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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용의 조락-폭풍의 탑편-4

2010.12.23 16:21

azelight 조회 수:614

막무가내 작전.”

루시엔은 라니아의 말을 따라하며 낮게 후후후하고 웃었다. 긴장감이라는 것이 없는 건지 이 둘은 솔드에게 예들이 못 하나라도 덜 박혀 있는 거 아닌가하고 확인하고프게 하는 충동을 일게 만들고 있었다.

, 괜찮을 것 같은데. 지붕에라도 올라가서 확인하면 되니까. 나나. 솔드가 말이야.”

솔드의 그런 충동을 알았는지 라니아는 재빨리 의견을 내놓았다. 솔드는 한숨을 쉬곤 그 일은 자신이 맡겠다고 청했고 만장일치로 승낙되었다.

그 만장일치라는 사실이 당연하게도 라니아의 불만을 불러왔지만 일행의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임무는 냉철하고 기복이 없는 솔드가 제격이라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지시가 내려지자 일행은 일사분란이 움직였다. 솔드는 2층으로 혼자 올라갔고 루시엔은 엘자를 소환해 결계를 칠 준비를 마쳤다.

엘자. 바람의 왕자여. 그대의 힘으로 비바람으로 부터 우리를 지켜주길.”

수십 장의 날개와 3개의 긴 꼬리깃으로 이루어진 루시엔의 대기정령 엘자를 중심으로 거대한 바람의 막이 펼쳐졌다. 고오오하고 울리는 바람의 소리와 함께 바닥에 흘러내리는 빗물마저 밀려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감탄할 여력은 없었다.

가장 먼저 애던이 뛰쳐나오고. 그 다음 발락이. 뒤이어 나머지 일행들이 뛰쳐나왔다.

기세 좋게 뛰쳐나왔던 일행은 곧 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도 그것은 형형한 자태를 뽐내며 고고히 서 있었다.

한 순간이었지만.

일행은 전부 탑의 모습에 눈길을 뺏겼다. 그것은 엘루들이 잃은 마법의 영지 그 자체였다. 아주 오래 전 아직 영성을 잃지 않은 엘드린들이 만들어낸 강대한 영지.

.”

라니아가 머리를 쥐어 감싸며 비틀거렸다. 재빨리 발락이 잡아줬기에 바닥에 널브러지는 참사는 피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애던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발락에게 라니아를 업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발락. 내가 앞장서겠소. 라니아를 데리고 뒤에서 따라오시오.”

하지만 그 다음 돌격을 위해 몸을 돌렸을 때 애던은 다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코앞에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누군가 서 있었다.

후드 알래도 강렬히 비치는 안광. 단정하게 기른 반백의 턱수염과 언덕모양으로 굳게 다문 입. 오른쪽 뺨에는 가로로난 흉터가 있었다.

해던은 숨을 짧게 들이쉬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애던은 그를 알고 있었다. 저 눈빛과 얼굴의 흉터를 알고 있었다.

그라덴.”

애던이 이름을 부르자 그라덴인 굳게 다물어져 있던 입꼬리를 씨익 하고 끌어올렸다.

애던, 오랜만이군. 표정이 좋지 않은데. 아직도 상처가 쓰리나? 아니면 변비? 소화불량? 크크크. 그렇게 굳지 말게나. 내가 실례한 것 같지 않나.”

그라덴은 시시한 농담을 던지며 애던의 어깨에 손을 얻었다. 그 순간. 애던은 재빨리 뒤로 빠지며 침묵을 들어 그라덴을 내려쳤다. 놀랍게도 침묵은 그라덴을 베어낸 게 아니라 통째로 지워버렸다.

환상이로군.”

애던은 으르렁 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힘줘 말했다.

오오. 맞네. 애던. 하지만 눈썰미가 나쁘군. 자네의 능력이라면 꿰뚫어 봤어야 정상이었는데 말이야. 감이 둔해졌나? 언제나 긴장을 유지하라는 내 가르침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슬프군.”

