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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파수꾼의 밤

2010.10.27 22:58

azelight 조회 수:665

그가 탈출하자마자 나는 그 사실을 즉시 알아챘다. 족쇄가 풀려나는 감각이 내 전두엽을 따라 경추를 타고 찌르르하고 흘러내렸고, 나는 한 두 번이 아닌 이번 사태를 조용히 관망자에 가까운 태도로 받아 들였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티오렐.

 

나는 즉시 아바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뛰어난 파수꾼으로서 우리들 중에서도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였다. 그러나 그가 티오렐의 상대가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 아니올시다.

 

무슨 일이지?”

 

내가 연락하자 즉각 아바인이 반응 해왔다. 성실한 그는 언제라도 이상 상태에 대응하기 위해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가장 강력한 감옥인 꿈의 족쇄에서 이상사태란 결코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 것만 그의 성실함과 집중력은 칭찬해줄 만했다.

 

탈출이야.”

 

나는 한 호흡을 쉬고 말을 이었다.

 

티오렐이 막 족쇄를 파괴했네.”

 

내 말에 그는 몇초간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알겠네.”

 

짧은 대답과 함께 그와의 통신은 끊어졌다. 그는 유능하니 내가 자신에게 무슨 역할을 맡기려는지 알았을 것이다.

 

노련하고 강력한 티오렐에게 집중력이 강하고 끈기 있는 아바인으로 추적을 시킨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신중하지 못한 티오렐은 추적을 떨치기 위해 싸움을 걸 것이고(아반인을 능히 쓰러뜨릴 자신이 있을 것이다.) 그 행동은 그의 발을 묶는 짓이 될 것이다!

 

아바인은 그 사실을 이해했고 즉시 자신의 자리를 떠났다.

 

반대로 나는 이번엔 티오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를 정신적으로 흔들기 위해서였기도 했지만 오랜 친우에게 인사 정도는 건네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 티오렐. 잘 잤나?”

 

네 놈. . .”

 

끊어서 말하는 것은 분노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안정하기 때문일까?

 

그래, 나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나? 이제 그만 고집을 꺾지 그래.”

 

실제로 그래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미 몇 번이고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 그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왔다. 나로서는 그가 자신의 편애적인 의지를 관철하는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의지를 존중했다. 물론 존중이 곧 허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쉽게도.”

 

좋아. 그럼 도망가 보게. 이미 아바인이 출동했으니 서둘러야 할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는 연락을 끊었다. 나는 양 손가락을 깍지 끼고 편안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여전히 부주의하군. 내 염파를 받지 말았어야 했어, 티오렐.”

 

그는 자신이 이미 발각됐다고 생각한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이번 티오렐의 탈출은 여태까지와는 달리 치밀하고 계획적이었고 은밀한 곳이 있었다. 말하자면 그도 학습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로서도 어디까지나 막연한 위치를 산정할 수 있었을 뿐이었고, 그 범위는 상당했다. 만약 그가 정신 네트워크를 통한 연락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정확한 위치를 판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지레짐작이 내 연락을 받도록 한 것은 아닐까? 아니라면 그가 가진 진취적이며 호전적인 기질인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싸움을 유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건 만약 다음번에는 좀 더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행동해주기 바란다. 아니면 이미 충분히 안전한 위치에 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가능성이 없진 않다.

 

그렇다면 지원이 필요하겠군.

 

결정을 내린 나는 일단 아바인에게 그의 위치를 전송한 후 곧바로 파수꾼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셀릭, 데라시, 피노. 아바인을 쫓아서 추적을 도와줘.”

 

대답은 없었지만 그들이 자리를 떠나는 기척이 느껴져 왔다. 이제 내가 준비할 차례였다. 아무리 티오랠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막 해방된 상태에서 4명이나 되는 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한 번 도망칠 수 있다 해도 그들 넷은 티오렐이 가진 힘을 완전히 빼버릴 것이다.

