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예상했던 결과랄까? 이번 경기 역시 쉽게 상대를 눌러버린 실린을 맞이하며 아젠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에도 수고하셨습니다~"

 다가오는 실린을 보며 과장된 환영의 인사를 보내는 쥐슬에게 실린은 가볍게 웃어보이며 답한 뒤 자리에 앉았다.

 "이대로 가면 우승도 할 수 있겠지?"

 "글쎄...."

 아젠의 말에 실린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 실린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아젠은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뭐, 너무 마음을 놓으면 안될테니까요."

 그렇게 앉아있는 실린에게 물잔을 건네주며 한 남자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젠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꾸했다.

 "피. 누가 공무원 아니랄까봐.... 완전 교과서네요."

 "그, 그런가요?"

 아젠의 말에 실린의 옆자리에 앉던 남자, 레이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곧 아젠의 말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얼굴을 펴며 말을 이었다.

 "실린이 자주 하는 말이에요."

 ".... 그럼 이제부터 실린은 공략본."

 "뭐야, 그건..."

 레이지의 어깨를 툭 하고 치며 실린은 아젠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짐짓 무서워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몸을 움츠린 아젠은 곧 얼굴을 풀고 소리내어 웃었고, 결국 실린 역시 이기지 못한 듯 쓴 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이제 4강이지? 부럽다. 결승전이라도 갔으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8강까지는 올라갔었잖아요."

 "그래도...."

 쥐슬은 장난을 치기 시작하는 둘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축 가라앉아 버리는 쥐슬의 모습을 보며 당황한 듯 레이지가 황급히 말을 꺼냈지만 쥐슬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쉴 뿐이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히이로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젠에게 작게 속삭였다.

 ".... 아무리 봐도 페이스에 말려들기 딱 좋은 타입이지?"

 "쥐슬이 저러는거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한데... 역시 말해도 소용 없을 것 같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레이지의 모습을 보며 히이로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처음 느꼈던 인상 그대로랄까... 어쩐지 순해보이는 인상 그대로 였다는 생각을 하며 히이로는 쥐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마 남이 곤란해 하는 것은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리라. 쥐슬이 진짜 가라앉은 것인지 아닌지 같은 것은 신경도 안쓰고 거기에 휘말리는 타입. 구해주지 않으면 아마도 땀 뻘뻘 흘리며 혼자서 속 썩을 만한....

 "어차피 거기서 이겨봤자 다음 경기에서 실린한테 박살 났을거다."

 그렇게 말하며 히이로는 쥐슬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그, 그랬나?"

 그제서야 웅얼대는 것을 멈춘 쥐슬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진표를 보면 쥐슬과 히이로 팀을 이겼던 사람들이 바로 실린 팀의 다음 상대였으니까.

 "그래. 그러니 쓸데없이 궁시렁대는 것은 그만 두고 응원할 준비나 해."
 
 레이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야 레이지가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고, 히이로는 손을 내저었다.

 ".... 힘들겠어? 저런 성격이면?"

 "음? 나름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 아, 네...."

 피식 하고 웃으며 대꾸하는 실린에게 히이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하긴, 무슨 말을 해도 통할리가 없겠지... 그러고보니 어째 이거랑 비슷한 대화가 오갔던 적이 있던 것 같기도 한데... 그 때 난 뭐라고 답했더라?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을 정리한다. 뭐, 아마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히이로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뭐, 뭐, 뭐, 뭐야! 저건!"

 화면을 바라보던 아젠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게임 센터의 안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젠을 탓하거나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게임 센터 내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 속은 아젠의 비명과 비슷했을 테니까.



 - 공주님이 밀린다.



 조금 전 까지의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런 의외의 장면을 보면서도 이 정도로 동요하지는 않았었다. 이 것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얼마 안가 다시 공주님이 밀어붙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을 것이고.

 그래, 딱히 실린이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초반부에는 거의 대등한 수준의 경기였으니까. 아니, 오히려 실린 쪽이 승기를 잡고 있는 것 처럼 보였었지.

 하지만 그 분위기가 바뀐 것은 실린의 페어였던 레이지의 기체가 격추된 이후부터였다.

 앞에서 상대가 다가오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며 동시에 공격을 퍼붓는 실린, 그리고 뒤에서 쉴새 없이 원호 사격을 해대는 레이지. 정석이라면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조합이었다.

