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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폭풍의 탑-5-

2010.11.15 17:15

azelight 조회 수:601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둘은 발락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삐졌는지 뒤늦게 내려온 루시엔도 발락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한 듯 했다.

 

그 순간 방수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베이커드였다.

 

나간 것 같은데.”

 

베이커드가 그렇게 말했을 때 솔드도 방수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쩌면 발락은 라니아가 여관 밖으로 내던져 졌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일지도 몰랐다. 그 정도의 일이 아니라면 발락이 애던을 내버려두고 폭우가 치는 여관 밖으로 나갈 일도 없을 거라는 것이 둘의 생각이었다.

 

루시엔. 애던을 지켜다오. 나가자, 베이커드.”

 

젖는 건 싫지만 별수 없군.”

 

작게 불평을 말하는 그와 함께 솔드는 여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폭우와 휘몰아치는 바람이 둘의 시야를 가로막았지만 한쪽 팔을 들어 눈을 보호하며 정면을 주시했다.

 

번쩍하고 천둥이 칠 때 솔드와 베이커드는 곧장 발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덩어리가 나무들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을 번개 속에서 보는 것은 제법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발락!”

 

솔드가 소리쳐 부르기도 전에 발락은 이미 돌아서고 있었다. 그의 감각은 근접한 대부분의 것은 입체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대신 그 감지영역이 한정되어 있긴 했지만 그 안에서 그가 인식하지 못하는 없는 존재는 거의 없었다.

 

솔드. 나왔나?”

 

. 라니아는?”

 

저기 있네.”

 

발락이 나무 위를 가리켰다. 실제로 그곳에는 실컷 젖은 라니아가 요염한 자태로 나뭇가지에 걸쳐져 있었다. 허리로 나뭇가지가 뚫고 나와 있지 않았다면 제법 눈요기로 괜찮다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기절한 건가?”

 

미동도 하지 않는 라니아의 모습을 보고 솔드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라니아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미세한 움직임도 없는 그녀의 모습은 솔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설마 죽은 것은 아니겠지?

 

솔드는 꺼림칙한 예감을 떠올린 자신을 속으로 꾸짖었다.

 

발락. 내릴 수 있겠나?”

 

가능하다. 하지만 살을 가진 자들은 부상에 약하다고 들었다. 내게 섬세함을 요구한다면 무리라고 대답하겠다.”

 

그렇다면 직접 올라가봐야겠군.”

 

솔드는 자신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발락에겐 섬세함을 기대할 수 없고 베이커드는 나무에 오르는 것은 몰라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관통한 나뭇가지의 상태에 따라 부러뜨려야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이 올라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손날로 베어낸다면 라니아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나뭇가지를 잘라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끄러울 것 같은데. 괜찮겠나?”

 

베이커드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지만 솔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능하면 빨리 내려서 여관 안으로 데려오는 것이 좋을 것은 자명한 일. 솔드는 즉시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나무에 손을 올렸다.

 

, 언니!”

 

그 때 뒤에서 루시엔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관 안에 있으라고 했는데 기어코 나온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루시엔. 애던을 지키라고 했었는데.”

 

, 하지만. 언니가.”

 

루시엔은 항변하려는 듯 입을 움직였지만 솔드는 손을 휘저으며 루시엔의 말을 막았다.

그렇다면 거기 얌전히 있어. 발락, 애던에게까지 자네 감각이 닿나?”

 

발락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부탁하네. 자네도 밖에 있는 것은 부담되겠지?”

 

발락은 그 육중한 몸을 움직여 천천히 여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냅다 뛰지 않는 것이 그 다운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은 그에게 두려운 것일 텐데. 그는 그 속에서도 초월적인 의지로 그 품위와 체통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조금씩 몸이 들썩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물론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닌데다가 저런 모습을 한두번 본 것도 아니다 보니 오히려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옛 전승에 노르위펜이 비를 만나면 토굴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며, 일부 부족들은 수로가 정비된 지하생활을 한다고 하니 그들이 공수증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는 증거가 될 곳이다.

 

베이커드가 이르길 그와 처음 만났을 시점에 이미 저랬다고 하니 발락은 정말 잘 참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현재 중요한 것은 부상을 입은 걸로 보이는 라니아다.

 

솔드는 척척 나무를 올랐다. 발판으로 삼을 만한 것도 없고 빗물로 미끄러웠지만 그는 가벼운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라니아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곧 그는 라니아의 몸을 관통한 나뭇가지가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고 그녀를 내리기 위해서는 잘라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손날을 쳐든 솔드는 벨 장소를 한 번 가늠해보고 그대로 내려쳤다.

 

소리도 없이 나뭇가지가 잘렸다.

