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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11

2008.11.13 16:16

azelight 조회 수:514

 
 이노는 푸짐하게 식사를 내왔다. 어느 정도냐면 아무래도 과하다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아무래도 이노는 지나치게 성의를 피로한 것 같았다.
 이미 해준 일에 대해서 불평할 수는 없기에 야예이는 군말 없이 식사를 들었다. 물론 토른에게 그가 좋아할만한 부위의 고기를 나눠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것들이 다 뭐죠?”

 사색 중이던 키엘리니 역시 탁자 위로 올라온 수많은 음식들에 놀라며 야예이에게 물었다.

 “어제 일 때문에 여관 주인이 이렇게 내준 것 같습니다.”

 “아.”

 키엘리니는 어제 일을 다시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럴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노가 엘리엔의 이름을 대할 때 보이던 존경심은 진실이었고 또한 깊이 역시 깊었다. 존경하는 마법사에게 그 존경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마법사의 지인을 극진히 대접하는 방법도 괜찮은 방법인 것이다. 키엘리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에 놓인 음식의 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골라들었다. 소식을 하는 자신이 손을 대봐야 이 산더미들 속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다.
 키엘리니가 포크를 들어 과일과 샐러드, 몇 점의 고기조각들을 향해 깨작깨작거리고 있는 사이 야예이는 시간과 힘을 들여 천천히 이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보기에 눈살을 찌푸릴만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거칠고 야만적이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포크와 나이프를 정확하게 사용했다. 그리고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남들이 보았다면 야예이가 이 모든 것들을 전부 집어삼킬 수 있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물론 야예이가 다른 이들에 비해 상당한 대식가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야예이는 싸갈 수 있는 것들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것들만을 집중공략하고 있는 중이었다.
 야예이는 적당한 양만을 먹고 나머지는 남겼다. 그는 이노에게 남은 음식들을 싸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노는 흔쾌히 승낙했다. 아무리 그라도 저렇게 많은 양을 다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이노가 음식물들을 포장해주는 사이 야예이는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합시다.”
 
 키엘리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노는 포장한 식사들 뿐 아니라 도시락까지 준비해서 야예이와 키엘리니에게 쥐어주었다. 당연하다는 듯 받아드는 키엘리니에 반해 야예이는 고맙다고 거듭 인사했다. 아무래도 별일 아닌 것으로 오히려 이노에게 폐를 끼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야예이와 키엘리니는 여행자들을 가호한다는 시루트의 축언을 말하는 이노의 배웅을 받으며 여관을 뒤로 했다. 그리고 에버런스 게이트의 서문을 빠져나왔다. 들어올 때와는 같이 나갈 때도 경비병들의 검문이 있었다. 하지만 패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태도는 한결 정중했다. 확실히 이렇게 치안이 좋은 곳에서야 하프 오크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닐 테니 인상착의 정도만 전파되는 것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키엘리니는 에버런스 게이트를 넘어 한참 길을 따라 걸어간 후에도 혼자서 뭔가를 생각 중인 듯 고개를 숙이고 들지 않았다. 야예이는 언제나처럼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다. 다만 그 발걸음은 키엘리니의 보폭에 맞추고 있었다.
 침묵이 계속 되었다.
 어차피 야예이로도 별 대화가 없는 쪽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이 상황을 반기고 있었다. 그로서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을... 그것도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워낙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던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야예이로서는 사람보다는 동물들을 상대하는 일이 훨씬 편했다. 오히려 말할 필요 없이 이렇게 침묵 속에서 여행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까지 헸던 야예이는 지금 상황을 달갑게 여기진 않았지만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야예이.”

 야예이가 침묵에 만족할 때 키엘리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야예이는 시선을 돌려 키엘리니를 바라보았다.

 “어제 어째서 그들 셋을 놓아줬던 것인가요? 충분히 그들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었을 텐데요.”

 뜻밖의 질문이라고 야예이는 생각했다. 그녀가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곤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이렇게 물어올 거라고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야예이는 어떤 대답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이지 약간 뜸을 들이다가 결국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기에 솔직히 대답했다.

