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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혁명의 날 팬픽]나의 투쟁 1

2010.08.23 19:37

라온 조회 수:882

옥상은 기분 좋다. 펜스에 닿아 신음하며 내 몸을 스치는 마음을 평온하게 달래주고 낡아서 삐걱거리는 벤치는 벌러덩 드러누워도 삐걱하는 낡은 소리로 작은 반항을 할 뿐 나의 아담한 몸을 충분히 감싸준다.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병원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 병원 특유의 그 냄새는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하지만 밖에 나갔다간 남들한테 나의 이 어중간한 모습을 보일까 전전긍긍할 마음도 없다. 결국 병원 냄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여기뿐, 케이일 때의 나를 버리기로 했으면서 아직도 옥상과의 인연은 끊어질 생각을 않는 것 같다.
 
처음엔 이러지 않았는데... 나는 말 잘 듣는 성실한 환자였고 며칠 후면 수술을 받아 나가게 될 사람이었다. 나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기 전까진 모든 게 순조로웠다. 혹 잘못된 생각이면 어떻게 하나. 나의 15년을 부정해가며 여자로 지낼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남자로 지내는 것도 결코 마음 편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리고 누구도 어느 쪽으로도 강요하지 않는 이 고민은 일에서 월로 그리고 년이 되려는 상태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여자 같다는 놀림을 들어오던 나의 모습은 이제는 아니라고 우겨도 믿지 못할 수준으로 변하고 있다. 어머니의 강제로 함부로 자르지 못하게 된 머리는 단발이라고 부를만큼 자랐고 나의 결심을 기다렸다는 듯 찾아온 사춘기는 내 목소리를 바꾸고 나의 몸을 헤짚었다. 의사선생님은 어느 쪽이건 하루라도 빨리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협박아닌 협박을 하는 형편... 초조한 마음이 든다. 아무 말 않고 나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말씀해주시는 부모님께 대한 감사가 원망으로 변할 지경이다. 왜 이런 어려운 일을 나 혼자 결정해야 하는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초조함이 치민다. 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띠링띠링-
휴대폰이 울린다. 무슨 내용일지 알면서도 확인해본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는 심리상담 땡땡이치지 말고 오라는 문자. 어머니께서 심심한 병원생활을 달래라며 사주신 휴대폰이지만 병원에서 찾는 전화 정도를 제외하면 단 한번도 건 적이 없다. 이걸로 내가 친구에게 전화 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연락이라도 했다가 누군가 나에게 지금 뭐하냐고 물었을 때 천연덕스럽게 거짓말 할 자신이 없다.
 
등받이를 지지대삼아 천천히 일어났다. 빈혈기 때문인지 머리가 핑 돌았지만 곧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늘어지는 나임을 알기에 노곤함을 몰아내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나 자신의 결정을 믿는다면서 남자가 되건 여자가 되건 행복할 것이라 말하는 무책임한 상담이 아니길 바라지만 현실은 언제나 똑같다. 하지만 피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닌 법. ‘오늘은 부디...’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우울해진 얼굴을 부비며 짐짓 힘찬 발걸음으로 걸어가 병원 문을 연다. 하지만 안 그래도 뻑뻑하던 철문이 오늘은 훨씬 더 크게 반항한다. 어린 아이라면 엄두도 낼 수 없을만큼 무겁고 뻑뻑한 문, 몸을 실어 힘주어 밀어 본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열리는 문, ‘제까짓 게 버텨봤자지.’ 하고 속으로 괜히 득의양양하며 계속 밀다가 결국 타이밍을 놓치고 앞으로 보기 흉하게 자빠졌다. 그다지 아프지도 않고 금방 가라앉을 고통. 하지만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절로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아..."
생각보다 훨씬 큰 소리.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부끄러울 것이란 생각이 들어 허둥지둥 일어나 주위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로왠 여자애가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한보는 여자아이를 보고 깜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에이씨. 거울이잖아."
문을 열면 언제나 보이던 커다란 전신거울. 매일같이 드나들며 이제껏 별로 신경쓴 적도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존재감을 과시할 줄이야. 놀람이 가라앉자 부끄러운 마음이 치밀었다. 자빠진 것만 해도 부끄러워 죽겠는데 이런 모습까지... 남들이 보면 한참을 놀림감으로 삼을만한 일 아닌가. 나는 주위를 잠시 살펴본 뒤 엘레베이터로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잠깐의 기다림 사이에라도 거울에 마주치지 않기 위해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어 빨리 올라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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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랄까... 프롤로그랄까... 원래는 마고토와 대화 형식의 단편으로 쓰고 싶었으나 노선변경으로 10편정도를 목표로 잡고 써보려 합니다.
 
자오우 타이시님의 혁명의 날은 재미는 있지만 스토리의 주된 갈등원인 두가지가 정말 심각하게 얼렁뚱땅 넘어가버려서 ts팬으로서 아쉬움이 컸지요. 이번에 글쓰기 연습하면서 한번 그 간극을 메워보고자 써봤습니다.
 
비판 대 환영이고 많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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