑자기 회장에 불이 꺼지는군요. 그와 동시에 단상 쪽에 조명이 집중되기 시작합니다. 그 모든 조명을 한 몸에 받으며 단상 위로 한 소녀가 성큼성큼 올라오는군요.

조금 작은 키, 150cm 정도 되려나요? 그런 작은 키에 가느다란 팔과 다리가 눈에 띄는군요. 어깨를 덮지 않는, 잘 정돈된 검은색의 짧은 머리카락은 소녀를 한층 어리게 보이게 하는군요. 긴 속눈썹과 살짝 치켜 올라간 눈 끝, 그리고 새하얀 피부와 대조적으로 빨갛게 물들어 있는 입술은 체구와는 다르게 어른스러운 색기가 넘치는 소녀입니다.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색 의상 역시 그 색기를 더해주네요. 소녀의 몸에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까지 하는 커다란 가슴을 간신히 가리고, 치마 역시 골반 부분만 간신히 가린 채 허벅지 대부분을 드러내주는 짧은 치마군요. 그러면서 어깨 바로 아래부터 손목까지, 그리고 무릎 위부터 발목까지는 딱 달라붙어 그 가느다란 선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전부 가려 놓았구요. 치마 속에서는 가느다란 검은색 벨트가 내려오면서 그대로 다리쪽으로 연결되네요. 가터벨트라고 하던가요?

가슴 한 가운데는 새하얀 해골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었고, 소매 부분에는 커다란 눈 모양이 그려져 있네요. 목에는 검은색의 가죽 재질로 보이는 벨트가 채워져 있고 그 벨트에서 연결된 가느다란 사슬이 왼쪽 어깨를 따라 내려와 있군요. 보시면 알겠지만 상당히 속살이 많이 드러나는 의상이랍니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 그런 복장을 한 소녀는 그다지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군요. 보고 있는 하랑이는 버티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버렸는데 말이죠. 아하하. 순진한 척 하기는. 사실은 좋으면서.

그 소녀는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단상 위를 걸어 다니며 아래쪽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죽 훑어보는군요. 그러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쉽니다.

“역시나 햇님반 꼬맹이들은 안 온 모양이지?”

소녀의 말에 앞쪽에 서 있던 몇몇 마법 소녀들이 그렇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소녀는 그에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습니다. 그러더니 행사장 전체가 울릴 정도로 커다랗게 외치는군요!

“그딴 꼬마들은 제끼고! 모두들 즐기고 있나!?”

날카로운 외침에 많은 소녀들이 호응하며 소리를 지르네요. 인기 절정인 아이돌의 무대를 보는 것 같이. 그 외침을, 시선을 한 몸에 받아내며 소녀는 다시 한 번 크게 외치는군요.

“모두들! 오늘 하루는 싹 잊고 놀아보자!”

터져나오는 함성과 박수. 무언가 쌓여있는 것을 전부 토해내듯, 소녀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회장 안을 뜨겁게 달굽니다. 소리를 지르고, 무언가를 집어 던지기도 하면서요. 그 모습을 보던 하랑이가 무심결에 눈살을 찌푸렸을 정도로 상당히 소란스럽군요.

그러던 소녀가 단상 위에서 다시 손을 들어 올리네요. 무슨 일일까요? 그 모습을 본 다른 소녀들은 순서대로, 그렇지만 빠르게 다시 조용해지며 단상 위의 소녀쪽으로 시선을 주는군요. 그렇게 회장 안이 다시 조용해진 후에도 잠시 동안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보랏빛의 소녀는 손을 내리고 입을 여네요.

“아, 그러고보니 이번에 새로 한 명이 계약을 했다고 하던데? 누구지?”

그 소녀의 말에 사람들 사이로 작은 웅성거림이 피어나기 시작하는군요. 뭐, 그 주인공이 누군지 이미 저희는 알고 있지만요. 그리고 물론 그 당사자도 알고 있을테구요. 하랑이가 잠시 망설이고 있는 사이, 단상 위에 있던 소녀는 다시 입을 엽니다.

“누구랬더라? ‘속삭이는 바람’ 이던가? 빨리 나와 줬으면 하는데? 오늘 밤은 그리 길지 않다고!”

어떻게 살짝 빠지지도 못하게 만드는군요. 하랑이는 잠시 뜸을 들였지만 린의 재촉과, 주변에서 보내오는 몇몇 소녀들의 시선에 이기지 못하는 듯, 단상 쪽으로 나가네요. 단상 위에 올라서자 하랑이는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듯 몸을 좀 움츠리는군요.

“에, 그러니까...”

“... 거참, 뭐야? 왜 이렇게 굳어있어?”

하랑이의 움츠러든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소녀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립니다. 그러더니 단상 끝으로 가서 무언가 다른 소녀에게 말을 하네요. 그러더니 곧 새빨간 액체가 담긴 유리잔을 받아들고 하랑이 앞으로 오는군요. 그리고는 다짜고짜 그 잔을 하랑이에게 내밉니다.

“자. 마셔.”

“... 응? 이, 이건 뭐... 뭔가요?”

거침없는 소녀의 태도에 하랑이가 한 발 뒤로 물러나네요. 게다가 어째서 존대? 린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소녀의 태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네요.

“이거? 칵테일. 맛있어.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네?”

“... 그러니까... 술... 인가요?”

“응.”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긍정하는군요. 그러면서 다시 한 번 하랑이에게 잔을 내밉니다. 하지만 그 순간 하랑이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하네요.. 동시에 목소리 역시 따라서 높아집니다.

“안돼요!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면!”

...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지금 분위기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 같지요? 아, 지금 분위기가 그렇다는거지 그렇다고 미성년자가 술을 마셔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에요. 어린이 여러분, 청소년 여러분! 술은 성인이 된 다음부터 마시자구요. 그 것도 엉터리로 배우지 말고 제대로 배워서.

“거참, 뭐 이런거 가지고 그래? 마셔봐. 긴장 푸는데는 최고야.”

“그래도 안됩니다!”

소녀의 말에 딱 잘라서 거절하는 하랑이. 동시에 손을 들어 올려 가슴 앞에서 X자를 만드는군요. 하지만 아무래도 소녀는 그런 하랑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나 봐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그대로 잔을 들어 자신의 입 안으로 단번에 털어 넣는군요.

그런 소녀의 행동을 보며 하랑이의 눈이 동그랗게 변합니다. 놀랄 만도 하겠지요. 자신의 가슴 높이 정도 밖에 오지 않는 소녀가 저러는 모습이. 하랑이의 태도를 봐서 알겠지만 은근히 고지식한 면이 있는 아이인 만큼 저런 모습은 상상도 안 해봤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말이죠. 그렇다고 지금 벌어지는 일만 할까요?

가슴 앞쪽에서 교차되어 있는 하랑이의 양 팔을 한 손으로 굳게 잡아둔 뒤에 다른 한 손으로 하랑이의 뒷머리를 감싸며 까치발을 들어 그대로 입을 맞추어 버리는 소녀의 행동을 말이죠. 상상이나 해 봤을까요? 과연?




\\\\\\\\\\\\\\\\\\\\\\\\

약속된 전개. Chu~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