그라덴의 목소리가 폭우 속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솔드가 2층 지붕에서 뛰어내려 왔다.

항구는 저쪽이네.”

솔드는 폭풍의 탑이 보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비켜 나간 방향을 가리켰다. 애던은 고개를 끄덕인 후 그대로 침묵을 쳐들고 솔드가 가리킨 방향으로 지체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탑으로 가려는 건가? 목적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까? 아아~. 대답은 필요 없네. 굳이 자네가 왔으니 예측은 된 달까? 그들은 시시한 것들을 말하지. 물론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닐세. 요컨데 정의란 상대적이라는 이야기야. 이런 식이지.”

그라덴의 말이 끝나자 마자 애던이 달려가는 방향의 지면이 일어서서 벽처럼 변했다. 애던은 그 벽을 그대로 침묵으로 후려쳐 무너뜨리며 뚫고 지나갔고 그 뒤를 솔드가, 이어 루시엔, 베이커드가 쫒아왔으며 마지막으로 라니아를 든 발락을 쫓았다.

너는 항상 생각해본 적 없나? 우리들의 진정한 적이 무엇인지? 고작 타락의 경계하며 세상의 균형을 맞춰보겠다는 알량한 믿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물론 생각해 본 적 없겠지. 하지만 난 매번 생각해 왔다네.”

애던은 파죽지세로 움직이지 않는 시귀들을 베어 가르며 전진했다. 어째서 반격이 없는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다. 반격해오지 않는 다면 그걸로 좋다. 그라덴에게 방심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애던은 단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말하자면 이건 제법 끔찍한 일이네. 요람 위의 아이마냥 편안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동요하고 있다네. 알겠나? 굳이 이렇게 떠들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말일세. 그건 꽤나 두려운 일일세.”

그라덴은 쭉 말을 이어 갔다.

마치 애던과 그 일행들이 뭘 하던 간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투였다. 그라덴이 하는 말들은 두서없으면서 쭉 공포와 외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기에 무엇인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라덴이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자신의 공포를 일행과 공유하고 싶어하고 있었다.

, 저 녀석 말 하는 게 열 받는데.”

라니아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듣고 있다보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그라덴은 징징 거리고 있었다. 어조의 평온함과는 달리 그가 선택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부정적이고 절망적이었다.

깨어났나?”

. 내려 줘.”

발락이 손을 놓자 라니아는 발락의 몸의 일부를 잡고 가볍게 뛰어내리더니 일행이 달리던 속도와 똑같이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아무래도 당사자가 등장한 모양이에요.”

앞서 뛰던 루시엔이 해맑음 웃음을 띠며 말했다.

언니. 심각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 대신 뭔가가 떠올랐어.”

뭔가?”

발락이 묻자 라니아는 탑을 가리켰다.

저것에 관한 것.”

.”

라니아의 손끝을 따라 발락은 탑을 쳐다보았다.

번개와 함께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다는 듯 우뚝 서 있는 탑은 노르위펜인 그의 시각에서도 제법 독특한 것이었다. 강렬한 힘 그자체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명계의 영역에 속한 힘이 그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저 탑을 만든 자들은 어느 정도의 힘을 지닌 것일까?

확고한 속성의 지닌 현세의 잔연력과는 달리 의지에 때하 자우되는 부정형의 힘이기에 경계 너머의 힘을 그는 낮게 보고 있었지만 저 탑을 이루고 있는 힘은 그런 편견을 초월할 만큼의 강렬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 마치 고대에부터 존재해왔다는 선도종족이자 세계의 수호자로 불리는 엘드린들이 총력을 기울여야 간신히 만들어낼 수 있을 그런 것이었다.

경의? 위협? 두려움? 어느쪽이라 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다잡으며 발락은 탑을 주시했다. 그리고 봤다. 그리자 하나가 서 있는 모습을. 그라덴의 모습을 발락은 보았다.

