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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환세동맹-사신의장0막

2011.02.17 22:53

사이네 조회 수:677

어두운 숲 속을 달리는 소년이 있었다. 나이는 많아봐야 10세 전후, 한국인의 흔한 흑발과 흑안을 가진 소년이었다.

눈가를 살짝 가린 머리카락은 땀에 의해 이마에 늘러 붙는다. 숨은 거칠어서 곧 끊어질 것 같다. 입고 있는 셔츠며 바지며 몸에 늘러 붙어 기분 나쁘다. 그러나 그런 것을 느끼기보다 더한 감각이 소년의 전신을 훑고 있다.

그것은 오감이 아닌 감성. 요약하자면 딱 한 가지 [공포] 밤의 숲 속, 나뭇잎에 가려 달빛조차 잘 들지 않는 깊은 어둠 속 낮이라면 밝은 태양 빛 아래 초록으로 물든 나뭇잎과 형형색색으로 존재를 과시할 꽃잎조차 어둠을 머금어 검게 물든 세계.

심록의 푸르름과 그 속에서 느껴질 따스한 공기도 좀 먹은 어둠 속에 끈적끈적 늘러 기분 나쁘고 불쾌하며 차가운 무언가로 변질 되었고 틈틈이 들어오는 달빛 속에 빛나는 풀잎은 파리하게 빛나며 한기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보다 더욱 두려운 것. 어둠보다 더욱 어두운 것. 인간의 생리적인 혐오감이 아니라 혼이 느낄 감성에서 오는 혐오.

 

“키에에에엑!!!”

 

공기를 찢으며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비명에 소년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그것을 바로 볼 수 없다. 잠시라도 달리는 걸 멈출 수도 주춤해서도 안 된다. 머리가 아니라 감성이 그렇게 종용했다.

소년의 뒤, 어둠이 자리 잡은 숲 속에서 수 십개의 붉은 눈동자만이 허공에 떠 있었다. 그것이 노리는 것은 오로지 소년.

그것은 빠른 속도로 소년의 뒤를 쫓았다. 마음먹는다면 더욱 빨리 움직일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마치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맹수처럼 소년의 뒤를 바짝 쫓을 뿐 더 이상 몰아넣지 않는다. 사냥감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맹수처럼...

희미하게 내리는 달빛 속에서 그것이 서서히 모습을 들어냈다. 그것은... 무엇일까? 마치 거북이 같은 둥근 등을 보면 거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열개는 될 법한 길고 가는 다리는 마치 메뚜기 같은 곤충의 다리가 기묘하게 움직이며 소년을 쫓는다. 그 등에는 역시 가늘게 늘어선 여덟 개는 팔에 제각각 달린 손. 그것을 손이라고 불러야 할까? 손가락이 다섯 개인 녀석 네 개인 녀석, 손가락은 없이 날카로운 날붙이 같은 것이 달려있는 녀석 제각각. 거기에 그 등을 타고 자리 잡은 곤충의 눈을 연상시키는 수십개의 붉은 눈.

그 존재는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 인간의 이성은 우습게 날려 버릴 것만 같았다. 실재로 이것에 쫓기는 소년의 이성은 이미 없다. 단지 도망가야겠다는 본능만으로 움직이고 있으리라.

 

“서라! 서 먹이! 서서서서서서서서서서서서서엇!!!”

 

인간의 말을 만드는 입은 괴물의 배에서 들려왔다. 그 배에 아무렇게나 돋아난 입술이 다섯 개. 이미 정상적인 생물이라고 생각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괴물에 쫓기며 소년은 무턱대고 달렸다. 이미 숨은 턱까지 차올라서 조금 더 있으면 위에 있는 내용물마저 목구멍을 넘어 올 것 같은 불쾌감.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치다 못 해서 멈춰서버릴 것 만 같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 이제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알고 있다. 이론이고 사고고 다 필요 없다. 그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본능적으로 아는 것. 멈춰서는 그 순간에 소년은 확실하게 [죽는다.]

소년은 마비 된 뇌를 움직이며 자신의 상황을 다시 확인했다. 소년의 이름은 한시유. 올해 8살인 초등학생.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산으로 여행을 나왔다. 산이라고 해도 정확히는 호수가 있는 숲 속, 맑은 호수와 차가운 계곡 푸르른 나무들 모두 소년에게는 신기했으며 기분 좋은 것들이었다.