 

문제는 내려가는 거다.

 

솔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래를 내려봤자. 미끄러운 나무. 한 팔로 가지를 잡고 지탱하고 있지만 라니아를 데리고 내려가기 위해선 양 손을 다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양손을 쓰고 내려가자니 여의치 않고 뛰어내리면 부담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위치를 봐서 내장이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심스럽게 행동해야할 것 같았다. 다행한 일은 제법 깔끔하게 관통 당했다고 할까. 관통당할 때 삐져나온 가지가 부러지거나 했다면 제법 거창한 상처가 됐을 거라고 생각하며 솔드는 일단 아래를 향해 외쳤다.

베이커드. 저속낙하 같은 걸 사용할 수 있나?”

 

사용할 수 있네.”

 

그럼 내가 라니아를 안고 뛰어 내릴 테니 사용해주게.”

 

알겠네. 하지만 주문이 기니 조금 기다리게.”

 

베이커드는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고 그게 솔드에게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기다리자 낮게 울리는 소리가 자신의 몸에 닿는 것을 느꼈고 자신에게 주문이 걸렸음을 깨달았다. 실제로 베이커드는 그 직후 솔드에게 내려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솔드가 라니아의 등과 다리를 양손으로 받쳐 들자 몸이 느릿하게 바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부유감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솔드는 나무를 살짝 발로 찼다. 둥실하고 몸이 나무로부터 떨어지고 솔드는 그대로 자세를 유지한 체 바닥에 착지했다.

 

베이커드는 이미 그 때 솔드가 들어올 수 있도록 여관 문을 열어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루시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솔드의 옆을 따랐고, 솔드는 라니아를 여관 바닥에 옆으로 세워 눕혔다.

 

비켜 봐요.”

 

루시엔이 비집고 들어오려 하자 솔드는 일단 막았다. 절실하게 굴고 있지만 순서는 지킬 필요가 있었다. 치유의식이 가능하다고해도 루시엔에게 관통한 나뭇가지를 뽑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성급하게 굴지마라. 후우.”

 

오늘따라 성가시게 구는 루시엔을 보고 솔드는 한숨을 쉬었다. 평소라면 그래도 말을 잘 듣는 편이고 상황 판단도 빠른 아이인데도 라니아와 관련되면 성격이 변한 듯이 구니. 이런 기복을 보면 되레 어린아이 같아서 안심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는 솔드였다.

 

복잡한 심경이라고 할까.

 

솔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라니아를 살폈다. 그녀의 상의를 벗기고 조심스럽게 상처를 조사한다.

 

다행이 생각보다 상처가 심각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피도 거의 흐르지 않고 빗속인데도 체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나뭇가지가 느리지만 서서히 등 쪽으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엘루에겐 없는 엘드린의 강력한 생명력이 그녀가 입은 상처를 복구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라니아가 입은 상처는 그녀에게 있어 별로 크지 않은 상처일지도 몰랐다. 물론 그런 판단에 근거라는 것이 없지만 감이라고 할까?

 

폭우 속에서 일행 전부가 녹초가 될 때도 혼자서 경쾌하게 걸었던 라니아였다. 그러니 단순히 내던져 진 것으로 기절했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나무에 찔린 걸로 기절한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라니아의 옷은 정신반응에 의해 그녀의 의지가 견고할수록 강한 방어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녀가 웃으면서 자랑하던 내용이었다. 그 방어가 뚫렸다는 사실은 이미 나무에 부딪치기 전에 라니아가 기절한 상황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솔드 자신도 붙잡혀서 패대기 처질 뻔 했지만 그 상황에서 기절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솔드보다 우월한 라니아가 기절했다는 것은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아저씨.”

 

약간 부루퉁해진 루시엔의 목소리에 솔드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강한 재생력을 지닌 엘드린이라도 이런 꼴이 된 여자를 치유력을 믿고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솔드는 등을 통해 나뭇가지를 뽑았다.

 

순간 루시엔이 주문을 발하자 출혈이 멈추고 상처가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경이롭다네. 이거 뭐 괴물하고 다를 바가 뭔지.”

 

베이커드가 옆에서 그렇게 말하자 루시엔이 찌릿하고 노려봤다. 물론 베이커드가 그런 시선에 굴했을리 없다.

 

여하튼 문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네. 저런 놈들이 우글우글 거린다면 지금도 안전한 것은 아니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두 명이 전투 불능이군.”