그라덴이다!”

잘못 볼 일은 절대 없었다. 노르위펜의 능력은 사물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 그것은 선악을 판단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가 지니는 특성을 외형에 의존치 않고 인지한다는 것이었다.

,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노르위펜은 사물을 잘못 분간하는 법이 없었다. 동시에 발락은 것이 환영이라는 것도 인지했다.

환영이다.”

경고처럼 발락이 말할 때에도 그라덴은 여전히 일행을 향해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라데에엔!”

애던이 소리 높여 불렀지만 그라덴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가 할 말만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환영인가?”

환영이네.”

베이커드의 물음에 애던은 즉각 대답했다. 앞을 가로막고 선 시귀를 베어 가르는 것처럼 망설임 없고 확고한 답이었다. 그 누구라도 믿을 수밖에 없는 단호함. 애던의 입에 베어있는 서슬은 그 정도로 예리하고 단단했다. 정련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말.

그게 가능한 능력이 어디서부터 태어났을지 베이커드는 예측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그에 대해 의심도 하고 있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는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대 마법사에 특화된 능력들.

오직 특수한 능력을 지닌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한 미지의 힘.

모드 무형의 힘을 진정한 무로 되돌리는 육체와 마법을 붕괴시키는 유래불명의 마검.

그야말로 압도적이 마법 분쇄자. 이름 그대로 언어로 힘을 내뱉는 모든 것들을 무용케 하는 압도적인 힘.

침묵을 가져오는 검. 그리고 그 주인.

평범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아니, 선조 종족이라고 일컬어지는 아홉 종족들조차도 불가능 한 힘.

수호자라 일컬어지던 엘드린이나 그 보다 높은 정점에 있었던 용들조차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그들은 강대한 영성을 바탕으로 마법과 함께 하는 종족이었기에 마법을 모조리 분쇄한다는 섭리에 벗어나는 역행적인 힘은 세상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가능한 존재가 있다면 저 경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어떤 존재들 중에나 있을까?

감히 베이커드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존재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알려지지 않은 심연의 존재들은 힘없는 일개 엘루들과 접촉하지 않는다. 힘있는 자가 그 이름을 말할 때 경계너머의 존재들 또한 강한 힘을 얻기 때문이었다. 미미한 영성의 범인들에게 신경을 쓰느니 진정한 힘을 가진 자들을 쫒는 것이 이득인 것이다.

애던에겐 어떤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베이커드의 의문은 그런 것이었지만 한 번도 묻지 못했다. 그 또한 자신의 과거를 캐묻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베이커드이 상념과는 상관없이 그라덴의 연설은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 것이다. 결국 희망이란 것은 무상한 것이지. 너희들이 탑에 갈 수 있다고 믿나? 그 곳에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너희들도 절망할 것이다.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냐. 살려줘 있는 상태인 것이지. ,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무것도 아니다. , 게임을 시작하자.”

그라덴의 말이 끝나는 순간 시귀들이 노도처럼 덮쳐오기 시작했다.

발락!”

애던이 부르자 발락이 훌쩍 뛰어 오르더니 애던의 앞에 시귀들을 깔아뭉개며 착지했다. 그리곤 마치 눈을 헤치고 지나가듯 양팔을 휙휙 휘두르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저돌적인 돌진이었다. 뒤따라가는 일행들 조차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심지어 위에서 지켜보던 그라덴조차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고대의 종족. 놀랍도록 저돌적이군. 하지만 이건 어떠냐? 그들은 무형의 존재다. 나와라 아낙툼. 묶인 자의 검이였던 것들이여. 일어나라 셰이바락. 그대의 날개는 하늘을 덮을지니. 눈떠라 피오스. 그 발톱에 찢기지 않을 자 없다. 높이 선자 게어릭. 태양을 먹을 자 그대이니!”