하루는 금방 지나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곧 달이 얼굴을 내민 시간. TV며 컴퓨터며 하는 물건도 없어서 저녁이 되면 할 것도 없다. 임대 별장에서 지루함을 못 이기고 일찍 잠을 자려고 할 때 소년의 셔츠자락을 잡은 소녀가 있었다.

소년, 시유보다 1살 어린 그의 여동생 시영. 허리까지 닿은 긴 검은 머리카락과 커다란 검은 눈동자에 동글동글한 얼굴을 지닌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시영은 시유를 살짝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오빠, 큰일 났어.”

“왜 시영아? 곰인형 없다고 못 잘 나이도 아니잖아?”

“우웅, 그런 거 아냐!”

 

시영은 여섯 살 때까지 곰인형이 없이는 혼자 잠들지 못 했다. 같은 방에 시유도 함께 자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언제나 품에 곰인형을 끌어안고 자야했다. 그걸 시유가 지겹도록 놀린 탓에 이제는 곰인형 없이 잘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뭔데? 화장실 같이 가자는 거야?”

“아냐! 아냐! 그것도 아냐!”

“그럼 뭐야?”

 

시유가 그렇게 묻지 시영은 머뭇머뭇 거리며 작게 입을 열었다.

 

“...버렸어.”

“뭐?”

“잃어 버렸어. 오빠가 사준 목걸이.”

 

그 말을 듣고 시유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곧 무슨 말인 지 깨달았다. 얼마 전 시영의 생일 때 시유가 용돈을 모아서 산 목걸이 이야기리라.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은제 십자가. 큐빅이 가운데 밖힌 고딕풍의 물건이지만 학교 앞에서 파는 이상 싸구려 장신구 수준을 벗어나지 못 했지만 어린 시영이 보기에는 훌륭한 보물이었으리라.

 

“잃어버렸어? 으음, 그거 사려고 두 달이나 용돈 모았는데.”

“우우, 어떻게하지 오빠?”

“어떻게하고 뭐고 별 수 없잖아? 얼른 자자, 할 것도 없는 걸.”

“싫어! 그거 없으면 안 잘거야!”

“때 쓰지마 시영아. 으음... 그래 뭐 좋다. 언제 잃어버렸어?”

 

결국 시유가 그렇게 묻자 시영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으음, 오후에 숲에 가보기 전까지는 있었어.”

“숲? 아아 계곡에 갈 때 이야기인가. 그럼 찾기 힘들겠는데, 어디서 떨어졌는지 모르는데다가 누가 주워갔을 지도 모르는 걸.”

“싫어! 그건 내 보물이란 말이야! 우우우,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시영이 울 것처럼 중얼거리자 시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시영을 설득하려면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알았어, 울지마. 울지 말아줘. 내가 살짝 나가서 찾아 볼 게.”

“정말?! 하지만 들키면 엄마한테 혼나!”

“없으면 안 잘 거라며? 그리고 찾는 다는 보장도 없어. 숲 근처에만 살짝 다녀올 거야. 그리고 못 찾으면 내일 찾아보자 알았지?”

“응, 알았어.”

“그럼 조용히 자는 척하고 있어. 다녀 올 테니까.”

 

그렇게 시영을 설득하고 손전등을 들고 창으로 빠져 나온 시유는 숲으로 향했다. 어둠에 잠긴 호숫가 별장과 숲은 어린 이유에게 분명 무섭고 공포스러운 것이었지만 시영을 위해 꾹 참고 숲 속으로 숲 속으로 시유는 발을 옮겼다.

그러나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길을 따라 찾아본다고 해도 어둡고 넓은 숲 속에서 작은 장신구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체념하고 돌아가려고 생각한 시유의 뒤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순간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달린다. 시유는 천천히 손전등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렸다. 처음 눈에 들어 온 것은 가늘고 긴 검은 기둥 들이었다. 마치 나뭇가지처럼 긴 기둥들이 제각각의 방향에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멈췄다면 괜찮았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천천히 기둥을 따라 기둥의 위로 손전등을 움직였다. 그리고 보았다. 검은 덩어리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바닥에 제멋대로 자리 잡은 다섯 개의 입 그리고 그 위로 무슨 장난처럼 늘어선 여덟 개의 팔. 그리고 등에 자리 잡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시유는 숨을 삼키며 한 걸음 물러 났고 그 반응에 반응 하 듯이 괴물의 눈이 시유를 비추며 다섯 개의 입이 벌어졌다.