 “그 이상 뭔가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뭔가를 할 필요가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물론 제가 그들의 무례에 분노해서 이미 제압한 그들에게 개인적인 폭력을 가하거나 경비대에 넣어 하루 종일 벽돌과 창살 사이를 보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 피해를 입지 않았고 그들과의 관계에 더 이상 흠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하지만 그들이 당신의 행동에 감명 받아 뉘우쳤을 거라고 생각할 순 없군요.”

 키엘리니의 말에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의 행동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어요. 무책임하다고 생가하지 않으신가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은 한 번 실패함으로서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요. 무엇보다 뒷세계에 사는 자들은 같은 대상에게 연거푸 실패하는 자들을 봐줄 만큼 관대하지도 않습니다. 아마 그들의 자긍심만큼 입지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겠지요. 그런 자들을 감옥에 보낼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야예이가 뒷세계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에크로반이 알려준 지식이었고 아마도 거기서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크로반은 모든 일에 결코 과장하는 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대체로 그런 자들은 허세와 깡, 위협으로 먹고 살 것임이 분명했다. 야예이는 그들을 힘을 꺾어 눌렀고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게 놓아주기도 했다. 야예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같은 부류들에게 얕보였다고 생각될 것이고 그들이 내는 허세와 위협이 만들어내는 영향력은 한풀 꺽일 것이었다. 실제로 그 3명의 힘이 얼마나 되든 말이다.

 “당신은 그 셋을 당신의 기준으로 평가했군요. 당신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받아야할 벌을 당신의 평가에 의해 감형 한 것이로군요. 하지만 세상에는 옳고 그르다는 사실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해요. 신께서 그것을 판단하시죠. 인간이 가진 법률들은 모두 네달렉스께서 지상에 내리신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당신의 판단대로 마음대로 피해가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당신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고 믿나요?”

 키엘리니의 말은 야예이를 당혹스럽게 했다. 자신이 한 일이 키엘리니에게 그렇게 큰 의미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 못했던 것이다. 그는 단지 용서할 수 있었기에 용서했을 뿐이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키엘리니가 아까부터 곧장 생각하고 있던 주제가 바로 이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야예이는 잠시 생각했다 입을 열었다.

 “평가받을 수 있다면 평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설혹 살인이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살인죄를 살인죄로서 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왜 그래야 했는지 어째서 그렇게 되어야 했는지 알고 나서야 벌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말한 야예이에게 키엘리니는 신에 대한 불경함을 외치며 그녀의 홀리어벤져를 뽑거나 하진 않았다.

 “군인이 전쟁에서 다른 이들을 살육한다고 해서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는 것처럼 말인가요?”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은 달라요. 전쟁은 공평하죠. 그들은 전쟁 중에 살인을 자행하지만 동시에 언제라도 그들 역시 죽을 수가 있어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목숨에는 목숨. 전쟁의 존재자체가 그들에 형벌이며 동시에 공정한 법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선 평가가 없어요. 오로지 죽고 죽일 뿐이죠. 당신과는 달라요. 당신은 평가함으로서 죄에 대한 벌을 정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당신의 하는 말은 선의의 거짓말은 선의로 한 것이기에 거짓말을 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거짓말은 역시 거짓말이죠. 거짓말을 한 자는 그 대상에게서 진실을 알 권리를 빼앗은 것과도 같아요. 그가 신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이지요. 과연 그것을 옳다고 할 수 있는 일일까요?”

 야예이는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그가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아니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지금와서 생각해본다고 해도 단시간에 키엘리니가 납득할만한 대답을 하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예이는 지금 할 수 있는 대답을 하기로 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범의 수호자여.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은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하더라도 저는 같은 일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용서하는 일은 그들의 벌일 죄의 피해자가 되었어야 했을 저의 권리이니 말입니다.”

 야예이의 말에 키엘리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번에도 역시 불경을 논하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다시 생각 속으로 빠져 들어갔고 그에 대해 야예이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야예이는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몰두하는 키엘리니를 보고 시선을 정면으로 옮기다가 문득 등 뒤로 마차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것을 느꼈다. 돌아보자 한 대의 이두 마차가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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