결코 강하지 않은 평온한 어조임에도 그라덴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어둠 속에 퍼졌다. 천둥조차 막을 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해일처럼 네 개의 장막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에레크리프트다.”

라니아가 솟아오르는 4개의 장막을 보면서 말했다.

언니 저것들에 대해서 알아요?”

탑에 대한 기억과 함께 떠올랐어. 3시대에 돌입하고 현세에 나타난 적이 없는 놈들일 텐데. , 설마 너희들 그 마법사 기지에서 싸웠던 게.”

맞아! 맞으니까 어서 싸워!”

솔드가 봉을 휘둘러 다가오는 시귀들을 쳐내며 라니아를 질책했다. 적에게 포위당한 상황에서 잡담이나 하고 있다니. 무슨 정신머린가?

달리면서 주문 외우는 게 쉬운 줄 알아? 게다가 이것들은 절단이라도 안 내면 끄떡도 안할 것 같은 걸.”

라니아가 주력기로 삼는 것은 마법. 그것도 광탄을 이용해 상대를 관통하는 공격이었다. 사용하는 무기도 베기보다는 찌르기에 유리한 세검이라서 사실상 시귀들에게는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솔드도 봉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는 단지 완력과 요령만으로 사지를 박살내고 있으니 경우가 달랐다.

뭐든 써. 따라잡힌다!”

알았다고.”

라니아는 수인을 맺었다. 짧은 시간에 라니아의 주위에 무수한 빛덩어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두 총 16. 이 광구들은 자유로이 날아오르더니 광선을 발사해 시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엘자의 풍왕결계를 뚫고 들어온 시귀들의 다리에 광선을 집중 연사해 이동능력을 빼앗는 방식으로 상당수의 시귀들을 떨쳐냈지만 광구들은 공격횟수에 한계가 있는 것인지 몇 번의 광선 연사 후 사라져 버렸다. 때문에 라니아는 쉬자않고 연달아 광구들을 생산해야 했다.

뭐가 이리 많아!”

비명을 지르면서 라니아는 광구의 조종에 몰입했다. 섬세하기 그지없는 광구를 조종하는 동시에 전력이나 마찬가지인 속도로 달리는 것은 현대의 주도 종족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엘드린인 라니아에게 있어서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진짜 위험한 적인 에레크리프트의 접근에 대비하기 위해 라니아는 전력을 다하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전원이 마찬가지.

파죽지세라는 단어가 우스울 정도로 전진하는 발락이나, 그 옆에서 덮쳐오는 놈들을 족족히 배제해버리는 애던과 솔드는 전투를 벌이면서 전력질주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고, 루시엔은 엘자에게 정신력의 일부를 할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일하게 그냥 달리고 있는 사람은 베이커드였지만 그는 그 짧은 다리로 훨씬 키가 큰 종족을 따라잡는 다는 위대한 위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기에 누구도 그에게 그 이상의 행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에레크리프트가 온다!”

루시엔이 처음 그 이름을 언급한 이후 그대로 정착되었는지 솔드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라덴이 소환한 에리크리프트들은 시귀들을 흡수해 거대한 육체를 만들면서 일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본디 불완전한 정신체이기 때문에 현세에서 완전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 에레크리프트가 그 그릇에 걸 맞는 육체를 소유하게 된다면 그건 여러 부분에서 파멸적인 힘을 가진 적을 두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일행들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육체를 가진 만큼 죽음에 대한 확고한 자각을 가지기 때문에 쓰러뜨리기는 쉬워질지 모르지만 그 정도 이득을 위한 리스크로는 수지타산이 맞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치겠군!”

멈춰 섬과 동시에 선룡을 사용 그 기세를 견디고 달린다는 보기만 해도 무리가 생길 것 같은 행동을 시행한 솔드는 기세 좋게 불평을 내뱉었다.