 

“내가 보이니?”

“내가 보여?”

“먹이다.”

“먹자.”

“유캬캬캬캬캬캬!!!”

 

그리고 시유는 손전등을 놓친 체, 미친 듯이 숲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저 눈앞의 괴물에게서 멀어지기 위해서...

얼마나 달렸을까? 5분? 10분? 15분? 30분? 그런 시간 개념은 이미 옛날에 잊어버렸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저것을 피해 도망치는 것 뿐. 이미 숲길을 벗어나 나무들이 울창한 깊은 숲 속까지 와버린 이상 돌아 갈 길 조차 알 수 없다. 뭐, 그 전에 등 뒤의 괴물을 어떻게든 하지 않는 이상 돌아갈 수도 없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다. 그러나 멈춰서면 정말로 죽어버린다.

 

“으앗!!”

 

머리 속이 뒤죽박죽인 와중에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던 소년은 결국 나무뿌리에 걸려 바닥을 굴렀다. 비탈진 경사를 따라 마치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처럼 굴러 커다란 나무에 등을 부딪치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 어쩌면 어딘가 부러지진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으나 시유에게 주어진 여유시간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생각할 여유를 상대편은 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것은, 그 괴물은 시유 앞에서서 시유를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마치 허공에 뜬 듯한 수십 개의 붉은 눈이 시유를 향한다.

 

“멈췄다. 멈췄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아하하, 꼴좋다. 꼴좋다.”

“우헤헤, 먹이. 먹이. 먹이. 먹이.”

“난 머리가 좋아 머리부터 뽀각하고... 키키키킥”

 

다섯 개의 입이 저마다 떠들기 시작한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시유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며 다가올 죽음을 맞이하는 것 말고는...

시유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숲 속에서 자리 잡은 공터, 머리 위로 커다란 보름달이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혐오스러운 괴물의 전신이 모습을 들어냈다.

 

“우웨에에엑!!!”

 

식도를 타고 위의 내용물이 쏟아져 나왔다. 무리하게 달려서 무리한 이유도 있겠지만 어린 소년에게 그로테스한 괴물의 모습은 혐오감을 충족시켜주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어디선가 무언가가 썩는 냄새마저 느껴졌다.

가쁜 숨 때문에 기침을 하며 숨을 고르는 소년을 향해 괴물의 팔이 움직이려 한다. 제각각 방향으로 멋대로 뻗은 여덟 개의 팔... 그 끝에 맹수의 발톱과도 같은 날카로운 손가락이 춤을 추어 내려온다.

시유는 그것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는 두렵다거나 무섭다거나하는 감정조차 잘 느끼지 못 하겠다. 마치 영화처럼 제3자가 된 것처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라본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 시유의 정신은 벌써 부숴졌으리라.

 

“우헤헤, 다진 고기로 당첨!”

“싫어! 통째로 물어뜯고 싶어!”

“아무래도 좋아, 아무래도 좋다구! 먹자 먹어!!”

 

그 와중에도 입들은 제각각 멋대로 떠든다. 괴물 자체가 어딘가 미쳐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사실도 시유의 구원이 되지는 못 한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살고 싶어!! 그러나,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떨어지는 발톱을... 죽음을 내리는 처형도구를 바라보며 시유는 눈을 감았다.

 

“거기까지다! 멈춰!”

 

새로운 목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다. 맑고 청하하며 조금 톤이 높은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시유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보았다. 괴물의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한명의 소녀의 모습을...

엉덩이까지 닿을 정도로 긴, 마치 비단과도 같은 검은 머리카락. 달빛을 받아 조금 파리하게 빛나는 흰색 피부. 마치 글라스에 채워놓은 피처럼 붉은 오른쪽 눈동자와 조금 탁하지만 지적으로 빛나는 잿빛 왼쪽 눈동자, 굳게 다문 작은 입술 시유보다 조금 작은 키의 여자아이.