 

나는 내 담당인 다른 감옥들을 점검하고 하위 파수꾼들에게 일단 경계령을 내렸다. 그리고 티오랠이 다시 잡혀 들어 왔을 때를 위해 새로운 감옥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그를 구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별로 없었다. 가정이라는 달콤한 꿈은 그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럼 별 수 없지. 지금까진 우아하게 정신적 영역을 점유한 형태를 고수해왔지만 이제는 물리적인 요소에 호소할 필요가 있었다.

 

미안하군. 티오렐. 하지만 이건 자네가 자초한 거야.”

 

나는 한 때 우정을 나눴던 친구에게 복잡한 감정을 담은 단어들을 중얼중얼 내뱉었다. 엘던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감옥을 제작하기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무슨 일이지? 탈출에 관해서라면 이미 파수꾼 넷을 보냈어.”

 

나는 조금 짜증을 내면서 대답했다. 이제 와서 연락을 보내오기엔 너무 시간이 지나지 않았나?

 

하지만 엘던은 부정했다.

 

그 일에 대한 것이 아니네. 심의회에서 자네의 적합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네.”

 

? ?”

 

안 그래도 구겨진 얼굴이 더 구겨졌다. 지금 이 상황에 그딴 걸 따져야겠나? 내가 지금껏 그렇게 충성심을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성가시다는 점이 문제였다.

 

내가 아바인의 추적을 알려줬다는 것이 문젠가?”

 

자네와 티오랠의 관계를 봐선 의심스러운 상황이 나오기 쉽지 않겠나. 적어도 그는 자네의 친우였네. 우리가 이 별을 발견하기 전까지.”

 

엘던의 말대로 분명히 우리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우리가 이 별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생존하던 원시생물들이 언젠가 우리와 대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를 때가지 보존하기로 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우리는 여러 가지 규제를 스스로 정했고 어디까지나 관찰로 개입을 한정하며 몇 가지의 예외조항을 두었다. 그 몇 가지 예외조항이란 우리들이 어쩔 수 없기 이 행성에 개입하게 되는 순간을 의미하며 그 대표적인 예는 혹여 운석 같은 거대한 재앙에 의해 이 행성의 생명이 멸절하게 되는 상황 따위였다. 그러나 그런 사태는 거의 일어난 일이 없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 역할은 관찰로 한정되었다.

 

수만 시간이 흐르고 생물들이 진화하고 두 다리로 걸으며 도구를 사용하는 종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잠시 회의를 가졌다. 적어도 그들 사이에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생겨났음을 인정했지만 다들 그들이 우리와 대면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동의 후에도 우리의 관찰은 계속되었지만 관찰 대상은 이 도구를 사용하게 된 원시 인류에 집중되었다. 그들의 발전 과정은 다양한 관점에서 흥미로운 사고점을 제공해주었음과 동시에 우리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지를 넘겨주곤 했다.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어떻게 여겼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나 개인으로선 별생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원시 인류가 우리와 대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 때는 아직 까마득하게 먼 미래였고 이 시점까진 관찰 대상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 중 티오렐은 달랐다.

 

처음엔 모두가 이 원시 인류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몰랐지만, 티오렐은 확실히 우리들 이상으로 원시인류에게 강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때때로 혼자서 몰입하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보기도 했으니.

 

생각하건데 인류가 봤을 때 그는 은인일까 아니면 원수일까?

 

인간에게 문명의 불을 지피고 아직 원시적인 그들에게 불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그 티오렐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알려진 직후 그는 규칙을 위반한 죄로 근신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거부했고 자신이 인류를 선도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당연하게도 그 주장은 가차 없이 거부당했다. 현 인류의 문명을 선도해서 어쩌겠다는 건가? 좋은 선생이 있다면 반드시 학생이 갱생하거나 옳은 길로 가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보장은 픽션에서나 나오는 일이지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물며 개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를 선도하려 한다면!

 

안타깝게도 자신의 제안을 거부당한 그는 저항을 시도한 결과 봉인처치를 당하게 되었다. 물론 도망친 그를 붙잡아 봉인한 것이 바로 나였다.

 

녀석이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쉽게도 나는 녀석의 주장엔 찬동하지 않아. 그건 편애지. 난 공정한 것을 좋아해. 거기다 지금 미성숙한 인격으로 고도의 문명을 손에 넣은 인류는 편익을 위해 자신들의 별을 파괴하고 자신들조차 파괴하고 있어.”