그들이 이동한 거리는 가야할 거리의 절반 남짓. 어지간히도 무리하지 않는다면 그 전에 에레크리프트들과 마주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에레크리프트는 고작 한 마리라도 시귀들처럼 박살을 내면서 돌진한다는 무리. 그러나 지체했다가 시귀들의 무리 속에 묻힐 수 있다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할 거야, 애던.”

대놓고 찾아온 위기에 라니아가 애던을 향해 외쳤다.

조금만 더 가면 시귀들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소. 그때 전력을 다해 저지하는 거요. 멀지 않았소. 달리시오!”

정신없는 와중에도 꾸준히 감지하고 있었는지 애던의 즉각 지시를 내렸다.

?! 그건 미친 짓이라고.”

베이커드의 항의. 4체나 되는 에레크리프트가 다가오는데 그걸 무시하고 돌진하라는 애던의 지시는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든 지시였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달려. 더 빨리 달리면 돼!”

내 짧은 다리를 생각해줘!”

솔드의 질책과 베이커드의 절규.

닥치고 달리시오!”

애던의 외침이 연이어 터지고 발락이 기합성과 함께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겨우 그의 몸에 채워뒀던 자연력을 아낌없이 소모하기 시작했는지 발락이 팔을 한번 후려칠 때마다 시귀들이 폭풍에 날리는 낙엽마냥 날아올랐다.

전력을 다해 길을 뚫기 시작하는 발락. 그러나 라니아는 반대로 마법시전을 멈췄다. 그리고 양팔을 뻗어,

루시엔! 베이커드! 안아 들겠어.”

경고와 동시에 두 사람을 안아 들었다.

제길. 이건 완저언 미친 짓이야! 오늘 운세는 이렇지 않았다고. 달리기 시작할 깨 오른발로 디뎠었나?”

왼발이었네!”

오른발이라고 믿게 해줘!”

징크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라니 언니 달려요!”

안 시켜도 달려!”

겨우 발락의 발에 채이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따라붙으며 라니아는 과음을 질렀다.

뒤에서는 타액을 흘리며 시귀들이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어 양옆에선 에레크리프트들이 압박해오고, 정면에는 벽처럼 시귀들이 가로 막고 있으니 아무리 간이 부은 라니아라도 소릴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 얼마 안 남았소!”

일행을 고무시키려는 듯 애던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 모습을 그라덴이 지켜보는 동시에 애던이 내리는 지시 또한 듣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그라덴의 조소 가득한 웃음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단단한 강철의 육체를 가진 발락조차 소름이 돋을 정도의 조소. 일행은 결코 멈추지 않은 것은

그래? 도박이라면 환영이지. 내가 좀 더 강한 긴장을 주겠네.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지. 자네도 마음에 들 거네. . 아낙툼. 항구로 가 배를 부숴라.”

그라덴의 지시에 아낙툼은 만들어가던 육체를 버리고 찌르르거리는 벌레울음소리를 내며 검은 장막 같은 몸체를 항구로 향해 움직였다. 육체를 만드느라 밍기적 거리고 있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미완성의 몸을 버리자 아낙툼은 엄청난 속도로 항구로 날아가 도착했다.

일행에게는 그 어떤 순간보다 난처한 순간이었다. 항구의 배들이 파괴되면 더 이상 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이 없어지는 것과 동시에 이들은 우르하 항구 내에서 시귀들에 의해 고립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두를 날리는 발락은 멈추지 않았고 애던은 계속해서 일행을 고무했다. 솔드의 욕설이 난무하고, 입으로 난리치는 베이커드와 말싸움을 벌이는 라니아가 천둥소리만큼 고함을 쳐댔지만 일행은 멈추지 않았다.

베이커드! 주문을 준비하시오! 곧 돌파하오!”

말이 끝나는 즉시 일행은 시귀들의 벽을 통과했다. 우르르 건물과 벽을 타고 일행을 따라 잡으려는 시귀들의 모습이 일행이 뛰쳐나오는 경로의 양옆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은 그 어떤 시귀들보다 빠르게 달려 나왔고 어느 순간 발락이 멈춰 섰다.