검은색 블라우스와 팔에 두른 검은 스톨과 스톨을 따라 마치 흘러내린 피처럼 자리 잡은 붉은 문양, 검은 바지와 구두, 허리에 치마처럼 두른 검은색 천 역시도 흘러내린 피처럼 붉은 문양이 끝단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의 이 장소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소녀는 괴물과 어느 정도 떨어진 장소에 서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물러나라. 그렇다면 적어도 아프지 않게 죽여주지.”

 

마치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소녀의 붉은 입술은 비뚤어진 미소를 만든다. 어딘가 마치 떠도는 듯한 느낌이 들던 소녀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그것은 마치 갈아 놓은 흉기. 그 무엇도 대적할 수 없는 그런 감각.

그러나 괴물은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섯 개의 입이 일제히 소리를 높여 웃는다. 새로운 먹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정신없이 웃는다.

 

“먹이가 늘었다! 늘었어?!”

“어느 것 먼저 먹지? 어느 것 먼저 먹지?!”

“다진 고기, 생고기!”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소녀는 작게 한숨을 쉰다. 그리고는 색이 다른 양쪽 눈으로 괴물을 직시한다.

 

“어차피, 설득 따위 기대하지도 않았어.”

 

촤악!!

 

한 순간 달빛을 받아 섬광이 번득였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괴물의 뒤에 서 있던 소녀는 어느 세인가 시유 앞에서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공기를 찢는 비명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괴물의 다섯 개의 입이 각기 비명을 지른다. 자세히 보니 괴물의 몸이 기울어져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각각 좌우에 자리 잡은 열 개의 다리 중 다섯이 바닥에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다는 걸.

그리고 괴물의 다리가 있던 자리에서 마치 폐유처럼 검은 액체가 꿀렁꿀렁하고 쏟아져 나왔다. 심장박동에 맞춰서 피를 뿜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괴물도 생물이긴 한 것일까?

그러나 그 사실 보다 시유를 놀라게 한 것은 소녀였다. 소녀의 오른손에 들린 물건. 그것은 ‘낫’이었다. 아니 저걸 낫이라 불러도 좋은 건지 모르겠다. 그것은 추수에 쓸법한 그런 농기구와 너무나 차이 나는 이형(異形)의 물건이었다. 어른 한명쯤은 너끈히 베어버릴 만큼 커다란 곡선을 그리는 날. 그리고 날과 반대편에 자리 잡은 커다란 도끼는 마치 서양 중세에나 쓸법한 배틀엑스를 연상시킨다.

낫과 도끼 사이에 자리 잡은 부분에는 양각 된 역십자가와 찌르기 좋아 보이는 창날이 서있다. 거기에 그 낫을 들고 있는 소녀의 키를 훌쩍 넘는 긴 자루와 또 그 끝에 자리 잡은 창날. 낫이기 이전에 여러 가지 병기의 집합 같은 그 이형의 물건을 대체 어디서 꺼냈을까?

시유는 순수하게 어린이다운 의문을 담았지만 척 보기에도 무거운 물건을 한손에 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도 놀라웠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소녀의 그 이형병기에 의해 괴물은 한쪽 다리를 모두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는 사실이었다.

 

“재난이었네?”

 

소녀는 시유를 바라보며 그렇게 묻는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시유를 보지는 않는다. 응시하는 것은 오로지 괴물. 괴물의 입에서 비명에 섞여 제각각 욕설과 폭언이 난무했다.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틀어막아도 그 소리를 막을 수 없으리라.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꽥꽥 소리지르지마. 지금 바로 조각조각 발라주지.”

“계집이!!”

 

소리가 울려 퍼지며 여덟 개의 팔이 소녀의 머리 위로 일제히 떨어져 내린다. 피할 장소 같은 건 없다. 죽는다, 시유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소녀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망에 소녀의 작은 등을 쫓는다.

그리고 일제히 찔러 들어 온 가는 팔과 발톱들은 소녀를 잡을 수 없었다. 소녀의 모습은 이미...

밝은 보름달을 등지며 허공에 떠 있었다. 마치 거짓말처럼 4~5m를 훌쩍 뛰어올라 괴물의 사정거리를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소녀는 낫을 양손에 거머쥐고 떨어지는 꽃잎처럼 붉은 미소와 함께 괴물을 덮친다.

 

“느려 터졌어!!”

 

서걱.