 

묶인 신. 그 중에서도 벌레여왕 라나가하사의 손이라고 불리는 벌레무리들은 묶인 신들의 하인들 중에서 특히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심지어 묶인 신들을 숭상하며 그들을 봉인한 용들을 증오하는 용의 조락은 그것들을 신의 사자라며 경의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 것들과 조우했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선수를 칠 수 있었지만 기습을 당한다면 순식간에 당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일행에서 가장 강한 라니아가 순식간에 바깥으로 휙 던져지지 않았던가? 물론 일행 내에서 가장 강한 라니아를 쓰러뜨리기 보다는 전장에서 배제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 라니아가 전투불능상태에 빠졌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었다.

결계를 믿어보는 수밖에. 하지만 불침번을 세우긴 해야겠지. 결계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

 

제법. 하지만 저런 게 덤벼온다면 기습을 피하는 수준 밖에 되지 못할 거네.”

 

태세는 정비할 수 있단 말이군.”

 

경우에 따라선 더 오래 버틸 수도 있을 거네.”

 

경우에 따라서라.”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이리라. 솔드는 그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불안은 모험가에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필수적인 장애다.

 

그걸 극복하지 못하는 놈은 제대로 된 모험가가 될 수 없고, 인지하지 못하는 놈도 제대로 된 모험가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라니아나 베이커드는 되먹지 못한 놈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력과는 별개로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솔드였다면 라니아나 베이커드처럼 허를 찔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벌레무리의 촉수 공격에서 무사했던 것은 솔드 뿐이었다.

 

솔드는 루시엔쪽으로 고갤 돌렸다.

 

라니아의 치료에 전력을 쏟았는지 루시엔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하루 나절 동안 폭우 속을 걷고, 냉기를 내쫓기 위해 주문을 쓰고 결계를 친 것도 모자라 그녀로서는 버거운 적을 대면하고 라니아를 위해 모든 심력을 소모했으니 저리 될 만도 했다.

 

솔드는 일어나서 루시엔을 바닥에 눕혔다. 루시엔이 조금 투정을 부렸지만 의식하고 행동은 아닌 듯 반쯤 감긴 눈으로 순순히 솔드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라니아의 옷을 다시 여며주고 벽난로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지금 걱정하고 있는 문제에 관해서 베이커드에게 질문했다.

 

바로 2층에 대한 문제.

 

마법사들이 머물렀다는 방이 장막 너머의 음적 세계와 연결되어 냉기를 방출하고 있다는 것. 그를 통해 넘어온 괴물과도 싸웠지만 솔드가 생각하기엔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추측을 확인해주듯 베이커드의 대답이 돌아왔다.

 

문은 건재하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네.”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분명 어마어마한 괴물이 나오지 않았었나?

 

똑같은 괴물이 나올 일이 없을 거라는 예긴가?”

 

오오. 아닐세. 물론 아니야. 아예 그 쪽으로 나오자 않을지도 모르네. 그쪽의 장막이 엷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이 감각을 일반인에게 표현하는 것은 몹시 힘들군. 뭐랄지. 분명히 이번 소환으로 문이 열렸네. 그 전에는 영향을 받는 정도? 전에는 마치 복사열처럼 전도되어 왔다면 이번에는 진짜로 구멍이 뻥 뚫린 거네. 즉 창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건 뭐 어디까지나 이쪽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고. 층적으로 깊이가 있다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이건 도저히 뭐로도 비교할 수 없군. 성립이 안 되는 다면체라고 할지. 여튼 그런 거리가 존재하네. 우리는 인력이라고도 부르네만 그런 거리 때문에 저곳으로부터 뭔가 나올 확률은 희박해.”

 

횡설수설이라 무슨 이야기인지 솔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든 주문사용자가 아닌 일반인은 인지할 수 없는 거리라는 것이 그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리라.

 

뭔 말인지 못 알아들겠지만 의미는 알겠군. 결국, 다소 위험하지만 무시할 수 있을 수준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대충은 그렇다는 말이네. 물론 괴물이 올 확률이 적다는 거지 저 구멍자체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라네. 저 속에서 여전히 냉기가 방출되고 있네. 결계가 무너지면 훨씬 더 혹독한 추위에 노출되겠지.”

 

그건 결국 일행이 한 일은 결국 상황을 악화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조사하고 소환을 행한 결과 마법사의 혼은 괴물의 먹이가 되었고, 라니아는 부상을 입은 것도 모자라 엷은 막과 같던 장막은 완전히 바람구멍이 나버렸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장막이 뚫린 것으로 인해 이계화가 가속화된다는 소리기도 했다.

 

막을 순 없나?”

 

나로서는. 하지만 발락이라면 모르지.”

 

발락이?”

 

조용히 명상하고 있던 발락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몸은 꿈쩍이지도 않은체 둘을 향해 조용히 입만 열었다.