갑작스러운 정지였지만 라니아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도약해 발락의 어깨를 타고 뛰어넘은 후 베이커드와 루시엔을 얌전히 땅에 내렸다.

이어.

시오를 위하여!”

발락이 전투외침을 울림과 동시에 오른 주먹을 힘껏 쳐든 후 땅을 향해 맹렬히 꽂아 넣었다.

폭음이 울려 퍼지고. 발락의 주먹으로 부터 시작된 균열이 순식간에 정면으로 뻗어나갔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대지가 울렸다. 균열과 함께 솟아오르는 대지. 하늘하늘한 천 마냥 찢어지는 대지로부터 생겨난 균열이 시귀들을 집어삼키며 자욱이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동시에 베이커드의 주문이 발동하고, 갈라진 대지 위로 어마어마한 업화의 불길을 벽처럼 새워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세 체의 에레크리프트는 멀쩡했다. 그들은 심지어 미완성인 육체를 완성시켜 기괴한 외모의 거인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몸이 완성되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시귀들을 막아냈을 분. 근본적으로 그들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러고 있는 와중에도 남은 하나의 에레크리프트가 배들을 파괴하고 있었다.

지체한다면 모든 배가 파괴되고 시간을 번 보람도 없이 고립될 것이다.

발락!”

애던이 부르자 발락은 오른손을 펼쳐 애던의 허리를 붙잡았다.

발락이 애던의 허리를 붙잡는 순간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이해 못해 두 눈만 동그랗게 떴던 일행들은 그 다음 행동에 기겁했다.

발락이 애던을 그대로 집어 던진 것이다.

극히 짧은 침묵이 있었지만 일행들 중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애던이 요구한 행동이 기상천외한 짓이긴 했지만, 고작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 애던이 무슨 행동을 요구한 것인지 알아차린 발락은 그 이상으로 이해불가능한 존재였다.

하지만 발락은 그런 일행들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가세. 애던은 먼저 갔네.”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고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

발락에 의해 던져진 애던은 쏘아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목표는 배를 파괴중인 에레크리프트 아낙툼.

애던은 아낙툼을 단 일격에 파괴할 목적으로 침묵 속에 내재된 힘을 극한으로 끌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에레크리프트는 강력한 악령들의 집합체로 사실상 급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지만 애던은 이 일격으로 에레크리프트를 소멸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의 검은 바로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

만약 그 자신이 원한다면. 그리고 충분한 의지를 가진다면 총체적인 의미에서 우주조차 멸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검이라고 그녀가 말한 것이다.

그의 계약자이며, 검의 평원의 파괴된 개척촌에서 이미 죽어가고 있던 그를 살려낸 정체불명의 그림자 아루세나인은 분명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애던이 원하는 복수를 가장 완벽하게 이뤄줄 수 있는 도구. 그것이 바로 이 검이라고.

실제로 침묵은 애던의 요구에 호응하고 있었다.

시커먼 자색의 검강이 검으로부터 뻗어 나와 거리따윈 아무래도 좋을 정도의 엄청난 길이로 변해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검으로부터 전해져오는 강렬한 기운. 그것은 그가 지금껏 어떤 무엇으로부터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한 힘 그 자체였다.

심지어 이 검의 원주인이었던. 스스로를 아루세나인이라는 이름으로 칭했던 검은 그림자에게서조차 이만한 힘을 느낄 수 없었다.

할 수 있다.

애던은 확신을 느꼈다.

검을 휘두르기 위해 양팔을 왼쪽으로 뻗으며 그는 조용히 확신했다.

아낙툼이 그의 접근을 느끼고 그 몸체의 형태를 변화시켰을 때도 애던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상쾌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렬한 확신과 의지가 그의 몸을 이끌었다.

반격하려는 아낙툼과 교차하듯 검을 베어 그었을 때.

애던 아낙툼의 죽음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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