 

짧지만 소름이 돋는 한기가 서린 소리. 무언가 잘려나가는 그 소리와 함께 다시 괴물의 비명이 들렸다. 소녀는 땅으로 내려서며 괴물의 팔을 3개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대로 휘두른 낫의 날 반대편에 달린 도끼날을 휘둘러 다리 2개를 더 잘라낸다. 그리고 그 뒤로 그대로 괴물의 등으로 뛰어 올라 날카로운 창날을 괴물의 등에 꽂아 넣는다.

 

“크아아악!!”

“아파, 아파, 아파!! 그만해!”

“우헤헤헤, 아파. 아프구나 아프다구!!”

“싫어! 살려줘! 살려줘!”

 

괴물의 입은 제각각 떠든다. 시유는 생각했다. 미쳤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지금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 모두 꿈같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모든 게 현실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광기에 얼룩 진 괴물, 그 괴물을 단시간에 몰아붙인 소녀. 마치 만화영화나 만화책에서의 범주를 벗어났다. 눈으로 보는 것 만이라면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소리로 듣는 거라면 견딜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농밀한 향기, 썩은 냄세. 피부를 두드리는 비명과 불쾌감. 그 모든 것은 어린 시유가 전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큰 자극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유의 여건은 괴물도 소녀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소녀는 창을 뽑아들고 마치 잡초라도 걷어 내듯이 등에 달린 괴물의 남은 팔을 잘라 냈다. 그리고 등에서 내려와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달려 괴물의 다리를 모두 끊어낸다.

 

“자아, 이걸로 몸뚱이만 남았구나. 기분은?”

 

그러나 괴물은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대답하기 힘들겠지. 다섯 개의 입이 달린 배는 땅에 처박혀 있으니까.

소녀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느긋하게 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며 연주하듯 춤을 추듯 소녀는 낫을 움직인다. 중간중간 베이고 썰리고 찢겨지는 불협화음이 바람의 선율을 방해하지만 소녀는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연주하는 소리를 따라 춤을 춘다. 그리고 그것이 멈췄을 때...

피의 웅덩이에 선 검은 소녀가 서있을 뿐이었다. 괴물의 시체는 검은 연기처럼 공기 중에 흩어져 나간다.

 

“세(世)의 이치를 벗어난 자의 끝은 언제나 정해져 있는 거지.”

 

소녀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낫을 놓아버리자 낫은 연기처럼 대기 속에 흩어진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소녀는 낫을 놓아버리고는 손 벽을 가볍게 [탁!]하고 치자 그 사이에 조금 두꺼운 책이 한권이 나타났다. 검은색의 두꺼운 하드커버에 속은 양피지처럼 갈색으로 물든 책, 제목은 보이지 않는 그 책을 뒤적이며 소녀는 시유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이 소년. 이름은?”

“에? 나?”

“그래, 소년. 이름은?”

“난... 한시유야. 그...그러는 넌 누구야?! 저 괴물은 또 뭐고?!”

 

당황하며 시유가 묻자 소녀는 책을 탁하고 덮어버린다. 그 순간 책 역시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마치 무슨 마술 같다.

 

“역시, 봐서는 안 될 걸 엿보고만 일반인이구나.”

“무슨 소리야 그게?!”

“그거지. 봐서는 안 될 것. 볼 수 없는 것. 정상과 비정상. 원래 볼 수도 봐서도 안 될 것을 멋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있거든. 네 경우가 재수 없게 그런 경우지.”

“그러니까 그게 대체?!”“자세히 알 필요는 없어. 그보다 설 수 있어? 여기서 넌 죽을 수 없고 죽어서도 안 돼. 네 수명은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까. 도와줄게. 길 잃었잖아?”

 

소녀는 담담하게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는다. 조금 무서웠다. 그런 괴물을 몇 분 만에 죽여 버린 소녀의 존재가. 무언가 끈적끈적한 검고 어두운 것이 온 몸을 기어 다니는 느낌이다. 소녀는 그런 시유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 돌아선다.

 

“따라와, 죽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만 말하고 소녀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시유는 소녀가 무서웠다. 하지만 홀로 밤중에 숲 속에 버려지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다시 그런 괴물을 만난다면 이번에야 말로 죽을 지도 모른다.