 

지금은 무리다. 내 전문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충전모드였었지. , 당장은 막을 도리가 없군. 라니아는 아까 반응으로 봐선 그에 대한 기억은 없는 듯 했고, 루시엔이 사용할 수 있을만한 수준도 아니네. 더구나 그 아이는 정령사니.”

 

재능의 유무를 떠나 그녀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같은 주문사용자이면서도 베이커드와는 달랐다.

 

지식과 비의, 신비로부터 힘을 갈구하는 베이커드는 지배와 교감, 교환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루시엔에 비하면 약하지만 다채로운 방향으로 능력을 발하는 범용적인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루시엔은 딱 그에 반대.

 

비록 자질을 통해 여러 분야를 동시에 섭려하고 있는 루시엔이었지만 바다처럼 넓은 지식도 대야처럼 얕다면 의미 없는 일이다.

 

, 물론 루시엔의 지식이 대야처럼 얕다는 이야기는 아니라오.”

 

어디다 말하는 거냐.”

 

베이커드에게 딴지라는 화살을 내 쏜 솔드는 하아.”하고 한숨을 쉬었다. 원래 잔걱정이 많아 한숨이 많은 그였지만 최근 이 일행에 들어와서 훨씬 더 한숨이 늘어난 상태였다.

장막을 복구하는 것은 불가. 그렇지만 내버려두기도 좋지 않았다는 거로군.”

 

그렇다네. 내 생각으론 가능하면 철수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만. 그렇게 안 되겠지?”

 

우문이로군.”

 

베이커드의 말에 발락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드물게 끼어들었다. 엘루나 노르위펜이나 전사로서 가지는 긍지가 똑같다면 분명 솔드의 제안은 마음에 들지 않는 제안일 것이다.

 

명확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 미리 불안을 가지고 발을 뺀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지 않겠는가? 만용과 무모는 분명 어리석지만 베이커드의 말은 최소한의 용기조차 없는 자의 말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 말이었다.

 

우리는 아직 저 소굴로 들어가지 조차 않았다.”

 

그렇게[ 말하며 발락은 탑을 가리켰다.

 

우르릉하고 천둥이 치는 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천둥과 번개, .

 

폭풍의 탑은 창 시야를 가릴 정도의 빗속에서도 창밖너머로 명확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모습.

 

다시 봐도 변함없는 그 존재감을 과시하며 폭풍의 탑은 그 이름그대로 폭풍 속에 고고히 존재했다.

 

저 속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물러서려는 건가? 무엇을 겁내는 건가?”

 

속에 든 거야 당연히 벌레무리겠지. 묶인 신의 부하들. 분명히 저 건물은 3세기의 황혼 때 엘드린들이 묶인 신을 봉인했던 유족일거라고. 뻔 하지 않나? 저런 놈들이 있는데.”

 

답답하다는 듯이 베이커드가 말했지만 발락은 오히려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그게 어떠냐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우리가 항상 싸워왔던 적이다. 겁먹을 필요 있는가? 시작부터 겁을 먹다니. 그대는 이미 한 번 죽었던 목숨. 잊었나?”

 

발락의 말에 베이커드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솔드는 묻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긴장감 때문에 질문할 수 없었다. 적어도 성급하게 말을 꺼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저 베이커드에게 그런 것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발락의 말이 먹혔는지 베이커드는 .”하고 혀를 차고는 더 이상 대화하기 싫다는 듯 벌렁 들어 누웠다.

 

그러자 발락 또한 다시 최초의 자세로 돌아갔다. 흐릿한 백색빛을 내는 눈이 감기고 그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지닌 투박한 조각상으로 돌아갔다.

 

, 시작부터 겁을 먹진 말자고.”

 

솔드는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띄워 볼 겸 웃으며 말했지만 이미 가라앉은 분위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솔드는 위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이, 이봐. 발락.”

 

솔드가 부르자 발락은 다시 눈을 떴다.

 

나도 이제 잘 건데 말이지. 평소대로 자네에게 경계를 부탁해도 되겠나?”

 

보존을 위해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는 발락을 배려해 솔드가 묻자 그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지의 가호를 받아 발이 땅에 닿는 한 끊임없이 힘을 보충할 수 있는 노르위펜은 잠이라는 것을 자지 않는다. 때문에 그는 언제나 자처해서 경계꾼을 청해왔고, 덕분에 일행은 굳이 불침번을 정하지 않고 푹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 그는 휴식이라는 것을 취해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솔드는 추측했고 때문에 이런 질문을 했던 것이다.

 

문제없다. 쉬도록. 내일이면 저 탑으로 향해야 할 테니.”

 

대답을 끝으로 발락은 다시 조각상으로 돌아갔다.

 

솔드는 자리도 깔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누웠다. 흙바닥에 누워서 자곤 했던 그에게 여관 마루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나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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