 

그 말이 곧 네 결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야.”

 

녀석을 잡아왔던 것은 심의회가 아니고 나야.”

 

하지만 놈에 대해 동정심이 없다고 할 수 있나?”

 

할 수 없군.”

 

엘던의 말에 나는 씁쓸히 대답했다. 친구, 자네는 항상 골칫덩이로군. 심의회에선 티오렐에 대해 민감히 굴기 때문에 잘하면 내가 그를 가두는 임무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가 설계한 감옥을 이미 몇 번이나 탈출했기 때문에 그것을 트집 잡으면 정말 할 말이 없다. 내가 일부러 티오렐이 풀려날 수 있는 감옥을 설계했다고 주장하면? 진실을 아는 것은 오직 나와 티오렐 뿐이니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좋네. 나도 자네가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한다곤 생각하지 않네. 우리가 가진 오만함이 일으킨 결과를 이미 보았지 않나?”

 

물론이네.”

 

엘던의 말에 그렇데 대답하며 나는 여전히 그가 나를 의심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겐 딱히 의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고 징징거릴 마음도 없었다.

 

의심하려면 하게. 하여튼 나는 티오렐 잡아넣을 걸세. 이미 지금쯤이면 그 4명이 그를 몰아넣었을 거네.”

 

고작 티오랠 혼자서 그 네 명을 능가할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아바인으로 추적시키고 지친 그를 함정으로 잡으려고 했지만. 혹시나 그가 자신에게 유리한 공간을 선점한 상태로 농성전을 할 거라면 차라리 파수꾼 세 명을 더 보내는 쪽이 나을 거라는 내 판단은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두번째 경우로 심증을 굳히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 아바인이나 다른 파수꾼들은 한 지점에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분명 곧.

 

왜 그러지?”

 

내가 인상을 쓰자 그 기색을 감지했는지 엘던이 곧장 질문해 왔다.

 

내가 직접 가봐야 하겠어. 아바인이 당했군, 구조 신호야.”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나 엘던이 소리치며 말려왔다.

 

잠깐! 기다려. 이쪽에서 가겠어!”

 

그러면 너무 늦어. 일단 좌표는 보내주지.”

 

나는 고개를 젓고는 좌표를 송신하고 이동을 시작했다.

 

육체에 활력을 끌어 올린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서류철 넘치는 사무적인 공간은 순식간에 어두운 허공으로 변했고 작은 별빛이 보이는 장소가 되었고 이어 허공이 되더니 도시의 거리를 지나 숲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나는 쓰러진 아바인과 그를 치료하고 있는 셀릭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티오랠은?”

 

저쪽 입니다. 지금 데라시와 피노가 상대하고 있습니다.”

 

셀릭은 시선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도움이 필요하나?”

 

내 물음에 셀릭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차분한 태도는 왠지 김이 빠지게 하는 면이 있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던 건가.

 

아바인의 상태는?”

 

위급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티오랠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합니다. 마치 전성기의 그를 보는 듯하군요.”

 

그런가?”

 

역시 자신감이 있어서 내 통신을 받은 거였군.

 

예상가는 바는?”

 

모르겠습니다. 최악의 경우엔 그가 이미 각성한 상태로 우리를 속였을 가능성까지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 역으로 감옥을 이용한다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생각해놓고 설계했었는데.”

 

그가 이미 이 패턴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동의하는 의견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그는 탈옥을 했으니 역으로 이용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 몰래 안에 일종의 각성 코드를 넣어둔 것일지도 모르고. 나 또한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물리적인 영향력을 가진 감옥을 만들려고 한 것이었다.

 

그가 이미 각성하고 우리를 속인 상태에서 내부로부터 힘을 모으고 있었을 가능성.

 

그럼, 내가 가보지. 아바인을 부탁하네.”

 

셀릭이 고개를 끄덕이는 광경이 멀어지며 공터가 나타났다.

 

하늘에서 티오랠이 피노와 데라시와 싸우고 있었다.