 그런 둘의 공격을 피해내며 간간히 공격을 하던 - 하지만 번번히 실린에게 막히던 - 상대는 전법을 바꾼 것인지 그대로 레이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하지 못할 공격은 아니다. 게다가 이대로라면 오히려 실린에게 뒤를 잡힌다. 잘 싸웠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다. 게임 센터 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격이 바로 흐름을 바꾸어 버렸다.



 - 레이지의 기체가 격추당했다.



 실린의 공격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며 상대는 집요하게 레이지만을 노렸다. 레이지도 한동안은 상대의 공격을 잘 피해내며 반격을 날렸지만 그 것도 한계가 있었다. 끈질기게 레이지만을 공격한 둘은 결국 레이지의 기체를 파괴하는데 성공했던 것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둘의 기체가 만신창이가 되긴 했지만.

 하지만 그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세가 단번에 뒤집힌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씩 실린이 밀리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미묘하지만 조금씩 줄어드는 실린의 게이지가 그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동시에 상대의 게이지 역시 깎여나가고 있었지만 실린에 비해서는 느린 수준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실린의 승리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과 같은 속도로 소모전이 계속 된다면, 결정타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실린이 결국 이길테니까.



 - 하지만 그 것이 남아있었다.



 그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이었다.

 아젠이 비명을 지른 것도 이 때였고, 실린 역시 당황해서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저, 저거 실존하는 기술 이었어?"

 ".... 실존은 했겠지. 단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뿐."

 아젠의 말에 답하는 히이로의 목소리 역시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쥐슬을 주먹을 세게 쥔 채로 화면을 강하게 노려볼 뿐이었다.

 ED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 상당수 있었다. 공개되지 않은 특별한 기체, 무기, 특수 업그레이드, 기술 등.... 바로 그 중 하나가 실린을 상대로 펼쳐진 것이었다.

 오직 홈페이지에 동영상을 통한 소개만이 있을 뿐이었던 기술. 기체 자체의 성능 만으로는 High Grade 수준이었지만 이 기술 하나로 기체를 Expert Grade 등급까지 올려놓은,

 3초의 커맨드 입력 시간 동안 총 24개의 커맨드를 입력해야 한다. 자세한 커맨드는 미공개.

 전국 대회에서 조차 볼 수 없다. 인터넷을 비롯한 그 어디서도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무식한 수준의 ED 계기판을 생각하면 시도해 보려는 사람의 의지조차 박살내 버린다. 그런 말도 안되는 설정의 기술이 바로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는 기술. 오리지널 카테고리에서 최상위 급에 랭크되어 있는 [헥시드 캐논]과 맞먹는 기술이라고 알려져 있는



서전트 폴그람의 [아뢰아식] 이었다.



 그리고 그 아뢰아식을 눈 앞의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야.... 저 사람은?"

아젠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화면에는 실린의 패배를 알리는 글씨가 커다랗게 떠오르고 있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28 패스파인더18(수) [1] azelight 2008.12.05 454
1127 패스파인더17(수) [3] azelight 2008.12.04 589
1126 이윤걸 프롤로그 [1] 愛一李安 2008.11.24 624
1125 머리끈 [2] 카와이 루나링 2008.11.24 636
1124 체동 [1] pe脫 2008.11.20 736
1123 패스파인더16 [1] azelight 2008.11.19 461
1122 패스파인더15 [1] azelight 2008.11.18 427
1121 패스파인더14 [1] azelight 2008.11.17 434
1120 패스파인더13 [1] azelight 2008.11.16 431
1119 패스파인더12 [1] azelight 2008.11.14 582
1118 패스파인더11 [2] azelight 2008.11.13 514
1117 패스파인더 10 [1] azelight 2008.11.12 344
1116 패스파인더9 [1] azelight 2008.11.10 475
1115 패스파인더8 [1] azelight 2008.11.09 559
1114 카니발 헤붸흐, 크로스오버 데스. [1] Lunate_S 2008.11.05 378
» Endless Dream - 끝나지 않는 꿈 - 06화 [5] 카와이 루나링 2008.11.04 518
1112 바람의 꿈 광풍의 날개 5/5 [1] G.p 2008.11.01 349
1111 바람의 꿈 광풍의 날개 4/5 [2] G.p 2008.10.30 436
1110 바람의 꿈 광풍의 날개 3/5 [1] G.p 2008.10.29 307
1109 패스파인더7 [1] azelight 2008.10.29 386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