시유는 지친 몸을 움직여 천천히 일어섰다. 긴장이 풀리고 나니 여기저기 아프다. 특히 다리가 아팠지만 이대로 있다가 소녀를 놓쳐버리면 안 된다.

침묵 속에서 시유는 소녀를 따랐다. 사박사박하고 풀을 밟는 소리와 작은 숨소리만이 전부인 고요 속이지만 이상하게 무섭거나 두렵지 않다.

 

“넌... 누구야?”

“나? 글쎄. 아무도 아니다라고 하면 정답일까?”

“날 왜 도와 준거야?”

“의무니까?”

“아까 그 괴물은 대체 뭐야?”

“괴물, 설마 야생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마치 장난 같은 대화다. 소녀는 시유에게 진지하게 답해주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진지하게 답해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넌, 본래라면 볼 수 없는 것을 봐버렸어. 그 괴물들은 말이지. 그런 인간을 죽이고 먹지. 그게 녀석들의 양분이거든.”

“그런 이야기 들어 본 적 없어! 저런 괴물이 있다는 말도 못 들어봤고 TV나 책에서도!!”

“그러니까.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했잖아? 볼 수 없다면 존재하지도 않아. 존재하지 않는다면 위해도 끼치지 않지. 저것의 양분이 되는 인간은 말이지. 정말 운이 나쁜 경우니까.”

 

담담하게 진실만을 전하는 선지자처럼 소녀는 그렇게 말한다. 반박할 말도 뭣 도 없다. 실재로 죽을 뻔 했으니까 알 수 있다. 다만 소년은 조금 운이 좋은 축인 모양이다.

 

“내가 널 도운 건 순전히 네 운이야. 거기에 아직 네 수명은 다하지 않아서 여기서는 죽어서도 안 되거든.”

“수명?”

“그래, 인간이라면 아니 존재하는 것이라면 생(生)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사(死) 끝. 네 끝은 여기서 괴물에게 죽는 게 아니었다는 이야기지.”

 

무슨 이야기인 지 솔직히 시유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자기가 여기서 죽을 수 없는 팔자라고만 이해했다.

 

“그럼 넌 대체 누구야?”

“아까도 말했지만 아무도 아니다가 아마도 정답이겠지.”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우뚝 선다. 눈 앞 숲길에서 밝은 빛의 무리가 움직이며 시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아무래도 부모님이 찾으러 나온 것일까?

 

“내 역할은 여기까지. 저기까지만 걸어가면 돼. 할 수 있지?”

“그러니까 난 네가 누군 지 몰라! 적어도 감사 인사를 하려면 네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잖아?!”

“훗, 고지식한 꼬마네.”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시유에게 다가왔다. 새하얀 손바닥으로 시유의 눈을 덮는다. 그리고 마치 자장가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네 눈. 지금의 네게는 부담이겠지. 그러니까 닫아 줄 게, 언젠가 네가 필요하게 될 날. 언젠가 네가 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날이 되면 볼 수 있도록.”

“무슨 소리야, 그게?”

“지금은 알 필요 없어. 언젠가는 스스로 알게 될 테니까.”

 

소녀의 손바닥의 따스함이 점점 공기 중에 흩어져간다. 점점 그 존재감을 잃어간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조금씩 조금씩 상실해 나간다.

 

“넌 대체... 누구야?”

“난, 그래. 시작과 끝에서...”

 

나직하게 속삭인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녀의 목소리가 공기 속으로 녹아든다. 시유는 소녀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귀를 기울인다.

 

“끝을 알리는 자...”

“시작과 끝에서 끝을 알리는 자...?”

“아참참, 이건 네 분실물이다. 다음엔 잃어버리지 말도록.”

 

그 말을 끝으로 소녀의 온기도 소녀의 손도 소녀의 목소리도 그 무엇도 시유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시유의 오른손에 은빛 십자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것은 여동생 시영이 잃어버린 시유로부터의 선물이었다.

깊고 깊은 숲 속에서 홀로 남은 시유는 그저 멍하니 눈앞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은 멋대로 흘러나갔다. 결국 그 사건 이 후로 시유는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 느낄 수 없었다. 들을 수 없었다. 시간은 어느 세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 날 이 사건이... 후에 어떻게 다가오게 될 지... 그 때는 결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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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랜만에 글을 써봅니다.

연재를 정한 이상 힘내 써보겠습니다.

그럼 다은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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