 

그리폰을 탄 중세기사 차림의 티오랠이 손에서 번개를 내쏘면 에너지체인 데라시가 그 공격을 받아내고 피노가 반격을 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았다. 티오랠은 강력한 자기장 그물로 데라시의 공격을 원천봉쇄하고 적극적으로 피노를 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곧 피노가 격추당하면서 결판이 났다. 데라시는 자기그물에 갇혔으며 티오랠은 나를 내려다보더니 지상에 착지했다.

 

시시한 놈들을 보냈더군. 5세대인가? 아직 어린 것들이잖아.”

 

막 깨어나서 나약해졌을 네겐 과하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아무래도 내 오산이었던 것 같군. 인정하지. 경험에서 오는 과오의 소치란 제법 사람을 당황케 하는 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만 의외야. 이들을 다 죽이진 않았군. 그게 더 나았을 텐데,”

 

널 불러내기 위해서였지.”

 

투구 아래로 그가 미소 지었다는 것을 왜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날 피하지 않았나?”

 

나는 긍정했다. 처음 그 때 이후 내가 직접 그를 붙잡으려고 한 적은 없었다.

 

친구와 싸우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지.”

 

적어도 아직은 친구로군.”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나는 그에게 우정을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 어리석은 행동을 그만둬 주길 바라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친구로서 요구하겠어. 나와 함께 할 생각 없나? 네가 내 편을 들어준다면 저들이 몇몇이 덤벼 오더라도 상대할 수 있어.”

 

이번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듯이 나 또한 그를 막는 일을 그만 둘 순 없다.

 

? 우리가 저들을 이끌면. 한 백년 정도의 시간이 우리는 그들에게 낙원을 선사할 수도 있어. 고도의 문명과 기술을 전파해줄 수 있단 말이다.”

 

아직 그들은 성숙하지 못해.”

 

정신은 육체를 따라오게 되어 있어.”

 

이미, 실패했지 않나.”

 

불을 준 일을 말하는 거라면, 그건 지속적인 관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내가. 아니. 우리가 감독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티오렐은 열변했지만 나는 회의적이었다. 게다가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자네가 호소하는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겠네. 이 경우 그 부분에 관한 내 개인적인 의문은 의미가 없지. 하지만 묻겠네. 어떻게 그들을 선도할 건가? 아직 그들은 원시적일세.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로 비칠지 생각해 보았나?”

 

물론이지.”

 

티오렐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다행이 우리가 대입될 만한 신화는 지천에 널려있어. 그들을 선도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야.”

 

내가 그 것 때문에 네게 찬동할 수 없다는 거야.

 

속으로 그렇게 말한 나는 표정을 굳혔다.

 

그래서. 신세계의 신이라도 될 건가? 그런 것을 오만이라고 하지. 우리의 과오를 잊지 않았겠지.”

 

그 때와는 상황이 달라. 모든 조건에서 우월한 우리가 그들을 이끄는 거지.”

 

하지만 그 사이에 대등한 관계는 없다. 설령 모든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우리는 그들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모든 진실을 밝힐 수나 있을까?

 

똑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하지마.”

 

그런가.”

 

티오렐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정말 실망이라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너와 나는 평행선이군,”

 

조용히 티오렐이 손을 뻗자 전광이 튀어 나왔다. 나는 공간을 움직였고 그의 뒤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날개를 펼쳐 하늘로 올랐고 날카롭게 변모한 다리로 나를 붙잡으려 했다. 그에 나는 물로 변해 대지로 숨어들었고 떨어진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망만 다닐 건가!”

 

티오렐은 그리폰을 탄 상태에서 랜스를 들고 달려들었다. 랜스 돌진을 피하지 않고 나는 그대로 승부를 걸었다. 나 또한 랜스를 든 것이다.

 

순식간에 우리는 서로 스쳐 지나갔고 동시에 티오렐이 그리폰으로부터 떨어졌다.

 

티오렐은 부상을 입었으면서도 재빨리 천둥매로 변화해 뇌운을 흩뿌리며 날아올랐다. 하지만 도망치게 할 마음이 없었던 나는 재빠르게 랜스를 던졌고, 그는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

 

박차를 차자 그리폰이 빠르게 티오렐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내가 쫒자 티오렐은 반전하면서 입으로 천둥을 부르고 날개로 뇌전을 쏘아 보냈다. 물론 나는 양손을 들어 거대한 방패를 만들어 음파의 충격과 뇌전들을 막았다. 그 순간 휩하는 바람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리폰에서 뛰어 내렸다.

 

그리폰의 비명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공중에서 와이번으로 변한 나는 천둥매가 그리폰의 옆구리를 쥐어 잡은 후 비틀어 뜯어 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폰을 반으로 찢어 버린 티오렐은 이윽고 와이번으로 변한 나를 노려봤고 천둥과 뇌전을 발사했다. 나는 날개를 퍼덕여 공격을 피한 후 입으로 불을 쏘며 강하해 독침이 달린 꼬기를 내찔렀다.

 

당연히 티오렐은 그 공격을 피했고 나는 그가 선회하는 틈을 노려 공기를 박차고 티오렐의 등 위로 뛰어 내렸다. 티오렐은 전기를 방전해 나를 떨쳐내려 했지만 나는 이미 방호복으로 몸을 감싼 후였다.

 

잘 가게, 친구.”

 

손에 라이플을 소환해 그의 등위를 쏴 갈겼다.

 

분노에 찬 비명을 지르며 티오렐은 변형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손실된 혈액만큼 체력이 손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유리하게 된 것은 자명했다. 티오렐은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번개가 되어 도망쳤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바란 일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미 엘던에게 좌표를 넘긴 상태였고 그는 파수꾼들을 이끌고 지상에 내려와 있었다.

 

아마 내게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친우였던 내게 너무나 많은 미련을 가지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 일은 또 다시 그의 목을 죄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티오렐이 몇 번이나 공격을 뿌리치고 결국 빠져나갔지만 어차피 붙잡히게 되리라. 그건 시간 문제였다. 그는 비록 어린 아이들이라지만 4명의 파수꾼들과 싸웠고 나와 싸웠으면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이제 다른 파수꾼들의 추적까지 받아야 한다.

 

. 어리석은 나의 친우여. 그대가 다시 돌아온다면 이번엔 그대가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를 만들리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완벽히 충족시키는 모르핀의 천국을.

 

소동은 끝났고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도주하는 동안 나는 그를 위한 탈출 불가능한 감옥을 새로이 제작했다.

 

얼마 후 결국 티오렐은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그의 정신은 제압당하고 쾌락과 사랑, 안정의 꿈을 주입받았다.

 

어떤 마취약보다 달콤하고 효력있는 잔인한 행복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잔인한 꿈에서 깨어난다면 가장 먼저 독에 잠식된 자신의 몸과 그가 해쳐 나가야할 독충들의 무리를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자신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가시덩굴과 시시각각 그 형태를 변화시키는 3차원 미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육체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이례적인 조치이지만 심의회는 위험한 범죄자로 티오렐의 육체를 독에 오염시키는 일에 동의함으로서 내가 만든 새로운 감옥은 그에게 사용되게 되었다.

 

언젠가 그가 다시 깨어나 하늘과 대지, 이 작은 위성에서 자신의 위세를 한껏 떨칠 수 있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은 영국적일지도 모를 장애물에 의해 무기한적으로 연기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이 원시적인 현생인류가 우리들과 동등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완전히 다른 기원을 지녔으면서 동시에 지닌 동등한 지적능력을 소유한 이질적인 종족이 동등한 입장에서 스스로 창조한 문화를 교류하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오는 것이다!

 

티오렐이 그들을 선도하고 우리의 기술을 전해 그들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이타적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어리석은 전쟁을 벌이며 자신들을 사멸시킬 수 있는 무기를 평화를 목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자들에겐 어쩌면 우리의 감독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거기의 어디에 동등이 존재 하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됨으로서 이들 원시종족들은 그들이 가진 문화적 고유성을 말살당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멸망할지도 모를 전쟁을 하게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자들로서 그들의 몇몇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리고 다시 번창할 것 분명하다고 나는 믿는다.

 

적어도 우리들 파수꾼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멸망이란 존재하지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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